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꽃무릇
홍 준 경
천은사 수홍루 건너 적멸에 훅 들었다가
초가을 심지 불 지펴 뜬금없이 폈다지는
정녕코 만나지 못할 그런 사랑이었기에
어차피 언젠가는 바람처럼 찾아올 이별
차라리 만남 없이 가슴 깊이 간직했다
연붉게 저리 물든 꽃…그게 바로 나였을까
아픈 사랑
홍 준 경
이제 그 사랑 때문에 울지 않겠습니다,
혹여 그래도 눈물이 흐르면 그 눈물로 떠난 사랑을 하얗게 지우렵니다. 하여 새로움으로 봄날 돋아나는 새싹처럼 내 내면의 모종 정성 것 가꾸며 때론 섬기며 살렵니다.
이따금 고목나무 넘어뜨리는 비바람 태풍에도 나는 꿋꿋이 숨 쉬며 옹골지게 살아가겠습니다. 이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소만 사랑 할 때 그 사랑, 단내 나도록 정성을 다 하지 못 한 게 후회막급입니다. 황혼의 그늘이 시나브로 서산을 물들입니다. 오히려 그 황혼의 빛, 감사히 어깨에 지겠습니다 어느 날 불현 듯 이승의 마지막 날이 찾아오면 그 저승사자 성대히 접대하고 마치 죽마고우처럼 어깨동무하고 가겠습니다.
아, 굴곡과 아름다움, 추억이 혼합된 삶! 후회 없이 에필로그 하려 다짐해봅니다
어쩌면 사랑은 영원이 아니라 지나가는 소나기입니다.
좀 더 잘할 걸
홍 준 경
당신을 영영 보내고 쓸쓸히 돌아오는 길
그날은 유난히도 굵은 눈발이 산하를 하얗게 덥고 있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마즈막 이별 앞에 진한참회가 흰 눈처럼 소복소복 만년설을 이루며 쌓여만 간다.
이미 때 늦은 후회 ‘좀 더 잘할 걸’ 정말 미안해하며 쓰라린 독백! 그 속울음이 어쩜 나 자신을 향한 매서운 채찍인데도 스스로 용서가 안 되는 건, 사람의 독한 이기심 탓인가? 아님 내 인성의 잘 못인가? 3일 내내 못 이룬 잠이 눈까풀을 무겁게 내려 덮는다.
우리의 이별은 그리도 허망하고 속절없이 코로나역병에 고별을 고하고 말았다 인생은 어쩜 하루살이 생같이 짧은 걸, 괜시리 고뇌와 번민에 휘둘려 살아온 게 안타깝고 처량하고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남은 생은 여유롭고 비우며 낮은 자세로 살기를 다짐해 보며 또 아침 해를 맞는다. 유한의 생을 살며 무한을 갈망하는 안타까움이 회초리 되어 매섭고 사납게 내 어깨를 내려친다.
내면의 한 축이 비 맞은 돌담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섣달그믐 지리산
홍 준 경
해거름 겨울 산이
下山 바삐 서두는 게
군불 땐 아랫목이 하마 눈에 선해서일까
하룻밤 쉬었다 갈 곳 산그늘 키워 묻고 있네.
진종일 벌거숭이
애고애고 외로웠어라
떠돌던 물결 구름 무심하게 흘러간 후
바람은 웬 심술인가, 살붙이인 양 달라붙고.
어정어정 사는 게
어디 금년뿐이랴 만
황혼녘 물든 일몰 한해 저리 마무리하니
나, 이제 세밑 등 켜고 성근 눈발 기다리리라.
잘 가시게나
홍 준 경
그 날은 유난히도 굵은 눈발이 휘날리고
40여년의 희로애락 아옹다옹 때론 사랑의 속삭임, 그러나 고별은 뜬금없이 그리 쉽게 오고야 말았습니다. 잘 있어! 잘 가시게! 말 한마디 없이 중환자실의 통곡과 눈물은 휘날리는 백설에 덥히고 말았습니다, 2월 어느 날 주치의 말 한마디에 오후 하늘은 무겁게 무너지고 아! 그리 쉽게 떠날 것을 모질고도 강하게 그리 억척스럽게 생명의 동아줄을 쥐고 살아왔던 아내의 삶이 내 가슴을 찍어 누릅니다 운명의 끈이 일순간 끊어지는 것을 모르고 살아 온 건 아니지만 너무 졸지에 닥친 이별 ,중환자실 병동에서 나는 살아서 걸어 나오고 아내는 주검으로 퇴장했습니다. 25년의 투병생활이 물거품이 된 날 그건 우리의 만남이 영영 사라지는 날이었습니다.
영혼은 하늘나라로 육신은 한 줌의 흙으로 아! 그 날도 함박눈은 고향산하에 하얗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마지막 [잘 가시게나] 제목의 시에서
"그 날은" "그날은"으로, "40여년"은 "40여 년"으로 바꾸었으며,
그리고 2연에 나오는 "휘날리는 백설에 덥히고 말았습니다," 문단 끝의 쉼표를 마침표로 바꾸었으며,
"내 가슴을 찍어 누릅니다" 다음에 마침표가 빠진 것 같아 제가 임의로 마침표를 넣었습니다.
또한 "너무 졸지에 닥친 이별 ,중환자실 병동에서"에서는 쉼표의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확인하시어 답글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홍 시인님께서 원고 올리신 대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