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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162.4]
신앙체험 수기 공모 작품 선정
중앙총부는
‘교인들에게는 감동과 감화를 주고
교단에는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 위하여’
신앙체험 수기를
지난 연말부터 올해 2월 15일까지 공모하였다.
신앙체험 수기는 모두 7편이 접수되었다.
3월 18일 심사를 통해
최우수1편, 우수1편, 장려1편을 선정하고
상금(최우수50만원, 우수30만원)과
‘동학·천도교인명사전’을
부상으로 수여하기로 하였다.
또한, 올해 초 실시한 49일기도(1.1~2.18)와
중앙총부 주관 특별기도(1.1~1.7) 소감문을
3월5일까지 공모하였고,
강서교구 한영숙동덕이 소감문을 보내왔다.
신앙체험수기 및 특별기도
소감문(명단) 참가자와 수상자는 다음과 같으며,
최우수·우수·장려 작품을 소개하고
다른 작품은
‘살며생각하며’, ‘동학세상’ 등의 꼭지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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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 수기
한울님을 만나기 위한 여정
송봉구_부산대남교구
일요일은 원래 나에게는 휴식의 날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천도교 교당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가만히 돌아보니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로 부산 서면에서 내가 재직하고 있는
영산대학교의 논어 교수를 대표해서
시민들에게 『논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학이불염 회인불권,學而不厭 誨人不倦)’는
논어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가르쳤다.
실수하면 안 되기에 예습을 열심히 해서
열정을 다해서 수업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선생님이 두세 분 계셨다.
그 중에 한 분이
오늘 나를 천도교 교당으로 이끌게 한 분이다.
표정이 맑고 깨끗한 분이었다.
서로 소개를 하고 보니
부산 동천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이신
김학봉 선생님 이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천도교 신앙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많이 놀랐었다.
동학이 천도교로 계승되고 아직 사람들이
천도교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일요일 날 모여서 교회처럼
예배도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많이 놀랐었다.
그 이후로 선생님과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맹자』, 『소학』, 『고문진보』 등의
동양고전들을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 할수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품에 감동하여
선생님이 믿고 있는 천도교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통 사람들 같으면
천도교 교당에 한번 가자고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말씀은 없었다.
대신에 천도교 경전을 선물로 주셨다.
경전에는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말씀인
『동경대전』, 『용담유사』와
2대 스승인 해월 최시형의 말씀과
3대 스승 의암 손병희의 말씀이 함께 있었다.
당시는 동학의 사상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경전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좀 더 관심을 보이자
선생님이 교당에도 초청하여 가게 되고,
한 달에 한번 경전 공부하는 모임인
‘포덕영우회’에도 초대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전 공부하는 모임이 있기 전에
1시간 정도 수련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경전 공부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가진 게 수련이었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불교에 입문하고
수련법을 통해서 몇 년간 공부해서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계속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배웠던 불교 수련법은
호흡을 헤아리는 ‘수식관’이었다.
수식관은 숨을 들이 쉬면서 하나를 헤아리고,
내 쉬면서 둘을 헤아리면서
열까지 헤아리는 방법이다.
이런 수련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다녔기 때문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고,
당시 시대가 많은 사람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집권 세력과 투쟁을 했기 때문에
사회도 불안했고 내 마음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불교 수련법인 수식관에 몰두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었지만,
불교의 철학인
출가와 세속의 가치를 추구해야 되는 나의 입장과
차이가 나서 더 이상 불교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다른 수련법이 필요했는데 그때 만난 것이
천도교 수련법이었다.
그래서 천도교 수련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수련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다.
수련 지도는 ‘포덕영우회’를 이끌고 계시는
정덕재 동덕님이 하셨고
수련방법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21자 주문을 외우는 비교적 쉬운 방법이었다.
주문을 크게 소리 내서 하는 방법인 현송(現誦)과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우는 묵송(默誦),
그리고 함께 외우는
합송(合誦)의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21자를 외우는 것이라서
겉으로는 쉽게 보였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 자신의 소리를 내서 외우는 방법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옆 사람의 크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내 소리가 작아서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무시하고
나도 크게 소리를 내서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자 옆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같은 내용을 계속 외우자 한곳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한곳으로 몰입 할수록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몰입해서 들어간 그곳은 평화롭고 아늑한 곳이었다.
소리를 크게 내서 외우면 외울수록
한곳으로 몰입해 들어갔고,
그렇게 되자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집에서 큰 소리를 내서 주문을 외우게 되면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교당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하시니
더욱 신이 나서 주문을 외우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정식으로 천도교에 입교하고
주문 수련과 경전 공부도 병행하였다.
그렇게 한지 5년 정도 시간이 흐른, 어느 시일 날
교당에서 주문을 외우는데
문득 내가 우주공간에서 없어지고
주문 소리만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말 놀랐다.
오래전에 불교에 입문하여 수식관 수련을 하다가
내가 우주공간에서 없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똑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내가 없어진 그 자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 상태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러나 주문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편안한 그 자리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다시 서로가 분리된 현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주문을 외우면
그 자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 자리는
나를 떠나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나만의 천국을 만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수련을 지도해 주시던 정덕재 동덕님께 질문 했는데
그냥 수련 중에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하면서
쭉 지켜보라고 하였다.
한번은 정덕재 동덕님과 진주에 있는 ‘수덕실’에 가서
1박2일 수련한 적이 있었다.
정덕재 동덕님은 먼저 가시고
나만 남아서 수련하고 있는데
수덕실 아래 마을에 집이 있는
김희수 동덕님이 초대를 해서 가게 되었다.
집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동안 혼자서는
우물 청소가 엄두가 안 나서 못했는데
일꾼이 있을 때 같이 하기로 했다.
벽의 돌에 낀 이끼를 청소하니 우물의 물이 탁해졌다.
그래서 탁해진 우물의 물을
전부 바가지로 퍼서 버리는 작업을 힘겹게 했다.
탁해진 물을 거의 퍼내자
우물의 물이 나오는 처음 그 자리를 보게 되었다.
참으로 깨끗한 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내 마음도 우물의 물처럼
처음 그 자리는 이렇게 깨끗했는데
살면서 환경에 물이 들면서 오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모습을 보니
무엇인가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았다.
하루를 더 보내면서 수제비도 만들어 먹고
동덕님의 그동안 공부하신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다.
참으로 공부의 경험이 나와는 비교 불가능했다.
수련 고수들의 말씀을 참고하면서
현실 생활 속에서 계속 수련을 해 나갔다.
당시 수련하고 일요일마다 시일을 보던 교당은
부산의 대연교당이었다.
작지만 아늑하고 옛날 시골집 같은 교당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함께 시일도 보고 수련도 했던 분들이
참으로 한울님의 성품을 가지신 분들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환원하셨는데
그때 좀 더 많은 걸 질문하고
좀 더 친절하게 해드릴 걸 하는 후회도 밀려오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그때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유재원 교구장님과 가족 분들,
당시 동천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박인준 종무원장님과 정숙례 사모님,
성강현 도훈님과 강병로 동천고 교장 선생님,
김대석 동천고 교구장님 그리고 안동한 동암장님
여러분들과 아직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분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수련하는 동안 생활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학교 교수 생활이
쉽다면 쉽지만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교수들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고
나중에 승진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소리 내어 주문을 외운 결과
내 안의 평온한 세상 즉 한울님의 힘이 강해져서
이런 일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또 다른 도움은
주문을 많이 외우다보니 마음이 맑아지고
그 결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서
논문을 잘 쓸 수가 있었고,
평소에는 다혈질이라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화가 잘 나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고 경전 공부도 함께하면서
차츰 천도교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교당에서 시일 날 설교도 하게 되었다.
초보자가 평생 신앙을 하신 분들 앞에서
조금 아는 게 있다고 설교를 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설교를 해보았다.
처음에는 많이 떨렸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많이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중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면서 했더니
교인 분들이 많이 좋아 하셨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다.
바로 나를 천도교로 인도해주신
김학봉 선생님이 그만 환원하시고 말았다.
오랫동안 형님처럼 친구처럼 계실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꿈 같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특히 선생님은
동학을 창도하신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이 남기신
『용담유사』 강의를 참 잘하셨다.
언제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장소는 경주 용담정이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용담유사 한편을 강의하셨는데
아주 쉽고 재미나게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좋은 강의를
오랫동안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로 많은 장점을 가지신 선생님이
능력을 모두 펼쳐보지도 못하시고 가셨으니
지금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늘 내 가슴속에는
천도교라는 최고의 보물을
나에게 선물로 주고 가신 선생님으로 남아 있기에
나는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지금은 선생님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여러분들과 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역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지만
천도교 종학대학원 부산분원이 만들어졌고
분원장으로 임명되신 성강현 도훈님이
나에게 천도교의 경전을 가르치는 일을 제안 하셨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직 내가 맡을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도훈님의 제안을 거절 할 수도 없어서
용기를 가지고 맡게 되었다.
지금은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강의를 맡은 게 참으로 잘한 것 같다.
왜냐하면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이 남기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어디서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사님이 남기신 경전을 가르치면서 모르는 부분은
윤석산 교수님이 해설해 놓으신 책을 교재로 해서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강의 준비를 했다.
그래도 애매한 부분은
지금까지 공부한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서 설명해 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두 번째 강의할 때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강현 분원장님의 천도교 역사 강의를
틈틈이 들을 기회가 생긴 게 큰 행운이다.
그동안 분원장님은
책에 없는 내용은 직접 발로 밟아서
현장을 가보고 확인한 내용이 많아서
직접 강의하는 현장에 오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세밀하게 눈으로 보는 듯이 설명을 하시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분들이 부산 분원에 입학하셔서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천도교의 역사를 알고
신앙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나 자신도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
천도교 교리 강의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종학대학원을 졸업하려면 수련은 필수다.
그래서 해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가리산수도원에 가서
여름과 겨울 일주일씩 수련을 했다.
종학대학원 임형진 원장님의
재미있는 특강과 따뜻한 배려로
일주일의 수련은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본원 학생과
부산에 있는 분원 학생들이 만나서
서로 인사도 하고 도담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에 갔을 때 가만히 생각해보니
천도교 입교하기 전에 동천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강원도 천도교 유적지 답사하면서
잠깐 들렀던 적이 있던 곳이었다.
그때는 수도원 조동원 원장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라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곳 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천도교 주문 수련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 특이한 경험을 하고,
수련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면서
천도교의 주문 공부를 한 분 중에 가장
주문 공부가 깊이 대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수련원에 갈 때마다 원장님의 말씀과 행동을
그냥 넘기지 않고 신중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련이 깊이 된 분은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평범해서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것도 화려하지도 않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강조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고는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마다 가서 뵐 때마다
한결 같이 우리를 좋은 말씀과
맛있는 음식으로 챙겨주시고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런 모습이 진짜 한울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장님의 아쉬운 점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드님이신 김혁태 선도사님이시다.
카리스마 있는 말씀과
수련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련지도를 해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책으로 출판하기로
언젠가 나하고 약속을 한 것 같은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빨리 그동안 공부하신 내용을 책으로 출판해서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가리산 수도원에서 일주일간 수련을 하면
늘 아쉬운 것이 있었다.
처음 이틀 정도는 주문을 외워서
세속에서 묻은 먼지를 제거하는 시간이고,
다음 이틀 정도는 본격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한울님 마음으로 바꾸는 과정인데,
이 과정을 하는 도중에 늘 수련원을 떠나게 되니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수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았다.
부산 시 교구에서 매월 1일에서 7일까지
일주일씩 수련을 수십 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종학대학 부산분원을 졸업하신
상암 박상호 동덕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리산수도원에서 못 다한 수련을 하기로 결심하고
시교구 일주일 수련에 동참했다.
시교구 수련모임은
경수당 박정례 동덕님을 중심으로 수 십 년째 하고 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은
일주일 저녁 2시간 하는 수련 모임이다.
평소에 하는 수련이라
그날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수련에 맞추고
가능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교구의
성수당 박종자 동덕님이 수련 진행을 하시는데
7시에 앉아서 수련 시작해서
눈 뜨면 9시, 수련 끝나는 시간이다.
어떤 달은 너무나 수련이 잘되고,
또 어떤 달은 기대만큼 되지 않았다.
이번 달은 수련이 잘 되겠지 기대한 달은
이상하게도 수련이 잘 되지 않았고,
거꾸로 기대하지 않은 달은 수련이 잘 되었다.
참으로 묘한 마음의 장난이 아닌가 한다.
그냥 마음 놓고
수련만 하면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시교구 수련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중단된 상황이다.
시교구 수련의 즐거운 점은
매달 시작할 때
김영욱 교구장님의 설교 말씀이 재미있다.
일반적인 책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재밌게 말씀을 해주신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는 마지막 날 음식을 마련해서
일주일간 공부한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준다.
시교구에서 함께 수련하신 여러 동덕님들이 그립다.
하루 빨리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다시 시교구 수련실에서 만나기를 고대한다.
수련을 할 때
주문을 외우다보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의 상태에서 만나는 그 황홀한 상황을
수운 대신사님은 한울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자신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다.
다만 만나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이 길은 열려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이 길을 가려고 하지 않을까?
수운 대신사님은 그 이유를
인간이 가진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돈, 권력, 명예 등을 가지려고 인간은 노력하지만
한울님을 만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다가 실패를 경험하거나
이른 나이에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로는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그러고 보면 꼭 실패나 죽음의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일을 통해서 사람을 거듭 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한울님을 찾는 수련 여정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살면서 힘들고 소외감이 생길 때마다
한울님을 찾는다.
바로 앉아서 혹은 움직이면서도 주문을 외우면
조금 전까지 작았던 나의 한울님이
내 마음을 꽉 채운다.
그러면 왜소했던 나는 없어지고
큰마음을 가진 대장부로 바뀌어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제 남은 일은 이런 좋은 방법을 모르고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천도교의 수련법과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힘든 제약이 있다.
우선은 천도교 경전의 내용이
한문과 오래된 표현법이 많아서
일반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는데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천도교 동덕님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경험한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경전 해설을 해서 책으로 많이 출판하면 좋겠다.
이런 과정의 하나로
최근에 나의 능력을 무시하고
그동안 수련하면서 느꼈던 것을
내가 공부한 전공과 비교하여 책을 출판했다.
책을 출판하는데
출판사 대표이신 박길수 동덕님의
깔끔한 문장 수정으로 책 내용이 한층 더 좋아졌다.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시도한 것도 천도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부끄러워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시고
전화로 용기를 주신 윤석산 교수님과
천도교 박차귀 여성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이런 어른들의 한 말씀이
후학들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된다.
그리고 주문 수련법도
천도교인들은 익숙해서 편하지만
처음해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주문 수련법의 현대화에 대해서는
김춘성 전 부산예술대 교수님의
논문과 대화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공이 같은 동양철학이고
수련의 깊이도 깊은 분이라 배울 것이 많다.
다만 자주 뵙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언제나 궁금하면 질문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줄 모른다.
다행히 지금 주위 환경은 많이 좋아지고 있다.
우선 내가 다니고 있는 대남교구와
동부산교구의 동덕님들이 마음을 모아서
새로운 교당을 짓고 있다.
그동안 교당이 오래되고 시설이 불편해서
사람들을 초대하기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점은 없어졌다.
새로운 교당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내가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방법들을 공유하면서
각자 자신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만나게 해주는
그런 연결고리 역할을 해서
천도교를 알리는데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