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국내 언론들은 특이한 肝(간)이식 수술 경우를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세계 첫 2대2 동시 施術(시술)」로 불린 이 수술은 두 명의 기증자로부터 간의 일부를 떼어 내 두 명의 환자에게 동시에 이식한 것이었다. 말기 간경화 환자인 李모씨(54ㆍ여)는 다른 환자인 任모씨(56ㆍ여)의 조카(32)로부터 간을 이식받았고 任씨는 순수 기증자인 朴헌수(51) 목사의 간 일부를 떼어 받은 것이다. 生體이식(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주고 받는 이식)일 때는 가족이나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장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수술에서도 원래 李씨는 가족의 간을 기증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李씨의 가족들은 간염환자들이어서 줄 수가 없었고, 박헌수 목사가 대신 간을 떼어 주기로 한 것이다. 任씨도 자신의 조카의 간을 받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수술은 상호 교차로 이뤄졌다. 이식에는 혈액형이 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도표1 참조> 원래 간 이식 수술은 기증자의 간 일부를 떼어 내서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번에 치러질 수술이 동시에 이뤄졌다. 간 이식 수술이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엄청 복잡한 작업인데 이를 동시에 실행했으니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 간 이식 수술의 1인자인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박사를 비롯 외과의사와 간호사 80여 명이 매달린 대수술이 이뤄졌던 것이다. 1대 1로 주면 되는 것을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 동시에 수술을 한 이유는 뭘까. 바로 인간의 利己心(이기심)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다. 먼저 수술한 환자는 간을 이식받았는데 나중에 수술할 환자에게 간을 기증할 사람이 수술 직전에 거부하면 어떤 상황이 나올 것인가? 장기를 기증하려고 했다가도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격렬한 마음의 동요가 생긴다. 혹시 수술을 잘못해서 죽는 것이 아닐가 하는 공포심, 수술 후 야기될 통증과 傷痕(상흔) 등 모든 것이 마음을 혼란시킨다. 실지로 마음이 변해 수술 직전에 도망간 사례가 적지 않게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간을 나눠 주려고 했던 아들이 수술 직전에 도주한 경우도 있다. 이번 장기 기증에 참여한 박헌수 목사나 任씨 조카가 막판에 도주할 우려가 없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만에 하나 나올지도 모를 「悲劇(비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거대한 수술 작업을 동시에 연출했던 것이다.
장기 수요·공급의 격차가 최대 과제
 장기 이식 수술은 1954년 一卵性(일란성) 쌍둥이 간의 신장 이식이 성공한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1963년 肝, 1966년 췌장, 1967년 심장, 1983년 폐 이식이 각각 성공하면서 예전같으면 죽었을 사람들이 살아남아 生을 이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1969년 최초의 신장 이식이 성공한 이래 1988년 肝, 1992년 췌장과 심장, 1996년 폐 이식이 성공하며 본격적인 臟器 대체 시대를 열었다. 현재 신장, 간장, 폐, 췌장, 심장 등 固型(고형)장기와 각막, 골수, 심장판막, 췌장 도세포, 뼈, 인대, 연골 등 인체의 대부분을 이식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고 그 성공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술비용은 차치하고라도 臟器의 수요와 공급 사이의 엄청난 차이가 가장 큰 장벽이다. 뇌사자나 살아 있는 사람의 臟器는 극히 일부의 사람에게 주어질 뿐이다. 바로 이 점이 臟器 이식의 최대 문제이고 인간의 利他心에 호소하는 이유다. 2000년부터 국내 臟器 이식에 관련된 모든 행정처리는 국립의료원內에 있는 코노스(KONOSㆍ장기이식관리센터)가 관장하고 있다. 코노스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현재 장기 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총 1만1275명이다. 이들 중 5766명은 신장·간 등 고형장기를 이식해야 할 사람들이고, 5509명은 각막·골수 등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고형장기 이식 희망자 중 신장이 4381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간이 1090명, 나머지 200여 명이 췌장, 심장, 폐 이식 희망자들이다. 이 통계치는 우리나라에서 이식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식 수술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수술을 원해도 돈이 없어 아예 포기한 사람도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은 적어도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기는 腦死者(뇌사자)나 살아 있는 사람이 기증한 것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腦死者의 장기 기증은 몇 건 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36건이 있었고 올해는 지난 8월까지 43건에 머물고 있다.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腦死者 수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가족들의 동의가 없어서 또는 처리 절차가 복잡해 해당 병원에서 회피하기 때문에 기증자 수가 별로 없는 것이다.
뇌사자 臟器 기증률은 스페인이 1위 臟器 이식이 가장 보편화돼 있는 스페인은 지난해에 33.7%의 腦死者 장기 기증 비율을 보였고 미국 21.7%, 프랑스 20%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0.8%에 머물러 있다.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로 인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生體이식 수술을 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그나마 한국에선 운영조직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腦死者 처리 수가 갈수록 줄고 있는 실정이다. 1998년 125건, 1999년 162건에 이르던 腦死者 장기 이식은 코노스가 생긴 이후인 2000년 64건, 2001년 52건, 2002년 36건으로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하희선 과장은 국내에서 腦死者 이용 실적이 낮은 데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내에선 아직 腦死者 가족들이 장기 기증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장을 하는 장묘문화 때문에 시신이 멀쩡한 상태이길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도 요즘에는 腦死者 처리를 부담스러워한다. 코노스가 생기기 전에는 腦死者 담당 병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족을 설득하고 그 병원이 이식 수술까지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腦死者 처리를 코노스가 관장하기 때문에 설령 우리 병원에서 腦死者를 신고했다고 하더라도 장기 처리는 별개의 문제라서 적극적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신고 등 행정절차가 까다롭고 가족을 설득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 그냥 臨終(임종)을 맞게 하는 경우가 많다』 生體이식은 모든 장기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심장 같은 것은 살아 있을 때 주려야 줄 방법이 없다. 각막 같은 것은 생존해 있는 동안 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死後(사후)에나 기증이 가능하다. 반면 인간에게 두 개가 있는 신장 같은 장기는 하나를 떼어 줄 수 있다. 간이나 골수는 부분적으로 떼어 주더라도 재생이 가능하다. 生體이식 수술은 지난해에 1612건(신장 725건, 간 406건, 골수 481건)이 이뤄졌고 올해는 8월까지 1084건(신장 506건, 간 272건, 골수 306건)이 실시됐다. 코너스 등록 대기자가 매년 1만 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1할이 약간 넘는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장기 기증에 대한 홍보가 활발해졌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생명나눔 실천회」 등 장기기증운동으로 펼치고 있는 단체도 늘어 한층 분위기가 고조 되고 있다. 1991년 박진탁 목사가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고 창설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腦死하거나 다른 이유로 죽게 됐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람이 30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이 단체는 발족 이후 지난해까지 10여 년간 신장 이식 823회를 비롯 총 1625건의 이식 수술을 주선했다. 한국은 장기 이식 수술에 관한 한 선진국 수준에 접근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술 건수도 많고 성공률도 높은 편이다. 서울아산병원을 비롯 삼성병원, 서울대 병원, 세브란스 병원 등 웬만한 대형 병원들은 대부분 이식 수술을 할 능력을 갖췄다. 이식 수술을 특화시켜 聲價(성가)를 높이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연평균 간 이식 수술을 150여 회 실시하고, 신장 130여 회, 심장 15건 전후, 췌장 5~10회 등 일년에 보통 350건 전후의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輸血의 원칙이 장기 이식에 적용된다
 장기 이식 수술의 일반적 개념과 성공률 등 이식 수술 전반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외과과장인 韓德鍾(한덕종) 박사에게 들어봤다. 韓德鍾 박사는 신장 이식 수술 1300여 회, 췌장 이식 수술 50여 회를 집도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어느 정도의 사람이 장기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나. 『우리나라서 가장 많이 실시되는 게 신장 이식인데 신장이 원래 기능의 10% 이내로 떨어져 신장 투석을 피할 수 없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간도 간경화 말기나 간암 등으로 도저히 기능을 되살릴 방법이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이식 수술을 할 때 결정 기준은 뭔가. 『혈액형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다. 이식 수술이 가능한가는 輸血(수혈)의 원칙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혈액형이 O형인 사람의 장기는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고, O형 환자는 O형 기증자의 것만 받을 수 있다. AB형 환자는 모든 사람의 것을 받을 수 있다. A형 환자는 A형과 O형 기증자의 것을 받을 수 있고, B형 환자는 B형과 O형 기증자 것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신장, 간 등이 워낙 귀하니까 요즘은 혈액형이 틀려도 피를 걸러 내고 특수조작을 해서 이식 수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 이 방법이 많이 실시되고 있는데 성공률이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시행은 가능하다』<도표 2 참조> ―장기 적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이식이 가능한가. 『生體인 경우 대개 적출과 이식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통례다. 腦死者 신장을 이식할 때는 섭씨 4도에서 20시간 정도 지난 후에도 수술이 가능하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반면 심장과 간장은 6시간 이내에 수술을 해야 한다. 신장을 적출할 때는 1~2시간 정도 걸리고 이식 수술은 합병증 등을 고려해 좀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간은 이식 수술 자체가 20시간 넘게 걸린다』 ―예전에는 조직형이 고려사항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민족이라서 그런지 조직형이 상당히 유사한 편이다. 신장의 조직형은 6가지가 있는데 조건에 다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면역억제제가 좋은 것이 나와 혈액형만 맞으면 대개 수술을 하게 된다』
기증자에게 후유증은 없다 ―장기를 이식할 때 환자의 망가진 장기는 모두 떼어 내나. 『간, 폐, 심장 등은 同所性(동소성)인 데 비해 신장이나 췌장은 異所性(이소성)이다. 즉 신장이나 췌장은 원래의 자리에 놓지 않아도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간은 환자의 것을 떼어 내고 원래의 자리에 맞춰 넣어야 한다. 신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의 기존의 신장을 그냥 놔둔다. 대개 기증자의 왼쪽 신장을 떼어 내고 환자의 오른쪽 서해부(골반 있는 부근)에 기증받은 신장을 심어 놓는다』 ―기증자에게 후유증이 없나. 『수술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기증자의 후유증인데 대개 큰 문제는 없다. 신장을 한 개 떼어 주면 남은 한 개의 신장이 조금 커지면서 기능도 향상된다. 대개 두 개의 신장이 있을 때의 80% 수준까지 기능이 늘어난다. 간 이식도 1대 1 수술일 경우 대개 50% 넘게 떼어 주는데 두 달 정도 지나면 원래 크기의 95%까지 커지게 된다』 ―이식받은 환자는 수술 후 어떤 조치를 해야 하나.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장기가 몸에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쓰는데 이것이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면역억제제는 최상의 것이라기보다는 대안일 뿐이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좀더 세련된 약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요즘 돼지의 장기 등 異種 이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데. 『그런 연구가 이뤄지고는 있으나 쉽지 않은 과제다. 거부반응이 심하고 돼지의 단백질이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괜찮은지, 인간에게 동물의 바이러스가 감염됐을 때의 문제 등 해결할 것이 많다』 ―장기 이식 후 시간이 지나면 그 장기가 이식받은 사람의 것으로 변하는가. 『조직은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이용만 할 수 있는 것이지 조직이 이식받은 사람의 것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은 어떤가. 『신장 이식의 경우 수술 자체의 성공률은 거의 99% 이상 된다. 1년 생존율은 97% 정도로 1년을 지켜보면 대개 생존율을 예측할 수 있다. 조직 간 차이점이 클 수록 생존율이 낮아지고 개인적인 편차도 많다. 신장 이식은 평균적으로 5년 생존율이 80%, 10년 생존율이 70%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신장 이식 수술의 성공률은 99% 넘어
 신장은 1년을 기준으로 생존율이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린다. 반면 간은 처음에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신장보다 생존율 하강 곡선이 완만해진다. 간이 면역적으로 유리한 편이다』 ―신장의 경우 투석으로도 생명연장이 가능한데 꼭 이식 수술을 해야 하나. 『신장 투석과 신장 이식은 天壤之差(천양지차)의 효과를 보여 준다. 투석은 인생살이 자체를 힘들게 만든다. 일주일에 2, 3회씩 하루에 4시간을 해야 하니까 직장은 물론 생활 자체가 안 된다. 이식을 하면 생활을 일반인과 동일하게 할 수 있어 생활의 질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간은 극도로 망가졌을 때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한다』 ―이식 수술에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나 『신장 이식 수술은 1000만원 이상, 간 이식 수술은 5000만원 이상이 든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신장의 경우 투석을 할 때 한 번에 5만원 정도 드는 것을 고려하면 1년 반이면 수술비용을 모두 빼고도 남는다. 이식 수술 받은 후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을 해 왔는데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돼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신장 이식 수술받은 사람은 정신세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투석할 당시는 세상이 온통 회색으로 보이지만 수술받은 후에는 아주 쾌청한 날씨라고들 말한다』
환자 가족의 장기 기증이 가장 많다 腦死者의 장기 공급은 별로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불가피한 게 우리의 현실인 이상 이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利他心)」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배를 가르고 신장 한 개나 간의 일부를 내주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술이 실패해서 혹시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심, 나중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후유증, 배를 가로지르는 수술 흔적 등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결심할 수 없는 게 장기 기증이다. 게다가 결혼한 사람이 기증을 결심할 경우 배우자의 동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정작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100명 중 두, 세 사람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장기가 귀한 이상 우선적으로 책임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환자의 부모·자식이나 삼촌·사촌 등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生體이식 중 3분의 2 이상이 이런 가족·혈연관계의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 간에 이식 수술이 이뤄지면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많아 생존율도 높아진다. 그러나 가족·혈연 간에도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놓기 힘든 게 현실이다. 가족 구성원을 잃을 절박한 상황에서도 대부분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길 기대하며 버틴다. 당장 내 몸에 칼 대기 싫은 게 인간의 本性이다. 환자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오면 누군가가 십자가를 메든지 가족 중에 그런 「白騎士(백기사)」도 없으면 환자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선 가족 간의 화목과 위상이 잘 나타난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그동안 수천 건의 이식 수술을 조정해 왔던 하희선씨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 물어봤다. ―기증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가. 『부모들은 자식에게 장기를 내주는 것을 의무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자식은 부모보다 고민을 많이 한다. 부모님께 기증하고 평생을 좋은 관계로 살 것인가 아니면 관계를 끝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조카나 사촌의 장기 기증은 평상시의 친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이어져 온 관계가 중요하다』 ―기증 의사를 밝혔다가 수술을 하려고 할 때 도망가는 사람도 있나. 『많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고는 수술 직전에 도망간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의사가 잘 조절해야 한다. 부모로서 그런 자식을 이해할 것 같지만 生死의 기로에서 절박했던 아버지 환자는 그런 경우 대단히 격분한다. 아들이 간을 조금 떼어 주기만 하면 사는데 안 주니까 죽게 됐다고 생각하면 감정이 대단히 예민해진다. 그럴 때 의사로선 아들이 도망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기능이 잘 맞지 않는다고 얼버무린다. 잘못하면 가족관계가 완전히 깨져 버린다』 이번 취재는 기자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다. 기자의 고교·회사 후배로서 아주 친하게 지내던 金모씨(47)가 장기 이식을 받았던 것이다. 간경화로 고생하던 그는 지난해 말 이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그 이후는 대책 없이 灰色地帶(회색지대)에서 삶을 이어왔다. 그러던 그에게 올해 4월 구세주가 나타났다. 사촌동생이 간 기증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4월 아산병원 이승규 박사의 집도로 간 이식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9월 말 기자는 그의 집 식구들과 서울 삼각지의 차돌배기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이식 수술이 없었다면 어쩌면 이미 冥(명)을 달리 했을지도 모를 그와 다시 한자리에 앉아 外食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기자는 고마움 못지않게 畏敬心(외경심)이 전달돼 왔다.
간 이식으로 再生한 후배 『인간의 삶이란 게 끈질긴 것이구나.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인생살이구나』 기자는 선뜻 간을 내준 사촌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그 궁금증이 이번 취재의 출발점이었다. 기자는 지난 10월3일 경기도 부천의 한 연립주택에서 그를 만났다. 주인공 金敬桓(김경환ㆍ35)씨는 첫 인상에서 「아주 선량한 사람이구나」하는 感(감)이 강하게 전달돼 왔다. ―평소 사촌형과의 관계는 어땠나. 『아버님은 3형제인데 형님네는 첫째고 우리는 막내 집안이다. 제사 때 꼭 만나는 사이지만 열 살 이상 차이가 나서 별로 친하게 지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형님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갖고 있었다』 ―어떤 과정으로 간 기증을 하게 됐나. 『올해 초 아버님 형제분들이 자주 모여 가족회의를 했다. 구체적인 결론이 없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4월 들어서자 급박하다는 말이 나왔다. 형님 혈액형이 O형이라 O형 기증자가 필요한데 마침 우리 집안에서 우리 아버님과 나, 그리고 둘째 삼촌네 아들이 O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간 기증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아버님은 연세가 많고 둘째 삼촌네 아들은 아직 결혼도 안 한 상태라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는 것이 아닌가. 『당장 사람이 죽어 간다는데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내가 말리지 않았나.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2週 이상 설득했으나 「당신은 자신만 생각하지 왜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느냐」면서 좀처럼 동의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본인의 뜻대로 하라」면서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내키지는 않아 했다』 ―간 기증을 결심하고 사촌형을 만나 봤나. 『병원에서 형을 만났을 때 말 없이 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형, 파이팅 하자」고 위로했다』 ―당시 회사에선 어떤 반응을 보였나. 『상사분들은 잘했다고 격려하면서도 일면 우려도 하는 분위기였다. 회사 전체에 알려져서 많은 격려를 받았다』 ―수술 후 후유증은 없었나. 『이번 수술에서 간의 60%를 떼냈다고 들었는데 한 달 만에 조사를 받으니 70% 정도로 커졌고 두 달 후에는 거의 원래 크기가 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수술 부위가 가끔 가렵기는 하지만 다른 이상은 없다』
아내가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보상을 기대했나.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수술 안 하면 당장 죽는다는 것만이 마음 아팠지 계산 같은 것을 해보지 않았다』 ―앞으로 사촌형과 인생살이의 동반자로 살아야 하는데. 『물론 친하게 지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형에게 뭔가를 했다는 부담을 주기는 싫다. 그저 예전처럼 지내면 될 것 같다』 가족이나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장기 이식에 관련된 심리적 요인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김영진 박사(대전 중앙신경정신과의원)는 이렇게 말한다. 『동양권에선 부모는 자식이 위급해서 콩팥이나 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마 90% 이상이 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에 줄 때는 망설임이 있다. 「내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하는데 장기 하나를 떼어 주고 나서 하나 남은 것으로 살아갈 수 있나」 하는 걱정도 들고 「아버지가 나한데 해준 것이 뭔데」 등 개인적인 감정도 작용할 것이다. 이런 고민과정에서 첫 번째 방해자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여성은 나이가 들면 남편보다 자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부부간에 기증해야 할 때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아내가 주는 경우가 남편이 주는 경우보다 많다. 母性본능이 있는 여성이 희생적인 일에 강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선 부부간의 親疎(친소)관계가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형제간이나 사촌 간에 이식을 해야 할 때는 더 복잡해진다. 형제간, 부모자식 간의 모든 관계가 얽혀 해결책이 쉽지 않다. 의리상 하긴 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혈연 간에 장기를 주는 것도 물론 至高(지고)한 행위다. 그러나 이들 간에는 순수한 마음보다는 가족의 지속성, 통합성을 고려한 평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本人은 간·신장, 아내는 신장을 기증한 金根默씨 가족이나 혈연 간에도 장기 기증은 쉽지 않다. 이식 수술 대상이 통계상으로 1만명이 넘지만 한 해에 1000여 명만 이식 수술을 받는 것만 봐도 가족도 대개 無대책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人間事는 묘하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선뜻 자신의 장기를 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序頭(서두)에 밝힌 「2대 2 시술」에서도 박헌수 목사의 조건 없는 장기 기증으로 두 가족이 연결되며 두 명이 새 삶을 얻게 됐다. 순수 기증자로 불리는 이들은 우리나라 장기 이식 수술에서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가 그동안 신장 이식에서 순수 기증자 것을 주선한 경우는 484건이다. 여기에 간 이식과 다른 단체의 경우를 포함하면 아마도 수천 명이 이들 순수 기증자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 간의 장기 이식이 책임과 계산에 의한 것이라면 순수 기증자의 행위는 「利他心」 그 자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生體이식은 신장, 간, 골수 등 몇 개 장기에 국한돼 있다. 신장과 간은 혈액형만 맞으면 수술을 할 수 있지만 골수는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순수 기증자는 신장과 간을 기증한 사람들이다. 장기 중 하나를 기증하는 것도 대단한데 순수 기증자 중에 신장과 간을 모두 기증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기자는 놀랐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된 신장·간 기증자는 모두 12명이었다. 기자가 이번 취재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관찰한 것도 이들 신장·간 동시 기증자들이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렇게 하고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가 등 그들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했다. 이번에 만난 4명의 동시 기증자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중 金根默(54·양로원장)씨는 더 눈길을 끌었다. 그 자신이 신장과 간을 내줬을 뿐 아니라 부인 李敬姬(이경희·52)씨 역시 신장 기증자였던 것이다. 월남전에 백마부대원으로 참전했던 그는 고엽제의 후유증 때문인지 요즘 하반신이 성치않다. 엉덩이가 따갑고 다리가 저려 쪼그려 앉아야 하고 운전할 때도 왼쪽발을 운전대 위에 올려 놓아야 할 정도다. 30여 년간 경기도 교육청에 근무하다 물러난 金씨는 3년 전부터 화성시 정남면 오일리에 성신양로원을 차려놓고 현재 13명의 무의탁 노인들의 수발을 들고 있다. ―양로원은 왜 운영하는가. 『어릴 때부터 거지를 보면 단돈 10원이라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넉넉지는 못한 살림이지만 그래도 불쌍한 무의탁 노인들을 돕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던 많은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신장 기증을 왜 했는가. 『나는 원래 헌혈을 많이 해 왔다. 그동안 160여 회 한 것 같다. 월남전 때 나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전투에 같이 나갔던 동료들이 죽고 부상당한 것을 수없이 봤다. 그때 헌혈은 당연히 하는 것이었고 그 버릇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나중에 신장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럼 주자」는 결심이 섰다. 한 개 있어도 잘 살 수 있다는데 두 개가 있는 것은 사치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도 다음해에 신장을 기증했는데. 『집사람은 좀 대범한 데가 있다. 내가 신장 수술할 때도 「그래 당신 거 주겠다는데 내가 말릴 이유가 없다」면서 동의했다. 내가 수술한 후 별 이상이 없자 아내에게 「당신도 해보지」 그랬더니 순순히 응하더라』 ―올해 간 기증은 왜 하게 됐나. 『그것 역시 떼 줘도 별 문제가 없다기에 조건 없이 했다』 ―이식받은 사람들을 아는가. 『신장은 40代의 증권회사원이, 간은 34세의 주부가 받았다. 간 이식 수술받은 주부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 친척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을 했다고 전해들었다. 내가 미리 알았으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간을 줬으면 됐지 돈까지 줄 필요가 있나. 『내가 돈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돕는 사람이 많으니 그들과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지금 몸상태가 괜찮나. 『이식의 후유증은 없는데 월남전 때 여파로 고엽제로 인한 신경장애가 오는 것 같다』 ―양로원은 계속 할 것인가. 『내 능력이 될 때까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양로원을 자식들에게 넘기진 않겠다. 죽을 때는 복지재단에 기증할 예정이다』 그와의 대화에선 無所有(무소유)의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거리낌도 가식도 없었다. 계산도 별로 없이 그저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 준다는 간단한 논리다.
환갑이 넘어 간 기증을 한 邊吉子씨 邊吉子(변길자ㆍ61ㆍ자원봉사자)씨는 신장·간 동시 기증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여성이 환갑을 넘어선 나이에 장기 기증을 한 것은 邊씨가 유일하다고 한다. 邊씨는 지난 8월27일 간 이식 수술을 했는데 한 달이 갓 지난 10월1일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로 나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경찰관이었던 남편과 지난해 死別했다. 邊씨는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꼿꼿함이 공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수술받은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돌아다녀도 되나. 『현재 腹帶(복대)를 하고 있어 힘든 일은 못 하지만 그냥 앉아서 상담하는 일은 할 만하다』 ―전도사를 했다는데. 『마흔이 넘어서면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 전도사로 10여 년간 일하다가 지난 3월 정년퇴임했다』 ―평소 건강한가. 『나는 弱骨(약골)에 속한다. 평소 잔병치레가 많았고 20여 년 전에는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도 받았다』 ―그런 몸이면서 어떻게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가. 『1993년에 아는 집사님이 신장 기증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장기를 기증할 때는 몸상태가 괜찮았다』 ―신장 이식할 때 남편이 말리지 않았나. 『물론 엄청 말렸다. 남편은 일단 동의는 했는데 수술 직전에 의사의 주의사항을 듣고는 놀라서 「수술은 안 된다」며 마지막 동의를 거부하고 도망갈 정도였다. 그때 온 식구가 나서서 남편을 간신히 찾아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간 이식할 때는 본인의 판단으로만 했는가. 『자원봉사차 아산병원에 들렀다가 신장기증자도 간을 기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간도 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엔 아들이 나의 보호자였는데 그 애가 말리다가 동의해 줬다. 더 늙어 臟器를 아예 못쓰게 되기 전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식받은 대상은 아는가. 『간 이식 대상은 잘 모르겠고 신장 이식은 열세 살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 엄마도 신부전증 환자였는데 그 엄마는 「자식만 살리면 되지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엄마는 요즘도 신장 투석으로 연명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간 기증 의사를 밝혀 아내의 반대를 막은 表世哲 목사 表世哲(표세철·41)씨는 서울 노원구 공릉1동에 있는 주양교회 목사다. 이 교회를 이끌던 형님이 지난해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자신이 교회를 맡게 됐다는 表목사는 해병대 출신이다. 表목사 역시 헌혈의 大家다. 이미 250여 회를 했다. 현재 장기 기증자들의 모임인 새생명나눔회의 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表목사는 자신의 수술 부위를 보여 줬다. 갈비뼈 아래에는 간 기증 때 새겨진 커다란 「ㅗ」字가, 왼쪽 아래 부분에는 신장을 떼어낼 때의 一자형 수술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생명을 구해 낸 영광의 칼자국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기 기증변을 이렇게 말한다. 『1991년 박진탁 목사가 신장을 기증하고 장기기증운동에 나섰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도 목사였고 신학공부를 한 나로선 「이게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데 내 몸을 단련해서 뛰어 들어가면 이미 늦는다. 그럴 때는 무턱대고라도 뛰어 들어가야 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表목사의 신장을 받은 사람은 부산에 사는 여고생이었다. 『그 여고생 어머니는 자신의 것을 내주려고 했지만 혈액형이 맞지 않았다. 나의 신장 기증으로 그 여학생이 살아나자 여학생 어머니도 신장 기증을 하겠다고 나섰다. 주변에선 괜찮다고 말렸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살을 째는 고통을 겪으면서 내 딸을 살려 줬는데 내가 그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저 애가 내 딸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고집했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그때 신장을 받은 여고생은 이제 결혼을 해서 울산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 表목사의 1차적인 기증이 2차 기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신장 기증 때는 아내와 갈등 속에 간신히 동의를 얻어 냈지만 간 기증 때는 아내와 상의 없이 기도시간에 교인들에게 기증 의사를 공표해 버려 아내가 반대할 여지를 없애는 작전을 폈다고 한다.
헌혈 국내 기네스 기록자인 孫洪植씨 孫洪植(손홍식ㆍ54)씨는 현재 통계청 전남통계사무소 보성사무소장으로 근무중인 공무원. 그는 165cm의 단신이지만 78kg이나 되는 張飛型(장비형) 스타일이다. 孫씨는 대한민국의 공인된 기네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헌혈 413회. 매달 두 번 정도 헌혈을 하는 셈이다. 그와 인터뷰할 때는 부인 朴壽子(52)씨도 동석했다. ―왜 장기를 두 번씩이나 기증했나. 『헌혈을 20여 년 전부터 했는데 헌혈은 피의 이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장도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신앙은 없지만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간 기증을 할 때는 내가 더 늙기 전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부인에게) 왜 말리지 않았나. 『이 양반은 말려야 소용없다. 나도 계속 말렸지만 고집에 지고 말았다. 간 기증할 때는 자신의 간에 큰 병이 들었다고 해서 놀랐는데 나중에 「간 기증을 하려고 한다」고 하기에 오히려 안심이 됐을 정도다』 ―(다시 孫씨에게)장기 기증 행위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기증자들의 행위는 단지 선언적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본다. 어차피 다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자그마한 행위에 사회가 반응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기증에 나서게 된다면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기증받은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는가. 『신장을 준 사람은 30代 회사원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다. 내 간을 받은 사람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나의 관심은 그들이 잘 살고 있느냐는 것이지 감사의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주관이 뚜렷하고 헌혈이 많은 게 공통점 간과 신장을 모두 내준 네 명의 기증자를 인터뷰하면서 기자는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다는 것이었다. 착하게 생겼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야무진 면모들을 언뜻언뜻 느낄 수 있었다. 식구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기 기증을 관철시킬 때는 의지가 굳지 않으면 안 된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모두 헌혈에 적극적이란 사실이었다. 평소 「준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체질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수백 회에 걸쳐 남을 위해 피를 뽑는 그들의 행동은 진짜 연구대상이다. 그들은 오히려 더 이상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과 받은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생명의 恩人(은인)」으로 평생 좋은 관계가 이어질 것 같지만 의외로 관계는 담담하다. 순수 기증자의 경우 기증자와 받은 사람을 서로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 통례다. 기증자가 혹시나 마음이 변해 금품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조치다. 그러나 대부분은 수술 전후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장기를 준 사람, 그리고 받은 사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경우 장기를 받은 당사자나 보호자는 당연히 감사를 표현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장기를 받은 사람은 마음의 부담이 커서 기증자를 보기가 민망하고 그러면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는 것이다. 기증자는 자신의 장기가 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당연히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가끔 전화로라도 건강하게 잘 있다는 전화를 받을 때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은 환자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됐을 때는 기증의 보람을 진짜 실감한다. 表世哲 목사의 말이다. 『내가 간 기증을 한 게 지난 해 10월인데 얼마 전에 당시 간을 받은 31세 여성이 전화를 해 왔다. 덕분에 살아나게 돼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얼마 전부터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은 첫 월급으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사서 보냈다고 했다. 그때 오히려 내 눈에서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순수 기증자들의 정신세계는 일반인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꽤 있다. 表世哲 목사나 전도사를 지낸 邊吉子씨 처럼 종교적 열정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지만 나머지 인사들은 종교가 없거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학벌이 뛰어난 것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高卒이 많고 집안형편도 중간 수준 남짓이다. 그럼에도 의외로 「마음의 곳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장기 기증 행위는 인격발달상 최고단계 기자는 그들이 보이는 행위의 잠재적 동기가 뭔지 열심히 관찰해 보았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利他心의 출발점은 분명 잠재 의식 속에 배어 있다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었다. 사촌형에게 간을 내준 金敬桓씨는 큰아들이 정신지체아다. 邊吉子씨는 결혼 생활이 쉽지 않았음을 넌지시 비쳐 보였다. 表世哲 목사는 간경화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悔恨(회한)이 있었고 孫洪植씨는 시골서 못 먹고 헐벗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강했다. 金根默씨 역시 예전 시골 어린이의 전형이면서 월남전 때 주변에서 죽어 가던 전우에 대한 기억이 배어 있었다. 인간은 절실한 恨을 갖고 있을 때 파괴적 행위로 그것을 분출할 수도 있지만 이들처럼 利他心으로 극복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나름대로의 생각도 해보게 됐다. 이런 순수 기증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김영진 박사에게 물어봤다. ―순수 기증자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가족이나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순수하게 자신의 장기를 주는 사람의 경우 인격발달상 최고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사랑을 주고 보상을 받지 않는 경우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지고하고 성숙한 인격발달 단계다. 그런 사람은 줌으로써 기쁨을 얻는 것인데 세속적인 사람으로선 그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받지 않고 준다는 것만으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나.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지금도 인도 캘커타에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던 수용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러운 사람의 몸에서 고름을 짜 주고 먹여 주고 닦아 주는 모습에서 참 행복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행복은 내면적 만족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장기 기증과 自虐的(자학적) 행위의 차이가 뭔가. 『自虐은 정신병이라 차라리 自害(자해)를 하지 남을 위해 장기를 내주지는 않는다. 자학증세를 가진 사람이나 자살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몸을 막 굴릴 것 같지만 평소에는 자신의 몸을 대단히 아낀다』 ―조건 없이 자신의 장기를 내주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은 어떤 것인가. 『우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 것이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기를 내줄 때는 보통 고집이 아니면 감행할 수 없다. 정의감이 강하지 않으면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장기 기증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뭔가 다른 행동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회운동을 하든지 월급을 탈탈 털어서 장학금을 내놓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사회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받기만 하려고 하지 주지 않으려는 사회풍토에 대한 저항을 몸으로 할 가능성도 있다』 장기 이식 수술에 관한 문제는 공급을 어떻게 늘리고 또 한정된 공급을 어떻게 공평하게 배분하느냐는 것으로 귀착된다. 공급을 늘리는 문제는 쉽지 않다. 개인의 善意(선의)에만 의존해서는 턱도 없이 부족하기에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우선 과제가 腦死者 활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다 사회지도층이 장기 공급자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당장으로선 분배를 어떻게 공평하게 하느냐가 급선무다. 이식 대상자는 모두가 죽을 병에 걸린 사람들인데 그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현재 장기마다 분배의 기준이 법률로 정해져 있다. 신장의 경우 혈액형, 대기 기간, 장기기증 경험 등이 고려사항으로 이를 점수화해서 순서를 정한다. 돈은 있는데 장기가 없어 고민하는 일부 환자들은 장기매매에 매달린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장기매매는 모두 불법이다. 장기매매를 인정할 경우 살인, 인신매매가 횡행해 사회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뉴스에 신장을 수천만원에 판 사람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들은 장기매매를 합법화하기 위해 환자와의 혈연관계를 조작하는 수법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포기하고 중국 같은 나라에 가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2000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미비점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그나마 장기 이식에 관한 「기본 룰」을 짜 놓았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사실 그 이전에는 효율이란 이름으로 「强者의 논리」가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힘내세요, 李박사님』 기자는 이번 취재를 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간 이식의 최고 권위자인 이승규 박사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신장 이식 전문가인 韓德鍾 박사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연구실에서 나오다가 자신의 연구실로 가던 그와 복도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그러나 물어 볼 것이 많았던 기자는 그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수술이 막 끝나 수술복을 입을 채 연구실로 들어가려는 그의 얼굴에는 한없는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긴장 속에 20시간이 넘는 힘들고도 긴 수술과정을 거친 그로선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라는 感이 저절로 전달돼 왔다. 연간 100회가 넘는 간 이식 수술을 주도하는 그의 손길이 있기에 숱한 생명, 그리고 나의 후배도 再生됐다는 점을 되살리며 그의 존재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시골 농군 같은 투박한 얼굴이지만…. 연구실로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마디가 저절로 나왔다. 『힘내세요, 李박사님』●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공부하는 엄마" 고생 하셨습니다. 좋은 자료 담아갑니다.
감동이군요. 어떻게 이럴수있을까. 그러다가도 최근 아이 일로 아주 가까운 분들과의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봉착하는 설움이 북받쳐 또 눈물이 나기도 하구요. 말이 좀 이상한가요....암튼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바뿐 생횔 속에서도 좋은글 올려서 정말 고마워요 나의 하루일과중에 재일 즐거운운 시간이 일하고와서 컴보는시간이거든 매일 좋은글 잘읽고 있고있씁나.....
감동적이고.언제나처럼 부러운이야기..
작년 이맘때 일이 생각나네요. 무척이나 힘들긴 했지만 이 글을 보면서 위로가되고, 많은걸 느끼게하네요. 좋은자료 감사드려요.
영웅이 따로 없지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잘 읽었습니다^^
정말 영웅들 이야기 입니다 백마디의 교훈 보다 몸으로 실천 한 것이기에 영웅 이십니다
좋은정보 잘 보았습니다. 공부하는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전에 메일도 보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삶을 봅니다
저를 돌아보며 뉘우치는군요
사람많이 행할수있는
가슴 뭉클한 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