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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근면성
21세기에 절대선,절대악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티븐 핑커의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에 따르면 이전 세기들보다 폭력이 수적으로 감소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ㆍㆍ
곧 죽일 듯 서로를 헐뜯는 정치인들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절대악'이라고 보기 보다는 특정 맥락에서 악역을 맡은 존재로 보지 않을까 싶다.
선악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런 흐름과 대조적으로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 있으니,바로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악영향의 실체이다ㆍ
문명의 성취로 아무리 가려봐도 이제는 자연에 지은 '업'의 결과들이 부인하기 힘들 만큼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정착하는 곳마다 토착 생물종을 멸종시키는 전적으로 유명한 호모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보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본래부터 파괴적이었다"라는 가설에 귀가솔깃해지지만,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파괴력은 그 차원이 다르다.
선진 산업국가들의 책임이 훨씬 크긴 해도 현대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빠짐없이 상당한 기여를 하는 분야가 바로 자연파괴.
글로벌 소비사회는 너무도 쉽게 인간을 반생태적 생활방식에 편입시키기에 일개 시민도 너끈히 '제 몫의 파괴'를 해낸다.
너무 자주 언급돼 진부해져버린 "악의 진부성"을 논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 의 아이히만》에서 전범 아이히만이 매우 근면한 인간이었다고 기술한다ㆍ
근면성 자체는 당연히 범죄가 아니다ㆍ그는 단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멍청하지도 않았다. 멍청함과 전혀 다른, 순수한 생각 없음이 그로 하여금 그 시대 최악의 범죄자가 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