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주 차 묵가 철학과 겸애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가족이 물에 빠졌을 때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겸애를 따라서 모르는 사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을 구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토론에서 저는 모르는 사람을 구한다는 견해입니다.
먼저 저는 승용 학우님의 말처럼 이러한 상황이 현실에서 적용된다면 과연 가족을 구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저는 비록 모르는 사람을 구한다는 견해이지만 죄책감과 가족의 가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의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반사적으로 가족을 구하려 뛰어들 것 같습니다.
가족을 구한다는 분들의 의견에서처럼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토론의 의미가 묵가 철학의 겸애가 타당한가? 를 판단하기 위해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겸애가 적용되고 있지 않은 사회에서 자라나고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가족을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저 또한 이러한 사회의 일원이기에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겸애가 적용된 사회였다면 어땠을까요? 묵가의 겸애에서는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남의 가족을 내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보편적인 사랑을 주장합니다.
만약 겸애가 적용된 보편적인 사랑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왔다면 모르는 사람과 가족 중 누구를 구하더라도 둘 다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모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토론 중 나온 일권 학우님의 의견처럼 만약 주변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이 모르는 사람을 구하더라도 주변에 있던 사람이 겸애 사상을 근거로 자신의 가족을 대신 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해야 한다던가,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켜만 본다면 법적으로 처벌받는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사회에서 가족을 먼저 구하려 한다거나, 겸애 사회에서 가족이나 모르는 사람 중 구별 없이 구하려 하는 것이 사회에서 정한 법, 약속, 혹은 윤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회에서 위험에 빠진 가족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모르는 사람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겸애가 적용된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과 가족 중 아무나 구하더라도 상관없는 이유는 둘 다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의 사회와 겸애 사회의 차이점은 특정 대상에게만 자신의 사랑을 주는 별애와 모두에게 구별 없이 사랑을 주는 겸애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으로 판단하기 쉬울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먼저이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지금 사회에서 가족을 먼저 구하려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겸애가 적용된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묵가 철학의 겸애 사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기에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겸애가 적용된 사회에서는 가족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을 구하는 것 또한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