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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관식은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라.... 방안은
휑덩그렁했다. 자신이 사준 텔레비전도,
옷장도, 새로 사준 화장대도 없었다. 좁은
방안에는 그녀의 옷가지들이 함부로
내팽개쳐져 있었고, 알록달록한 화장품들도
봉지 속에서 쏟아져 나온 사탕알처럼 방안에
흐트러져 있었다.
커피포트도 밥솥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방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짐작컨대 아까 그 빚쟁이들이 리어카를
한대 대놓고 닥치는대로 방안의 살림들을
실어내 간 모양이었다.
관식은 주방으로 들어가 술을 찾았다.
소주가 한 상자, 그리고 플라스틱 상자에
그냥 꽂혀 있는 맥주가 몇 병 있었다.
화를 진정하느라고.... 아니 생각을
거듭하느라고 세 병의 맥주를 순식간에 마셔
버리고 관식은 방안으로 들어가서 어지러운
물건들을 정리했다. 검은색이 주로인 그녀의
겉옷들.... 그리고 부드러운 속옷들, 흩어진
화장품들, 그리고 이불 보따리....
그녀의 방안을 절이해 놓고 나서 한가운데
댓자로 드러누워서 관식은 그녀를 기다렸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얼굴과 모습들이 슬라이드
했다.
푸른 미류나무 같던 십대의 그녀. 그리고
분홍색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태화와 함게
나이트클럽 앞에 서 있던 화려한 이십대,
검고 긴 옷과 틀어올린 머리로 남는 그녀의
카페 미라보 시절. 그 슬라이드의 중심은
언제나 그녀의 깊고 서늘한 눈, 그리고
목덜미가 시원하게 드러나도록 감아올린
머리였다.
문소리가 났다.
관식은 얼핏 시계를 보았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방안에서 혼자 기다린
것 같았다.
"도대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세희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관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옷을 다시 입은
그녀를 최근에는 본 적이 없었다.
"이 옷 사러 갔다 왔어요.... 어때요?"
그녀가 한바퀴 휙 돌면서 말했다.
그런 상황을 뭐라고 할까.... 초상집에서
부채춤 추는 격이라고나 할까.... 이 여자는
지금 자기 자신이 어떤 현실 속에 처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옷을 사러 갔다왔다구?"
"네.... 오라버니...."
그녀가 웃으면서 다시 한번 바바리 자락을
펼쳐 보이면서 패션모델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듯 춤을 섞어가면서 출렁거렸다.
"윤세희...."
"아이, 오라버니 무서운 얼굴 하지
마세요."
쳐다보았다.
그래.... 다르다.... 저 눈은 평소 세희의
깊고 서늘한 눈이 아니다.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는 눈길, 눈속의 희자위가 평소보다
더 많아진 것 같은 저런 눈은.... 맞아....
대마초.
"아직도 대마초을 피우나?"
"대마초요? 그런 거 끊은지
오래됐어요...."
"어냐.... 난 알아... 날 속이려구 하지
마. 대마초가 아니면 뭐지?"
그러자 그녀가 까르르르 웃었다.
"오라버니 대마초는 70년대 얘기구요....
지금은 아니예요.... 지금은 뽕이라구요....
아시겠어요.... 뽕?"
"그럼...."
노래를 하세요, 제가 춤을 출께요.... 아니
단 둘이 춤을 춰요.... 이까짓 거지같은
대폿집 문닫아 버리구 춤을 춰요....
오라버니 나하구 춤을 추고
싶어했잖아요..... 아니면 나이트클럽으로
갈까요?"
"세희!"
"좋아요.... 그런 거 전런 거 다 생략하구
바루 해피하자구요? 그것두 좋아요.... 어서
방으로 들어가요....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그녀의 눈에는 흐트러졌던 방안이 나름대로
정돈된 것 같은 사소한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라버니.... 불을 끌까요 말까요...."
물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더이상 분홍색
겉옷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알록달록한 옷을 입어야 고와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경우가 달랐다.
"싫어.... 지금은...."
"제가 보여 드릴께요.... 제 벗은 몸을
보고 싶다구 그러셨죠? 얼마든지 보여
드릴께요.... 자 보세요...."
"그러지 말아, 세희...."
"왜요, 제가 이제는 싱싱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그러는 오라버는 뭐 아직도 이팔
청춘인지 아세요? 피차 배가 나온 것은
마찬가지 아니예요? 오라버니가 보여 달라고
말하셨잖아요. 난 보여 드리고 싶어요....
전부.... 모두.... 내가 가진 것 몽땅 다....
왜냐하면 오라버니가 마지막이니까요....
마지막이 됐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 잘
아시잖아요.... 어때요?"
"그만 둬, 제발...."
관식은 일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가지 마세요...."
"내일 다시 올께...."
단호하게 관식은 말했다.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정말 제가
잘못했어요...."
세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싸안았다. 금방이라도 서러움의 덩어리를
쏟아낼 것처럼.
관식의 마음이 아프다 못해 저려왔다.
작은 방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분홍색의
바바리 코트. 아마도 그녀는 절망의 끝에 서
있을 때 자신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나간 모양이었다.
"세희....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
해볼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예상했던대로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자가 우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혹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가장 진실한
순간이라면 몰라도 역시 여자는 웃는 얼굴이
예쁜 법이었다.
떨어지는 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비극이고
물론 꽃은 피어나는 순간이 예쁜 법
아니겠는가.
"미안해요.... 오라버니한테 걱정을 끼쳐
드려서.... 허지만 저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서방을 여러 번 갈았지만
없어요.... 다 때가 되면 떠날 생각만 하는
사람들 뿐이에요."
"나는 안 그래."
"알아요.... 제 잘못이에요.... 처음서부터
오빠를 택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면
행복하고 곱게 늙을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처럼 추해지지 않구요...."
"추하지 않아.... 지금도...."
"자신없어요...."
"괜찮아.... 나를 보라구...."
그녀가 관식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 관식은 아무런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전에 그녀의 눈에서 나왔던
눈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전혀 백치상태인
것 같은 그녀의 멍한 눈. 한 줄기의 마음도
읽을 수 없는 완벽한 무표정.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웃어 봐.... 웃어 보라구.
세희는 웃는 모습이 예쁘잖아...."
관식의 말에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
모습이 관식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거칠게 그린 만화 속의 얼굴이 웃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나무로 깎아 만들어 놓은 탈이 보여
주는 정형화된 웃음. 딱 한 가지밖에는 없는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안되겠어.... 세희 그만 자도록 해봐...."
"네...."
그녀가 자동인형처럼 대답했다.
세희의 급한 빚을 갚기 위해서 돈
4백만원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갚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적어도
백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고 있으면 몇 군데의
구멍이 있게 마련이었다.
관식은 우선 손쉬운대로 학교의 직원들끼리
구성원이 되어서 조직, 운영하고 있는
상조회에서 2백만원을 빌렸다.
매달 1할 5부의 이자만 지급하거나 아니면
원금을 본인이 원하는대로 5만원이면 5만원,
10만원이면 10만원과 함께 이자를 지급하면
되는 것이었고,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공제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2백만원은 가까운 선생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고, 며칠 안에
교원연금공단이라는 곳에서 빌려서 갚는다는
조건으로 마련했다.
교원연금공단이라는 데는 교사들의
퇴직금을 관리하는 기관이었고, 일정액
일정액을 융자해 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하룻만에 돈을 마련해서 세희에게로 갔다.
"오라버니한테까지 신세를 지게
됐군요...."
"살면서 차차 갚으면 되지 뭐.... 그나저나
빚이 얼마나 되는 거야?"
세희가 설명을 했다.
독고준과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뒤를
봐준다는 또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역시 유동민 회장과의 관계와 같은 형식으로
카페를 차렸다. 장사도 그럭저럭 되었고,
새로 만난 남자하고의 관계도 대충 유지되어
갔으나 어느 날 그 사람의 본부인이
들이닥쳤다.
억센 여자들과 함께 집과 가게로
쳐들어와서 부수고 때렸다. 일주일 동안이나
없었다. 더구나 당장이라도 간통죄로 집어
넣는다는 엄포 때문에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방 한칸 얻을 돈만 가지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벌여 놓은 일들이
하나씩 터진 것이었다. 갚지 못한 술값,
가게 월세, 그런 일들로 채권당는 그녀를
고소했고 능력이 없는 그녀는 도망을 쳐야
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통닭집이라도 하나
쳐려 놓으면 집달리가 들이닥쳐서 모든
물건들에 대해서 차압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차압된 물건들을 경매에 붙여서
판다는 것이다. 50만원짜리 냉장고 같으면
20만원.... 10만원짜리 옷장이면 5만원....
얘기였다.
그리고 빚에 대한 이자까지 계산을 하니까
그런 식으로 빚이 탕감되기는커녕 계속
제자리 걸음이 된다는 얘기였다. 하니가
그녀의 주소가 확인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집달리가 쫓아와 차압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위 일수돈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것을 관식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가령 윤세희가 장사를 하기 위해서 일수돈
4백만원을 5부 이자로 빌린다. 돈을
빌리면서 선이자 80만원으러 제한 32만원을
받아서 쓰고 그것을 4개월 120일로 나누어서
갚게 되면 하루에 2만6천6백원씩을 갚아야
돈 2만6천6백원이 하루라도 늦게 되면 그
돈에 대해서 또 5부의 이자가 붙게 되고,
이틀이면 그것을 합한 금액에 또 5부 이자가
붙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복리이자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마치 눈덩이예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지요...."
세희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현실을 히로뽕 같은
것으로 피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말짱한 정신으로
그녀에게 마약 얘기를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라버니는 몰라서 그래요."
"모르기는 뭘 몰라.... 내가 학교
선생이라서 사회 생활을 잘 모른다구
대면 그 중독 증세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쯤은
잘 안다구.... 세희는 아마 카페 미라보
시절부터 그놈의 대마초가지구 가끔 뺑 돌곤
했잖아."
"맞아요...."
"그럼 히로뽕은 언제부터야?"
"처음에는 그게 그런 것인 줄은
몰랐어요....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원래 술을 잘 마실 줄을 모르잖아요.... 제가
배운 것이 술장사구 먹구 사는 길도
그거구.... 그래서 손님들이 한잔씩 하라구
하는 것을 억지로 받아먹다가 보면 취하게
되구.... 그러면 백발백중으루다가
오바이트를 해야 되구....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어요.... 어느날 집에서
일하는 종업원 애 하나가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처음 그걸 해보니까 정말이에요....
아무리 술에 취했다가두 말짱하게 술이 깨구
정신두 들구 힘두 나구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어때?"
관식이가 묻자 그녀는 입술만 깨무는
시늉을 하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해 봐.... 이건 중요한 문제니까."
그녀가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 일시적으로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마약에 의존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중독이 되어 있는가....
관식은 그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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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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