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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
(동학 설화소설) 제 17 화
쌍무지개 뜨는 연못
채길순_ 소설가, 명지전문대학교 교수
1. 관덕당의 봄날
봄 하늘은 마냥 푸르렀다. 온 누리가 포근한
아지랑이 속에 풀 나무들이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벌 나비와 어우러졌다.
푸른 봄기운을 머금은 새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임익서林益瑞는 아미산 마루에 앉아 먼눈으로 보리밭 위를 짝지어 솟구쳐 오르는 종달새를 쫒다가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이런 좋은 봄날에 세상을 뜨시다니! 곁에 앉았던 아내 손 소저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옷고름을 가져다가 눈물을 닦았다.
“그만 갑시다.”
임익서가 먼저 일어서자 손 소저가 말없이 따라 일어섰다.
관덕당 마당으로 가는 길은 어제 내린 비로 땅이 흠뻑 젖어 있었고, 풀잎 위에 맺힌 구슬 같은 비이슬이 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당 앞 너른 마당에는 벌써 차일이 쳐졌고,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웅성거리고 서있었다. 낯익은 동학교도였지만 임익서와 손 소저 내외는 알은체 않고 사방 눈치를 보고 서 있었다.
여전히 남문 쪽에서는 구경꾼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대부분 동학교도인 줄 알지만, 벙거지에 전복 입은 군졸들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군졸들에게는 무기를 들지 않은 동학교도가 무섭기는커녕 재물자루로 여기고 있었다. 이제 동학 창도주 최제우의 참형이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이때, 관덕당 아래 차일 쪽에서 한 노인이 걸어왔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행여 흙이 묻을까봐 두루마기 자락을 깡총하게 걷어 올려 묶었다. 노인이 임익서 내외를 향해 말했다.
“오늘 동학 두령 참형을 구경 나왔소?”
임익서가 잠시 머뭇거리자 노인이 냉큼 말했다.
“헛걸음이오. 동학 두령 최복술(崔福述, 아명)이는 벌써 북수리가 되어 먼 세상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임익서가 깜짝 놀라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려 할 때 노인이 빠르게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말인가?
2. 용담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다
지난 해 12월 10일 새벽, 군졸 60여 명을 거느린 선전관 정운구가 용담정에 들이닥쳤다. 동학 교세가 들불처럼 번져가자 화들짝 놀란 조정에서 선전관 정운구에게 명하여 동학의 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명을 내렸다. 정운구는 조사할 것도 없이 대뜸 ‘동학 수괴 최제우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죄목을 씌워 용담정에 머물고 있던 최제우와 제자들을 굴비 엮듯 엮어서 대구감영으로 이송했다.
오래 전부터 창도주 최제우의 동향을 보아오던 경상감사 서헌순은 선전관 정운구와 ‘동학교도 두릅’이 감영으로 들이닥치자 더럭 겁부터 났다. 소문에 최제우가 신이神異한 조화를 부린다고 했고, 주문이나 부적으로 온갖 병을 다스려 백성들 너도나도 동학교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동학 교세가 경상도를 넘어 강원 충청 전라도까지 빠르게 번져간다는 것이다. 서헌순이 근심 건더기를 두고 고심이 될 참인데 선전관 정운구가 먼저 말했다.
“최제우란 역적을 조정으로 올려서 다스려야겠소.”
정운구의 말에 서헌순은 근심 건더기를 치우게 되었으니 ‘옳거니!’ 싶었다.
“역시, 나리께서 잘 보셨소. 부디 사헌부에 올려 다스려 주시오.”
그렇지만 선전관 정운구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양으로 압송하는 길에 창도주를 험하게 다스리면 동학교도의 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과연 정운구의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대구 감영을 떠나 압송 행렬이 선산 구미를 지날 때 길가에 동학교도가 허옇게 몰려나와 읍하면서 “우예든지 우리 선상님 잘 모셔 주소!” 하면서 엽전꾸러미를 바치는 것이다. 눈치 빠른 군졸들이 동학교도가 볼 때 가마 살 틈으로 막대기를 집어넣어 최제우를 찔러대니 돈이 더 많이 쏟아졌다.
임익서는 보따리를 꾸려 이들 뒤를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임익서가 가마 살 틈으로 연신 막대기를 넣고 찔러대는 군졸의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렇다고 돈을 바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되자 호송 행렬의 발걸음은 자연 더딜 수밖에 없었다. 상주 보은 회인 청주를 지나는 동안 동학교도의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았고, 머무는 곳마다 돼지나 닭을 잡아 술을 내고 밥을 삶아내느라 이래저래 백성들 등골이 휘었다.
죄수 압송행렬이 청주를 벗어나면서 길 가에 동학교도가 없어지니 걸음이 빨라졌다. 그제야 임익서는 무릎을 쳤다. 아예 연도에 동학교도가 나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과천에 도착했을 때 파발이 달려와 ‘임금의 승하’ 소식을 전하면서 ‘죄수를 대구 감영에서 처리하라’ 하여 호송행렬은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충주 조령 길을 택했는데, 충주에 이르자 동학교도가 다시 연도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문경 새재에 이르러 수천 명의 동학교도가 몰려나와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뻔했다. 한 밤중이었는데, 동학교도가 든 횃불로 대낮같이 밝았다. 이필제가 거느린 동학교도는 몸 안에 칼을 숨기고 있어서 여차하면 호송 군졸과 큰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새재 고갯마루에서 이필제가 가마를 가로막고 섰다.
“우리 스승님을 풀어주시오! 오만 년 후천개벽의 큰 도를 여신 창도주를 어찌 대역 죄인으로 취급한단 말이오?”
이필제가 일갈하니 마침내 정운구가 칼을 뽑고, 군졸들이 한꺼번에 칼을 뽑아들었다. 일촉즉발의 다급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수례 위 살 속에 갇힌 최제우가 나섰다.
“모두 물러나 길을 비키시오. 나는 천명을 믿고 따를 뿐이오. 내가 오늘 이 길을 걷은 것 역시 천명이니 여러분들은 아무 염려 말고 오직 도를 믿고 수도에 힘쓰시오.”
“스승님!”
그제야 이필제와 동학교도가 길 양편으로 물러나 길을 트고 엎드렸다.
최제우의 압송 행렬은 그 해의 마지막 밤을 유곡동 원에서 묵고 새로운 육십 간지의 갑자년 정월 초하룻날 대구 감영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임익서는 정운구 일행을 따라 과천까지 올라갔다가 경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며칠을 쉬면서 정월 대보름을 쇠었다.
3. 대구 감영에서 문초를 시작하다
임익서가 대구 남문 시장에서 약방을 하는 김진호 집을 찾아간 때는 정월 스무날이었다. 벌써 김진호가 옥졸을 돈으로 사놓아서 하루 이틀 새로 감영에서 벌어지는 일을 낱낱이 듣고 있었다.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온 최제우를 다시 맞아들인 경상감사 서헌순은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정의 서슬로는 마땅히 참형인데, 경상도 많은 백성이 동학교도이니 그렇게 되면 원망의 덤터기를 고스란히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헌순이 궁리해낸 것이 심문을 혼자서 하지 않고 참사관을 많이 배석시키는 일이었다. 서헌순은 자신의 말을 잘 들을만한 상주목사 조영화, 지례현감 정기화, 산청현감 이기재를 급히 감영으로 불러들였다.
심문은 여러 고을 수령들이 도착한 정월 스무 하룻날부터 시작되었다. 임금이 승하한 예를 갖춰 북향 배례를 마치고나서 동학 창도주 최제우와 강원보 최자원 이내겸 이정화 박창욱 박응환 조상빈 조상식 정석교 백원수 신덕훈 성일규 등 12 제자에 대한 심문을 의논했다. 국상 난 지 49일제가 며칠 후가 되니 “좌도난정률에 따라 엄한 참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결론이 단박에 나버렸다.
최제우와 열 두 제자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심문이란 으레 가혹한 매질로 시작했다. 살을 에 듯 혹독한 추위에 벌겋게 옷을 벗겨놓고 언 살에 매질을 하면 살이 찢어져 피가 사방으로 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날마다 심문이 벌어지니 참사관으로 온 수령들은 비명을 들으면서 점심을 먹었다.
그날도 수령들은 점심 때 반주로 마신 낮술로 거나하게 취해 각기 제방으로 돌아갔다. 서헌순이 잠깐 졸고 있는데 “우지끈”하고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 들었다. 날이 어둑해서야 잠에서 깨어나니 밖에 기척이 있어서 ‘게 누구 없느냐?’고 물었다. 아전이 방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까 잠결에 무슨 소리가 그리 요란했더냐?”
“네, 동학 두령 최제우의 정강이가 부러지는 소리입니다.”
“뭐라고?”
서헌순은 ‘왜 그렇게 심한 형을 했느냐’고 나무라려다 입을 다물자 이방이 내처 말했다.
“뭐 그래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뼈가 부러져도 얼마 안 있어 뼈가 다시 붙고 찢어진 살도 금방 아물어버린께요.”
아직 잠이 덜 깨기는 했지만 서헌순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주리를 틀어 정강이가 자끈둥 부러졌는데도 최제우는 멀쩡히 걸었고, 얼굴도 피를 닦아내니 금방 깨끗한 얼굴이 되었습지요.”
“너, 그 말이 진정이더냐?”
“그렇다니까요? 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지요.”
“으음!”
서헌순은 그만 정신이 아뜩해졌다. 눈앞에 아른거리던 해 기운이 갑자기 가셔지고 어둠이 몰려왔고, 어둑시니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아서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누, 누구 없느냐?”
서헌순이 밖을 향해 말했다. 방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던 이방이 말했다.
“나리! 저 여기 있습니다요.”
“그렇구나. 내가 잠시 실성한 모양이로구나. 너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
4. 순도의 길
하얀 봄 햇살이 흰 차일 위로 쏟아져 눈부시게 빛나고 난데없는 봄바람이 차일을 흔들고 지나갔다. 이때 둥! 둥! 북소리가 바람처럼 일어났다.
“훠어이! 비켰거라!”
전복에 벙거지를 쓴 군졸들이 벽제 소리를 치며 관덕당 앞에 쳐놓은 차일 안으로 들어섰다. 관덕당 마당을 가득 메우고 웅성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임익서 내외는 바로 앞쪽에 서 있었다. 임익서는 아까 노인의 말대로 북수리가 되어 날아갔는지, 아니면 스승님께서 정말 끌려 나올지 궁금해졌다. 스승님께서는 천명을 따른다고 하셨으니 노인의 말은 헛소리가 틀림없었다.
“비켰거라! 죄인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군졸의 말에 따라 무거운 칼을 쓴 죄수가 나졸 네 명에 옹위되어 마당으로 들어섰다. 최제우는 큰칼을 쓰고 뒷짐결박까지 지웠으나 꼿꼿하게 걸었다. 큰 칼에는 연 꼬리 같은 종이에 “동학 괴수 최제우”라 씌어 있었다.
“아! 스승님!”
임익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온갖 고문에 시달렸지만 여전히 얼굴은 맑게 빛나고 눈빛은 형형했다. 마당에 늘어섰던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납신 접거나 마당 진흙 바닥에 엎드렸다. 임익서 내외도 엎드렸다가 일어섰는데, 일어나보니 모두 옷자락에 흙이 묻어 태반이 동학교도인 줄 알았다.
이때 둥둥 북소리가 다시 나고 군졸이 소리쳤다.
“훠어이! 감사 나리 납신다.”
북소리 장단에 맞춰서 맨 앞에 경상감사 서헌순과 뒤로 참관 수령들이 위엄을 갖춰 들어섰다. 그렇지만 마당을 가득 메운 백성 어느 누구도 허리를 접거나 엎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서헌순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명을 내렸다.
“동학 괴수 최제우는 들어라. 너는 요망한 소리로 도당을 모아 사특한 말로 인심을 어지럽히고 혹세무민하였으니 좌도난정률로 참형에 처하노라.”
순간 ‘아!’ 하는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어디선가 낮은 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참형을 시작하라!”
경상감사 서헌순의 호령이 여기까지는 기세등등했다. 명에 따라 둥! 둥! 북소리가 일어나고 벌겋게 웃통을 벗은 망나니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작두날 같이 큰 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타났다.
“훠어이!”
망나니가 괴성을 지르며 죄수의 머리 위로 칼을 날렸다. 사람들이 아! 하는 탄성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눈을 감았다. 북 장단이 다시 이어져 실눈을 뜨고 보니 다시 칼춤을 추며 죄수 주위를 돌았다.
“에이잇!”
이번에는 정확하게 목을 향해 칼을 내리쳤으나 죄수의 머리도 그대로 붙어 있고, 흰 칼날도 그대였다.
아! 이번에는 차일 속에 감사와 참사관, 군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서헌순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찌된 일이냐?”
이방이 서헌순에게 급히 달려가 아뢰었다. 그동안 북소리가 멎고, 낯빛이 허옇게 가셔진 서헌순이 죄수를 향해 다가섰다. 서헌순이 최제우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그대의 참형은 나라님의 명이니 나도 어찌할 수가 없소. 어명이니 따라 주시오.”
최제우가 머리를 들어 말했다.
“나라님의 명이 중하다고 하나 어찌 하늘님의 명에 미치겠소. 동학의 거룩한 도를 위해 나는 하늘님의 명을 기꺼이 따르겠소. 죽기 전에 청수 한 그릇을 내어주시오.”
곁에 섰던 이방이 달려가 물 한 그릇을 소반에 받쳐 내어왔다. 최제우가 자리를 고쳐 앉아 정좌하여 동학 주문을 외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이때 마당에 늘어선 사람들의 입에서도 일제히 동학주문이 흘러나와 관덕당 앞마당은 금세 동학주문이 넘실댔다.
이윽고 최제우의 입에서 동학주문이 멎자 관덕당 마당은 다시 고요해졌다. 최제우가 칼을 땅에 박고 선 망나니를 향해 말했다.
“이제 안심하고 내 목을 베시오!”
다시 북소리가 일어나고, 망나니의 춤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에이잇!” 하는 망나니의 외침과 함께 흰 칼이 허공을 갈랐다. 붉은 피가 한 길 위로 솟구쳐 오르고 목이 소반 위로 떨어져 청수를 피로 물들이고 땅위로 굴러 떨어졌다.
아! 사람들의 탄성도 잠깐, 갑자기 햇살을 뿜어 내리던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광풍이 일더니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스승님!”
마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일제히 엎드려 통곡했다.
5. 쌍무지개 뜨는 연못
최제우의 목은 사흘 동안 남문 밖 길거리에 효시되었다가 감영 옥에 갇혀 있던 박 씨 부인과 큰 아들을 풀어주고 시신을 인계했다. 임익서가 미리 준비해둔 관에 머리와 몸을 이어 담고 관 뚜껑을 덮으려다 문득 어떤 예감이 들어서 관 뚜껑을 덮지 않고 곁에 세웠다. 곁에 있던 김경필 김경숙 정용서 곽덕원 전덕원 등 제자 6명에 의해 경주 용담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운구 행렬이 자인현慈仁懸 서쪽 후연後淵 주막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주모가 기다린 듯 달려 나와 물었다.
“어디서 오는 상차喪次요?”
“대구에서 오오.”
“용담 최 선생님 아니에요?”
“어떻게 아시오?”
“어젯밤 꿈에 귀한 손님이 들 거라고 해서 방을 치우고 종일 기다리던 참입니다.”
주막집 방 위목으로 관을 모시는데 관속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고, 차갑던 몸에 더운 기운이 감돌았다.
“스승님께서 살아나실 모양이오!”
행여 소생할까 싶어 사흘 동안 동학주문을 외며 주막에 머물렀다. 임익서가 이른 아침나절에 마당으로 내려서니 주막 앞 연못에 발을 담근 쌍무지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임익서가 놀라 소리쳤다.
“쌍무지개다! 스승님께서 떠나신다.”
마침 뒤따라 나온 제자들도 함께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느덧 무지개가 사라지고 방으로 돌아오자 윗목 시체에서 시즙屍汁이 흐르고 있었다.
임익서 일행은 관을 수습하여 용담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