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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人王國 金鳳門
구화산(九華山)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더욱이 구화산에 위치한 금봉문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어 냉검상은 쉽게 금봉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위험이 닥쳐 있는지 금봉문의 화려한 정문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시커먼 연기와 건물이 타는 메케한 냄새는 금봉문 안에서 물씬 풍기고 있었다.
또한 부서진 정문 앞에는 낙화(落花)처럼 수십 구의 여자 시체가 널려져 있었다.
"......"
역한 피비린내에 냉검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체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이 터져 핏물로 얼룩져 있는 것과, 이마에 손톱만한 해골 형상의 모양이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냉검상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흉수는 단 두 놈이다!)
냉검상은 지체없이 금봉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그는 더 없이 많은 시체들을 발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전각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빠르게 전각의 뒤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순간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것을 발견한 냉검상은 일단 몸을 숨겼다.
전각의 뒤는 제법 넓은 후원이었다.
지금 그곳에는백여 명의 여인들과 서로 대조적인 인상을 풍기는 두 노인이 대치해 있었다.
백여 명의 여인들을 선도하는 세 여인이 조금 앞에서 노인들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여인이 바로 금봉문의 총사인 희봉아였다.
희봉아의 옆에는 화려한 금의(金衣)를 걸치고 손에는 봉황검(鳳凰劒)을 굳게 잡고 있는 금의미녀가 서 있었는데,
성결한 기풍과 고결해 보이는 자태가 여인으로서는 드물게 일대종사와 같은 늠연함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금의미녀 옆에는 불에 타는 듯이 강렬한 홍의(紅衣)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상큼 치솟아 있는 가는 눈썹이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했다.
성격 때문인지 손에는 붉은 가죽 채찍을 들고 있었다.
이 두 여인은 희봉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얼굴 모습은 거의 비슷했다.
냉검상은 세 여인을 한 차례 둘러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금의미녀가 바로 금봉문의 문주인 모양이군.
한데, 희봉아가 말하기를 사문의 사매지간이라고 했는데 서로 상당히 닮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각자 풍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지만, 그 빼어난 미태는 누가 낫다고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다.
(희봉아가 갑자기 사라져야 했던 이유가 이 일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구나.)
여인들과 두 노인은 냉검상이 나타난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듯 팽팽하게 대치한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깡마르고 키가 큰 노인이 음산한 외침으로 여인들에게 협박을 했다.
"금봉(金鳳) 희수빙(姬水氷)! 막내사제 대독청을 죽인 것이 금봉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관계는 있으리라 본다.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네가 가진 청마벽옥(靑馬壁玉)을 우리에게 넘겨 준다면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묻어두고 조용히 이곳을 물러나마. "
음산하게 외친노인은 우중충한 흑의장포를 헐렁하게 걸치고 있었다.
이마에는 동전만한 붉은 점이 박혀 있어 사악한 분위기를 풍겼고,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얼굴이 깡말라 마치 해골에다 살가죽을 입혀놓은 모습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인상이었다.
더욱이 얼굴에는 죽음처럼 검버섯이 듬성듬성 피어나 있어
그야말로 산사람인지 시체인지 얼른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그 옆의 노인은 땅딸하고 비교적 살이 찐 모습이었다.
어린애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제법 번듯하여 사람좋은 상인의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두 눈! 마치 유리알처럼 투명하여 동공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눈은 오히려 섬뜩했고
, 연신 웃고 있는 모습은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음흉함과 교활함을 느끼게 했다.
이때 금의미녀가 냉오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마(老魔)! 꿈꾸지 말아라. 청마벽옥은 우리 금봉문의 신물(神物)과 같은 것이다.
설사 십이비천신마에게 금봉문이 멸문의 화를 당한다 해도 절대 내줄 수 없다!"
흑의노인은 관자놀이를 실룩였다.
"크ㅋ..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는 뜻인가?
건방진 계집년. 네년의 살껍질을 벗겨놓아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두고 봐야겠다!"
흑의노인은 그대로 몸을 날려 금의미녀를 덮쳐갔다.
금의미녀는 차가운 냉소와 함께 질세라 몸을 날렸다
. 바다제비가 파도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형상의 해연략과(海燕掠波) 신법으로 날아가면서
봉황검을 날렵하게 휘두르는 것이었다.
쉭쉭!
매서운 칼바람이 일었다.
동시에 검극에서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현란한 검화(劒花)가 난분분히 피어나면서 하늘을 뒤덮는데,
유(柔)한 가운데 숱한 변화(變化)의 묘가 숨어있는 고도의 검술임을 냉검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춤을 추듯 휘둘러대는 흑의노인의 쌍수에서 발출되는 괴이한 잠력은 이내 그녀의 검을 어지럽게 만들었고,
그 틈에 선기를 잡은 흑의노인은 우수를 새의 발톱처럼 구부린 채
모이를 쪼는 금의미녀의 치명요혈을 노려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금의미녀의 무공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지만 흑의노인의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더욱이 흑의노인은 교묘하게 여인의 치부를 골라 공격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금의미녀는 당황한 듯 손발이 어지러워졌고,
몇 초의 공수를 교환하자 그만 봉황검을 놓치며 뒤로 날아가야 했다.
"크ㅋ..계집년! 야들야들한 살껍질을 벗겨놓겠다!"
독수리가 토끼를 덮쳐가듯 흑의노인은 밀려나는 금의미녀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슈욱!
금의미녀는 당황결에 몸을 날리려다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덮쳐오는 흑의노인의 공격을 피할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순간, 희봉아는 한 소리의 고함과 함께 놀란 표정으로 몸을 날려
교수를 칼날처럼 사용하며 흑의노인을 덮쳐갔다.
"물러나라, 노마!"
흑의노인은 멈칫 희봉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까마귀가 울부짖는 괴성을 터뜨리며 그대로 희봉아를 향해 연속 삼 장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우우웅!
이 삼장(三掌)의 위세는 놀랍고 특이했다. 제일 먼저 발출한 장세에 두 번째 장세가 더해지고,
다시 세 번째의 장세가 합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해일처럼 희봉아를 휘감아 버리는 것이었다.
퍼퍼펑!
둔중한 폭음이울리면서 희봉아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가랑잎처럼 날아가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예쁜 이마에 해골을 박아 주겠다!"
흑의노인은 질풍처럼 쏘아져 가면서 엄지손가락으로 희봉아의 흰 이마를 찍으려 했다.
"아앗!"
"저, 저런.."
모두들 대경실색 했다.
그러나 지극히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희봉아를 구할 여지가 없었다.
순간이었다.
쉬익!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희봉아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바람같은 인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퍼퍽!
둔탁한 격타음과 함께 흑의노인은 덮쳐올 때보다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의노인의 투명한 눈이 섬뜩하게 굳어졌다.
어느 새 그의 시선은 희봉아를 두 팔로 안고 떠올라 나뭇가지에 사뿐히 떨어져 내리는 인물을
쏠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인물은 바로 냉검상이었다.
냉검상은 흑의장삼을 바람결에 표표히 날리면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금방 하강한 천신(天神)처럼 의연하고 늠름해 보이는 것이었다.
"아아.."
금봉문의 모든여인들은 나직이 경이에 찬 탄성을 터뜨리며 올려보았다.
냉검상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흑의노인을 향해 오연하게 외쳤다.
"수치도 모르는 늙은 놈이군. 연약한 여자에게 살수를 쓰려 하다니."
흑의노인은 잠시 망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나뭇가지 위에 우뚝 서 있는 냉검상을 발견하고는 두 눈에 시퍼런 불꽃이 일어났다.
"조금 전에 나를 막은 것이 바로 네놈이냐?"
냉검상은 차갑게 웃었다.
"그렇다. 뼈다귀 귀신 같은 영감."
(뼈, 뼈다귀 귀신 같은 영감..?)
순간적으로 흑의노인의 눈알이 홱 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순간에 급습을 당해 울화가 치미는 판인데,
새파랗게 젊은 자가 뼈다귀 귀신 운운하니 노기가 충천한 것이었다.
"카앗! 이 찢어죽일 종자새끼가!"
흑의노인이 그대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백의노인의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심기를 흐트러뜨리지 말아라, 사제!"
"!"
흑의노인은 멈칫했다.
그때 백의노인은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걸어나오며 말했다.
"저 젊은 친구의 무공은 결코 얕볼 것이 아니다. 절대 사제의 아래가 아니다."
"설마.."
흑의노인의 얼굴에는 불신의 빛이 어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형인 백안마존(白眼魔尊) 천승후(千昇後)를 믿고 있었다.
천승후는 매사가 치밀하며 심기가 깊어 여간해서 실수를 하는 법이 없는 인물이란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흑의노인은 마음을 조금 안정시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냉검상은 의외란 듯 백안마존을 보았다.
(으..음, 저 자는 오히려 해골 같은 늙은이보다 강하고 더 없이 교활하겠구나.)
이때 흑의노인의 장력을 맞고 나가떨어져 기절을 했던 희봉아가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희봉아는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달았다.
"!"
사람을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흑의노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놔라, 이 노마!"
희봉아는 앙칼지게 외치면서 그대로 손을 내뻗었다.
순간 냉검상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싱긋 웃었다.
"희봉아, 너는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때리는 버릇이 있나?"
희봉아는 흠칫했다.
너무도 귀에 익은 음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품에 안긴 채 올려보았다.
냉검상의 싱긋 웃는 모습이 그녀의 두 눈에 가득차 들어왔다.
"아.."
너무도 기쁘고감격한 나머지 희봉아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다.. 당신.. 정말, 당신인가요?"
냉검상은 가볍게 희봉아의 코 끝을 누르며 미소했다.
"이봐, 귀여운 아가씨. 군자루에서 나를 그렇게 바람맞혀도 되는 거야?"
희봉아는 할말이 없었다.
그저 기쁘기만 했다.
더욱이 자신이 위기의 순간에 냉검상이 나타난 것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기, 기뻐요!"
희봉아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일순 희봉아는 갑자기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빛을 보였다.
금방 안색이 창백해지며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것이었다.
흑의노인의 장력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이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냉검상을 만났다는 것 때문에 잠시 잊었던 고통이 긴장이 풀리면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냉검상은 희봉아를 꼭 껴안아 주면서 혀를 찼다.
"쯧쯧.. 못된 늙은이. 우리 아가씨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냉검상은 희봉아를 안은 채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금의미녀 앞으로 사뿐히 내려 선 냉검상은 그녀에게 희봉아를 넘겨 주었다.
"봉아를 부축하시오."
희수빙은 멈칫했다.
뚜렷한 인상과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늠름한 냉검상의 모습에서 강렬한 사내의 체취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희봉아를 받아들었다.
(대체 누굴까? 봉아와는 매우 친한듯 보이는데..?)
여자의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희봉아를 넘겨준 냉검상은 그녀에게 눈빛 한 번 보내지 않고 돌아섰다.
냉검상은 차가운 눈빛으로 흑의노인을 응시했다.
"노마, 이제 우리들의 일을 해결해 볼까?"
흑의노인은 어느 새 냉정을 되찾은 듯 음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냉검상쪽으로 한 걸음 나오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이때 금봉 희수빙이 냉검상에게 말했다.
"대협, 조심하세요. 저 자는 십이비천신마(十二飛天神魔)의 한 사람이예요."
냉검상은 미묘한 눈빛을 빛냈다.
(십이비천신마..?)
냉검상으로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니 중원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그 어떤 고수라도 냉검상에게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흑의노인은 음악한 웃음을 지으면서 흘깃 금봉 희수빙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냉검상을 보면서 말했다.
"노부는 고루사왕 녹소강이다. 애송이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냉검상은 코웃음을 쳤다.
"고루사왕? 훗..간단히 말해서 해골귀신이란 말이군. 생김새대로 이름은 썩 어울리게 잘 지었군."
냉검상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무심하게 가라앉아 결코 웃지 않았다.
차디찬 겨울 하늘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카앗! 신강에 틀어박혀 팔십 년 동안 나오지 않았더니
이마빡에 젖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이 녹소강을 우습게 아는구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지 녹소강은 그대로 우장(右掌)을 밀어내었다.
먹물이 번지듯 뭉클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이상하게도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장력이었다.
마치 시체가 썩을 때 풍기는 악취같았다.
희수빙의 품에 안겨 있는 희봉아는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외쳤다.
"조, 조심해요! 그 자는 식인혈마의 사형이고, 그 무공은.."
그러나 희봉아는 핏가라곤 없는 창백한 얼굴을 찡그리며 기침과 함께 왈칵 피를 토해내었다.
희수빙은 당황하여 희봉아의 가슴을 눌렀다.
"봉아야!"
그녀는 급히 품 속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희봉아에게 복용시켰다.
이때 냉검상은자신을 덮쳐오는 시커먼 장세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식인혈마의 사형이라고?)
두 사람의 장력이 중간에서 부딪치며 폭음을 일으켰다.
퍼펑!
냉검상은 허리를 휘청이며 한 걸음 밀려났다.
그러나 녹소강은 덮쳐오던 기세임에도 불구하고 깊숙한 발자국을 남기며 세 걸음이나 밀려나
극도의 불신에 찬 표정으로 냉검상을 보는 것이었다.
(저, 저런 애송이한테 밀리다니..)
녹소강의 눈은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지금의 결과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냉검상은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다시 기혈이 치솟아오름을 느꼈다.
(빌어먹을..)
그러나 억지로기혈을 억누르며 차갑게 외쳤다.
"후후..못 생긴 영감이 바로 사람고기 먹는 못된 귀신의 사형이란 말인가?"
녹소강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이이.. 개자식이!"
이때 백안마존천승후의 투명한 눈빛이 괴이하게 일렁이더니,
돌연 한 소리 괴성과 함께 허공을 박차고 올라 냉검상의 머리 위에서 일장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냉검상은 급히 쌍장을 머리 위로 뻗어내었다.
퍼퍼퍽!
백안마존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냉검상의 삼 장 앞으로 내려섰고,
냉검상은 발목까지 땅 속에 박힌 채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백안마존은 번들거리는 눈빛을 일렁이며 물었다.
"네놈이 막내 대독청을 죽인 자가 아니냐?"
냉검상은 입을열면 피를 토해낼 것 같았다.
그는 잠시 기혈을 억누르며 백안마존을 쏘아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였다.
"흐흐..그 인간같지도 않은 놈 말인가? 그렇다. 내가 죽였다. 산적 꿰뚫듯이 창으로 목을 꿰뚫어 버렸다."
"크아아아아..!"
고루사왕 녹소강은 괴성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냉검상을 알아보았다는 듯이 차갑게 씹어 뱉았다.
"네놈이 바로 천산마도 냉검상!"
말을 하는 고루사왕 녹소강의 얼굴이 기괴하게 변했다.
시커먼 얼굴이 밀랍처럼 하얗게 변해 그야말로 해골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전신이 하얗게 변한 채 녹소강은 외쳤다.
"막내의 원한을 갚아 주겠다!"
순간, 녹소강의 전신에서는 천년빙굴에서 쏟아지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뻗치기 시작했는데,
지독히도 사악한 기운이었다.
냉검상은 흠칫했다.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때 냉검상은다시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은 한송과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이 발작한 것이었다.
(장기전은 불리하다. 더욱이 저 백의노괴까지 있으니..단 일장에 승부를 내야 한다.)
냉검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옥정기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냉검상의 양 손은 오색의 서기를 발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옥정기공의 제 십 일 단계 천옥결(天玉訣)을 완벽하게 시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냉검상은 옥정기공을 끌어올릴 수록 가슴의 통증이 심해짐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때 뿌옇게 흐려진 얼음덩이처럼 변한 고루사왕 녹소강이 음침하게 웃으면서 손을 느릿하게 들어올렸다.
"크흐흐.. 애송이 놈! 부시혈루의 맛을 보여주겠다."
순간,
쓰와와...스스..!
녹소강의 전신에서 기이한 음향과 함께 살인적인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금봉 희수빙을 비롯한 여인들은 그 악취에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악취를 느끼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났던 것이다.
냉검상 역시 악취를 감지하는 순간 기혈이 무섭게 용솟음침을 느껴야 했다.
(지독한 사공이다! 대독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수!)
냉검상의 전신도 은은한 오색의 서기 속으로 감싸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백안마존 천승후의 안색은 침중했다.
그는 냉검상을 결코 얕보지 않았다.
아니 냉검상에 대해서 그 어떤 상대보다 팽팽하게 신경을 조여오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는 은연중에 공력을 끌어올리면서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악령칠비(惡靈七匕)- 악마의 일곱 개 비수를 소매 속에 감춘 채 냉검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냉검상의 얼굴은 고요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장중하고 묵직한 모습이었다.
냉검상은 우뚝 선 채 천옥결의 구결을 되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의동생기(意動生氣) 기행천개(氣行天蓋):뜻이 움직여 기(氣)가 발생하고, 그 기(氣)가 흘러 천령개로 가고..)
냉검상의 천령개에 무지개와 같은 오색의 기운이 뻗치기 시작했다.
한송과 싸울 때조차 펼치지 않았던 천옥결이었다.
(전방수긴(展放收緊) 동정원탱(動靜圓撑):펼쳐서 놓아주고,
거두어서 조이니 동(動)과 정(靜)은 휘돌며 받쳐진다.)
순간,
녹소강의 전신에서 뻗치는 음악(陰惡)한 기운은 터질 듯이 팽창해 있었고,
쓰쓰쓰...왓... 쓰쓰...
냉검상의 전신에 휘돌고 있는 오색의 서기는 더욱 장중하게 빛나고 있었다.
쿠쿠쿠.. 우...
이때 녹소강의흰 손이 갑자기 먹물처럼 검게 물들면서 양 손을 크게 휘돌리는 것이 아닌가!
"애송이 놈! 천지간에 소멸해 버려라!"
츄와와아아... 츄리릿!
소용돌이치는 듯한 검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는 먹장구름처럼 가공할 기세로 냉검상을 삼킬 듯 덮쳐왔다.
냉검상은 천추부동의 자세를 취한 채 쌍장을 그대로 내밀었다.
"하늘의 기(氣)! 땅의 정(精)! 우주의 신(神)! 천옥(天玉)의 뜻은 삼환(三還)에서 비롯되고,
이것을 거스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도 없다(無聲). 단지 빗발치는 듯한 오색의 빛이 냉검상의 양손에서 폭출되어 나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어 나갔고,
그 빛은 덮쳐오는 검은 빛을 소멸시키면서 녹소강의 전신을 거미줄처럼 휘감고 있었다.
백안마존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는 녹소강의 전신을 휘감은 빛줄기를 보면서 절망처럼 외쳤다.
"사제! 위험하다!"
외침과 함께 그는 양 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 넣으며 천마(天馬)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때 녹소강은 빛줄기 속에 휩싸여 학질이라도 걸린 듯이 무섭게 몸을 떨면서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벼락이 머리 위로 떨어진 듯이 몸을 떨던 그의 육신이 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리면서
피와 살이 그대로 허공으로 비산하는 것이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백안마존은 녹소강의 처참한 죽음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노옴!"
백안마존은 독수리가 덮쳐오듯 냉검상을 향해 쏘아져 내려왔다.
냉검상은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위를 올려보았다.
순간 백안마존의 투명한 눈에서 태양이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백색광채가 뇌전처럼 터져나왔고,
그 빛을 보는 순간 냉검상은 격한 신음성과 함께 눈을 감아야 했다.
두 눈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 때문이었다.
(으으..)
감아 버린 냉검상의 두 눈에서 끈끈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앞이 캄캄해지면서 막막한 느낌이었다.
냉검상의 귀에는 여인들의 경악성이 들려왔고,
그 중에서도 애절하게 외치는 희봉아의 음성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피할 길이 없다.. 동귀어진(同歸於盡) 뿐이다.)
냉검상은 예감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니 야수의 본능처럼 느끼고 있었다.
전신의 일곱 군데를 노리고 덮쳐오는 죽음의 기운을..
그리고 그 암울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면서 미인혈을 힘껏 잡았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모아 미인혈을 뽑았다.
번- 쩍!
미인혈은 심판의 불을 뿜어내듯 흰 광채를 토해냈고,
동시에 냉검상은 가슴을 쑤셔오는 격렬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느끼는 순간 백안마존의 처절한 비명성이 그의 귓전으로 아련하게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악!"
백안마존의 육신은 허공에서 피보라를 뿜어내며 난도질되고 있었다.
머리는 머리대로, 팔다리는 팔다리대로 잘린 채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우두둑. 툭툭...
잘려진 백안마존의 육신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자 장내는 갑자기 죽음 같은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정적 속에 냉검상은 눈을 감은 채 우뚝 서 있었다.
냉검상의 가슴에는 악령칠비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 그것들은 죽음을 재촉하는 듯 냉검상의 가슴에서 피를 빨아내고 있었다.
"......"
냉검상은 점점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눈 앞의 암흑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 답답한 기분 속에서 냉검상은 아교의 늪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깊고깊은 혼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공자!"
그 순간 희봉아는 달려와 냉검상을 부축했다.
그녀는 안타깝게 냉검상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흩뿌렸지만,
이미 혼절을 한 냉검상은 그녀에게 기대듯 무너지고 있었다.
가슴에 박힌 일곱 개의 비수가 피를 빨아내고, 그 피는 아픔처럼 희봉아의 장삼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희봉아는 냉검상이 이대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저 눈물만을 흩뿌릴 뿐이었다.
* * *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돌아서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것일까?
바람은 조금씩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제 몸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그 바람 속에 나뭇잎은 하나둘 떨어지며 조락의 계절을 느끼게 했다.
"......"
냉검상은 창가에 기대서서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방(房)은 금봉문에서 가장 고아한 전각인 천봉각(天鳳閣)이었고
, 남자들에겐 금역인 이곳에서 그는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송과 대결에서 내상을 입었고,
그 상태에서 고루사왕 녹소강을 처치하고 마지막으로 백안마존(白眼魔尊)을 해치우면서 입은 상처는
너무도 엄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한 달여를 이곳에서 상처를 치료하면서 어느 정도 완치되고 있었다.
그 동안 희봉아는 정성을 다해 냉검상을 치료했다.
그녀의 정성은 가히 아내라 할만큼 극진한 것이었다.
희봉아는 금봉문의 문주인 금봉(金鳳) 희수빙(姬水氷)이 사문의 사매라고 했지만,
실상은 자매지간이었다.
문주인 희수빙 뿐만 아니라, 부문주의 직위를 맡고 있는 혈봉(血鳳) 희문연도 같은 자매로
세 사람이 금봉문의 최고직위를 한 가지씩 맡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냉검상은 이곳 금봉문에서는 최고 귀빈으로 대우를 받고 있었다.
***
열어놓은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조금 선뜻한 느낌을 주었다.
비록 거의 완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냉검상의 안색은 오랜 병상에 있어서인지 창백했고, 우울해 보였다.
표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냉검상은 며칠째 우울함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무공 때문이었다.
냉검상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불안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을 전부 사용하지 않아도 천산(天山)에서는 신(神)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중원에 들어와 그의 믿음은 깨져 버렸다.
한송과 해연이 비록 전대기인(前代奇人)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무공이 쉽게 패하리라고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문이 열리면서 희봉아가 옥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창문에 기대어 서 있는 냉검상을 발견하더니 그만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희봉아는 빠른 걸음으로 쟁반을 탁자에 놓고는 쪼르르 냉검상에게 다가왔다.
"안돼요. 아직 찬바람을 쐬면 안돼요. 공자는 아직 환자예요."
냉검상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창 밖을 응시했다.
"난 이미 치료가 끝났다."
"하지만..."
안쓰럽게 냉검상을 올려보는 희봉아의 눈에는 금방 눈물이 고였다.
냉검상은 희봉아를 흘깃 돌아보다가 그만 표정이 변했다.
(이거야 원...너무도 심약하니 도대체 뭐라고 말할 수도 없군.)
냉검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희봉아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문을 닫도록 하지."
냉검상은 손을뻗어 열린 창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희봉아는 활짝 웃으면서 냉검상의 팔을 잡았다.
"그래요. 아직 더 치료를 해야 해요.
그건 그렇고, 요놈의 계집애, 공자님을 잘 보살피라고 했더니 겨우 이 모양이야, 혼을 내줘야겠어요."
"그만둬. 취홍은 내게 아주 잘해주고 있다. 문은 내가 스스로 열은 것이다."
희봉아는 잠시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밝은 웃음을 지으며 냉검상의 팔을 잡아 끌었다.
"참, 이리 오세요. 백 년 묵은 삼을 구해 닭과 함께 고아 탕을 만들어 왔어요."
냉검상은 희봉아에게 이끌려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희봉아...이 여인은 남자를 가장 편하게 만들어 준다
. 고향과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가장 가정적인 여자처럼.)
냉검상은 멋적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희봉아가 이끄는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서도 냉검상은 며칠 전 금봉 희수빙이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봉아는 금봉문에서 가장 총명한 재녀예요. 하지만 사랑에는 눈이 멀어 그 총명함을 모두 잃어 버리고 있어요.
그녀에게 있어서 공자는 곧 하늘과 같아요. 부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생각을 떠올렸던 냉검상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에게 있어서 여자란 즐기는 상대이지 결코 구속될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많은 여자를 상대하면서도 이런 생각은 변한 적이 없었다.
오직 그가 여자에 대해서 특이하게도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것은 설청하 뿐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희봉아는 냉검상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금봉문을 직접 찾아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고, 금봉문을 위기로부터 건져 주었으며,
십이비천신마 중에서 고루사왕과 백안마존을 처치한 모든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것이었다.
완전히 냉검상과 동상이몽이었다.
냉검상에게 특이한 것은 이상하게도 희봉아에게 별다른 느낌을 못 가진다는 것이었다.
희봉아에게 당연히 느껴야할 성적(性的) 매력조차 느끼지 못했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 외 남자로서의 어떤 소유욕이나 욕망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밥보다 술을 좋아하고, 술보다 여자를 좋아하는 냉검상에게는 실로 기이한 일이었지만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희봉아는 정성스럽게 국물을 떠서 입술을 오므리고 호호 불어서 식혀 냉검상 입술에 떠주었다.
냉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왠지 더욱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
너무나 정성 어린 희봉아의 태도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그 한송이란 노인과 해연이란 땡추를 찾아가 복수를 해야겠다. 절대로 그냥 둘 수는 없다!)
* * *
밤이 되면서 냉검상은 자유스러워졌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희봉아와 함께 있는 관계로 냉검상은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희봉아는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쓰며 냉검상을 보살펴 주었지만,
실상 그것이 냉검상에게 불편하다는 것을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녀는 냉검상을 돌봐 주며 옆에 있는 것조차 행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무심한 냉검상으로서도 그녀에게 박정하게 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쉬이잉..
밤바람이 불어와 냉검상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냉검상은 어둠에 잠긴 화원을 산책하면서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다.
화원을 지나고솔밭으로 들어서던 냉검상은 불현듯 검은 하늘을 올려보다간 내공을 끌어올려 보았다.
단전에서 가늘게 치민 한 가닥 힘은 전신의 삼백 육십 혈도를 따라 원활하게 치달으면서 막대한 느낌을 주었으며,
어느 때보다 충만한 공력을 느끼게 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천산의 한담에서 일 년 만 더 있었으면 옥정기공을 십이단계까지 극성으로 연마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도법의 위력은 가일층 가공해졌을 테고..)
그때였다.
슈슉!
난데없이 예리한 파공성이 냉검상의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냉검상은 야수의 민첩성처럼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미인혈을 들어올렸다.
땅땅...
하는 음향과 함께 미인혈에 부딪쳐 떨어져 내렸다.
손목이 은은하게 떨려옴을 느끼며 냉검상은 그 물체를 바라보았다. 솔잎이었다.
"......!"
이토록 가느다란 솔잎을 적엽비화수법으로 날릴 수 있다면 실로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었다.
솔잎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냉검상은 솔잎이 날아 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짙은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도주하는 것이 냉검상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흥! 감히 나를 노리다니..)
냉검상은 그대로 지면을 박차면서 그림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인영의 신법은 쾌연했고,
이곳의 지리에 익숙한 듯 송림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교묘하게 전각과 전각 사이를 누비며 도주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냉검상은 은근히 화가 솟구쳐 악착같이 그림자를 뒤쫓았다.
한데 한 채의 전각을 끼고 그림자가 돌아갔고,
그 뒤를 따라 냉검상이 돌아갔을 때 귀신 곡하게도 그림자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더욱이 그곳에는 거대한 인공 모습이 있어 몸을 숨길만한 장소도 없었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냉검상은 전각의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음을 보았고,
바로 그 방에 창문이 반쯤 열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숨을 곳이라곤 저곳 뿐이다.)
생각을 한 냉검상은 그대로 몸을 날려 방으로 스며들었다.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방은 여인의 규방답게 화려했다.
하기야 금봉문에 남자를 위한 방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방 안을 예리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냉검상은 욕실쪽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심야에 누가 목욕을 하는 것이지?)
문득 냉검상은이 금봉문 내에 남자라곤 자신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목욕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여자가 아닌가? 냉검상의 표정이 찌푸러졌다.
아무리 여자를 좋아하는 냉검상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급습을 했던 인물을 쫓다가 방을 잘못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가자. 자칫하다간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냉검상은 급히몸을 돌렸다.
그리고 열린 창으로 다시 나가려는 순간,
"!"
냉검상의 눈에무엇인가 포착되었다.
창문 앞에 미세하게 흙자국이 나 있는 것이었다.
(으음?)
냉검상은 검미를 살짝 찌푸리며 미세한 흙자국을 계속 추적해 보았다.
지극히 미세한 자국이었지만 냉검상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 흔적은 욕실로 이어져 있었다.
순간 냉검상의눈에는 미묘한 이채가 반짝였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면서 수건으로 알몸을 가린 한 여인이 나타났다.
바로 금봉문의 부문주인 혈봉 희문연이었다.
희문연은 한 걸음을 떼어놓기도 전에 냉검상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
그러나 희문연은 이내 가는 눈썹을 찌푸리며 요염한 두 눈에 가득 노기를 나타내었다.
"무례하군요. 아무리 우리 금봉문의 은인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야밤에 여자의 거처를 침입하다니!"
"......"
냉검상은 대답대신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오히려 당황한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탁자 앞에 앉았다.
희문연은 기가 막힌 듯 더욱 노기를 띠고 차갑게 외쳤다.
"지금 행동.. 무슨 의도예요!"
냉검상은 여유있게 탁자에 놓여 있는 찻물을 약간 따라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산책을 하던 중 누군가가 나를 공격했소. 뒤따라 오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된 것 뿐이오."
희문연은 차갑게 냉소를 쳤다.
"흥! 변명치고는 유치하군요. 누가 본문 내에서 공자를 공격한단 말이예요?"
"하하하핫..."
냉검상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
희문연의 표정이 변했다.
냉검상은 돌연 웃음을 뚝 그치더니 몸을 일으켜 희문연에게 다가갔다.
희문연은 언뜻 당황한 기색을 떠올리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서너 걸음도 물러나지 못해 그녀의 등은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냉검상은 마치 그녀를 가두듯 양손으로 벽을 짚고 잠시 희문연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지척에서 마주친 채 잠시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했다.
그러나 교환되는 눈빛은 많은 말보다 정확하게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침묵의 벽을 깨뜨린 것은 냉검상이었다.
"후후후.. 둘째소저, 실례했소. 그러나 결코 고의는 아니었소."
냉검상은 벽을짚은 손을 거두고 예를 취해 보였다.
"그럼..."
냉검상은 몸을돌렸다.
순간 희문연은 발작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냉검상의 앞을 막았다.
그녀는 제법 야멸찬 눈빛으로 냉검상을 쏘아보았다.
"흥! 함부로 침입을 하고 그냥 나가려는 경우는 무슨 경우예요?"
"?"
"들어온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다면 절대 이곳을 나갈 수 없어요."
희문연은 절대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다.
냉검상은 피식 실소했다.
그리고 낮은 웃음을 계속 흘리면서 말했다.
"이봐, 희문연소저. 우리 서로 유치한 장난은 그만 두는 것이 어때?"
희문연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냉검상은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그녀에게 접근해 갔다.
희문연은 다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벽이 아니라 탁자에 엉덩이가 부딪치면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었다.
"후후. 목욕을 하면서 머리를 감지 않는 것은 무슨 경우고, 요즘에는 여자들이 이런 장식도 다 달고 다니나?"
"......"
냉검상은 손을뻗어 희문연의 머리에서 솔잎 하나를 떼어내었다.
희문연은 솔잎을 보는 순간 그만 얼굴을 살짝 붉히고 말았다.
냉검상은 희문연의 턱을 한 손으로 치켜들면서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던가?"
희문연은 본능적으로 수치감을 느꼈다.
그녀는 턱을 잡고 있는 냉검상의 손을 탁 쳐내고 차갑게 노려보았다.
"당장 나가요!"
냉검상은 담담한 시선으로 희문연을 응시했다.
아름다왔다.
희봉아와 흡사하지만 희봉아의 분위기가 풀꽃처럼 청초하고 청순하다면 희문연은 장미와 같았다.
장미처럼 짙붉고 정열적이며 도발적인 여인이었다.
더욱이 두 눈가에 은은하게 흐르는 붉은 기운을 보면서 냉검상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냉검상은 싱긋웃었다.
"내가 좋은가?"
희문연은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냉검상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듯 쥐었다.
"후후후.. 마치 암코양이 같아. 매력이 있어."
희문연은 모멸감을 느꼈다.
"이런!"
그녀는 그대로손을 날려 냉검상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냉검상은 더욱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쥐고는
다른 손으로 재빠르게 그녀의 등 뒤로 돌려 알몸을 가린 수건의 매듭을 풀어 버렸다.
스르르...
수건은 희문연의 매끄러운 살결을 타고 그대로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수건이 흘러내리면서 드러난 희문연의 알몸은 완벽할 정도로 풍만했다.
그녀의 미모보다 뛰어난 육체였다.
어느 한 곳이라도 더 풍만하거나 말랐다면 그 완벽함은 그대로 깨져 버릴 것 같았다.
희디흰 목선을타고 내려오면 두 개의 조롱박을 얹어놓은 것 같은 젖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고,
그 위의 젖꼭지는 저 혼자 성이 난 듯 앵두처럼 돌기되어 있었다.
세류요의 허리를 따라 알맞게 살찐 배가 나오고, 배의 중심에는 오목하게 패인 배꼽이 수줍게 숨어 있었다.
구슬처럼 둥그런 둔부와 둔부에서 양다리로 갈라지는 여인의 비경(秘景)은 놀랍도록 검고 무성한 체모로 덮여 있었다.
살결의 흰색과 대조적으로 검은 체모들은 보기만 해도 뜨거운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희문연은 냉검상의 앞에 자신의 알몸이 드러나자 극도의 수치감을 느꼈다.
"비켜!"
그녀는 앙칼진외침과 함께 냉검상을 공격했다.
그러나 냉검상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한쪽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꽉 움켜쥐었다.
"아.. 아파!"
희문연은 고통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찌푸려 주름이 잡힌 콧등이 더없이 도발적인 느낌을 주었다.
냉검상은 그녀의 무릎을 잡은 손을 풀어 허벅지를 타고 훑듯이 위로 올라왔다.
순간 희문연은 감전이라도 된 듯이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아..."
냉검상은 능숙하게 무성한 음모(陰毛)를 손으로 살며시 쓸어 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대단해..."
희문연의 이성은 이미 무너졌고, 그녀의 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뜨겁게 달아올라
두 눈은 몽롱하게 풀어져 있으며, 입은 반쯤 벌린 채 가쁜 숨결과 달뜬 신음을 연신 토해냈다.
냉검상의 손이 스칠 때마다 경련을 일으키는 희문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냉검상에게 매달렸다.
(타고난 물건이야..)
냉검상은 희문연을 번쩍 안아 탁자 위에 앉혔다.
그리고 탁자 위의 물건들을 쓸어 버리고는 자신도 알몸이 되었다.
희문연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냉검상은 희문연을 잡아당겨 탁자 끝에 엉덩이가 걸치게 만들고는 그대로
자신의 하체를 그녀의 하체에 밀착시켰다.
"흐흑..."
급살을 맞은 듯이 희문연의 육체가 진동했고, 냉검상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닌밤의 홍두깨식으로 두 남녀는 격렬한 정사(情事)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창으로 아침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냉검상은 탁자에 앉아 희봉아가 달여온 녹차를 마시려다 말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희봉아의 얼굴에는 달콤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왜 제게는 유림이라는 거짓 이름을 말하셨어요?"
냉검상은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싱긋 웃으면서 코를 손바닥으로 살짝 튕겨 주면서 말했다.
"그러는 너는 왜 금봉문의 문주가 너의 사매라고 했지?"
희봉아는 살짝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변명을 하듯 말했다.
"그.. 그냥 처음 만난 분에게 모두 이야기하면 너무.."
희봉아는 말을다 끝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냉검상은 나직이 웃었다.
그러자 희봉아는 고개를 반짝 들고는 눈을 빛냈다.
"정말 몰랐어요. 공자님께서 그 유명한 천산마도(天山魔刀)일 줄이야."
"내가 그렇게 유명한가?"
희봉아는 입술을 예쁘게 삐죽거렸다.
"피이! 공연히 시치미 떼지 마세요.
솔직이 천산마도 하면 연환맹(連還盟)의 남궁천자(南宮天子) 만큼이나 유명한 걸요?"
냉검상은 의아한 듯 물었다.
"남궁천자가 누구지?"
"어머! 삼뇌천기(三腦天寄) 남궁천자를 모르세요?"
오히려 냉검상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냉검상이야 모르니 모른다고 할 수밖에..
"그렇다."
냉검상을 보면서 희봉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현 무림의 제일인자예요. 이 하늘 아래 가장 현명한 인간이며,
지상 위의 모든 고수들 중에서 최고 우선한다는 신비인물을 모르신단 말이예요?"
(되게 거창하군.)
"나이는 서른 살 정도로 알려져 있어요.
팔십 년 전 십이비천신마를 신강으로 쫓아낸 백의성자(白衣聖子) 남궁백(南宮白) 노선배님의 손자인데,
노선배님보다 훨씬 강하는 소문이 파다해요."
냉검상은 왠지기분이 나빴다.
자신보다 더 유명하게 소문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왠지 불쾌한 것이었다.
"한송보다 강한가?"
희봉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송이 누구예요?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이예요."
"음..."
희봉아는 말끄러미 냉검상을 보았다.
남궁천자를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한송은 또 누구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냉검상의 생각은 이상하게 삼뇌천기 남궁천자에게 쏠려 있었다.
(남궁천자라...)
왠지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희봉아와 가벼운 산책을 즐긴 냉검상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을 때,
희문연과 희수빙이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금봉문 내에서 입은 가벼운 옷차림이 아니라, 모든 예식을 갖춘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의아했지만 냉검상은 우선 그녀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희수빙은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언제 봐도 고귀한 귀품이 풍겼다.
그윽한 봉황의 눈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자리를 잡은 희수빙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군요."
냉검상은 담담하게 웃었다.
"문주께서 신경을 써 준 덕분이오."
그래도 희수빙이 일문의 문주인지라 냉검상의 말투도 어느 정도 부드러웠다.
희수빙은 나직이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 자매는 초청을 받아 악양으로 떠나야 해요
. 그런데 봉아가 상공 때문에 한사코 그곳에 가지 않는다고 하는 군요."
냉검상은 의아한 듯 희봉아를 응시했다.
과일을 깎고 있는 희봉아는 냉검상과 시선이 마주치자 수줍은 듯 고개를 내리며 웃었다.
"봉아, 무슨 일이지?"
희봉아는 냉검상의 물음에 과일을 깎다 말고 쪼르르 다가와서 냉검상의 팔에 매달렸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희봉아의 모습을 보는 희문연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질투의 눈빛이었다.
희수빙은 냉검상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악양에서 오늘 오후 대규모 군웅회합이 있어요."
"?"
"무당이 상청관 관주이신 태허진인(太虛眞人)과 소림사의 굉지대사(宏知大師)께서 주관하시는 회합인데,
무림의 명숙들이 상당히 초청됐어요
. 더욱이 귀빈으로는 무림의 활불(活佛)이신 천불암의 해연선사께서도 참석하시는 모임이예요."
냉검상은 흠칫했다.
(해연 그 땡추가 무림활불이라고?)
희수빙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우리 세 자매도 그 회합에 초청을 받았어요. 한데 봉아가 상공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거예요."
냉검상은 희봉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희봉아는 그윽한 눈으로 냉검상을 올려보며 사정하듯 말했다.
"공자님, 저하고 같이 가요? 네?"
희봉아의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냉검상은 내키지 않았다.
대규모의 모임같은데 참석하는 것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었다.
냉검상이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희수빙은 냉검상을 부추기듯 말했다.
"상공께서 이 모임에 가신다면 좋은 경험이 되실 거예요. 특히 이 회합에서는 신비의 성(城),
취옥성의 삼공자(三公子)이신 냉곡공자께서도 참석하신다고 해요."
(냉곡!)
냉곡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냉검상은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마도 죽는 순간까지도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냉..곡!)
냉검상이 어찌그 이름을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리고 동생인 냉유림을 북방의 칼날 같은 바람과 추위 속
에서 죽게 만들었던 이복형제 중에 한 사람이거늘..
냉곡의 이름을듣는 순간 냉검상의 안색은 무섭게 경직되고 말았다.
표정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버렸고, 두 눈은 무서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관자놀이는 실룩거리면서 금봉을 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너무도 살벌한 것이었다.
희수빙은 돌연한 냉검상의 변화에 가슴이 서늘해지고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희봉아는 약간 겁에 질린 듯 냉검상을 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고..공자님.."
냉검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불타듯 이글거리는 눈빛만이 무섭게 흔들리고 있었다.
냉검상의 뇌리 속에는 죽어가면서 어린 동생 냉유림이 애원하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형, 중원에는 가지 마. 큰 형들이 형을 죽이고 말 거야.
잊으려 했다.
무능한 아버지를 한탄하며 죽어가던 동생의 처절한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그 처절한 과거를 잊으려 했다.
한데 또다시 떠오르는 이름.
냉곡..
냉.. 곡...
냉검상의 두 눈에 피어오른 불꽃은 악마의 화염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희수빙은 소름이 오싹 끼침을 느끼며 옆의 희봉아를 바라보았다.
조금 불안한 기색으로 냉검상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순결한 천사의 모습이었다.
마치 악마와 천사가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내가...저 분을 잘못 생각하는 것일까?)
희수빙이 혼란을 느낄 때 냉검상은 악마처럼 잔인한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좋소, 같이 갑시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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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