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요훔·반트·하이팅크, 그리고 바렌보임과 블롬슈테트가굳건히 지키고 있는 브루크너의 세계에 뜻밖에도 줄리니·시노폴리·샤이 같은 이탈리아 지휘자들이 나름대로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뒤늦게 아바도까지 가세하더니 어느새 4번, 7번, 5번에 이어이번에는 1번을 내놓았다. 아바도의 브루크너가 설 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음반을 들어보면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듯하다.
아바도는 아직 구성이 산만한, 그러나 이미 대가적 풍모를 엿볼 수있는 브루크너의 이 초기 교향곡(물론 40세 이후의 작품이지만)에 아주 풍부한 표정을 불어넣고 있다. 음량의 진폭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조시키며, 빈 필하모닉의 뛰어난 기능성을 활용하여 악기군의 선율선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반면에 아디지오에서는 몹시도 신중한 행보를 보이며, 2악장 종결부의크레센도가 표시된 악구에서는 분명한 주장이 있는 부점을부여해 표현력을 부풀리고 있다.
아바도는 정형화된 악구를 집요하게 반복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거대한 조형물을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필요하다면 과장도 불사하면서 각 부분별로 뚜렷한 색깔을 입히고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음반의 경우 4악장은 마치 3악장과 단절된 전혀 다른 곡을 듣는 듯한 결과를 빚기도 한다.
이런 점은 브루크너 매니어들에게는 불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적어도 1번 같은 미완의 작품에서는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이있고 효과도 보고 있다.
2. 제4교향곡
펄 GEMM CD 9131
브루노 발터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스카니니의 오케스트라로 잘 알려진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독재자가 아닌 민주주의자 발터가 지휘하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뉴욕 필하모닉 시절 이후 브루크너 교향곡에는 손대지 않았던 토스카니니를 위해 만들어진 이 교향악단을 통해 발터는 브루크너 4번을 지휘하면서 이 교향곡의 '궁극적인' 해석자라고 평가받는 지휘자들과 상당한 거리를 보여준다.작열하는 아첼레란도의 푸르트벵글러, 윤택한 광채의 카라얀, 어딘가 신비롭고 유연한 구조를 보여주는 첼리비다케나 줄리니, 직선석인 요훔이나 '울림'에 큰 효과를 보여주는 반트와 비교해 볼 때 더욱 그렇다. 발터는 '나의 삶에 브루크너 작품이 갖는 중요성은 말로 표현하기힘 들다."라고 말했다. 이 교향곡들이 갖는 힘과 구조의 강조등 브루크너만의 특징을 발터는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그가 본 브루크너는 대단히 유니크하다. 그나퍼츠부슈처럼 깊이 장중한 몰아침 없이도 발터에게 발견된 브루크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발터의 가장 큰 개성이자 해석의 원류는 흐르는 듯한 프레이징의 유연함과 풍부한 울림에 있다. 어딘가 브루크너와는 상반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이 음반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분명 강조된다. 그렇다면 발터의 브루크너 4번은 어색하기만 할까. 오히려 이런 성격들이 발터만의 브루크너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그는 브루크너를 대단히 젊고 혈기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놨다. 특히 3악장 도입부에서 금관의 강렬한 악센트로 시작하여 급속도로 크레센도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투티 부분까지 들어보라. 어떤 지휘자가 이런 과감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게다가 이 40년 녹음은 푸르트벵글러의 실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CBS 스튜디오 녹음보다 오케스트라의 생동감이 뛰어나고, 컬럼비아보다 NBC의 연주 능역이 뛰어나다. NBC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토스카니니의 그것과는 대단히 다르다. 현은 신경질적이지 않고, 금관은 자극적이지도 않다. 특히 목관과 팀파니의 소리는 대단히 부드럽다. 지휘자에 따라 민감하게 화한 음색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음질은 방송 녹음이라 중간 중간 잡음이 삽입되어 있지만, 악기의 표현력은 흡족한 수준으로 수록되어 있다. 처음으로 출반된 이 녹음은 브루크너 4번의 명연에 꼭 포함시키야 한다. 커플링되어 있는 오베론 서곡의 연주 수준도 대단히 만족스럽다. 토스카니니의 그것에 비해 템포나 울림이 휠씬 자연스럽고 집중도 역시 월등하다.
3. 제5교향곡
교향곡 5번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를 슈리히트
슈리히트는 이미 3,8,9번 녹음으로 연주자의 자의적인 해석을 배제한 순수한 브루크너를 보여준 바 있다. 빈 필 150주년 기념으로 5번을 녹음, 그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전체적인 균형을 따지자면 1악장과 4악장 도입 부분에서의 시퀸스는 상당히 안정감을 주고, 부분적인 면을 보면 확실히 노련한 변이 보인다. 휴지분분의 호율적인 이용(여기서 브루크너 음향인 잔향이 들린다.) 역시 아주 충실하다. 1악장에서는 섬세한 목관끼리의 응답이 돋보이고, 현의 스타카토 위에 여운있는 솔로 오보에로 도입된 2악장은 현의 반음계적인 오르내림이 유연하다. 3악장 스케르초의 발랄함은 결코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브루크너의 매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거대한 4악장에서 붓점으로 연속되는 현과 금관의 총주는 감히 다른 연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종교적인 코랄풍의 5번을 악상에 루바토을 주지 않고도 풍성한 힘과 숭고한 정신으로 연주해내고 있어 가장 이상적인 5번으로 꼽을 만하다.
교향곡 5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
각 악장 중에서 오케스트라 총주의 번뜩임과 그걸 터뜨리기 위해 몇 소절 앞부터 고조되는 분위기 연출, 아찔해지는 아첼레란도, 콘트라베이스의 훌륭한 기반 등 예전엔 보기 힘든 모습이 많다. 연주 시간 역시 푸르루트벵글러 제일 빠른 연주(67분) 다음으로 빠를(72분) 정도로, 굉장한 가속력을 붙였음에 틀림없다. 판본 역시 하스판 대신 원전판을 사용하고 있어(사실 양자간에 큰 차이는 없고 팀파니나 현의 세세한 기호만이 틀린다.) 브루크너에 대한 접근방식에 상당한 배려를 한 점이 느껴진다.
그러나 바렌보임의 이 시도가 결코 성공적이라고는 볼수 없다. 그의 바그너 연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템포의 자의적인 설정이 너무 계속직인 게 눈에 띈다. 순간순간 총주나 금관이 포효하기 바로 전에 빠르게 끌고 가는 스타일은 2악장 아디지오의 심원한 세계를 표출하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4악장에서도 중간 부준의 넘실거리는 분위기 역시 그 전과 뒤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견고한 구조를 자랑하는 5번에서 이런 균형의 불안정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의 소리가 거칠고 너무 뭉개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금관이 그 속에 파묻힌 모습이 간간이 나타나는데 이는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맡은 이후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음향적으로도 오르간적 울림이라고 하기엔 모자란 면이 있다. 바렌보임이 녹음한 7번과 9번에서도 이런 문제점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웅대한 브루크너의 모습이 아쉽다.
<박제성>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RCA 09026-68503-2 (DDD)
교향곡 제5번 Bb장조
귄터 반트(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CA 09026-68503-2 (DDD)
★★★★★★★★★☆
귄터 반트의 브루크너 사이클을 계속 주시해 온 사람이라면 이 음반의 표지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오케스트라가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아닌 베를린 필이라는 사실이다. 반트로서도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베를린 필과 녹음한 적은 있지만 브루크너교향곡을 녹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반트의 브루크너가 갖는 특징으로 전체적인 구도를 중시한다는것, 선율선의 부각보다는 오르간적인 울림을 추구한다는 것을 꼽는다.그러나 이러한 점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해석에 있어서 당연히 지켜야할 도리일 뿐,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로서 반트가 지닌 또 다른 장기가 있다. 결코 성급하지 않으면서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템포 설정, 악구의 전환점마다 표정을 풍부하게 변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막연한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19세기적 전통을 잇는 거장적 풍모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반트의 특징이 베를린 필을 맞아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여전히 최고의 연주인 것은 틀림없으나 과거의 연주와 비교해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선율선이 좀 더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점은 강철군단 베를린 필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연주홀의 음향 특성에도 기인하는 듯하다.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경우 연주장인 대성당의 음향 특성이 반영되어 개별 악기군의 소리특성이 다소 무뎌지는 대신 풍려한 음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1악장의 연주가 매우 좋고 4악장 후반부의 압도적인 고양감도 인상적인 음반. 아마도 4악장을 위해서 굳이 베를린 필을 선택한 것이아닐까?
4. 제7교향곡
한국 폴리그램 DG 2536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바도는 독일, 오스트리아의 전통을 계승한 브루크너 지휘자들과는
판이한 양식감각으로 곡을 대한다. 같은 빈 필을 채용하고 있음에도 아바도에게서 카라얀과 같은 강렬한 음색이나 모진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양식감각의 반영일 것이다. 어찌보면 신선하고 개방적이고, 또 유연함을 넘어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아바도의 극단적이지 않은 개성은 연주의 어느구석에서나 편하다는 느낌이 먼저 전해져 온다. 하지만 뭔가 있을 듯한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아바도의 무개성은 그렇지 않아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브루크너 음악을 더욱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바도가 카라얀에 비해 좀더 활기찬 템포를 설정하고 있고,1악장에 한해서는 보다 뚜렷한 음량을 확보해 나가고 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던 그의말러 연주에서 비난 대상이 됐던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아바도의 브루크너 7번은 모범
적이기만 한 샤이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김한진> 음악동아 94년 9월호에서
코흐리서시 3-7022-2H1
야샤 호렌슈타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교향곡 7번이 처음으로 음반에 담긴 것은 1929년 오스카 프리트 지휘에 의해서였는데, 여기소개하는 호렌슈타인의 1928년 연주는 역사상 두번째의 녹음으로 LP시대부터 전설적인 명연으로 알려져 왔다. 호렌슈타인은 살아있을 때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일부 골수 애호가들에게는 브루크너와 말러 교향곡 연주에 있어 최고의 지휘자로 추앙받았으며, 최근에 들어서 그 진가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이 연주를 녹음할 당시 30세에 불과했던 호렌슈타인이지만 이미 대가로서의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50년대 후반 그의 녹음에서 나타나는 원숙함과 여유는 약간 부족하지만 각 구절구절이 명료한 윤곽을 드러내면서도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잃지 않는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빠른 악장에서는 생동감과 박력으로 넘쳐 흐르며 아다지오 악장은 종교적인 신비감에 가득 차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아다지오와 스케르초 악장에서 약간 감정과잉이 돼 멋을 부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이런 치기는 초기 브루크너 연주자들이 갖고 있는 매너리즘을 그대로 답습한 데서 오는 결과로 보인다. 베를린 필은 호렌슈타인의 영감 넘치는 지휘에 맞추어 완벽한 합주력과 찬란한 음색을들려주는데, 이 당시에도 베를린 필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임을 실감케 해준다. 이 음반은 예전에 유니콘 사에서 LP로 출반한 적이 있지만, CD의 음질이 모든 면에서 보다 뛰어나다.
<김명진>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Deutsche Grammophone 429 226-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vert Von Karajan)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라얀이 남긴 교향곡 제 7번 녹음은 무려 4종으로, 어떤 지휘자보다 많은 숫자다. 71년완성된 베를린 필과의 녹음은 브루크너 연주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밝은 것이 흠이지만, 일관성 있는 구조가 돋보이고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울림이 인성적이다. 역시 같은 오케스트라을 이끌고 녹음한 76년 음반(DG)은 관악기의 거친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카라얀의 통제력은 더욱 뛰어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감이 있지만 어느 연주보다도 힘이 넘쳐 흐른다. 1969년 6월의 실황녹음(아르카이아)는 카라얀 자신이 음에 들지 않아 출반하기를 거부했던 음반인데, 연주는 71년 녹음과 소이하지만 음질이 휠씬 떨어진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음반은 카라얀의 만년이라 할 수 있는 89년의 디지털 녹음으로 음질도 가장 뛰어나며 여러면에서 카라얀의 정신적 성숙을 보여준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상반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우아하면서도 종교적인 깊이가 담긴 신비감이 감도는가 하면, 때로는 너무 세련되고 음악의 표피만을 핥는 듯한 느낌도 준다. 베를린 필과의 연주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한층 부드러우며 카라얀답지 않은 여유가 전곡에 넘쳐흐른다.
<김명진>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Decca 414 290-2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리카르도 샤이는 95년말까지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을 녹음할 예정으로 있는데 현재까지 나온 그의 연주는 하나같이 호평을 밪고 있다. 특히 0번과 3번 같은 초기 교향곡들이 음반비평지로부터 격찬을 받았는데, 7번 역시 그에 못지 않다. 이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어떤면에서도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항상 중용의 길을 가는 것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점이 약점이기도 하다. 샤이으 템포 설정은 항상 논리적이며 어느 부분에서나 설득력이 있지만 음악적 영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통솔력이 뛰어난 지휘자에 의해 음악이 기계적으로 흘러 간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전반적으로 따스함과 긴장감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모범적이
라 할 만하지만 어딘가 개성과 매력이 부족하다. 부모의 뜻대로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누구도 싫어하지 않지만 누구도 가장 좋아하는 연주로 꼽지 않을 음반. 어쨌든 녹음상태나 전반적인 구성능력, 오케스트라의 연주력 등에 있어서 최상이므로 이 곡의 모범적인 연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박재성>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텔덱 9031-73243-2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
뉴욕 필하오닉 오케스트라
마주어는 결코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브루크너 전집을 완성한 몇 안되는 지휘자 중 하나다. 유로디스크에서 출반된 마주어의 브루크너 전집은 특별히 나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한 연주다. 그러나 91년 마주어가 뉴욕 필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나온 이 음반은 마주어가 그 동안 브루크너 지휘자로서 대단한 성장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연주의 가장 큰 특징은 현악기군을 강화하고 관악기군은 클라이맥스 부분을 제외하고는 극도로 억제하여 어떤 연주보다도 부드러운 소리를 끌어낸다. 특히 심벌즈를 비롯한 타악기를 철저히
배제해 시종일관 브루크너다운 목가적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이찌보면 이는 작곡가의 악보를 지휘자의 입맛에 맞게 변칙적으로 수정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어의 이 녹음에는 다른 연주에서 느낄 수 없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배어나온다. 때로는 가볍게 들리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박력이 부족하여 처음 이 곡에 접하는 사람에게권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7번 음반을 두어장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필히 한번 들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주어의 의도에 맞추어 뉴욕 필도 중후한 음색과 물 흐르는 듯한 유연한 템포로 연주로 브루크너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뉴욕 필의 공연장인 에이버리 피셔홀은 음향상태에 있어 악명 높은 곳이지만 텔덱의 기술진들은 열악한 조건을 딛고 자연스러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개가를 이룩했다.
<김명진>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RCA 09026 61398 2
귄터 반터(Guenter Wand)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7번 연주에서 반트의 해석은 변함이 없다. 8번에서 보여준 브루크너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연주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카라얀처럼 포르타멘토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1악장 코다의 '매우 평화롭게'의 표현은 뛰어나다. 1,2악장에 걸쳐 필연적인 감동의 효과는 이전 녹음인 쾰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보다 휠씬 크다. 반트만의 고집스러움과 거친 성격이 보이면서도 이런 장중한 연주를 해낸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3악장 스케르초 중 트리오 부분의 다소 느린 절묘한 템포, 4악장의 전조에 따른 가속력은 이 교향곡에 절대로 필요한 강렬한 추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1,2악장의 어두운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켜버렸다. 반트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지도 않고 단지 악보 그래로를 표현했을 뿐이다. 다만 NDR 심포니의 한계상 현의 색채감이 결여되어 있어 아쉽다. 하지만 반트에게 이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반트의 브루크너야말로 최고 수준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음반과 5번(RCA 60361 2RC)는 진정한 브루크네리안이라면 반드시 들어봐야 할 음반이라고 주장한다.
<박재성> 음악동아 94년 10월호에서
London 430 841-2
크리슈토프 도흐나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1990년 8월 클리불랜드 세브란스홀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아마 수 많은 브루크너 교향곡 7번 녹음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흐나니는 시종일관 치밀한 계산으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통제해 나간다. 현재 미국내에서 최상의 합주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모듬 악기군이 세부까지 철저하게 단련된 세련된 소리를 만들어내며, 런던의 엔지니어들도 이에 부응하듯 밸런스가 완벽한 음향 상태를 이끌어내다. 도흐나니는 기본적으로 이 곡에 깔려 있는 바그너의 영향을 중시한 듯한데,특히 처음 두 악장에서 그런 의도가 두드러진다. 웅대한 스케일과 유유자적한 템포로 마치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목가>를 연상시키는 연주를 들려준다. 반면 스케르초와 피날레는 보다 역동적이고 발랄한 어프로치인데 특히 스케르초 악장에서 들려주는 미묘한 리듬은 이 연주의 백미. 마지막 악장 역시 모든 디테일이 명료하게 부각되면서 이들이 모여 놀리적이고절제된 구축력을 과시한다. 굳이 한가지 흠을 잡는다면 이지적인 면이 지나쳐서 듣는 이를 감정적으로 사로잡는 힘이 부족하다. 푸르트벵글러나 크나퍼츠부슈와 같은 왕년의 대가들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고양을 기대할 수 없지만 가장 현대적이고 신선한 해석을 하고 있으며 특히 초심자에게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김명진> 음악동아 94년 7월호에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SDR 심포니오케스라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 7번은 먼저 재킷 표기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앞면에는 SDR 심포니를 지휘한 실황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뒷면과 내지에는 빈 필을 지휘한 스튜디오 녹음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가 빈 핑을 지휘해 브루크너 7번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는 기록을 확인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뒷면과 내지 기록이 잘못됐다고 믿을 수 밖에 없지만 녹음 상태는 SDR을 지휘한 실황으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 더욱이 녹음 데이터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이 문제는 차후에라도 규명할 필요가 있겠다. 연주는 '잘 잡힌 균형 속에서 대단한 에너지의 발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면적인 단정함과는 달리 그 내면에서는 주관적인 로멘티시즘을 담고 있는 그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과도한 열기는 당연한 것으로받아들여진다. 특히 스케르초 악장에서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생동감 어린 템포와 극적인 폭발이 강한 인상을 안기는 클라이맥스의 박진감은 푸르크벵글어의 49년 녹음을 연상케 한다.
스케르초 악장의 그같은 강렬함은 느릿한 템포와 잘 조율된 현의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종교적인 신비감까지도 느끼게 하는 아다지오 악장 때문에이기도 한데, 연속된 두 악장에서 그가 보여주는 능란하고 자연스러운 변화의 솜씨는 놀랍기만 하다. 또한 아다지오 악장에서 감정
과잉으로 자기도취의 멋에 치우치는 많은 지휘자들과는 달리 첼리비다케의 아다지오는 정제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골격이 가지는 균형 문제나 앙상블의 치밀함을 거론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끝없는 리허설을 통해 언제나 자신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그의 연주는 해석이라는 탄탄한 골격에 앙상블이라는 빈틈 없는 콘크리크를 입히고, 그 위에 에너지라는 장식의 다채로움을 얹은 느낌이다.
5. 제8교향곡
한국 폴리그램 DG 3149
원반: 도이치 그라모폰
줄리니의 연주에 깊이와 폭이 더해져 거장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다. 이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템포가 느려지면서 연주의 중심점이 점차 아래도 내려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으로 느린 템포를 택할 경우에는 음악이 추진력을 상실하거나 해체될 위험성이 높아 느리게 연주하는 것은 빠르게 연주하는 것 보다 한 단계 높은 고도의 음악성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줄리니가 80년대 들어와 관심을 기울인 곡이 브루크너의 후기 3대 교향곡인데 그 중 처음으로 녹음된 것이 이 8번이다. 8번 교향곡의 경우 대략 4개정도의 판본이 연주에 사용되고 있는데 빈 필을 지휘한 다른 지휘자들이 대부분 1890년의 결정판에 기초한 하스 판을 사용한 데 반해 줄리니는 특이하게 노바크 판을 사용하여 녹음하고 있다(해설지에서) 필자가 하스판을 사용한 연주라고 표기한 부분은 명백한 오기다. 최근 바흐 b단조 미사의 녹음(소니 클래시컬 66354)만큼 극단적인 느린 템포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이 연주 또한 카라얀이나 슈리히트의 연주보다 느린 템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연주를 들어보면 도리어 빠른 편이 아닌가 할 정도로 활기에 차 있다. 줄리니는 이전에 오르간적인 중후함으로 대변되어 오던 이 곡의 소절마다에 감추어진 에너지를 심한 완급의 대비와 프레이즈의 강조를 통해 거침없이 표출시키면서, 브루크너가 이 교향곡에 담아 놓은 정신을 마지막까지 자아내 이곡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교향곡 사상 가장 긴 30분에 걸친 아다지오 악장의 중후하고 열기 어린 호흡은 이 연주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6. 제9교향곡
EMI CDM 5 65177 2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줄리니의 브루크너 연주 가운데 그의 느긋하고도 장대한 기질이 가장 선명하게 발휘된 연주다. 제 9번 교향곡만 해도 이 연주가 있는 지 12년 후(88) 빈 필과 함께 새로운 녹음을 남겼지만 여러 면에서 이 음반의 완성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1악장 서두부터 느릿한 템포로 엮어나가는 그의 솜씨에는 이후 작품 전체를 장식하게 되는 정밀한 조형감각과 위압적인 스케일의 깊이가 느껴진다. 음의 진폭이 상당히 크면서도 별다른 기복 없이 매소절에 충분한 음량을 쏟아내는 것도 놀라울 만큼 안정되어 있다. 다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웅대한 구성과 음량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여유 공간 확보를 위해 전체 흐름과 호흡이 조금씩 더뎌지는 인상을 주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이것이 잘 조율된 전반적인 연주 밸런스에 흠을 안길 정도는 아니다. 더욱 당당해진 2악장을 뒤로 하면 음격하게 다듬어진 숭고한 악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3악장이 등장하는데, 깊은 곳으로부터 천천히 쌓아 올라오는 줄리니의 건축학적 재능은 이 부분에 대단한 기술적 안정감과 공간적 입체감의 효과를 부여한다. 독자적인 설득력과 품격을 갖춘 코다도 인상 깊고 대위법적 서법의 적절한 재현 또는 기억해 둘 만하다.
그 외에도 작품은 몇 가지인가??
EMI 레퍼런스 CDH 5 665202 2
테데움
카를 포그스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 음반의 특징은 두 작품을 베를린 필의 반주로 헤트비히 사원 합창단과 거의 비슷한 성악 솔리스트들이 비슷한 연도인 56년과 55년에 녹음한 순수 게르만인들의 연주라는 점이다. 비록 지휘자는 다르지만 두 곡에서 나타나는 음악적 색깔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카를 포스터는 구구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휘자다. 63년 59살의 나이로 숨졌기 때문에 많은 녹음을 남기지 못했고 그나마 그가 남긴 녹음은 대중적이지 못한 레퍼토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반에 수록된 브루크너 <테 데움>을 듣는다면 종교적인 감동을 받지 않을 수 가 없다. 합창단과 솔리스트, 오케스트라가 한몸이 되어서 위대한 종교곡을 풀어나가는 모습은 지금까지 듣던 <테 데움> 연주와는 달리 격한 감동의 선율을 겉으로 들어내지 않고 속으로 융해시킨다. 그리고 이 융해돼버린 감정들이 가볍지 않고 무게 중심이 잡힌 안정된 음향으로 아름답게 나타난다. 이런 감동적인 연주를 해낼수 있었던 것은 포르스터 자신이 창립한 헤트비히 사원 합창단의 역할이 매우 크다. 여느 합창단과 확연히 구별될 수 있는 합창단의 능력(각 성부의 소리가 서로 얽히지 않고 층이 뚜렷이 구별되면서 화음의 울림이 깔끔하게 뻗어 나갈 뿐만 아니라 소리 끝이 동그랗게 맺힌다.)은 솔리스트들의 맑은 소리와 함께 오르간적인 울림을 창조해내는데 중요한 요소다. 부분부분으로 따지기 전에 조망하는 자세로 전체적인 윤곽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연주가 보여주는 숭고한 브루크너 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니 비바르테 SK 66 25 1
현악 5중주 f장조
인터메조 d단조
현악 4중주를 위한 론도 c단조
현악 4중주 c단조
아르키부델리
바그너의 뒤를 이은 작곡가들,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브루크너에게서 어떤 형태로나마 실내악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 큰 규모의 교향곡과 미사곡들로 종교적이고도 깊은 의미를 보이는 작곡가 브루크너에게 얼마 안되는 수 이지만 현악4중주와 현악 5중주라는 장르의 실내악이 남아있다는 것은 그의 음악세계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1861년 요셉 헬메스베르거에게 위탁받아서 1878년에 작곡된 이 곡은 부르크너의 유일한 현악 5중주이다. 후기 낭만파 작곡가의 거봉인 브루크너를 시대악기로 연주하여 결실을 맺은 아르키부델리의 연주는 시도자체는 참신하고 전체적으로 상당한 정성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2악장의 약간 들뜬 분위기가 인상적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브루크너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연주다. 특히 전체적으로 운궁에 의존한 방법으로 브루크너 음악을 표현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어긋나는 것으로서 1,4악장에서는 일견 경박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특히 아다지오의 3악장에서는 그것이 치명적인 것이어서, 깊이 침참한 와중에 나타나야할 비브라토에 의한 감정표현이 밋밋하다는 점이 이 연주를 의미없는 것으로 만든다. 같이 수록되어 있는 d단조의 인터메조는 위
촉자가 스케르초 악장이 연주하기 너무 힘들다는 불평을 하여 개작된 것인데, 보통 스케르초 악장을 원곡으로 간주한다. 인터메조에서는 유연하게 흘러가는 흐름자체는 인상적이지만 4개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향이 브루크너의 음악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만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학생 시절의 과제물로 제출되었다.
는 현악 4중주는 브루크너 자신의 작풍이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어서 역사적인 산물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 음반은 브루크너의 보기드문 현악 4중주와 현악 5중주를 단편까지 모두 수록했다는 점에서, 또한 후기 낭만파인 브루크너를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시도가 처음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반에 수록된 곡 중 가장 원숙한 음악성이 나타나는 현악 5중주의 진정한 연주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연주를 찾아야 할 것이다. 현악 5중주의 추천할 만한 연주로는 브루크너적 분위기와 감수성을 훌륭한 앙상블에 담은 빈 필하모닉 5중주단(런던430 286 2)의 것을 일단 들 수 있다. 뚜렷하고 스케일이 큰 선율을 강한 이미지로 연주하는 것을 선호하는 청자에게는 멜로스 4중주단과 엔리크 산티아고의 연주 (아르모니아 문디 프랑스, HMC 901421)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