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 나무는 1911년에 일제 초대 총통 데리우치 마사타게(寺內正毅) 때 경인철로 주변과 육군본부(오늘날 전쟁기념관) 자리에 심어 오늘날 우리나라에 20여 종류가 자라고 있다.
첫째, 나무 이름부터 틀리게 도입했다. 최초에는 아카시아 나무라 불렀으나, 알고 보니 아카시아 나무는 아카시 屬(속)의 열대지방에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아까시아 나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을 찾기 위해 산림청에서 아카시 屬(속)의 20여개 나무를 아까시 나무로 부르도록 해야 했다.
둘째, 도입 때부터 말이 많았다. 일제가 한국의 소나무를 죽이기 위해 전국 각지에 심었다고 소문이 퍼졌다.
해방 이후와 6,15전쟁으로 황폐 된 국토를 가장 빨리 복구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아카시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군이 중심이 되어 일제 잔재인 아까시 나무를 무조건 파버리도록 지시가 내렸다. 이때 군인들은 아까시 나무를 파내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토질에서 아카시 나무 이상으로 좋은 수종은 찾아볼 수 없다고 식물 학자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