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면서 일찌감치 문학의 고장으로
이름이 났다. 2009년에는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다시 한번 이름을 알렸다. 경상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악양면에는 문향(文香)을 따라온 문학 애호가뿐 아니라 바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만끽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최참판댁
북서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서쪽으로 섬진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악양면에는 동정호를 품고 있는 널찍한 평야가 있다. 바로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다. 소설 ‘토지’는 구한말 4대에 걸친 최참판댁 가족사와 한 마을의 집단적 운명을 조명한 5부작 16권의 대하소설. 소설의 무대는 경남을 거쳐 만주·일본까지 확대되지만 시작은 평사리다. 평사리는 소설 ‘토지’에 나오는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평사리에는 농촌 근대화의 상징인 비닐하우스가 없다. 비닐하우스 재배가 보편화된 요즘, 전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평사리에 인정이 넘치고 풍요로운 기운이 감도는 이유는 계절에 맞춰 정직하게 땅을 일구며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사리에는 드라마 ‘토지’ 세트장이 있다. 세트장의 중심은 안채`사랑채`별당 등 10채의 기와 건물로 구성된 최참판댁이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평사리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마루는 관광객들이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는 명소다. 평사리를 건너온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호젓한 풍경을 감상하며 나른한 오후의 상념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나무 숲길을 따라 최참판댁 뒤를 돌아가면 평사리문학관과 한옥체험관이 나온다. 평사리문학관에는 소설 ‘토지’, 드라마 ‘토지’ 자료와 함께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박경리 소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문인들의 작업실로 활용되고 있는 한옥체험관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비용은 1박에 평일 3만5천원, 주말 5만원. 샤워시설과 에어컨 등은 구비되어 있지만 취사는 어렵다. 예약 문의 011-9311-2495. 토지 세트장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어른 1천원·청소년 800원·어린이 600원. 토지 세트장에서는 7월 3일 오전 11시, 8월 15일 오전 11시, 9월 3`4일 오후 2시, 10월 1`8일 오후 2시, 11월 5`6일 오후 2시 ‘최참판댁 경사났네’ 마당극 공연도 열린다.
◆조씨 고가
평사리는 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이지만 고 박경리 작가는 평사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 정작 평사리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작가는 살아생전 “평사리를 감싸 안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지닌 역사적 자취, 경상도 땅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넓은 들녘이 구상 중인 소설의 배경에 더없이 어울려 보였다.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역병으로 가솔들을 잃어 넓은 들판의 곡식을 추수하지도 못한 채 버려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품 구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가 전해 들은 부잣집의 실체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댁 모델로 거론되는 것은 조부잣집으로 알려져 있는 조씨 고가다. 악양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조씨 고가는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후손인 조재희가 1876년에 지은 집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7년여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후원의 초당 등이 불타 없어져 현재는 안채만이 남아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조씨 고가 이정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악양면사무소 인근에 도착해서 길을 물어 찾아가는 것이 좋다.
◆슬로시티 체험
슬로시티 체험을 하려면 토지길을 걸으면 된다. 토지길은 총 31㎞가 조성되어 있다. 평사리 일대를 둘러 보려면 평사리공원을 출발해 평사리들판~동정호~부부송~최참판댁~조씨 고가~취간림으로 이어지는 13㎞ 코스가 적당하다. 부부송은 평사리 들판을 지키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말한다. 어떤 이는 토지 주인공의 이름을 따 서희송·길상송으로 부르기도 한다. 취간림은 푸른 개울 옆을 지키고 있는 500년 된 향나무 숲이다. 숲에는 팔경루와 일제강점기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3천여 명의 항일독립투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걷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자전거를 이용하면 된다. 자전거는 마을 입구에 있는 평사드레 문화교류센터에서 빌릴 수 있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TIP:대구~구마고속도로 칠원분기점 진주·함안 방면~남해고속도로 하동IC~19번 국도 하동·남해 방면~구례·쌍계사 방면~섬진교 사거리 남원·구례 방면~구례 방면~평사리. 하동IC에서 평사리 가는 길은 섬진강을 끼고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굽이치는 섬진강과 너른 백사장, 갈대밭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면 4대강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낙동강의 모습이 처량해 보일 정도다. 하동의 대표 별미는 제첩국이다. 섬진강 맑은 물에서 잡아 올린 제첩으로 끓여낸 국물은 시원하고 맛이 깔끔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섬진강변 따라 제첩국집이 줄을 잇고 있어 제첩국 맛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하동에는 하동 8경(화개장터 십리벚꽃`금오산 일출과 다도해·쌍계사의 가을`평사리 최참판댁·형제봉 철쭉·청학동 삼성궁·지리산 불일폭포`하동포구 백사청송) 등 볼거리가 많다. 토지 세트장 입구에 있는 슬로시티방문자센터(오전 10시~오후 5시 30분)에 가면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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