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경기도 군포를 떠나 장수에 평생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따로 살고 있던 어머니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아무래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늘 언젠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시골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도 작용했습니다.
처음에 귀농지로 떠올린 곳은 어머니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가까운 부여였습니다. 홍성은 도청이 옮겨오는 바람에 땅값이 엄청 폭등해서 아예 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충남에서 그중 땅값이 싼 곳이 부여더군요.
한데 집사람이 자기 친구가 친정인 장수군 계남면 집에 잠시 쉬러 가는데 이 기회에 한번 같이 가서 장수에 빈집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래 아내 친구를 따라 장수에 갔죠.
예전부터 제 심상 속에 떠오른 장수는 덕유산 산자락 근방에 있는 오지였습니다. 제가 원래 인적 드문 곳을 좋아하는 편이고 산을 좋아해서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은근히 가슴이 설렜습니다.
한데 막상 가서 보니 장수는 그리 오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보다 더 오지라 할 수 있는 봉화군 동면 산 속에서도 2년을 보낸 적이 있거든요.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지역 전체가 비교적 고도가 높아서 기후가 냉량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한여름이라 거기도 덥긴 했지만 밤에는 서늘한 냉기가 슬며시 스며들기도 하더군요.
저는 원래 귀농을 하면 젖을 얻기 위해 산양 몇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산양을 키울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심장사상충을 전염시키는 모기라는 정보를 갖고 있었기에 앞으로 귀농을 하면 가급적 산양이 살기 적합한 5-6백미터 고지에 살았으면 했거든요.
산양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공장식 축산에 관한 여러 뉴스를 보고 나서부터 고기 먹기가 싫어져서였고, 채식을 할 때 부족해지는 동물성 단백질은 산양젖과 달걀로 보충하면 되겠다는 깜찍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튼 장수에 가서 보니 주위 산세가 수려하고, 어딜가든 맑은 계류가 흘러 여름철에 따로 피서를 갈 필요가 없겠더군요. 삼박사일 동안 장수에 가서 집을 구하기 위해 그 일대를 몇번 오가다 보니 처음에는 낯설어보이던 곳이 금방 친숙해지고 넓어 보이던 땅도 훨씬 더 좁아진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처음 들른 곳은 장수 읍내의 부동산 소개소들이었는데 거기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못들었습니다. 처음 귀농하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찾는다는 텃밭 딸린 2-300평 짜리 집은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실망스러운 기분을 안고서 아내 친구의 조언에 따라 장수군 농업기술센터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남성직원의 친절한 귀농안내 설명을 듣고 조금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잘 하면 적당한 빈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데 문제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전세집의 계약 만료기한이 촉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시월 초에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터라 싼 밭을 사서 농지전용을 하고 집을 지을 수도 없고, 허름한 빈 집을 사서 수리해서 들어가기도 힘든 입장이었습니다. 가급적 상태가 좋은 집을 얻어서 이주를 해야만 했죠.
우리는 농업기술센터 직원의 설명을 들은 뒤 귀농귀촌협의회 회장이라는 분을 소개받았는데 그분은 내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젊어보였습니다. 내가 농담반 진담반 섞어서 말한대로 꽃미남 청년같았습니다. 조회장이 산서면에서 1만평 이상의 논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우리는 은근히 놀라고 감탄했습니다. 젊은 분이 대단히 능력이 있고 추진력이 있구나, 하고.
조회장은 낯선 지역에 처음 발을 디딘 우리 부부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주고 이번 일요일(19일)에 협의회 땅에 배추를 심는 행사가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한번 참여해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여러가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원래 우리는 장수에 1박 2일 정도만 있으려고 했는데 조회장의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일정이 3박 4일로 불어났습니다.
배추를 심던 날 우리 부부는 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 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분 가까운 귀농인들을 만났는데 모든 분이 반갑게 맞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낯선 땅에 떨어지면 모든 게 다 서먹하게 마련인데 그분들이 처음 만난 사이였음에도 하나같이 도움을 주려 하셔서 우리는 금방 서먹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냥 정겹고 친숙한 한 마을 분들 같다고나 할까. 거기서 젊고 소탈하고 친숙해뵈는 사무국장님(맞나?)도 처음 만났죠.
배추를 심는 일은 힘겨운 노역이 아니라 작은 축제마당 같더군요. 개인 땅이 아니라 협의회의 공유지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이루어지는 행사라 그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삼백평 정도의 긴 땅인데 그곳에 배추를 심는 작업은 기껏해야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가량? 중간에 비가 내려 작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좀 길어졌지만 참여자가 많아 순수 노동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따라서 힘도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회장님과 사무차장님이 막걸리와 맥주, 먹을거리도 준비해와서 정말로 축제나 놀이마당 같더군요. 겸해서 조직화와 인화가 참 잘된 협의회라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거기서 우리 부부는 여러 분들에게서 귀농, 귀촌에 도움이 되는 많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 행사에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 싶더군요. 웬만한 집만 구하면 그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고. 때마침 이 정로님이 쓸 만한 슬라브 집이 임대로 나온 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반쯤은 집이 구해진 것 같은 기분에 희망이 크게 부풀어올랐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이 정로 님의 무쏘 차 뒤를 따라 슬라브 집이 있다는 동네로 한참 따라갔습니다. 마침 그 동네는 홍승규님이 사시는 동네이기도 해서 홍승규님도 뒤따라왔습니다. 한데 그 집은 내 예상과는 달리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에는 상당히 부적합해보였습니다. 우리 부부만 산다면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니처럼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을 모시고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임대할 집이라 돈을 들여서 고치기도 힘들고. 그 바람에 저는 적지아니 낙망을 했지요.
애써 시간을 내주신 이정로님과 홍승규님께는 미안했지만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 이정로님은 댁으로 가시고 우리는 홍승규님이 사과밭을 구경시켜주시겠다고 해서 그분을 따라 근처의 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참 튼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과밭이더군요. 그분은 그 사과밭을 조성하기 위해 몇 년간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았더군요. 그 밭을 보면서 우리는 귀농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장애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일인지를 새삼 다시 배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처음 귀농할 때는 백면서생이었다고 했는데 저 자신이 전형적인 백면서생인지라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극작(희곡)가 출신에 요즘은 영문번역이 주업인 사람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20일 장수를 떠나 애초에 내가 점찍어뒀던 부여로 가서 어느 부동산소개소에 가서 그날로 네 채의 집을 보고 그 중의 한 채를 가계약했습니다. 돈도 별로 없는 사람이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집을 구한다는 것은 과욕인지라 수리를 거의 하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320평 대지의 싼 집이 있기에 그리 했습니다. 그리고 닷새뒤에 정식 계약을 했구요.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여군 남면에서 새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든 정붙이고 살면 다 거기가 고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그곳에서도 우리는 잘 정착할 겁니다.
애초에는 장수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결국은 인연이 안 닿아 부여에 정착하게 되면서 잠시 잠깐이지만 배추심던 날 만났던 여러 정겨웠던 얼굴들이 계속 마음에 남아 이렇게 회원 가입하고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젊으면서도 리더십이 있어 보이는 꽃미남 조성근 회장님과 소탈하고 무던해뵈는 사무국장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자신의 민박집에 얼마간 묵어도 좋다는, 감사한 제안을 해주신 라종권님, 우리 부부가 장수에 정착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주신 박재관님, 셋집을 알아봐주기 위해 부러 먼 길을 가주신 이정로님, 사과밭을 직접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신 홍승규님, 그리고 함께 배추를 심으며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신 여러 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합니다.
비록 우리 부부는 그곳에 연이 닿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대도시의 팍팍한 삶에 지쳐 전원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 살기 위해 그곳을 찾아온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따듯하게 대해주신다면 장수는 이나라 귀농귀촌의 1번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 태풍 볼라벤으로 장수 분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여간 안타깝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피해를 복구하고 태풍 후유증에서 벗어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참 글을 잘쓰시네요.장수분들의 친절이 생생히 느껴지고 며칠동안의 생활을 저도 같이 한 느낌입니다.
저는 농촌에 대한 동경으로 회원으로만 가입해서(장수에 연고가 없는 서울의 회사원입니다) 가끔 들어와 봅니다만
정말 좋은 곳 같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태풍 피해지역으로 장수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빨리 복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부여 생활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
농부시몬님/ 격려의 글 감사드립니다. 우리 부부처럼 귀농의 꿈을 갖고 있는 분이시네요. 글에 쓴대로 이번에 장수에 가보니 귀농 선배분들이 새로 오려는 분들을 참 따듯하게 맞아주시더군요. 격심한 경쟁과 상호 불신과 질시 같은 것이 판치는 도시 조직체에서의 생활과는 아주 달라보이는 환경이랄까요. 상생 혹은 더불어삶이라는 다른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잠깐 경험한 것이지만 대체로 큰 범주에서는 그러할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님도 적당한 때 부디 꿈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부여로 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장수가 되었건 부여가 되었건 님의 앞으로의 날이 늘 즐겁고 행복하시길 빌어요. 귀농귀촌이란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습니다.
허허...
그날 우리 동네는 않 보았는가요.
아직 협회에느 않 올린 곳이 있는데요.
집은 한옥 개량형과 주변 텃밭 약 300여평.....
시간나시면 함 들려 보세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홍학기님, 사무차장님/ 홍선생님이 어느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유난히 활달하고 환한 표정이어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 그때 그런 집이 있는지 알았더라면 가봤을 텐데. 우리의 일정이 촉박해서 자세히 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유감입니다.
배추밭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분위기를 밝게 띄워주신 젊은 사무차장님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 사람 사진을 크게 올려주셨더군요. 원래 못생긴 사람인데 사무차장님이 사진을 워낙 잘 찍어주셔서 어찌나 환하고 복성스럽게 보이던지. 배추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근한 젊은 남성분도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