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중일 전쟁은 1931년 9월 19일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7년 7월 7일 발발했다.[34] 그러나 1937년 7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으나 이 때 당시 중국 홀로 일본에 맞서 싸우고 있었으며 일본에는 선전 포고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1941년 12월 9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중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35][36]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발발 시기는 일본 제국이 타이, 영국령 말라야와 싱가포르, 홍콩을 침공하고 미군 기지인 진주만과 웨이크 섬, 괌, 필리핀에 공격을 가한 1941년 12월 7일 또는 8일로 보고 있다.[37][38][39]
태평양 전쟁은 연합국이 태국과 추축국인 나치 독일 및 이탈리아 왕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 제국과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미국 공군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 본토 공습, 그리고 1945년 8월 8일 소비에트 연방의 만주 전략공세작전으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을 유도했다. 공식적인 일본의 항복은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의 USS 미주리 (BB-63)에서 진행되었다. 일본군의 패배 이후 일본의 왕[40]은 신이 아닌 인간 취급을 받았다.[41] 전쟁 이후 일본의 지배 하에 있던 한반도와 타이완을 비롯한 식민지들이 독립하였고, 일본이 점령한 중국 대륙의 영토는 중화민국에 반환되었으며, 일본이 점령했던 태평양 지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이 재점령하거나 국제 연합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소련 또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남사할린 지역과 쿠릴 열도를 병합하였다.
===위키백과===
대동아 전쟁
대동아 전쟁(일본어: 大東亜戦争 다이토아센소[*], 영어: Great East Asia War)은 일본 제국과 미국 · 영국 · 네덜란드 · 소련 · 중화민국 등의 연합국과의 사이에 발생한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호칭이다. 이 호칭은 1941년 12월 12일에 도조 내각이 지나사변 (중일전쟁)을 포함하여 대동아 전쟁이라고 각의 결정했다. 패전 후에 연합군 최고사령부 (GHQ)에 의해 전시 용어로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등으로 단어가 바뀌어 사용되었다. GHQ의 지정은 현재는 폐기되었지만, 역사학, 역사 인식 문제 등으로 이 전쟁의 호칭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위키백과===
➡전쟁종료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으로 전쟁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