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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판론
(1) 숭례문과 함께 무너져내린 것들
부산일보 2008-02-13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돼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너져내린 것은 단지 숭례문 지붕·누각만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문화의식도 함께 였다. 이번 화재는 방화범에 의한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국가의 문화재 정책 및 행정의 총체적 난국이 빚은 어처구니 없는 인재였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과 관련된 시행령이 없는 등 관련 법규 미비와 허술한 문화재 안전관리 시스템 등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숭례문 화재는 예견됐던 재앙이었다. 잡힌 방화범이 "경비가 허술해 숭례문을 선택했다"고 자백했을 정도로 숭례문 경비는 무인지경이었다.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관리 의식이라도 있었다면 숭례문이 2006년 시민에게 개방된 이후 야간경비를 무인경비시스템에만 의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일부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에 올라가 라면을 끓여먹고 잠을 자기도 했다는 사실을 관계자들은 과연 몰랐을까. 화재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글이 지난해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올라 오기도 했던 상황이었으니 문화재 당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화재 경보장치와 스프링클러 등 화재 예방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점은 안전 불감증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평소 관련기관 합동 재난훈련 등을 통한 목조문화재 화재방지 기본수칙이 만들어져 있었다면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화마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당국은 사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딴청만 부리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문화재청은 사고직후 "182장의 정밀 실측 도면과 1965년 발간된 수리 보고서가 있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은 복원부터 언급할 때가 아니다. 사라져버린 국보 문화재의 가치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국보1호'를 잃어버린 국민들의 무너진 자존심과 허망한 심정을 어떤 방법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인가. 관련자들은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뒤늦게 사과를 하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 성금을 모아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을 한 것도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당선인이 앞장서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태안앞바다 기름유출사고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를 하고 자원봉사 물결을 이룬 것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었다. 사고를 낸 국가나 기업은 뒷짐 지고 있고 뒤치다꺼리는 결국 국민이 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번에는 정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태 해결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문화재 관련 법령을 정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적극적인 문화예산 책정으로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과감하게 펴나갈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최대의 화두인 경제성장이 나라의 체력을 키우는 일이라면 문화의식의 함양과 문화산업의 발전은 국가정신의 강화를 통해 균형 있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곧 발표될 새 내각 관계자들이 깊이 인식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문화에 대한 경시풍조와 자존감이 결여된 빈약한 문화의식으로는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반환 운동은커녕 갖고 있는 문화유산조차 제대로 지켜낼 수 없다는 이치가 이번 참변을 통해 분명해졌다. 팔짱 끼고 있다가 우리의 '김치'와 '불고기'가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기무치'와 '연기 안 나는 갈비'에 밀려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정자들은 직시해야만 한다.
(2) 전시 행정의 덫과 남대문
뉴시스 2008-02-13
기자를 30명쯤 데리고 있는 한 동료데스크는 늘 핑핑 돌게 바쁘다. 그는 “말만 하는 지도자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면서 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입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 가장 혐오하는 일 처리 방식은 ‘탁상행정’이다.
지난 1월 불거진 전남 대불산업단지 전신주 논란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탁상행정을 혐오한다. 그는 대불산업단지 내의 전봇대들이 선박블록 수송에 지장을 주는데도 1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 서있게 된 이유를 지자체와 한전 등이 탁구공 넘기듯 책임을 미루며 탁상행정만 벌인 대표사례로 꼽았다. 그리고 질책하였다.
국민 치고 탁상행정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정치인, 관료, 정부조직이 탁자 앞에서 회의나 거듭하고 서로 ‘당신네 일’이라고 미루는 탁상행정을 벌이면 결국 늦장행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탁상행정보다도 훨씬 더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전시행정이다. 전시행정은 사전조사, 콘텐트구성, 검증, 안전장치가 부족해도 ‘한 건을 보여주기 위해’ 정치가와 관료들이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행정이다. 국민의 인기만 얻기 바라며 일을 벌이는 행정이다. 벌이는 입장에서는 행정 성과와 업적, 정치력, 지도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다. 그러나 그 전시행정의 결과는 국가예산만 쓰고 내용은 없는 빈 껍데기에 그칠 수 있고, 때론 회복할 길 없는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불산업단지의 전신주 논란 그 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전시행정이 문제였다. 이 당선인이 대불산업단지의 탁상행정을 지적하고 난 바로 며칠 후, 꿈적 않던 전봇대 2개가 뽑혀 자리를 옮겼다. 산업단지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크게 보도도 되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단지 입주자들은 “모퉁이 전봇대 두 개 옮기고 일을 다 한 것처럼 자화자찬하는 전시행정”을 (인수위가) 했다는 의견이었다. 산업단지 안에서 선박블록을 수송하는 데 필요한 전체 개선, 이를테면 다른 전봇대의 지중화, 가로등의 이설, 도로 중앙분리대의 설치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획도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연기에 휩싸여 있다가, 차츰 불에 활활 타다, 우리의 마음 한 구석과 더불어 기와와 기둥과 서까래가 한 무더기씩 무너져 내린 남대문을 두고 곰곰 생각한다. 사고의 시발점은 전시행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책임을 가장 통감할 사람들은 전시행정을 벌인 사람들이 아닐까?
1월의 마지막 일요일, 카메라를 들고 남대문에 갔었다. 그 일주일 전 남대문시장에 들렀다가 남대문 주위를 걷기도 하고 무지개의 둥근 모양을 떠올려주는 홍예문을 지나치기도 하고 ‘숭례문의 원형 바닥에 대한 설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그 설명에 따르면 숭례문의 원래 바닥은 현재의 바닥보다 1.6미터 아래 있었다. 아, 그렇다면 원래의 숭례문 석축은 더 높아 숭례문 전체의 위용이 훨씬 크고 위엄 있었겠다고 상상했다. 천장의 용 그림도 보았다. “카메라 들고 다시 한 번 와야겠다” 싶었다.
카메라 들고 다시 가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의 남대문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1년에 수억 원의 비용을 썼다는 의장대의 대원들 외에 경비나 보안을 서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홍예문의 열어둔 문의 쇠징 문양이며 석축 벽의 수 많은 총알 흔적, 천장의 용 그림을 사진으로 찍는 동안 누구나 누각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경비가 허술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치기는 하였다. 그러나 '문화재를 시민의 곁에!'는 좋은 착상이라 여겼다.
지난 2006년 3월 3일 서울시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숭례문을 개방하면서 100년만의 개방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그러나 '문화재를 시민의 곁에!'는 주장하면서 개방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사전조사, 안전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경비인력 확대 배치계획, 소방시설 설치, 위험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 작성을 했다는 증언이니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명공사는 대대적으로 했다는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개방을 처음에는 적극 반대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숭례문 우리가 태웠다”는 언론의 비유적 자성이 나오고 있는 지금 자성을 할 사람은 과연 국민인가 묻고 싶다. 카메라 들고 남대문을 찾아가 새삼 남대문을 자세히 보며 시간을 보냈던 나와 같은 시민은 마음과 자존심과 나라사랑에 상처를 받기는 했지만 자성을 할 첫번째 인물은 아니다. ‘숭례문 개방’이라는 한 건 위주, 업적 위주의 전시행정을 한 당시의 서울시가 자성을 먼저 해야 할 실체이다. 사과를 해야 할 실체이다. 개방 전에는 24시간 경비를 세웠지만 위험이 증대된 개방 후 야간에 경비를 세우지 않고 무인경비로 대체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이가 없다. 어이없는 전시행정이 역겹다.
남대문 불행을 겪었으니 새 정부가 한반도대운하 등의 여러 정책에서 전시행정의 커다란 덫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기나 해야겠다.
(3) 불 타버린 숭례문, 후손에게 큰 죄 졌다
동아일보 2008-02-11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 날이 밝자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앞에서 시민들은 말을 잃었다. 후대에 반드시 전해야 할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죄책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서울 도심을 호령하듯 웅장하고 빼어난 자태를 뽐냈던 1, 2층 누각 가운데 2층은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렸고 1층은 화재 여파로 언제 추가 붕괴될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이다. 숭례문 주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 매캐한 냄새에 다시 한 번 절망한다. 못난 우리들의 부주의로 후손들은 숭례문의 진정한 위용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숭례문은 조선조 태조 때인 1398년 완공되어 몇 번의 보수공사를 거치긴 했지만 600여 년의 긴 세월을 굳건히 견디어온 서울의 정문(正門)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 같은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훼손되지 않았다. 선조들의 목숨을 건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재 방재(防災) 시스템 새로 짜야
숭례문은 아름다움으로 치면 조선 초기의 견실한 장엄미(美)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역사성으로 보면 국내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훈민정음과 석굴암,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인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유산을 허무하게 소실시키는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무엇보다 화재가 발생한 뒤 신고가 바로 이뤄지고 소방당국이 즉각 현장에 출동했는데도 소방인력이 무려 5시간을 우왕좌왕하다 문화재를 다 태우고만 게 어처구니없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숭례문은 소방인력과 장비의 접근이 쉬운 곳이어서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외유 중이었다. 문화재 보호의 총사령관 격인 그는 문화재 보호보다는 훼손 전력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 5월에는 경기 여주의 효종대왕릉 재실 앞에서 숯불버너 오찬을 주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책임자부터 근무기강에 나사가 빠져 있었던 것도 비극적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소방방재청 측은 ‘문화재청이 문화재 파괴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화재 진압에 신중히 대처할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문화재청은 ‘화재 진압이 우선’이라는 뜻을 전했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숭례문은 고작 소화기 8대에다 안전 인력도 낮에 3명이 배치될 뿐, 야간에는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운영돼 관리가 소홀했다.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놓은 셈이다. 방화범 검거와 함께 진압과정에서 있었던 관계 당국의 잘못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
목조 문화재 화재가 자꾸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문화재 보호의 책임을 얼마나 다하고 있는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최근만 해도 2005년 강원 양양 낙산사 화재로 보물 479호 동종이 소실됐고 2006년 창경궁 문정전 화재,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서장대 화재가 방화에 의해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또 문화재가 소실될지 걱정이 앞선다. 문화재 방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쇄신이 시급하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는데도 문화재에 대한 국민 인식은 그만큼 높지 않다. 참여정부가 지난 5년간 전국 곳곳에 지역균형 발전을 내세워 개발사업을 펴면서 숱한 문화유적이 파헤쳐졌는데도 문화재청은 오히려 사업면적 3만 m² 이상에 대해 문화재 발굴을 의무화하던 규정을 10만 m²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개발사업이 문화재 지표조사도 생략된 채 강행될 판이다. 정부의 문화재 보호의식이 높아져야 하고 국민 인식도 이런 성급한 논리에 제동을 걸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야 한다.
역사성 살린 복원으로 속죄를
가뜩이나 문화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문화정책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과 대통령직인수위에 문화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점이 구체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실감하듯이 문화적 가치는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새 정부가 문화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경제와 문화를 조화시키는 정책을 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5000년 문화민족’임을 자랑해 왔다. 문화재를 잘 보존해 후손에 넘기는 일은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숭례문을 최대한 역사성을 살려 복원하는 게 그나마 우리가 후손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숭례문 재건에 모두가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
2. 다른 관점들
(1) 숭례문과 함께 복원해야 할 것들
매일경제 2008-02-12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방화로 무너졌다. 숭례문과 함께 국가적 자존심도 무너진 지금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6 10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 문화의 상징을 지켜내지 못한 참담함과 자괴감 때문에 마냥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문화 테러'를 자행한 한 개인의 범죄행위를 지탄하고, 무사안일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공무원들을 벌 주는 것만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 소방당국과 문화재청 관계자를 비롯해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간 데 책임이 있는 이들의 잘못을 엄정하게 가리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숭례문과 함께 무너져버린 국가의 재난 방지 시스템과 위기관리 체계를 복원하는 일이다. 숭례문을 복원하기 위해 국민 성금을 모으듯 위기관리 시스템 복원에도 사회 전체의 의지를 담아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습성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각종 재난에 대한 조기 경보와 신속 대응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완하는 일이다. 숭례문 방화범은 열차 테러까지 생각하다 포기했다고 밝혔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는 섬뜩한 이야기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거의 사라진 열린 사회는 온갖 종류의 테러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럴수록 불안 요소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과 위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재난 방지 시스템과 위기 대응 매뉴얼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이를 실행하는 당국자들과 사회 전반의 기강이 해이해지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다. 숭례문 화재 때 청와대와 총리실을 비롯한 상부의 위기관리도 엉망이었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가 시스템의 문제일뿐만 아니라 국가 기강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또한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막기 위한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이번 사태를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거나 이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 소통이 원활한 열린 사회를 복원함으로써 사회적인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반달리즘(Vandalism)
부산일보 2008-02-14
원래의 '반달리즘'은 침략자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는 행위 또는 그 경향을 일컫는다. 유럽 민족 대이동 때 반달족이 455년 로마를 점령하고 유적을 파괴한 데서 그 용어가 유래했다고 한다. BC 356년 헤로스트라투스가 공명심으로 소아시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지른 것도 반달리즘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우리 문화재를 파괴한 것과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성을 점령하고 도서와 보물 등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을 지른 것을 들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가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사회시설 파괴를 통해 표출하려는 반(反)사회적 경향의 반달리즘이 등장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서 급증하고 있는 공공시설 방화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일본의 경우 1950년 긴카쿠지(金閣寺) 화재를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와카야마현 고야산(高野山) 일대 사찰문화재에 대해 2천년대 들어 발생한 3건의 방화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거릿 미첼이 집필활동을 한 집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미첼하우스' 의 1994년과 1996년 방화도 이에 속한다.
이번 숭례문 방화와 2006년 5월 발생한 수원 화성(華城) 서장대(西將臺) 방화도 각각 토지 보상금 불만과 카드빚 고민에서 비롯된 반달리즘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반달리즘이란 용어를 가져오게 한 반달족들이 로마를 침략했을 때 로마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문화유산을 크게 파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도 내심 수준 높은 로마문화에 동화되고 싶었던 것이다. 문화재 방화범들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반달족'인지도 모른다.
(3) 리츠메이칸의 역설(力說)은 잊었나
헤럴드경제 2008-02-13
어처구니없는 숭례문 전소
“문화유산 위기관리 절실”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 시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入命大學)은 지난 1996년 세계 최초로 학부과정에 로보틱스학과를 도입한 일본 관서 지방의 사립 명문이다. 생명공학, 반도체, 마이크로시스템 등 최첨단 과학을 학부과정에 도입해 해마다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이다. 벳부에 소재한 같은 재단의 국제대학 APU도 명성이 높다. 글로벌 학업 시스템을 갖춰 절반이 외국인 유학생이며 우리나라 학생들도 선망하는 곳이다. 미래에 일본을 지배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리츠메이칸의 관심은 첨단과학이나 글로벌 시스템에만 있지 않다. 리츠메이칸은 역사도시에서 탄생한 대학답게 문화유산의 위기 관리와 투자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대학 산하의 역사도시 방재연구센터는 지난 2006년 고베에서 ‘문화유산과 위기 관리’를 주제로 국제학회를 개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진이나 해일, 전쟁 등으로 방재 대책이 불충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피해가 커짐에 따라 재해시 긴급 대응책과 미흡한 복구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문화유산 관리 노하우를 공유하자는 자리였다. 학회에는 인도-파키스탄 국경의 카슈미르 지방에서 대지진(2005)을 겪은 인도와 파키스탄, 쓰나미(2005)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와 함께 강원도 양양 산불로 귀중한 문화재인 낙산사 동종을 잃은(2005) 우리나라도 참석했다. 학회는 문화유산 보호 전문가와 방재 전문가가 협조해 위기관리계획 등으로 이뤄졌다. 리츠메이칸은 학회에서 문화재 방재의 필요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렇게 역설했다. “문화유산의 소멸은 해당 지역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상실감을 초래해 문화적 아이덴티티(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문화유산은 생활에 불가결한 인프라스트럭처(하부구조)의 일부이며, 세계가 공유하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지진과 화재로 문화재를 잃는 아픔을 겪고 전 세계가 손잡고 문화재 방재에 나설 때임을 역설했던 리츠메이칸의 목소리에 좀더 귀기울여야 했다. 우려한 대로 우리 국민들은 숭례문 화재로 집단 상실감에 빠졌다.
숭례문 화재가 일어나자 로이터, AP를 포함한 주요 외신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서울의 명소가 잿더미가 됐다(Loved Landmark In ashes)’는 소식과 망연자실한 우리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가 최근 수정한 ‘숭례문’은 TV 생중계를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던 화재 장면보다 우리나라 국보 1호 소실을 더 실감나게 한다. “2008년 2월 10일 목재구조의 지붕이 화재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붕괴됐다(On February 10, 2008, the wooden structure atop the gate was destroyed in what is currently being investigated as an arson fire)”는 내용이 추가됐다.
숭례문은 지난 600년간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발길, 사연과 함께 역사성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숭례문이 화재로 붕괴된 이튿날 국가 문화유산 관리 책임자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는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하기에 앞서 복원계획부터 밝혔다. 온 국민이 밤새 TV로 지켜봤던 화재 진압과정에서는 그토록 답답하게 굴더니 사흘 만에 복원계획을 서둘러 내놨다. 숭례문 화재가 어이없게도 70대 노인에 의해 저질러진 방화였고, 그동안 국보 1호의 보호가 전무하다시피했으며, 관리비용이 턱없는 액수였다는 사실도 경악을 금치 못할 부분이지만 복원계획의 신속함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순서인가. 국민들은 상심 속에서도 오히려 지척에 있어 돌보지 못한 점을 눈물 흘리며 깊이 반성하고 자책하고 있다. 당국은 소모적인 논란과 공방을 멈추고 당장 위험에 노출돼 있는 나머지 문화 유산에 대한 방재대책을 철저히 세워 조상과 후손과 이웃 나라들에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4) 목조건물은 불에 탄다
한국경제신문
⊙ 샤펠 다리의 사연
1333년 세워진 샤펠 다리(Kapellbruecke)는 스위스 루체른의 명물이다. 관광객들은 밤이나 낮이나 아무런 제재 없이 203m에 이르는 이 다리를 직접 건너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중앙에는 한때 교도소로 쓰였던 방이 있고, 다리 천정에는 122개의 그림이 붙어 있는데 17세기 루체른 지역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샤펠 다리는 하나의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문화 유물들의 전시장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샤펠 다리는 엄밀하게 따져 700년 된 문화재라 말하기 어렵다. 다리는 10여 차례 이상 부분적으로 보수되거나 교체됐다. 특히 1992년 화재는 다리를 거의 파괴했다. 80여점 이상의 그림이 소실되었다. 보험금과 기부금, 그리고 관광엽서 판매로 끌어 모은 200억원을 투입해 거의 새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샤펠 다리는 루체른 사람들의 자랑거리며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 목조 건물은 불에 탄다
방송과 신문은 숭례문에 꽃을 바치며 '너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꼬마들의 순진한 얼굴을 크로즈업했다. 아이들이야 미안할 게 없지만 아이들까지 미안해 할 만큼 어른들이 벌인 일이 어처구니없다는 메시지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표정만큼 어른들의 한심함을 더욱 극대화하는 이미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 수준에서 남대문이 지켜지는 건 아니다.
목조건물은 불에 잘 탄다. 목조 문화재가 세계적으로 드문 가장 큰 이유다. 목재를 주요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중세 도시는 거의 100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건물로 대체되었다는 추산이 있다.
물론 숭례문은 이런 통계를 뛰어넘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히 지켜야 하는 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숭례문과 같이 몇 백 년을 뛰어 넘어 오늘에 이른 세계적인 목조 유산들은 상당히 예외적 사례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대가 조선의 임금이라면 자신이 살던 집과 도시를 지키는 성벽의 망루 중에서 어떤 걸 더 오래 보존하고 싶겠는가? 왕의 선택은 집이었겠지만 경복궁은 불에 탔고 숭례문은 살아남았다. 그러니 조상님들의 특별한 노하우로 숭례문을 보존했다는 말은 조사(弔辭)로는 괜찮지만 설득력은 없는 듯하다.
숭례문은 특별히 운이 좋았다. 조상님들의 '특별한 살핌'이 있었다면 싸우지 않고 도성을 버린 은덕도 포함시켜야 정당할지 모른다.
샤펠 다리를 태운 관광대국 스위스도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에 중세 길드 건물을 홀라당 태웠다. 650년이나 되는 이 건물에는 귀중한 역사자료가 많았다고 한다.
황당한 화재는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1992년 윈저궁이 불에 탔다. 방화가 아니라 보수 작업 중에 불꽃이 튀었다. 재산 피해는 1000억원 가까이 이른다. 실제 사용하는 왕궁이었기에 늦장 출동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노련한 방재 노력을 비웃고 불길은 삽시간에 천정으로 옮아갔다. 3분 안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5분 내에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 화재라는 재난이다.
윈저궁 화재는 목조 문화재에 대한 방재 노력의 전환점이 됐다. 많은 비용과 첨단장비가 유럽 전역의 목조 유산을 지키는 데 투입됐다. 그럼에도 화재로 인한 목조 유산의 유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비극이다. 영국은 석탄산업의 중요 유산인 던슨톤 석탄 부두(Dunston Coal Staithes)를 화마에 잃고 말았다. 2003년의 일이다.
⊙ 화재 진압이 유일한 관심이어야만 했을까?
숭례문의 소실이 특별이 속상한 이유 중 하나는 초기 진화가 충분히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한창 진화 작업을 시작하고 있을 무렵까지도 숭례문은 겉보기에 멀쩡했다. 한마디로 자고 일어나니 국보 1호가 없어진 꼴이었다.
소방본부가 조기에 불길을 잡지 못한 것은 문화재청과의 의사소통에 혼선을 빚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다. 완전한 진화를 위해서는 천정을 뜯어내야 할지 모른다는 소방본부의 문의에 문화재청 담당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진화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실무자의 의견이 있고 얼마 후 담당국장은 될 수 있으면 파괴하지 말고 진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장의 요청 때문에 소방본부는 불에 기선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결과를 놓고 보면 지붕이라도 뜯어서 완전히 진압하는 게 분명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숭례문의 붕괴)를 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판단이다.
화재 진화를 무엇보다 우선해서 천장을 뜯고 불을 진압했다면 소방본부는 국민의 찬사를 받았을까? 국민은 그 선택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숭례문 전체를 허망하게 잃었을 거라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곧이 곧대로 믿어줄까? 문화재를 불필요하게 많이 훼손한 과잉진압이었다는 여론이 없었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의 판단이라면 소방본부의 조심스러움도, 문화재청의 갈등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양궁에서는 표적의 중앙이 점수가 가장 높다.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점수가 낮아진다. 궁수는 중앙을 겨냥하면 된다. 중앙에 가까울수록 점수가 높기 때문이다. 정중앙이 10점 만점인데 바로 주위는 3점 감점, 그리고 외곽으로 갈수록 다시 점수가 서서히 올라가 테두리는 3점인 이상한 과녁을 생각해 보자. 궁수는 표적의 정중앙을 겨냥해야 할까? 현실에서는 정상적인 과녁보다 이상한 과녁이 더 일반적이다.
농구경기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3점차로 뒤지고 있는 팀의 공격이다. 남은 시간은 15초. 3점슛 한방이면 동점이다. 그러나 3점슛이 실패하면 경기를 잃게 된다. 안전하게 2점을 얻은 다음 공격권을 빼앗아 역전을 노리는 작전도 가능하다. 이때 3점슛은 큰 이익과 큰 위험을 동시에 떠안는 작전이다.
투아웃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의 고민도 이와 비슷하다. 한 방이면 대량득점도 가능하지만 삼진아웃 위험이 있고 단타는 안전하긴 해도 많은 점수를 낼 수 없다.
영웅이 되는 길은 역적이 되는 길과 의외로 가깝다. 천장을 뜯어내고 초기에 진압하는 방법은 찬사도 얻기 어렵고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훼손 없이 불길을 잡는 섬세한 작전은 영웅이 되는 방법이긴 해도 모두가 아는 대로 참담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안전만이 유일한 관심은 아니다
화재로부터 목조 유산을 지킨다는 유럽의 스프링클러들은 민감도가 고민이다. 지나치게 민감하면 위험하지 않은 연기나 열에도 반응하는데 이때 나오는 물이나 가스는 문화재를 어느 정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둔감하면 큰 불로 번지기 전에 통제한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적당한' 민감도가 답이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도 그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안전만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은 그래서 매우 위험하다. 비교적 적은 비용만으로도 초기 안전도는 현저히 올라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 안전도를 추가로 높이는 데는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어떤 기술이 1000분의 1만큼의 안전도를 향상한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구입하거나 설치하는 비용이 수십억원에 이른다면 따져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이 냉정하지 못한 여론은 무조건 안전할수록 좋다는 압력을 가한다. 효과도 별로 보지 못하면서 돈만 투입하는 결과면 그나마 다행이다.
스프링클러의 민감도를 최대치로 올려놓게 되면 수시로 물을 뿌려 귀중한 색감이 녹아 없어진다. 이제 문화재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이 무조건 천장을 뜯어낸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 안전만이 우선한다면 이런 고민 자체가 필요없다. 흥인지문부터 뜯어서 박물관 지하창고에 보관하면 된다.
귀중한 문화재를 박물관이 아니라 거리에 놔두는 자체가 안전말고도 따져야 할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걸 웅변한다.
샤펠 다리는 담뱃불 때문에 전소되었다. 안전만이 우선이라면 담뱃불도, 관광객도 엄금해야 한다. 그러나 샤펠 다리 위에서는 지금도 관광객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이번 숭례문 전소는 기술이나 관리의 한계영역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조직적이지도, 그다지 치밀하지도 않은 방화에 허망하게 노출되었다.
그러나 목조문화재의 전소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절규는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본질을 호도한다.
화재에 의한 목조 유산의 소실은 있을 수 있으며 종종 있는 일이다. 목조는 불에 탈 수 있다는 다소 비관적이지만 냉정한 인식은 과학적인 방재 노력의 전제다.
문화재 선진국으로부터 배울 게 있다면 그들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언론이 만든 가짜 신화가 아니라 그들의 냉정한 현실인식과 과학적 자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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