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서만큼은 인싸이고 싶어라.
▲붕어등 오르며 돌아본, 덕대산-종남산-팔봉산 라인.
◑ 프롤로그 ◐
요즘 자꾸 뭔가가 마음을 잡아땡겼는데, 뭘까? 뭐지?
산행 기억을 쭉 스캔하다가 화락 그 매듭이 풀렸지요.
비슬기맥 막판의 처절했던 야생성이 그리웠던 것.
처녀묘등 주변의 원시적 야생성에 꿀꺽 군침이 돌면서,
비슬기맥에 대한 해묵은 애정이 몽실몽실 살아났습니다.
경외스럽던 야생덤불에 원시상태로 푹 빠지고 싶었고,
나비스의 휘둥그런 눈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 산행 얼개 ◐
▶언제 : 2020년 10월 4일.
▶누구랑 : 대전한겨레산악회 여러분과 함께.
▶어디 : 이연고개-팔봉산- 붕어등-처녀묘등-외산공소-소구리굼-(오우진나루).
(약14.5km,접근거리 2km 포함)
▲들머리 이연마을.
산공기가 꼬르륵 꼬르륵 시장기를 느끼게 만들었구요,
하세월 함께 땀흘린 산벗님들의 넉넉한 품도 그리웠습니다.
▲간만에 산행의 진한 참맛을 느끼고 싶었나 봅니다.
마을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바퀴를 단듯 술술 굴러갑니다.
▲지금 오를 수 있고, 다음에도 오를 산이 있다는 사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계속 함산하고픈 마음 굴뚝 같은데, 다른 길을 가자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산을 오른다는 것은 그 산과 친해진다는 의미.
구차한 철학 필요없이, 오르는 기쁨에만 젖어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멋진 솔 한 그루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무료로 선물하는 산, 어찌 섬기지 않을 수 있으랴.
▲이연고개. 드디어 마루금에 접속했습니다.
▲저울에 무게를 달듯이 등산의 즐거움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코 속에는 산내음이, 신발 밑에는 산감촉이 스며듬을 절절이 느낍니다.
▲유대등.
▲산을 오를 때,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가지만은 예외입니다. 그건 '포기'라는 말.
▲팔봉산.
▲후둑이던 빗방울이 아직도 완전히 물러가진 않았네요.
쥐가 고양이 눈치를 살피듯이 자꾸 날씨 눈치를 보게 됩니다..
▲저 멀리, 붕어등이 낙타등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절개지를 피해 여시태고개로 내려서는 산길은 덩쿨천지.
▲녹색이 행복의 특징인 양, 산은 마루금을 녹색덩쿨로 뒤덮어 물결치게 합니다.
▲합수점을 만나러 간다는 희망이 날개를 달아준 걸까, 발걸음이 사뿐사뿐.
▲스마트한 V자 프로필을 보여주고 있는 여시태고개.
▲모든 것 다 드러내며 부풀려 광고하는 시대이지만,
담아두고 함축하며 느리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절개지를 에둘러 가는 저 길처럼.
▲마루금 여행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인생.
들머리 계획부터 날머리 마지막 한 걸음까지, 현실과 무관한 행복의 나라니까.
▲한 때는 산이 삶의 전부였던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삶이 산의 일부임을 느끼며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평촌고개.
▲산길에 머무는 시간은 실로 세월을 압축한 복된 시간들입니다.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면, 우리들 발자국이 찍힌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하얀 빛깔이 여러 가지 색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졌듯이,
많은 발걸음과 생각들로 엮어지는 마루금여행은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갓봉. 버려진 의자 하나, 세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밑바닥을 건드리는 산자락의 메시지를 담아낼 재간이 제겐 없습니다.
그러나 저 분들 얼굴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한 표정꽃이 피어있습니다.
▲산이름만 들어도 형용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히는 이 현상은 뭘까.
뭉클뭉클 솟구치는 오름의 충동은 결국 자신을 찾으려는 원심력임을 느낍니다.
▲산행은 소리의 짐을 함께 지게 마련입니다.
숨소리, 풀섶 스치는 소리, 바람소리, 산벗들 웃음소리....
결국 우리는 소리의 껍질에 둘러싸인 알맹이인 셈이지요.
▲덩쿨천지를 러셀해야 하는 마루금이 참 고약했지요.
떠오른 것은 그저 숨쉬고 있다는 의식뿐, 시간 따위는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가시덤불 헤치고 오른 보람으로 주어지는 조망이라는 선물!
밀양강 건너편 만어산, 청룡산의 영축지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이름 그대로, '비밀스런 햇살'이 모이는 고장 密陽.
합수점이란 정점을 향해서 산줄기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오우진나루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비슬기맥, 영축지맥, 무척지맥이 머리를 맞대는 곳,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서 더 큰 낙동강으로 거듭나는 곳.
三浪津이란 지명도 밀양강, 낙동강, 더 큰 낙동강, 이 세 물줄기의 합수점을 의미한다지요.
▲아름다운 합수점을 찾아가는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피를 끓게 만드는 건 저 능선 너머 가을빛 속에 잠겨있는 산마루.
▲오후의 따스함이 비구름 기운을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는 중.
▲배죽고개
▲끙끙대며 비탈을 오르다가 붉게 익어가는 감과 맞닥뜨렸을 때,
헉헉대며 터져나오던 숨소리는 도깨비바람인 양 싹 가셔버렸습니다.
▲합수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합수점은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흘러가는강물에 빗대 얘기 해주는 것 같습니다.
▲스크럼을 짜서 가로막고 있는 잡풀들.
그들이 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립니다. 사각사각 .
▲항상 마음이 마루금에 걸려있어, 심쿵함으로 물드는 시간들입니다.
▲상남들판이 누렇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술렁대고 있습니다.
▲잠깐 조망이 터지면, 풍경을 얼른 카메라 속에 주워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산의 위치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붕어등.
이전에 꽂혀있던 팔봉산, 붕어등의 표지판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산의 높낮이에 따라 호불호를 따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낮은 산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산은 사람을 한없는 행복으로 이끌고 올라가는 힘이 있다'고.
▲산의 아름다움을 일구는 고마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눈과 서리, 햇빛과 바람과 비....
▲처녀묘등.
비슬기맥 마지막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입니다.
▲산사람은 환히 알려진 루트를 코웃음치지 않는 법.
이젠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마음의 줄을 늦추지 않습니다.
▲가시덤불 지옥을 기대했는데....
5년 전 기억속 가시덤불은 세월에 떠내려갔습니다.
깔끔한 산길을 대하니 산에게서 소외된 아웃사이더 느낌이 듭니다.
▲오우진 나루터가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산만 보면 왜 그리 심쿵대는 지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비슬마루금이 이제 온전히 우리 것이란 생각이 들자 또 심쿵함이 일어납니다.
▲유종의 미를 생각합니다.
산자분수령과 합수점을 생각한다면 방향은 당연히 마루금을 따라 왼쪽.
▲룰루랄라, 깔끔하게 청소된 뒤안길 같은 마루금이 믿기지 않습니다.
길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가시덤불 헤쳐갔던 기억이 한바탕 꿈인 듯 합니다.
▲빨간 원 안의 붉은 지붕은 외산공소 건물.
소구리굼으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단체산행인데도 막판 마루금이 외로운 산행이 되었네요.
▲'백두오름'과 함께 비슬기맥 매조지할 때, 여기까지 마중왔던 산벗들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돌아보기.
▲호밥이네 노인요양원이 마루금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소구리굼으로 향하는 마루금이 세상의 정답일 것 같은 애착이 생깁니다.
▲산악회 버스가 외산교 앞에 서 있습니다. 번지수가 틀린 게 확실한데....
▲돌아보기.
▲'지금을 어제의 미래로 바꾸자'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래서 좀 더 신명나게 마루금 시간을 꾸려가자고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마루금 너머, 상남들판 너머, 아름다운 합수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이란 말은 어쩌면 정확하지 않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둔덕 밭뙈기처럼 시골 전체를 산으로 생각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마루금 한 줄기 마무리함으로써
인생 한 페이지가 넘겨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
▲이제 비슬마루금은 우리들 마음 속에 깊고 깊은 우물로 들어앉았습니다.
세상사 고단할 때마다 맑은 우물 길어 올려 목을 축이며 힘을 얻게 되겠지요.
▲소구리굼은 맥이 마무리되는 응혈점? 묘지가 여럿 있습니다.
▲소구리굼 꼭지점.
▲필경 옛지형은 오우진나루까지 마루금이 연결되었겠지만,
뭉개진 마루금 운명 앞에서 마루금 좌표는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인공제방도 밑으로 수로가 관통하지 않는다면 마루금 자격을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수로가 관통한다면, 지형과 세태변화에 따른 적응차원이라 해도, 자격을 부여하기엔 역부족.
▲문제의 수문.
수문 위의 우람한 제방이 찐한 아쉬움을 남깁니다.
▲돌아보기.
▲엉뚱한 지점에 좌표를 찍은 노란 버스를 멋적게 바라봅니다.
▲(오우진나루 풍경 1).
오우진나루 제방 위에 서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맘산이라는 종남산에는 소설 '변경'의 무지개가 걸리고,
비슬기맥의 막판 오우진나루에는 산사람들의 무지개가 걸려 있으리라.
▲(오우진나루 풍경 2).
밀양강 건너편, 영축지맥이 막판까지 힘을 내고 있습니다.
▲(오우진나루 풍경 3).
마루금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입니다.
산이면서, 나무이면서, 뜨거운 열정이면서, 이 모두였습니다.
▲(오우진나루 풍경 4).
원없이 합수점을 바라봅니다.
"이제 그만 봐!" 너무 오래 봤다고 꾸짖는 듯 합니다.
▲(오우진나루 풍경 5).
낙동강 건너 무척산과 작약산이 낙동강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3지맥이 모이는 합수점 조감도.
▲합수점을 굽어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마루금 산행은 단맛, 쓴맛이 모두 담긴 종합선물세트임을....
▲땀과 생각을 함께 나누었던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별과 달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 가슴속에 있는 당신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우러르며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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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걸어도 걸어도 줄지 않는 가시덤불의 사하라를 횡단하면서
우린 인생의 링반데룽에 걸렸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심호흡하며 새로 태어난 마루금의 아름다움을 빨아들이고 나니
비록 현실은 아싸에 불과하지만, 산에서만큼은 핵인싸가 된 기분.
그래서 지분참 산으로 가는 길은 마법을 푸는 문답의 길이 됩니다.
산길에서 티 나지 않는 마음의 우산으로 심쿵함을 심어준 사람들.
산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춰준 벗님들을 늘 그리워할 겁니다.
사람과는 헤어져도 산과는 안 헤어질 거니까, 또 만날 수 있겠지요.
열씸히 산 오르는 이를 보면 정갈한 시 한 편을 읽는 기분이 듭니다.
시 속에 오롯이 담긴 야생화 닮은 산벗님을 늘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그 크기가 너무도 작으면서 그 아름다움은 너무나 큰, 마음속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