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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 관계가 참 뭐라 말하기 껄끄럽고 귀찮고 어중간하고 낯설고 애타면서도 기이한 관계일 것이다....
서울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된 후 맞이하는 아버지의 첫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방과후 수업기간 중이었지만 시간을 내었었다. 다른 도시에 떨어져 사는 동생도 첫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어코 참여하겠노라고 해서 나는 기차표를 한장 더 끊어 두었었다. 그 때가 1월 초였던가 그랬다.
웃으며
대합실의 오래비쪽으로 다가오는 여동생도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연배의 여인네가 되어버렸다. 허어...누이가 나이들어도...이게...이래도 되나? 어디엔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 이런 심정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허망하게 나이가 들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안된 오래비를 무조건 짜증나게 하고 신경질과 슬픔이 솟게 한다. 뭐 하여튼 이런 말도 되지않는 복잡한 오래비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기이한 오래비의 행태에 대해 마누라들이 어이없어하는 심정이 이해가 안되듯 여동생이 나이들어 늙어가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는 나자신 조차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런 감정은 그렇다치더라도
다가오는 누이를 향해 지금 당장이라도 추운 구석은 없는지, 옷은 제대로 갖춰 입었는지, 표정은 어떤지 등등을 재빨리 점검하는 오래비의 눈길은 너무 바쁘고 숨이 차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의 격랑은 알 수없는 비애와 함께 스러지고 곧 눈앞에 서있는 누이라는 실체를 고스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어른이 되어 만나도
남매라는 관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오라비가 조금 더 어른다운 행동을 한다는 점만 빼면...대부분의 영화나 소설이나 현실의 어디에서건 오라비는 동생에 대해 궁극적인 부채를 진 자로서의 언행을 보이는 모양이다. 왜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부채감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오라비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
어느
라디오 프로에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힘들게 돈을 좀 모은 부부가 이제 집을 사려고 궁리하는 와중에 남편이 갑자기 자기 누이에게 큼직한 냉장고를 들컥 사주더란다. 그 돈을 왜 그기에 쓰느냐고 부인이 항의를 하니까 남편 왈, 동생이 냉장고도 바꾸지 못하고 사는 꼴은 죽어도 못보겠노라고, 미안하지만 이해하라더라나 뭐라나 해서 억장이 무너지면서 속상하고 어이없어 섭섭해 하는 어느 부인의 하소연이었다. 글쎄, 그 오래비의 심정에 그 누가 공감할까만. 그렇긴 한데...
제아무리
자신은 막되게 살아도 누이동생의 배필만은 자기 주변이어서는 안된다는 투의 영화니 드라마 속의 장면들도 모두 그런 오누이간의 정서를 드러낸 부분일 것이고 몸싸움이 주를 이루는 영화에서 유달리 그런 장면이 빠지는 법이 없었던 것도 모두 그런 설명되지 않는 정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누이의 관계는 더욱 더 복잡하고 미묘해지면서 이제 이 관계는 서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헝컬어지게 된다. 마음속으로야 서로에게 무슨 일인들 만만하지 않을 것이 있으려나 싶긴 하는데도 이제 서로 몸뚱이가 커져버리다보니 이렇게 딱 만나게만 되면 이걸 어찌해야 좋을 지 감당이 되지않는 별스런 긴장이 생기는 것이다.
동생을 향해
또은 오라비를 향해 긴장이 생긴다는 것 자체에 짜증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흰소리를 내뱉기도 하지만 그런 건 황당한 단말마가 되어 순식간에 튕겨나가면서 오누이 사이에 더 어색한 순간만 생기기 십상이다.
'오누이같은 표정'이라는 제하의 사진이다.
A핑크와
비스트들이랑..
기광이는
버들이가 좋아하고 나는 정 은지인데..알고보니 소속사가 같네...
저네 둘이
엉덩이 붙이고 웃는 거 보라고..
오누이같은
우정을 쌓으며 지냈다는 둥, 오누이같은 한 때를 보냈다는 둥, 오누이같이 다정하다는 등등의 표현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이 던져주는 느낌을 단박에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런 말을 천천히 다시 읽다보면 그기에는 오누이가 가지는 묘한 그런 따스한 듯하며서도 긴장되는 가까우면서도 진정 가깝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저런 늬앙스가 스며있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직까지 오누이들이 던지는 좀 더 섬세하고 묘한 감정의 기복을 제대로 모두 다 포용하지 못하는 듯다.
기차를 타기 전의
이런저런 순간들의 간단한 행동거지도 이게 꼭 마누라도 아니고 딸내미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그런 행태를 보인다. 그런 묘한 장면들이 한동안 이어진다. 무거워 보이는 짐가방을 자연스럽게 동생이 들려고 한다든지, 마시던 커피를 쥔 손으로 다른 보따리를 동시에 들려고 해도 서둘러 말리면서 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몸짓도 그렇고, 기차쪽으로 나란히 가거나 아니면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는 것도 그렇고... 동생의 뒷모습을 그냥 단순하게 멍하니 바라보는 오래비는 없다. 온갖 감정이 스쳐가면서 마지막엔 그냥 그냥 가슴이 애려지고 말게 되는거지.
정리가
잘 안되는 이런 조그마한 감정의 편린들을 받아내는 시간은 실제로는 아주 짧지만 그러나 그 잔영은 의외로 길게 느껴진다. 오래비는 어릴 적의 오래비가 될 수 없는 바람에 갑자기 어쩔 줄을 몰라 그냥 어제까지 해오던 버릇대로 누구네 남편노릇하듯 하긴 하지만 전혀 그게 아니고 동생도 또한 어릴 적의 동생역할을 하는 듯 하다가 그냥 해오던 대로 누군가의 마누라노릇 하듯 그런 비슷한 행태의 몸놀림을 보이면서도 이게 아닌데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고...
우리 남매는
그런 오만가지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주변 모든 상황들은 우리들 눈에 띄는 순간 바로 우리들의 과거를 불러내는 촉매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화를 멈출 수가 없었고 목소리가 높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 다음에는 전혀 맥락이 닿지않는 엉뚱한 다음 이야기가 이어져도 이상하지가 않다. 순식간에 이야기를 채가는 누이의 이야기에 한동안 정신없이 휩쓸려가게 되다보면 또한 나에게 떠오른 또다른 이야기가 순식간에 둘 사이의 추억을 이어주고...그런 와중이라면 남편이니 아내니에게 걸려오는 전화들은 건성으로 받게되고 서둘러 마무리 짓게된다. 마치 이 시간을 침범당하는 일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때 문득,
내가 우리가 갑자기 윗방으로 쫓겨가게 된 사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는 지를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날 갑자기 책이랑 옷을 뭉쳐들고 엄마 아빠와 기거하던 안방에서 마당건너 윗방으로 쫓겨가게 된 그 시절의 그 사건은 일종의 젓떼기 비슷한 통과의례가 아니었나 싶기는 한데도...
오늘은
고교 선생으로서는 귀하디 귀한 보충을 끝낸 후의, 진정한 방학을 맞이한 날이고, 술꾼 친구가 지금쯤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테니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순간이어선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짓을 하기도 했다. 즉, 차연의 '대청마루에서'라는 구석진 방을 기웃거리기까지 하다가 나의 군불때던 이야기를 읽고는 다시 스르르 그 시절의 어느 한 순간으로 떠밀려가게도 되었다.
...
어느날 갑자기
길다란 방으로 이어진 윗채로 우리 남매가 쫓겨 올라가서 잠을 자야하는 시절이 있었다. 하숙을 치던 그 방이 선생이나 순경 누군가가 전근을 가게되어 비게되자 얼씨구나 싶었던 부모가 이제 머리가 조금 커진 두 넘을 무더기로 그 방으로 쫓아내었던 모양이었다.
하여튼
하루 아침에 안방에서 쫓겨난 우리 둘은 그 방에 들어서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었고, 그 휑뎅그레한 방에 엉덩이를 내려놓을 엄두를 내지를 못해 결국 둘 다 다시 아랫방으로 내려갔는데, 물론 저녁을 먹고나서는 냉큼 다시 쫓겨나가야 했더랬다.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애꿎은 동생에게 화풀이를 해대면서 저 쪽 구석쪽에서 자라고 엉덩이를 차서 나로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냉골에서 자게하고 마련해주는 요위에 몸을 뉘었지만 내 맘이 내 맘이 아니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왜 우리를 쫓아내었을까? 먼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가난한 집구석에서는 싸움이 거칠 날이 없는 법인지라 오늘은 엄마 아빠 둘이서 싸움을 한 번 제대로 하려고 그러까? 그러면 엄마는 진정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아랫채에서 들려올 고함소리며 밥상 부서지는 소리를 하마나 하마나 하면서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끔씩 웃음소리까지 들리기도 하고 이웃집 누군가가 놀러와서 어울리는 소리까지 들려왔었다. 아무튼 싸움이 없을 모양이라는 안심을 위안삼아 그날 밤을 그렇게 넘겼던 것같다.
그런데
우리의 첫날 밤이 그냥 그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책이랑 옷이랑 모두 싸가지고 올라가야하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듯이 이루어졌다. 동생은 몰라도 나는 정말이지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에 온갖 께름칙한 상상을 다 펼치며 복수를 다짐했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야무지게 삐진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을 도시로 나가 살게 되면서 우리 남매는 그때부터 줄기차게 붙어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오빠라는 건 여동생들에게는 너무 버겁고 처음 접하는 가혹한 이성이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준 바가 기억에 없는데, 오빠의 모든 뒷바라지를 도맡아 처리해 주는 것이 여동생들이었는데도 대접은 항상 동네 똥개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었다. 그 시절은 그랬었다.
간혹
욱 하는 성정을 참지 못해 별거 아닌 일에 폭력을 휘둘러 손가락을 꺾어놓기도 했고, 머리통이 터져 옥도정기를 바르게 하기도 하면서 누구에게 이르기만 하면 죽여놓겠다고 엄포로 무마하기도 여사였었고. 그러면 동생은 외진 구석에 가서 벌건 옥도정기 색이 희미해질 때가지 울며 지내면서도 울었다는 표시조차 내지 못했었고...
고교시절에는
자취방 부엌에 붙어있는 골방이 하나 있었는데, 뭐 당연히 자연스럽게 그 방은 동생의 방이 되었고 나는 햇빛 들어오는 제대로된 방을 차지했었다. 지금도 그 방이 얼마큼 작은 지 그 방에 전기불은 들어왔는지, 방은 따스했는지 여름에는 시원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한 번 물어봐야지 하고는 금방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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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고교시절의 그 자취집 부엌방 생각이 났다.....
그때, 동대신동에 살 때 니 방에 연탄불 들어갔더나?
아닐걸..한 식구가 방 두개에 탄불을 떼는 집이 있었을라고..맞아, 이불이 엄청 두꺼웠거든,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별 추운줄은 몰
랐던거 같네..
그러면 찬 방에서 겨울을 지냈다는 말이가?
이불이 두꺼워서 별로 춥다고 느끼진 않았거든, 그리고 부엌 훈기도 있고, 무엇보다 외풍이 없어서 추운 줄은 몰랐지.
내가 그걸 알고 있었나?
아마 몰랐을거라, 그때 오빠는 책하고 레코드판 외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내가 몰랐다고? 내 관심이 조금도 없었다고?
뭐...그랬을거라...
기억하는 모양이다.
다만 말을 하고싶지 않았을 뿐일거다. 철딱서니가 없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가 않았었다. 동생을 냉골에 재우고 나는 따신 방에서 묵고 자고 하면서 고깟 공부나부랭이나 한답시고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동생은 나 때문에 공부도 포기했는데...꼴랑 클래식이니에 빠져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고..?
그때 대학가고 싶지 않았더나?
좀 그런 마음도 있기는 했지만 뭐, 대게들 대학가는 애가 없었으니 나도 그런가부다 했것지..
떼를 썼더라면 보내 주었을까? 아부지가?
아마, 안되었을거라. 하나 학비도 버거워서 온 동네 빚투성이었으니...
아마 이래서
심리학자들 꿈해몽 이야기에서 누이들이 꿈속에서 날아오는 공은 죽어라 쎄게 차게 되는 그런 꿈을 많이 꾸게 되는데 그건 그 공을 오래비의 머리통이라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나 뭐 그러더라고...파릇파릇해야할 그 시절이 온통 시커먼 기억의 녹물 투성이다. 창밖을 보니 벌써 대전이다.
어허..벌써 대전이다.
대게 서울행 기차를 타노라면 동대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서 졸기 마련이고 이제 얼나나 남았는지를 헤아리기만 했었는데...차창밖은 흩날리는 눈발은 보이지 않고 쌓여있는 시커먼 눈더미들이 응달 곳곳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은 가슴을 한 채 웅크리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동동거리는 몸짓에서 밖의 찬기운이 느껴진다. 그랬다는 말이지. 나는 따뜻하게 잘자고 해주는 밥 잘 처먹고 그러면서 아랑페즈 기타 협주곡은 2번이 좋더라는 둥 그런 소리나 지껄이며 말이지...
내 귀가
최고조의 상태였을 때가 그 시절이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하나..? .---▷ 로드리게스 아랑페즈 ..2악장
이건 마치 아이히만이 죽는 순간에 가서도 지가 먼 짓을 했는지 모르는 거와 뭐가 다르까...그러니까 이 아랑페즈는 그 시절의 아이히만이 꿈꾸는 듯한 눈으로 즐겨듣던 그 노래인거지...음악이란 게 이런 것이더라고.
첫댓글 오랫만에
만나는 로드리게스도 좋고...
먼저 나오는 길다란 실루엣 광고도 좋네..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