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호 ]
이봄에야 대대울산에서 “피ㄹ 닐니리”
김대영
몸이야 비록 되다 풀리다 하는 중이라도, 마음은 한 속 더 깊어지고 생각은 한 길 더 영그는 산길이다. 그러기 언제나 끌리기 산만한 데가 없다, 이는 내 평생 변함이 없는데도 오남골에 와서는 대어두고 오가는 산이 없이 두 해나 지냈다. 멀고 큰 산이면 여기 낯선 곳에서 길을 모르고 가까이 마을 다니 듯 하기에는 맞춤하게 아는 산이 없어서다. 이 땅에 산이 없는 데가 없건만 내 이러기 게으름인가 늙음인가 하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다.
그러다가 올봄이 들면서다. 하루는 집에서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향긋한 기운에 끌려 새로 손본 냇둑으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다리를 지나는 데서다. 파르르 물기 오르는 실가지로 휘영휘영 손치는 늙은 버드나무가 선뜻 나서고, 아래로는 오래된 방죽길이 잡초 속으로 숨어들었다. 내친걸음에 마음보다 발이 먼저 들어서더니, 거기 안쪽에서는 냇물이 제법 엔굽이치고 밭모서리를 에둘러 산길이 구부정구부정 올라붙었다.
골짜기 막바지에서 깔딱 숨이 걸게 높드리로 치오르자 자욱하게 등성이 길이 열렸다. 오르나 하면 좀 펑퍼짐해지고 그러는가 하면 다시 오르며 솔밭 사이로 이어나가다가 오르막 다섯 번 만에 처음으로 바위 하나를 만났다. 내 사는 마을이 환히 보이게 눈길이 트인 높은 자리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대대울산 길을 이만큼 날마다 오르내리게 되었다. 길이란 다닐수록 눈에 익고 눈에 익을수록 가까워지고 그러면서 쉬워지고 정이 고이게 마련이다.
자식들이 독립하여 저희들 세계를 이루면서 서울에서 벗어나기로 한 우리 가시버시다. 내가 이 길을 알아내기는 아내가 둘째아들 집에 갓난이 손녀를 보아주러 간 열흘 사이다. 기다림이 진해질 때쯤 아내가 돌아오자 둘이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 내 나이 일흔 중반, 아내 나이 예순 후반, 우리가 하루 분 산책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집에서 산자락에 이르기 반시간 남짓이고 산에 들어 오르내리기 우리하기 나름으로 두세 시간이다,
꽃샘잎샘 추위가 오락가락하는 이른 봄. 별로 크지 않은 산이어도 뼈대가 억세어 골짜기
들이 꽤나 깊고 넓다. 숲도 길찬 편이어서 나무들은 밑둥치가 실하고 우듬지는 하늘을 찌른다. 땅위에서는 답쌓인 마른 잎들이 발길에 파도소리로 부서지다가 비라도 온 뒤면 갑자기 자분자분 잠잠해진다. 깊은 산 늘어진 길. 날마다 다녀도 좀체 다른 들고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한적함이 우리를 한껏 호젓하게 한다.
푸나무들 말고는 우리를 보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으니 도시 거리낄 게 없다. 하늘도 찾아야 여기저기에서 빠끔 올려다 보일뿐 새들도 날지 않는다. 가던 대로 엉거주춤 털고 나서도, 아무데서나 허리춤을 내렸다 일어나도, 두리번거릴 아무 이유가 없다. 막 눈을 틔우는 진달래 봉오리들이나 어쩌다 우리를 보고“아이!”하며 살짝 볼에 분홍빛을 올릴까. 이 산이, 언제나 그저 그대로인 채. 우리를 이토록 자유이게 한다.
그러던 참인데 어제오늘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어제는 저위 세 번째 오르막이 구비 지는 언덕바지에서 어린 아들딸을 따라 붙인 젊은 부부가 골짜기가 울리게 웃음소리를 굴려 내리더니 우리에게는 얼굴도 비치지 않은 채 되돌아 올라갔다. 오늘은 한 노부부와 중년부부가 중도에 우리와 엇갈리었다. 봄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우리만이 누리던 호젓함과 자유로움이 덜해질 모양인가. 정해둔 바위에서 이런 말을 하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우리가 올라가며 엇갈리던 노부부를 이번에는 그들이 올라오며 만났다. 서로 알아보게 되는 데서 사람살이가 시작하고 익어간다. 얼핏 익힌 낯이라도 우리는 반가운데 그들은 매우 서두는 걸음이었다. 늙음이 사람들을 바쁘게 하는가. 하기야 사람이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나이 들어 헤아리는 세월은 젊어서 보다 몇 갑절 빠르다. 이 한살이가 잠깐이다 싶게 한다. 그래서 저들이 모자라는 힘에도 바쁜 걸음이었을까.
다음으로는 아까 우리와 엇갈리며 내려가던 중년부부와 마주쳤다. 여유 작작 버들피리를 불며 올라왔다. 하도 오랜만에 듣는 소리에 귀가 쫑긋했다가 이들이 말해서야 그게 버들피리인 줄을 알았다. 하나 만들어 드릴가요 하는 물음이어서 넷이 자욱길에 비좁게 모아섰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여분으로 꺾어 넣은 버들가지를 꺼내더니 주무르고 속가지를 빼고 해서 하나 만들어 주었다. 아내가 고마워서 하는 말이었다.
“젊은 분들이 어떻게 버들피리를….”
“우리 젊지 않아요.”
부인이 냉큼 이런 반응이어서 내가 끼어들었다.
“사노라면 할머니 소릴 듣기가 그리 멀지 않은데….”
“아이 아니에요. 서글프게 그런 말씀을….”
부인은 팽팽하고 빨그레한 볼에 통통한 손을 얹으며 샐쭉해 보였다. 젊었다 하면 아니다 싶고 늙음이 멀지 않다고 하면 거부하고 싶어지는 나이, 이때가 중년이다. 이 중년 부인이 문득 생각이 나는 듯 남편을 처다 보았다. 아무개 하고 누구 이름을 부르고는 그 아이가 곧 아기를 낳을 터인데 그러면 자기도 할머니 소리를 듣겠지 했다. 이렇게 오는 것이기도 하고 가는 것이기도 한 인생이다. 나는 고쳐 말했다,
“아니 집안 촌수 때문이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부를 때가 온다는 말이지요. 그때라야….”
나는 내리막을 한 걸음 먼저 내디디며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그들이 듣게 큰 소리로 말을 마저 다 했다.
“그때까진 아직 멀었네요.”
그러자 부인이 올라가며 좋아라 하는 음성으로 하는 대답이 내 등에 떨어졌다.
“고맙습니다!”
나는 늙음이 그리 멀지 않다고 내 느낌대로 말했다가 그게 그렇게 금방이지도 않다고 그들이 느끼는 대로 말을 다시 해 준 것이다. 잠깐이다 하면 그도 그렇고 살아볼만한 여유가 있다고 하면 그도 그런 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월이다. 돌아보면 바로 저기다 싶고 내다보면 막연하리만치 멀어서, 늙은이들에게는 짧게 젊은이들에게는 길게 느껴진다. 이래서 다 같은, 절대적인, 시간이어도 탄력이 붙어 살아볼만한 세월이다.
아내는 뒤따라오며 버들피리를 불어보노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 소리를 내었다. 이 소리에 내 기억 파일에서 팔랑 날아 나오는 이가 있었다. 한하운이다. 다음 세상에서는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날아다니고 싶다며, 고달프게 살다 간 문둥이 시인이다. 그는 버들피리 아닌 보리피리를 불며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는 전라도 황톳길을 오가며 살았다. 그는 이봄 파랑새 되어 날아다닐까, 그리도 서럽게 읊었던 대로.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김대영/ 1996년 《불교문예》 등단. 수필집 『감동, 감동, 대감동, 감동으로 한 인생』 『우린 뽀작뽀작 살지예』(상・하) 『산에서 절집에서』등.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