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극천마궁이란 방파가 있었던가?" 노인의 우수가 지면바닥을 향해 손짓을 하자 마치 삽으로 판 것처럼 흙덩이들이 저절로 움직여 시신을 덮기 시작했고 작은 봉분(封墳)이 만들어졌다. 노인은 죽은 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동패만 봉분 앞에 묻어놓더니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고, 단애에서 이백여 장 떨어진 편편한 곳에 지어진 모옥(茅屋)으로 들어갔다. 사방 벽면엔 인세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약재가 걸려있어 실내는 약향(藥香)이 진동하였다. 아이가 배가 고픈지 버둥대며 울기 시작하자 노인은 바구니에 담겨있던 이름 모를 주먹만한 과일을 집어들더니 과즙을 아이의 입에 흘려 넣었다. 똑―! 똑―! 방울방울 떨어지는 달콤하고 향긋한 과즙을 아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었고, 과일 두 개를 모두 먹어치운 후에야 스르르 잠이 들었다. "빈도(貧道)가 세속에서 벗어나 은거한지 벌써 일백 년이 훌쩍 넘어 이제야 득도하고 피안의 세계로 떠나려 했는데 인세에서 마지막으로 행할 일이 생겼구나!... 이 녀석의 관상을 보니 세상을 평정할 위대한 인물이 되겠으나 마기가 서려있어 도가(道家)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이 아쉽구나!..." 노인은 도력(道力)이 당시 장문인보다 뛰어났던 터라 시기를 받았고, 장문인의 눈길을 피해 은거한지 몇 년 후부터 이미 신선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무당파의 전전대(前前代) 장로 청허자(淸虛子)였다. 그는 은거한 후 한번도 속세로 나섰던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찾지 못할 이곳 절명곡에서 참선하며 득도를 위해 정진했었다. 무아지경에 빠졌던 그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신선의 경지에 올라 승천하려는 순간 들려온 아이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절명애 아래에 현신했었던 것이다. 이곳엔 만년묵린화망과 인면지주가 살고있어 모르고 절명애 아래로 내려온 사람들은 그 미물들의 한끼 식사가 되어야했다. 청허자는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은거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모옥을 짓고 둘레에 도력을 베푼 건곤태극진(乾坤太極陣)을 포진시켰다. 그 괴물들은 건곤태극진을 뚫고 침입을 기도하기도 했는데 번번이 청허자의 도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물러서는 일을 지난 일백여 년간 여러 차례 맛보았기에 이제는 감히 침범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아이가 도가와 인연이 있었다면 그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었겠지만 설사 인연이 있더라도 그는 수명이 이제 얼마 남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속세를 떠나면 자신의 면전에서 태평스럽게 잠을 자고있는 아이는 이곳에서 굶어 죽을 운명이었기에 그는 고민했다. 청허자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심안(心眼)을 뜨고 아이를 바라보더니 자신과 더 이상 인연이 없다고 판단되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무량수불! 인세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가?..." 자리에서 일어난 청허자는 아이를 안고 천천히 모옥을 벗어나 절명애로 향하였고 그곳에 이르자 두둥실 신형을 띄워 올렸다. 청허자가 출행을 결심하고 나왔을 때는 신시(申時)가 시작될 무렵이었지만 이곳이 워낙 낮은 지형이라 이미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한번 도약으로 백여 장을 솟구친 그는 벽을 박차고 신형을 띄웠다. 청허자는 십여 번의 발길질만에 누구도 살아선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절명애 정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명애 밑은 겨우 두시진 정도만 햇볕이 비추는 곳이었기에 청허자는 백설처럼 하얀 피부색을 띄고있었고, 허리까지 길게 드리운 백염(白髥)은 푸른색 도포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그는 아이의 운명이 앞으로 수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을 것이며 남보다 뛰어남을 드러내면 십 세 이전에 목숨을 잃게 되리란 것을 알았다. 시련을 많이 겪으며 성장해야 죽음의 손길을 벗어나게 될 운명이었기에 그는 아이의 혈도 몇 곳을 점혈하여 삼 갑자의 내공은 물론 성장하며 흡수해야할 단전의 내단을 십 세 이전엔 흡수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옥동자처럼 예쁜 용모 또한 아이가 성장하며 위협이 될지도 모르기에 안면의 혈도를 점혈하였다. 아이의 전신에서 흐르던 서기와 마기는 이내 사라졌고 평범한 양민의 아이처럼 바뀌었다. 청허자는 아이를 안고 하산하였고, 날이 새기도 전에 그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피신시키려고 육백여 리를 이동하여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단에 있는 작은 고을인 완강현(浣江縣)의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가옥의 마당에 아이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무량수불!... 아이야 미안하구나! 하늘이 정한 너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을 빈도의 마음대로 네 운명을 더 바꾼다면 장차 장성하여 천하에 해악만 끼칠 것이니 이곳에서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참고 부디 건강하게 자라렴!...' 청허자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지면에 누워있는 아이를 돌아다보며 고개를 젓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인세의 마지막 생애를 이름 모를 아이를 구원하였기에 이제 절명곡으로 돌아가면 좋은 기분으로 영면을 맞이할 것이다. 청허자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고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가옥(家屋)안에서 잠을 자고있던 육십대 노부부들이 귀에 가까운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영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노파가 노인을 마구 흔들어 깨우자 노인은 귀찮은 듯 혀를 차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 뭐가 들린다고 그래? 응?... 정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네?..." 노인과 노파는 문을 열고 마당을 바라보았는데 아직 어두웠지만 분명 어린아이가 삼베에 쌓여 울고있었다. "아니? 누가 여기에 아이를 버리고 갔지?..." 노인이 벌떡 일어나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마당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사이 노파는 등잔에 불을 붙여 실내를 밝힌 후 우는 아이를 건네 받아 달랬다. 노파의 품에 안긴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찡얼대기 시작하자 노파라 상의를 벌리고 쭈글쭈글한 유방의 유실을 물려주었다. 젖이 나올 리 만무하였지만 아이는 열심히 유실을 빨아대다가 지쳤는지 어느 틈에 잠들었다. 아이를 이불 위에 내려놓은 노파가 얼른 일어나 묽은 죽이라고 쑤어야겠다며 방을 나섰다. 노파가 불씨를 살려 죽을 만드는 동안 노인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몹시 신기해하였다. 그들 노부부는 누구에게 성적 결함이 있는지 사십여 년 간 부부로 지내오며 무수히 운우지락을 나눴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십 년 전부터는 아예 욕심을 접고 포기하며 지내고 있었다. 동정호에서 평생 어부(漁夫)로 지낸 노인은 작지만 배를 가지고 있었고 어구(漁具)를 많이 갖추어 배고픔은 면하고 살았다. 가끔 세 자가 넘는 이어(鯉魚:잉어)를 잡아 고가(高價)에 팔곤 하였는데 근방의 어부 중엔 제일 솜씨가 좋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업둥이가 들어온 것이다. 아이의 부모가 자신의 가옥에 아이를 버리고 갈 정도라면 분명 자신보다 궁한 형편이라 키울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 판단한 노인은 부인과 상의하지도 않고 아이를 키우려고 마음먹었다. 뜨거운 죽을 가지고 노파가 들어오자 노인이 말했다. "임자! 이 아이는 비록 우리의 친자식이 아니지만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한 축복이라 생각하고 키울 것이오." 노파가 쟁반을 내려놓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영감! 관가에 알리고 부모를 찾아주어야지 우리 마음대로 아이를 키웠다가 봉변을 당하면 어쩌시려우?" 노인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내 결심은 확고하니 토를 달지 마시오. 남들보다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운다면 관가에서도 어쩌지 못할 것이오." 아이가 잠을 깨어 울어대자 노파가 이미 식은 죽을 조금씩 떠 먹였고 허기를 채운 아이는 질펀하게 소변을 보았다. 아이를 감싼 삼베와 이불이 젖자 노파가 아이를 들고 삼베를 벗겼는데 안쪽에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는 비단이 있는 것을 보게되었고, 전대와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었는지 작은 고리가 달린 금패를 꺼냈다. 비단을 벗겨낸 노파가 부드러운 비단의 감촉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노인은 찢어져 있는 부분에 글자가 수놓아져 있는 것을 보았다. 왕(王)자는 분명 알겠는데 뒤에 있는 글자는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엥?... 혹시 왕족(王族)이면 어쩌지?" 노인은 모르는 글자를 백지에 그리고 근방에 살던 선비의 집으로 달려가 글자의 뜻을 물었고 선비는 린(麟)이라 읽으며 기린이나 큰사슴의 수컷, 밝게 빛난다는 뜻도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왕린(王麟)이 혹시 왕족을 뜻하는 글이냐 물었을 때 선비는 껄껄 웃으며 누군가의 이름인 것 같다고 가르쳐주었고 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문맹(文盲)인 제게 자세히 가르쳐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답례로 조금 있다가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으면 제일 큰 고기를 가져다 드리지요." 유사(儒士) 차림의 사내가 그럴 것 없다고 만류하였지만 노인은 그 길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가 배를 타고 그물질을 시작하였고 여느 때와 달리 고기가 많이 잡히자 복 덩이가 굴러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작은 고기는 도로 놔주고 큰 고기만 추려 뭍으로 나온 그는 선비의 집으로 향해 큼직한 잉어 두 마리를 들고 갔고 한사코 마다하는 선비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잡은 고기를 짊어지고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고기를 깨끗하게 손질하여 커다란 가마 솥에 가득 어죽(魚粥)을 쑤었고 근방에 사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접하고 업둥이가 들어왔음을 알렸다. 근방의 양민들이 모여 노부부에게 자식이 생긴 것을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였고, 어죽이 담긴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슬며시 사라졌다가 나타나더니 축하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자잘한 물품들을 선사했다. 노인은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였고 노파는 동냥젖을 구하러 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아이는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잘봅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조부부가
감사합니다.
잘봐요
감사...
감사 드립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