산서성 남부 및 하내 지역의 고대 지명 비정(比定)에 관한 연구
: 기주(冀州)·유주(幽州)·동북(東北)·하동(河東)·북방(北方)의 위치 고증을 중심으로
1. 서론
동양 고대사에서 지명의 위치 비정은 강역 해석의 핵심이다. 특히 **기주(冀州)**와 유주(幽州) 등 고대 행정구역은 시대에 따라 그 범위가 유동적이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각종 지리지와 사료를 바탕으로 이들이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내(河內) 지역에 군집해 있었다는 설을 문헌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 기주(冀州)와 하내(河內)의 상관성
기주는 《상서(尙書)》 〈우공(禹貢)〉에서 9주 중 으뜸으로 꼽히며, 그 범위가 하동(河東)과 하내를 포괄한다.
《수경주(水經注)》 권5 〈제수(濟水)〉: "기주(冀州)는 사방이 하(河)로 둘러싸여 있다(冀州, 繞以四河)." 여기서 '사강(四河)'은 산서성 남부를 감싸고 흐르는 황하의 굴곡진 형태를 의미한다.
《한서(漢書)》 권28 〈지리지〉 하(下): "하내(河內)는 본래 기주(冀州)의 땅이다(河內, 本冀州之地)." 하내는 현재의 하남성 무척(武陟), 심양(沁陽) 일대로, 황하 북부와 산서성 남단에 접해 있다.
3. 유주(幽州)의 남천(南遷) 및 초기 위치 고증
일반적으로 유주는 북경 일대로 알려져 있으나, 고대 문헌은 그 연원을 산서성 남부에서 찾고 있다.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 정의(正義): "유주(幽州)는 기주(冀州)의 북쪽을 나누어 세운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1: "유(幽)는 북방의 주(州)이다."
《괄지지(括地志)》 (《사기》 주석 인용): 유주와 관련된 초기 지명인 '유릉(幽陵)'이 기주 내부 혹은 하내 지역과 인접한 산서성 일대에 비정됨을 시사한다. 이는 초기 유주가 요동(遼東)이 아닌 태행산맥 서쪽 기슭에 위치했음을 보여준다.
4. 하동(河東)과 북방(北方)의 지리적 실체
산서성 남부는 고대부터 '하동'이라 불렸으며, 이는 중원 입장에서 '북방'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사기(史記)》 권15 〈육국연표(六國年表)〉: "진(秦)이 하동을 취하였다." 여기서 하동은 산서성 운성(運城), 임분(臨汾) 일대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권39 〈산서(山西)〉 2: "하동(河東)은 태행(太行)의 서쪽이며, 황하가 굽이쳐 내려오는 곳으로 북방의 인후(咽喉)가 된다."
하내 지역과의 관계: 《신당서(新唐書)》 권38 〈지리지〉에 따르면 하내군은 기주에 속하며, 지리적으로 하동과 바로 인접하여 '북방'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거점임을 명시하고 있다.
5. 동북(東北)의 방위 개념 재해석
문헌상의 '동북'은 현대의 만주가 아니라, 낙양(洛陽)이나 서안(西安)을 기준으로 한 산서성 일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주례(周禮)》 〈하관사마(夏官司馬)〉: "동북을 유주라 한다(東北曰幽州)."
《이아(爾雅)》 〈석지(釋地)〉: "제(齊)의 동북을 유주라 한다." 고대 제나라의 강역과 산서성 태행산맥의 지리적 구도를 볼 때, 이는 황하 북부 하내 지역에서 연결되는 산서성 동부 라인을 의미한다.
6. 결론
문헌 사료를 종합할 때, 기주와 유주, 하동, 하내 등은 고대 중원의 핵심부인 **황하 절곡부(산서성 남부)**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었다.
기주는 산서성 전체와 하내를 포괄하는 중심 개념이다.
유주는 기주의 북부(산서성 내)에서 분리된 개념으로 초기에는 현 북경보다 남쪽에 위치했다.
하동과 하내는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북방'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초기 문헌이 지시하는 이들 지명은 현재의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내 지역에 비정하는 것이 지리적, 사료적 정합성이 높다.
주요 참고문헌
司馬遷, 《史記》, 〈五帝本紀〉, 〈六國年表〉.
班固, 《漢書》, 권28 〈地理志〉.
酈道元, 《水經注》, 권5.
顧祖禹, 《讀史方輿紀要》, 권39.
歐陽修 등, 《新唐書》, 권38.
제미나이 작성, 임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