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오빠와 양배추백김치
문 희 동
지인들 중에 나를 ‘젊은 오빠’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나이에 비해서 젊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하고 젊게 보이는 이유는 교회의 행사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선교를 갈 때도 젊은 동역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역하기에 항상 활기찬 기운을 느끼며 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우리 집에서 개발한 양배추 백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내와 나는 소양인과 소음인으로 서로 다른 체질이다. 나는 밤늦게까지 지내다 늦게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고, 아내는 초저녁잠이 많아 일찍 자고 새벽 4-5시에 일어난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하니 능률도 오르고 많은 일을 하게 될 뿐 아니라 동네 공원으로 산책 가서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부지런한 참새들과 노래도 부르니 상쾌한 하루가 시작된다며 자랑도 한다. 나는 반대로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한다. 동네 호숫가를 거닐면 물오리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아내는 소위 말하는 새벽형이고 나는 야행성이다.
그뿐만 아니라 식성도 다르다. 아내는 고춧가루나 후춧가루, 겨자 등이 들어간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잡식성으로 매운 음식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다. 그래도 아내는 매일 자기는 못 먹는 매운 음식을 나를 위해서 만들어준다. 그러니 우리 집은 언제나 같은 재료로 두 종류의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식탁은 늘 풍성하다. 나를 위해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아내의 마음씀씀이 늘 고마우면서도 평소엔 표현도 못하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산다. 따지고 보면 내가 ‘젊은 오빠’라고 불리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공이다.
아내는 모든 음식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실험정신이 강하여 여러 가지로 연구를 한다. 익숙한 재료 대신 다른 재료를 이용해 보다 훌륭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배추가 아니라 양배추를 이용한 맵지 않은 백김치 담그기다. 이민 초기에 배추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내는 매운 것을 못 먹는 자신을 위해 양배추를 사다가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맑은 백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 백김치의 맛은 보다 숙성되어 아내뿐만 아니라 내 위장도 튼튼하게 지켜주었고, 발효된 백김치의 칼칼한 국물은 우리 집의 별미가 되었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식탁 한쪽에 놓인 양배추백김치 맛을 보고는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며 묻고, 심지어 만들어 팔아도 되겠다며 맛의 훌륭함을 칭찬한다. 나는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로 “특허 내서 장사 할까?”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하는 양배추에는 염소와 유황성분이 들어있어 위 점막을 보호하기에 위궤양 환자들에게 매우 좋다. 나도 위가 좋지 않은 때가 있었다. 밤에 잘 때 코를 골면서 위산이 많아져 이것이 입으로 넘어와 숨통을 막히게 해서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어져 잠을 설치곤 했었다. 이 때문에 병원에도 다녔지만 딱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양배추백김치를 먹은 후부터 그런 증세가 없어진 것이다. 그 후 80세를 넘긴 지금까지 위 문제로 고생한 적이 없다. 어느 때 소화가 잘되지 않거나 고기를 먹어 위가 뻑뻑할 때면 백김치 국물을 마시는데, 위가 시원해지고 ‘뻥’ 뚫리며 소화제 역할을 하는 경험을 해왔다. 양배추에는 또한 칼륨 성분이 있어 인체 염분도 조절하여서 피부보호에도 좋다. 이 백김치를 담가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점점 젊어 보인다며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겉으론 ‘허허’ 웃어넘기지만 속으로 ‘백김치 때문이지’라고 대답한다. 바로 이 김치로 인해 내가 ‘젊은 오빠’가 된 것이다.
양배추에는 비타민C 성분이 풍부하고 양배추의 강한 칼슘 흡수력이 몸의 저항력과 백혈구 활동을 향상시킴으로써 항산화 작용으로 혈액이 균형을 이루어 암 예방이 된다고 한다. 교회에서 아는 몇 분의 권사들이 유방암에 걸려 고생을 했다. 입맛이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이 백김치를 주면 모두가 한결같이 입맛이 돋아서 밥을 먹게 되었다며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지금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서 먹는다. 이 양배추백김치의 성분이 분명 암 치료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백김치는 담그는 법이 간단하고 아주 쉽다. 거기에 무를 넣으면 더욱 시원한 맛이 나서 겨울 ‘동치미’와 같다. 맨 입으로 먹어도 좋고, 또 소금으로 절이는데 짜면 물을 붓고, 싱거우면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추면 된다.
이 김치는 떡 ,감자, 고구마 등의 한식뿐만 아니라 피자, 빵, 고기 같은 양식과도 잘 어울린다. 같이 먹으면 위에 부담을 줄여주고, 편한 느낌을 주며, 소화도 잘된다. 여름에는 백김치 국물로 냉면 국수를 말아먹으면 웬만한 시중 식당에서 사먹는 냉면보다 훨씬 맛이 훌륭하다. 세 살배기 어린 손자 녀석도 맨 입으로 이 백김치를 아삭아삭 잘도 씹어 먹는다.
양배추백김치는 ‘동치미’ 같이 물을 많이 부어 재료들이 잠기게 하고 냉장고에서 약 20일 이상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 양배추에 따라 김치 맛이 약간씩 다르긴 하다. 약간의 쓴맛 나는 것, 겨자 맛 같이 약간 매운 맛을 내는 경우도 있으나 식별하기가 어렵고 중간 크기의 것이 좋다. 이렇게 양배추의 효능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부작용이 없는 식품으로 우리 부부가 체험했기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늙어 감을 우울해만 할 것이 아니라, 나처럼 모두가 ‘젊은 오빠’ 소리를 들으며 남은 생을 함께 즐겨보았으면 한다.
식품점 한 구석에 수북이 쌓인 크고 작은 양배추들이 둥글둥글 수더분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