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1반 2번 중학동에서 바다의 군인이 되다(윤영식편)

[오이구영]

1학년 1반 2번 중학동에서 바다의 군인이 되다

                                                                                     국방부 기본정책팀장 해군대령(장군진급예정자 확정) 윤영식

600여명의 50회 동창생들이 자랑스러운 대 공주고에 입학하였다. 나는 당시 워낙 키가 작아 160cm가 채 안되어 1학년 1반 2번으로 입학⁃배치되었다. 일부 동창들은 동네 아저씨만큼 키가 큰 사람도 있었고 바디 빌딩을 하여 우람한 가슴을 뽐내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주로 충남의 유수한 중학교에서 모인 인재들이었던 관계로 주관들이 매우 뚜렷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역시 조금 촌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 유학 왔으니 소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처음 만난 동창끼리 싸우기도 했는데 몸집과 키가 작아 서러운 적이 있었다. 다행히 3학년 때까지 4~5cm 정도 더 컸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학동에서 조그만한 방을 하나 얻어 자취를 하였다. 집주인은 만화방을 운영하였고 우리는(집에 하숙생, 자취생 합쳐 4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가끔 공짜 만화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집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야구부 합숙소 담 너머 길가에 있었다. 중학동은 나의 무대이자 나름대로 꿈을 키웠던 곳이다. 당시 공부보다는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과 놀고 먹고 마시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특히 동창, 선후배들이 하숙집이나 자취집 옮길 때 책상 날라주고 시원한 환타와 그 안에 조금씩 섞어 마시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1학년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부 모집이 있었다. 당시 공고의 밴드부는 모두 특기생으로 구성되어 매우 우수한 수준을 유지했었다. 신입생 600명을 대상으로 신입 부원을 모집했는데 2명이 신청을 했고 그 중 한명이 나였으며, 손도영 음악선생님 클라리넷을 선택하라 하셨는데 부득불 트럼펫을 선택했다. 당시 꿈 많은 고교생 중 하나였던 나도 언젠가는 큰 무대에서 트럼펫을 멋지게 연주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밴드부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초를 배우는 과정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연습을 한다면서 악기를 가지고 집에 갔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 당시 우리네 아버지 대부분이 그러하셨듯이 나의 부친 역시 맹물 드시고 헛기침 하시는 유교적 사고를 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모질게 가르치던 분이셨다. 트럼펫을 들고 있는 나를 보신 아버지는 기겁을 하였고 양반집의 자손으로 '딴딴라’ 가 웬말이냐며 노발대발하셨음은 물론 양 볼에 손자국이 나도록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 특히 매일뙤되약볕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걱정 때문에 밴드부에 계속 못 있을 것 같았다. 개학을 하고 고민하다가 밴드부 대장인 3학년 선배에게 밴드부 탈퇴를 건의했다. 당시 밴드부를 탈퇴하려면 선배들로부터 ‘줄빠따’ 를 맞아야만 했지만 밴드부 대장 선배는 나의 사정을 충분히 음악선생님께 말씀드려 조용히 탈퇴하도록 조치해주었다. 사실 특기생이 아닌 나의 트럼펫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탈퇴가 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주고 3년 동안 공부했던 기억은 많지 않다.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었고 솔직히 촌에서 중학교 다닐 때는 제법 성적이 우수했었는데 걱정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적이 집으로 통보되는 월례고사 볼 때만 독서실 일주일분을 끊어서 밤샘치기 공부를 하였다. 근근이 현상유지가 가능하였다. 그리고 성적이 앞에 서면 집에 갔을 때 은근히 자랑하면서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사실 지금생각하면 부모님을 속였던 것이다.

당시 국민학교 시절 그리고 중학교 시절 동네 어른들이 나를 보면 장군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장차 군인이 되려했고 그 직업이 인기도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너무 작아서 군인 되기를 포기하려 했으나 좋은 대학가기는 모자란 것 같고 집안형편상 학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해군사관학교에 응시했고 운 좋게 합격을 하였다.

한 가지 정말 특이 했던 것은 나는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군인체질이라는 것을 느끼고 확인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관생도 생활이 어렵다고 하였지만 나는 즐겼다. 가장 특이 했던 것은 소위 '짠밥" 이라는 것을 먹고 사관학교 시절에 키가 6cm나 컸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년 전의 사진을 보면 육체미 운동을 한 사람의 몸처럼 단단하고 울툭불툭한 몸매를 가진 사람을 보게 되곤 한다.

그리고 사관학교에도 작은북, 큰북, 트럼펫, 버글(트럼펫과 유사하나 피스톤이 없는 악기, 영화의 전투장면에 자주 나오는 악기)로 구성되는 소고대라는 조직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입단하여 결국 2년 동안 악기를 불었다. 고등학교 때 품었던 밴드부 일을 했지만 전문적인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군가를 겨우 연주하는 정도였다.

1980년대 나는 주로 바다에서 생활하였다. 당시 우리 군의 작전은 북한 간첩을 잡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대형 군함을 타고 북방한계선에 나가면 당시에는 60일 또는 90일 출동을 나가 북한 해군과 대치하고 간첩선이 들어오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위 시절에는 고속정을 지휘하며 해군기지가 있는 남해의 주요도서인 흑산도, 추자도, 거문도에서 생활하였다.

그야말로 해군생활을 즐기면서 국가안보를 위해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에 앞만 보고 뛰어오다 보니 벌써 30년이 홀렸다. 이렇게 머리도 빠지고 늙은 노병이 되어 뒤를 돌아다 볼 시간이 올 줄을 상상도 못했다. 30년 동안 출근 시간이 없었거나 일정하지 않았고 가족과 떨어져서 살기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조국, 국가안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는 여전하다.

그러나 항상 동창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모임에 제대로 나갈 수도 없었고 약속한 날 무슨 일인가 터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제 국방부에 근무하고 있는데 국가에 충성하면서도 동창회와 친구들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