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대천리大川里 유래
영해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골짜기도 많지만 들도 상당하여 논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흔히 이 지역에서는 한내라 부른다.
한내라 함은 큰 냇물이라는 뜻인데 마을 앞에 큰내가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다.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선당동, 문양동, 고월동, 옥산동의 일부를 떼다가 합하여 대천동이라고 부르게 된다.
[마을의 특징]
널리 알려진 이 마을의 상징으로는 비파다소(비파담)와 그 곳에 세워진 삼구정을 들 수 있다. 여기 비파다소(비파담)는 한내 서쪽에 있는 소로서 옛날 한 미인이 이곳에서 비파를 타다가 빠져 죽었으므로 생겨난 이름이라 전해 온다.
삼구정은 문월당 오극성 선생이 세운 정자로 소 아래에는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셋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함양 오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특히 옥산 마을은 조국광복운동을 한 추수 엄순봉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선생은 김좌진 장군을 도와서 조국의 광복운동을 하였으며 조선인 아나키스트연맹에 가입하였다. 만주에 있는 교포들을 모아 한족총연합회를 만들기도 하는 등 민족주의와 독립사상을 불러 이르켰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고드랫골ㆍ고달골ㆍ고월
지형이 반월 모양이고 달맞이나 소원 성취를 이 자리에서 빌었다고 한다.(오원일(80) 제보)
고월은 고드랫골을 한자로 뒤쳐 적은 것이다. 말의 짜임으로 볼때 곧에 달이 붙어 이루어진 꼴로 보인다. 그러니까 곧 혹은 곶은 툭 튀어 나온 물체를 이른 것이요. 달은 높은 지역을 이르니 고달은 높게 툭 튀어 나온 곳이 아닌가 한다. 하긴 반달의 모양이 양쪽으로 칼처럼 삐죽하게 솟아 나온 것으로 보아 고달과 상당한 의미의 걸림이 있는 걸로 보인다. 옛글을 보면 직곡, 다시 이르자면 곧은 골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
*문양
남루한 의복의 선비 한 사람이 이 곳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 자고 가려고 주위를 둘러 보아도 집은 한 채밖에 없었다. 그 집으로 가까이 가 본즉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주인 몰래 부엌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새벽녘에 주인이 나가 본즉 자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부끄럽게 여기고 방으로 모셨다는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 나그네는 암행어사였다고 전하고 이 문양 앞을 주머이골이라 한다.(신상옥(72) 제보)
땅 이름의 분포로 보아서 '문'은 거의가 물 곧 냇물과 걸림을 드러내는 일이 많이 있다. 이를 받아 들인다면 내의 북쪽에 자리한 마을이란 뜻이 된다.
*주머이골
주머이골과 관련하여 볼라치면 마을의 자리가 주머니처럼 움푹 들어 간 모습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 '문'은 우리말인데 이를 한자의 소리가 비슷하다고 하여 문으로 적어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선댕이ㆍ선당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간 곳이라고 하여 선당이라고 하며 문양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오승목(92) 제보)
옥산마을 북쪽 산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되었다. 신선이 구슬을 가지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간 산이라고 하여 옥산이라 불렀다. 마을 입구에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옥선대라 한다.(오승석(74) 제보)
김좌진 장군을 도와 조국광복 운동을 한 추수 엄순봉(1903 ~ 1938)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장숫골
산의 모습이 둥우리처럼 생겨 아늑하고 골이 깊어 식수가 좋아 옛날부터 이 곳을 사람들이 장수하는 마을이라 한다.(오원일(80) 제보)
산의 모습이 둥우리처럼 생겼으니 아늑할 것이요. 골이 깊으니 물또한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마침내 농사가 잘되고 사람들은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 골이 깊으면 물길이 길다. 우리 나라의 땅 이름을 보면 길 장자와 물수자가 들어가 불리우는 경우가 많다. 하면 여기서도 물수자 장곡이 본래의 이름이 아닌가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우리가 민족의 계통으로 보아 길리약 겨레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머리 글자 길을 따서 마을의 이름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한내ㆍ대천
동리 앞으로 큰내가 흐르기 때문에 한내라 하는데 조선 인조조 함양 오씨 용계공 오흡 선생이 이 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한 뒤 가뭄이 십 년간 계속되어 강이 말랐으므로 한천이라고 부른다.(오창본(81) 제보)
큰내가 흐르기 때문에 한내라 하였으니 이를 한자로 뒤치면 대천이 된다. 같은 소리가 나는 한자를 써서 가물 한 자를 쓰기도 함을 보면 이 지역의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황곡
평해 황씨가 부유하게 살아서 황씨 성을 따서 황곡이라 하다가 황씨가 떠난 후에는 황곡이라 했다.(임석암(75) 제보)
자연부락의 이름에 황골 혹은 항골이 많이 쓰임을 고려하면 황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단적으로 깊고 큰 골이라는 뜻으로 쓴 한골의 한자 뒤치기에서 그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영양군지, 영양군청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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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읍 대천리의 유래를 영양 사투리로 소개합니다.
(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01, 177) 영양읍 대천리(大川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길맥, 끄태메기, 가마이, 정재, 주메이, 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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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리(大川里)는
영양읍 소재지서 영해가는 길맥이에 있꼬.
1600년경 함양오씨(咸陽吳氏)들이
마실을 맹근 집성촌이시더.
마실 앞에(대천2리 옥산)는
무창서 발원한 쬐메한 그랑캉
일월산서 발원한 그랑(반변천)이 엄체져.
더 큰 그랑(반변천)이 되가꼬 흐른다꼬
한내(大川)라 카니더.
2017년에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등
멸종위기종의 증식복원을 위한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맹글어져가
증식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시더.
대천(大川)은 한내를 한자로 쓴거시더.
(한내ㆍ대천)
대천리 중심지 마실로.
무창에서 발원한 그랑이 마실 앞을
흐르는데 평시에는 바짝 말라가 있따꼬
한천(旱川)이라꼬 한내가 카다.
대천 서쪼구 끄트메기에
큰 그랑(반변천)이 흐른다꼬 한내(大川)
라 카기 시작 했니더.
함양오씨(咸陽吳氏) 집성촌이고
대천(大川)은 한내를 한자로 쓴거시더.
(고드랫골ㆍ고달골ㆍ고월)
지형이 반달 가꺼러 생겼따꼬
고드랫꼴(古月)아라꼬 카니더.
마실 양짝 끄태매기는 칼 끄티 가꺼러
삐쭉 솟사 있어가
달맞이캉 소원 성취를 빌었떤데시더.
고월(古月)은 고드랫골을 한자로 쓴거고
높따라케 툭 튀 나온데를 말하니더.
2017년에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등
멸종위기종의 증식복원을 위한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맹글어져가
증식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시더.
(문양ㆍ주메이꼴)
물가세 있는 볕이 디게 잘드는 데라꼬
문양(汶陽)이라꼬 켔따 카기도 하고.
암행어사가 여기를 지날때
잠을 잘 때가 없어가꼬 주인 몰래
가마이 정재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주인이 알고 방에 모셨는 데라꼬
문양(汶陽)이라꼬 카기도 하니더.
글코, 마실 앞에는 주메이 가꺼러
움푹 폐여 있따꼬
주메이꼴 이라꼬도 카니더.
(선댕이ㆍ선당)
문양 남동쪼구에 있는 마실로
아름다운 쏘가 있어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 와가꼬 놀다
간 곳이라꼬
선당(仙塘)이라 카니더.
(옥산)
대천2리 중심지 마실로
신선이 구슬을 갖꼬 놀다 하늘로 올라간
산이라꼬 옥산(玉山)이라꼬 카니더.
이 산(옥산)은 마실 북쪼구에 있꼬
산 이름이 마실이름이 된니더.
(장숫골)
산의 모습이 둥지가꺼러 생겨가
디게 아늑한 꼴짜기고.
골이 질따 해가꼬 식수가 디게 좋꼬
사람들이 오래 사는데라 케가
장숫골(長壽谷) 이라 카니더.
(황곡ㆍ황골)
평해황씨가 모데가 부유하게 사는데라꼬
황씨성을 따가 황곡(黃谷)이라
카기도하고 질따란 큰 골이라꼬
황골(篁谷)이라 카기도 하니더.
*글: 영양사투리보존회 회장 오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