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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설교 스크랩 1. 스펄젼 - 부흥설교
머슴 추천 0 조회 45 12.03.20 16: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부흥설교(A Revival Sermon)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아모스 9:13.

 

하나님의 약속들은 성취된 후에도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수행된 후에도 그 전처럼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두 번째 성취 또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사람의 약속은 일시적인 공급원인 물웅덩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들은 샘과 같아서 결코 마르지 않으며 항상 넘쳐흐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약속의 모든 내용을 길어 올려 예전처럼 항상 충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종종 어떤 하나님의 약속이 문자적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이미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영적인 의미도 역시 성취될 것이며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어떤 약속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입니다. 원래 가나안 땅은 매우 비옥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 땅은 갈지 않아도 항상 비옥했으며 벌들은 꽃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꿀을 빨아 나무들에 꿀이 종종 넘쳤습니다. 그 곳은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쟁기를 대고 갖가지 농경기술을 사용하자 그 땅은 극도로 기름져서 너무나 많은 곡식을 산출하였습니다. 그래서 페니키아를 통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수출하게 되었으며,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처럼 열방의 곡식창고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 땅에 메마르고 골짜기가 말랐으며, 비참한 거주민들이 보잘것없는 수확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 팔레스타인 땅이 이전처럼 다시 비옥해질 것이라는 약속은 유효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자라면, 터키의 통치가 물러가고 도적들로부터 안전이 보장되고 씨뿌린 대로 거둘 수 있다면 그 땅 다시 한번 열방가운데서 웃을 수 있으며 자녀들의 즐거운 어머니로 회복될 것이라고 단언할 것입니다. 땅이 황폐해 져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근면한데도 그가 저축한 것이 도적맞고 고생하여 심은 곡물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그 사람의 피가 땅에 쏟아져 버리게 되자,  땅이 황폐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이 약속은 의심없이 수행되어져서 모든 말씀이 증명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언덕 꼭대기들이 다시 포도를 맺고, 그 땅은 포도주로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시적인 약속이라기보다 영적인 약속으로서 더욱 충만하게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성취가 지금 시작되고 있고, 우리는 주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 위에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경하는 자는 수확자를 따를 것이며, 산들이 단 포도주를 흘리며, 언덕들이 녹아내릴 것입니다.

 

첫째로, 나는 이 아침 이 본문을 부흥의 약속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둘째로, 나는 이 본문을 교리의 가르침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의 노력을 위한 자극으로 볼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나는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드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고자 합니다.

 

 

I. 첫째로, 나는 본문을 영적 부흥의 위대한 약속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여기서 본문을 자세히 살펴 매우 즐거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놀라운 수확의 약속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비유에 대해, 추수가 너무나 많아서 완전히 다 거두어 들이기도 전에, 기경하는 자가 다음 곡식을 위하여 쟁기질을 시작할 것입니다. 과실이 너무 많아 포도를 밟아 즙을 다 짜기도 전에 씨를 뿌릴 때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땅이 너무 비옥해서 한 계절이 다른 계절 속으로 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듯, 이것이 교회에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 네에서 영혼의 풍성한 추수를 볼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바로의 꿈은 지난 세기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내 꿈을 회고한다면, 일백년 전에 한 줄기에 일곱 이삭이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풍성한 시기가 지나가고, 우리가 보았듯이 일곱 이삭이 동풍에 말라버렸습니다.  마른 일곱 이삭이 살진 일곱 이삭을 먹어버렸고, 그곳에는 극심한 기근이 있었습니다. 나는 휫필드 시대에, 일곱 마리의 살진 소가 강으로부터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곱 마른 소가 같은 강에서 올라와 살진 소를 먹어치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백년 전의 엄청난 부흥에 대해 읽습니다. 그 소식은 우리 귀에 여전히 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태만과 게으름과 궁핍함의 시절을 보았습니다. 일곱 해의 소출을 다 먹어치우고도, 교회는 더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7년 풍년의 시기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놀라운 비옥한 시기를 주시려고 합니다. 이 시대에 설교가 선포되었을 때, 한 죄인이 회심을 하였는데, 우리는 의혹의 기쁨으로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뭔가 놀라운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가 한 회심자를 본 곳에서, 우리는 앞으로 수백의 회심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수십명에게 역사하셨던 곳에서, 다시 수천명에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예전에 수백명이 모였던 곳에서 열국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셨던 선을 수백배로 불려 보여주시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역사의 씨앗에는 여지껏 거둔 소출의 더 풍성한 것을 생산할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 권능이 조금도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씨뿌리는 자가 씨뿌리러 나갈 때 얼마는 옥토에 떨어져 20배 30배 열매를 맺고, 혹은 백배를 맺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씨를 뿌려 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나는 이미 20,30배를 산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백배를 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우리의 수확이 너무 많아, 우리가 거두고 있는 동안에, 다시 씨뿌리는 때가 올 것을 믿습니다. 기도회가 끝나자 곧 영혼들이 구원받는 방법을 묻기 위해 나아오고, 이들의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설교시간이 오고, 다시 기도시간이 오고, 다시 영혼들이 몰려오고, 세례식장은 다시 물결치고, 수백명의 회심자들이 떼지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올 것입니다. 오! 지난 이십년간의 교회들이 진행해 온 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나는 비판적이고 싶지 않지만, 엄숙히 말하건대, 교회 목회자들이 사람들의 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정말 저는 이런 과격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종류의 부흥을 허락하시더라도 그것이 지난 이십년간의 게으르고 꾸물거린 사람들로부터 그 엄청난 죄의식을 벗겨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잠든 동안 저주를 받아 버림받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많은 죄인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죄인들을 위해 울지도 않고 영혼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서 계속 표준양식과 예의를 차리는 길과 지루한 반복 속에서 행하는 동안 영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사람들의 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사역자들의 대부분이 깨어있지만, 이제 정말 깨어날 때가 되었으며, 기상나팔 소리가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새롭게 될 시간이 주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가 다가온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간절히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죽은 형식주의 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이름이 기억되었더라도 그것은 땅위에서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2. 그리고 그 약속은 놀라운 수확의 사상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곡식들이 신속하게 뒤이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수확기와 기경기 사이에는 한 계절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더 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두는 자가 일을 끝내자마자 쟁기질 하는 사람이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과정과 반대되는 속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와 매우 일치합니다. 옛 침례교회에서는 여름나기, 겨울나기라는 과정으로 초신자들을 훈련합니다. 여름에 교회에 가입한 초신자는 겨울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 연기되면 허입될 때까지 오육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테스트하기 원하고 경건한 사람들 속에 가입되는 것이 적절한지를 살펴봅니다. 실제로 우리 안에는 회심이 느린 작업이라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달팽이가 느리게 기듯이 그렇게 은혜도 사람의 마음에 매우 늦게 움직인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천둥번개 속보다는 잔잔한 호수 속에 더 진실한 신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으로의 빠르게 나아가는 방식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는 모든 사람은 목발에 의지해 절면서 줄곧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빠른 짐승들, 전차의 바퀴축이 속도로 달아오르는 것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 유의하십시오. 여기 부흥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부흥이 성취될 때, 이것이 표징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바로 회심한 사람들이 은혜 안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날 초신자들은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 일주일이 못되어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공적으로 변증하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수개월 안에 그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교회의 맥박이 영원히 그렇게 느려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심장을 빨리 뛰게 하실 수 있으며 초침의 맥박처럼 빨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교회에 흐르는 은혜의 홍수는 노도 속에서 시스라의 군대를 쓸어버리던 때처럼 맹렬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이 달리시듯 하늘로부터 불이 달릴 것입니다. 희생제물이 순식간에 타서 하늘로 올라가듯 그렇게 교회는 거룩과 영광스러운 열정으로 타오를 것입니다. 교회는 더 이상 찢겨진 바퀴로 무겁게 몰지 않아도 될 것이며, 님시의 아들 예후의 병거처럼 빨리 달려 먼 곳의 사람까지도 삼킬 것입니다. 이것이 분문의 약속 중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쟁기질 하는 사람이 씨뿌리는 사람을 따라잡을 만큼의 속도로 은혜의 역사가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3. 셋째로 매우 명백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본문에 언급된 노동의 활동성에 유의하십시오. 지금 하나님은 노동 없이도 풍성한 수확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쟁기질하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포도를 밟는 사람, 씨뿌리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모두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쟁기질 하는 사람은 쟁기질 할 계절이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축복하고 계시는 것을 볼 때 그는 자신의 쟁기를 준비하며, 추수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다시 기경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삼스레 바구니와 씨앗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는 포도수확의 소리를 듣자마자 나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아 나의 형제들이여, 진정한 부흥의 한 표지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괄목할 만한 활동입니다. 목회자들이 주일에  두 번 설교하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된 일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가련한 영혼이여! 그들은 주중에 설교할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이라도 설교를 하면, 기관지염에 걸려 가서 드러눕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많이 일을 하면 곧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10-12번을 설교하며 그래도 더 건강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실 설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건강에 좋고 축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고, 특별대우를 받았으며, 벨벳으로 된 옷을 입고 있다가 가끔 약간의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동정을 받았습니다. 나는 오늘날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나는 매일 설교를 하면서도 피곤해하지 않는 형제들을 만납니다. 나는 자기교회에서 매일 모임을 갖는 한 사역자를 만나 보았습니다. 성도들은 매우 열성적이서 저녁 6시에서 오전 2시까지 그를 바쁘게 만듭니다. 한 성도가 말하기를 ‘저러다가 우리 목사님이 죽을 것입니다.’나는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런 일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한 사역자를 죽이는 것은 잠자는 회중에게 설교하는 것이지, 열성적인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내가 그를 보았을 때,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형제여,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그는 말했습니다.‘천만에요, 나는 전보다 두 배나 더 힘 있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건강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의 교인들이 나를 늦게까지 잡아둘 때, 휴식이나 잠이 부족한 때도 있지만, 그걸로 제가 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그런 행복 속에서 죽으면 좋겠네요. 그러한 질병이라면 얼마나 축복된 것입니까! ’ 내 앞에는 씨뿌리는 자를 따라잡아 쟁기질 하는 사람의 표본이 있었던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표본, 거두는 자의 발꿈치를 따라가는 자의 표본. 우리는 살면서 그런 활동력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세계에서 그렇게 많이 일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내 주위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60년이나 알아온 머리가 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명을 가지고 그것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게으름뱅이들이 많이 있으나, 나의 길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항상 그들을 발길질 했으며, 그 이유로 나는 그들에게서 발길질을 당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발길질 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들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회, 독립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모두 일하고 있습니다. 뒷짐 지고 있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총을 겨누고 있으며, 어깨를 맞대어 서서 적들을 향해 전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쟁기질하는 자와 포도나무를 가꾸는 자의 활동을 보며 희망을 갖습니다. 커다란 부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곧 축복하실 것입니다.

 

4. 그리고  계속해서 본문은 ‘산들이 단 포도주를 흘릴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산위에는 포도주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대신 큰 물이 산기슭을 타고 흘러내릴 수는 있습니다. 누가 언덕과 바위에서 붉은 포도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산들이 단 포도주를 흘릴 것이며’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회심자들이 예외적인 곳에서 일어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오늘날 이 약속이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주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습니다. 최근 6년간 몰려드는 회중에게 설교하고, 많이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의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는 것은 하나도 특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에 전에는 결코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더블린의 사람들이 상류층에서 빈민까지 예외 없이 복음을 듣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회중이 상당수는 로마카톨릭임을 알았습니다. 마치 그들은 개신교도였던 것처럼 주의를 기울려 말씀을 들었습니다. 청교도의 습관과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군인들도 복음을 듣기 위해 앉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또 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 좋은 자리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군중을 뚫고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나는 이전에 복음을 듣기위해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나는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욕이 아니면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말씀을 듣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 확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간직할 무엇인가를 행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하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은 하비가 한번 말했던 ‘떠다니는 배는 모두 떠다니는 지옥이다’입니다. 모든 계층가운데, 선원이 복음을 접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홀리헤드에서 더블린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특히 두개의 거친 항로에서 나는 전보다 더 큰 기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탔던 처음 배에서 나는 선원들과 따스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이 선원들이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나 역시 그들의 형제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원들은 목사를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당신이 그렇게 친절히 대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묻자, 한 분이 ‘내가 당신의 주님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분들 중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셋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에 그들 중 대부분은 하나님 없이, 그리스도 없이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의해, 그들은 모두 회심했습니다. 나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에 보지 못한 영적, 천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출항하기 전 매일 아침 기도회를 가지며, 귀항 후에도 기도회를 가집니다. 그들이 주일에, 킹스타운이나 홀리헤드에 정박하게 되면, 한 목사가 승선하여 복음을 설교합니다. 선실은 사람들로 꽉 차고, 가능한 한 갑판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한 목격자에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매우 정열적으로 설교하시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선원들만 할 수 있는 그런 기도를 드립니다.” 내 마음은 배가 떠다니는 교회로 변화되고 있음을 생각하니 기쁨으로 뛰어올랐습니다. 그 배는 바로 하나님의 벧엘이 되었습니다. 나는 다른 배를 타고 돌아올 때, 같은 것을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똑같았습니다.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 사이를 걸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었고, 한 사람은 주머니에서 웨일즈어로 된 가죽커버의 오래된 책한권을 꺼냈습니다. “이 표지에 있는 사람을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예, 당신은 이 설교들을 읽으십니까?” 그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배에서 이 설교들을 읽었습니다. 가능한한 크게 읽었습니다. 좋은 구절은 사람들을 모아 읽어줍니다.” 또 다른 사람은 찬송가가 들리는 동안 비웃으며 서 있던 한 신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사람들 중 한 명이 그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고, 그 사람은 갑자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창에서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빌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원은 말하기를 “아! 선생님,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최고의 증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가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르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쁘고 행복한 사람들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 이에 대해 산들이 단 포도를 흘린다는 것 말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욕설을 내뱉던 사람이 찬송을 소리쳐 부릅니다. 사단의 가장 사랑받던 자녀들이 진리의 충실한 옹호자가 되고 있습니다. 일단 선원들이 회심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행은 끝이 없습니다. 전도에 있어서도 선원들이 최고입니다. 선원들은 하나님의 경이의 깊이를 본 자들입니다. 선원들은 육지 사람들과 같은 차가운 심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단 그 심장이 만져진다면, 그 심장은 크게 고동칩니다. 그것은 그의 온 몸을 통하여 큰 힘으로 에너지를 돌립니다. 그 에너지로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돕고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5. 또한 본문에는 부흥의 때에 매우 특이한 회심이 따를 것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듯 보입니다. 부흥의 때에, 은혜가 비범한 장소에 부어지고, 개개인들이 회심하는 데, 이는 일반적인 회심보다 못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산들은 포도주를 흘리리라”고 말할 뿐 아니라, “단 포도주”를 흘리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작은 산들이 작은 시냇물을 흘릴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산들이 녹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방탕하고 타락한 죄인들이 회심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때, 우리는 “놀랍군, 하지만 그들이 일등 그리스도인이 될 것 같지는 않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이롭게도 이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산들로부터 단포도주를 취하십니다. 작은 산들이 녹을 때, 완전히 녹아버립니다. 어느 시대든지, 특별한 사역자들은 회심전에는 가장 특별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엘스톤 그린의 패역이 없었다면, 존 번연은 없었을 것입니다. 존뉴톤이 배에서 행한 악한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그가 방황의 고통에서 경이적으로 돌이키지 않았다면, 그는 사단의 깊은 곳, 고통스러운 경험, 하나님의 은혜의 권능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런 큰 죄인들은 보통의 순탄한 회심자들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믿음에 있어서도 진실하며, 사랑에 있어서 진정이며, 지식에 있어서도 정확하며, 노력이 열성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II. 이제 나는 다른 주제를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리 본문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리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부흥에 의해 무엇이 가르쳐지고 있습니까? 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의 절대 군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일 사람들이 하려고 한다면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대신 절대적인 축복의 약속을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치 “나는 사람의 마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나는 쟁기질하는 자가 추수하는 자의 뒤를 따라잡게 할 수 있다. 나는 땅의 주인이다. 아무리 거칠고 바위투성이라도 나는 부술 수 있다. 나는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축복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로 약속하실 때,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할 때라는 조건을 덧붙이시지 않습니다. 위대하신 절대로 그러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유의지는 달콤한 포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가 결국 승리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부수어뜨리지 않습니다. 그 자유의지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달콤하게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시면,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물으시기 위해 멈칫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달음박질하는 강한 바람처럼, 신적영향은 모든 장애들을 쓸어버립니다. 부득이한 심령들이 은혜의 강한 바람 앞에 굽혀지고, 굴복하지 않는 죄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굴복되어집니다. 만일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오늘 아침에 그가 아무리 믿음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 않을 만큼 악독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제 아무리 복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호와께서 원하신다면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집니다. 오! 빛을 전혀본 적이 없는 당신의 어두운 마음속으로  빛의 흐름이 맞닿기를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신다면, 반드시 빛은 있고야 맙니다. 당신이 주먹을 움켜쥐고 여호와를 대항하여 입을 쳐든다 하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계속 사악한 짓을 행한다면, 당신의 주님은 당신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을 구원하실 주님은 물줄기를 돌이키셔서 당신의 마음과 의지를 바꾸실 것입니다.  

 

이 교리가 아니라면, 사역이 어떻게 될지 나는 의아합니다. 젊은 멜랑크톤에게 옛 아담은 너무나 강력했습니다. 우리 설교의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 자체로는 사람들의 회심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완고하고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힘은 웅변의 힘이나 열정의 힘보다 더 큽니다. 그러므로 일단 그 권능이 발휘되면, 무엇이 맞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부흥의 교리입니다. 보통의 때에는 우리 마음의 냉랭함으로 인해 잘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이런 비상한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방의 한 회교 수도사의 예화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그는 젊은 왕자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치기를 원했습니다. 그 젊은 왕자는 제일 원인자의 존재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사가 작은 풀을 가져와 그 왕자 앞에 놓았더니, 그 순간 그 작은 풀은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한 시간 안에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젊은 왕자는 놀라 손을 들어올리며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한 시간 안에 하셨다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까? 20년 안에 이 일을 하시면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경우에 모두 동일한 사역이 있었습니다. 학생을 놀라게 한 것은 단지 그 속도였습니다. 형제들이요! 교회가 서서히 건설되고 회심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각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무를 갑자기 묘목에서 큰 숲의 제왕으로 자라게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소경이며 우매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이러한 빠른 성장과 신적 영향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기를 원합니다.  배우시오, 오늘의 교회여!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영원한 전능자이심에 대한 이 위대한 교훈을. 배우시오! 예수의 제자들이여. 그분께 의존하기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당신의 성취를 기대하십시오. 최선을 다할 때, 당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주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당신이 느리게 진보했다하더라도 그 진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엄청난 증가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당신의 노래를 많아지게 하시며, 하나님의 도모 가운데 모든 일이 이루어짐에 대해 당신이 노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III. 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열정적으로 이 본문이 더 진보된 노력을 위한 자극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의 임무는 교회의 성공으로 측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순조로울 때나 어려울 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역자의 의무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슬을 유보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기경하는 것을 유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열매 맺지 못할 때가 오더라도 씨 뿌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는 상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행동과 함께 갑니다. 결과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비록 그 임무가 아무런 현재적 보상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임무를 계속 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인자야, 만일 그들이 멸망하기로 고집한다면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피는 너의 손에서 찾지 않을 것이다.”만일 우리가 씨를 뿌리고 공중의 새가 그것을 먹더라도, 우리는 명령받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비록 새들이 먹어치우더라도 그 의무는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복된 결과를 기대할지도 모르나 그 결과가 없더라도 우리의 임무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껏 진리인 한, 하나님께서 그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계심을 아는 것은 복음사역의 신적이고 거룩한 자극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과거보다 더 나은 성취의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한 상인이 길모퉁이 작은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오는지 지켜보다가, 점점 손님이 많아져서, 명성을 얻게 되고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무슨 일을 벌이겠습니까? 그는 가게를 확장합니다. 뒷마당을 끌어들이고, 추가의 일군을 고용할 것입니다. 여전히 사업이 확장되더라도, 그는 얼마나 돈이 벌릴지 보기 위해 그의 모든 자본을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사업이 성장하면, 그는 그 옆집을 사고, 그 다음 집을 삽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것은 수지맞는다. 나는 더 확장시켜야겠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지금 상업적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상식적인 규례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행복한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해야 할 고상한 사업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약간의 자본, 노력, 헌금을 투자한 곳에 좀 더 투자하십시오. 지금처럼 엄청난 이윤이 남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투자한 적은 금액에 기대이상으로 하나님이 번성케 하시는 역사의 결과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만약 흉년이 다가옴을 농부가 안다면 그는 단지 한두 마지기에만 씨를 뿌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예언자가 그에게 “농부여, 내년에 놀라운 풍년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농부는 “나의 풀밭을 기경하고, 울타리를 뽑아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씨를 뿌리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놀라운 추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놀리는 땅을 기경하십시오. 울타리를 뽑고, 묵은 땅을 개간하고, 가시덤불 가운데라도 씨를 뿌리세요. 여러분은 어디에서 번성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이 동일하게 좋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증진된 희망에는 더 한 노력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내가 다른 격려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런 부흥이 올 때에 어떤 조치가 여전히 요구된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수확이후에도 여전히 쟁기질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포도수확이 아무리 많더라도 포도를 밟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공이 클수록 더 큰 도움이 필요합니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처음에 그들에게 목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이 편만해지더라도, 지금처럼 복음 전도자가 많이 요구된 적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거만하게 마음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중개 없이도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거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만한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겸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일어나는 말씀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역자에게 “강한 진을 파할 강력”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없이도 세상이 더 잘되어질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대가 당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오빌의 금처럼 귀하게 될 것이라”사람들이 여러분의 옷자락을 잡고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말할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의 집으로 찾아오며, 당신의 기도를 요청할 것입니다. 당신이 교훈을 듣기 원하고, 양떼 중에 가장 작은 양도 금덩어리처럼 귀히 여김을 받는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경하는 사람이 추수꾼의 뒤를 쫓을 때만큼, 기경하는 사람이 귀하게 여김 받을 때도 없을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가 포도즙을 짜는 자의 뒤를 따를 때보다, 더 귀하게 여겨질 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돕는 자에게 주시는 영광은 당신이 그 도움을 사용하도록 격려하실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런던 시민들이여! 이 놀라운 바람을 단 한번의 노력도 없이 지내 버리지 않기를 간청하고 부탁합니다. 나는 가끔 바람이 불어옴에도 우리가 돛을 감아올리고 있지 않은지 두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배도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돛을 폅시다. 지금. 활짝 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동안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합시다. 하나님의 열정적인 동역자들이 됩시다. 구름이 높이 떠오른 것을 봅니다. 먼 서쪽에서 오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해안에서 몰려옵니다. 그 구름은 바다를 건넜고, 바람은 구름을 몰아 북쪽 구석에 있는 푸른 섬에 소나기를 내리게 했습니다. 오! 구름들이 지금 웨일즈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인근 지역들을 소생시키고 있습니다. 비가 옥스퍼드와 글라우세스터셔에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으며, 그 구름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유의하십시오. 그것들은 사람들을 위해 멈추거나 기다리지 않습니다. 구름들이 지금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구름은 지나가고 우리는 여전히 메말라 있어야 하겠습니까? 구름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지만, 오늘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거대한 도시위에 은혜의 구름을 보내셨습니다. 자 여러분 엘리야들이여, 그 구름이 비를 내리도록 기도합시다. 신자들이여 무릎을 꿇으십시다. 여러분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그리스도인들이여 이 기회를 놓치시렵니까? 여러분의 노력을 갈급해 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만들겠습니까? 여려분이 이 축복된 시간으로 하여금 아무런 개선의 효과도 없이 지나가도록 만들렵니까? 그렇다면 1860명의 이 교회는 비겁한 교회이며 이 시대에 무가치한 교회입니다. 형제들이여, 이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열정적인 마음을 오늘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회에 수치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 모두가 쟁기를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을 가장 끔찍하게 낙태시키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호의를 베푸심에도 교회가 그 은혜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종종 고난을 당하게 됨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너를 길보아처럼 만들어 주리라. 너의 산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하리라. 내가 구름으로 명하여 너에게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도록 하기를 다시 내가 위로부터 성령을 부어 줄 때까지 하리라”우리는 특별한 기도로 한 주를 보냅시다. 가능한 자주 만나 보좌 앞에 탄원합시다. 각자 은밀히 하나님께 강력히 구하여야 합니다. 공적으로 동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노력을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

 

 

IV. 내가 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발한다면 나는 일을 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전혀 예배장소에 참석하는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안식일 아침에 여기 참석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신을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 소개하기를 부끄러워하는 많은 신사들이 여기 있음을 압니다. 아마 그는 오랫동안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매력에 끌려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처음에 호기심으로 왔습니다. 암 목사의 노고를 조롱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마음이 빼앗기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는 한 주일을 불안하게 지내다가 다음 안식일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는 자기 죄를 버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죄들이 전처럼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전처럼 욕을 할 수 없습니다. 어쩌다 욕이 나오다가도 얼버무립니다. 그는 점점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자! 내가 말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음을 마음깊이 기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여기서 미완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오신 것입니다. 어떤 신앙부흥회에서든 경건한 부모의 자녀들이 아니라, 전혀 그리스도를 몰랐던 사람들이 많음을 봅니다.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수단이 축복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노력, 성령의 특별한 영향력은 명목상 그리스도인 밖에 있고 신앙고백을 하지 못한 자들에게 미칩니다. 내가 알기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감동이 주어졌는데, 그럼에도 여러분이 말씀을 통한 그 감동을 무시한다면 그래서 그 감동이 사라져 버린다면 여러분은 다른 세상에 이를 때, 제 정신과 제 감각이 돌아올 때, 기회가 있었으나 무시했던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혹독한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 날 지옥에서 “추수 때가 있었는데, 지나갔다고? 여름이 있었는데, 벌써 끝났다고, 아 나는 구원받지 못했구나”라는 부르짖음보다 더 끔찍한 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일상적인 시기에 파멸로 가는 것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진지한 목회자의 소리를 듣고서도, 그리스도께로 오라는 초청을 받았음에도, 예수께로 오라고 정직하게 눈물로 간청했음에도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기로부터 떠나가는 것은 지옥에 단순히 가는 정도가 아니라, 지옥중의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진리를 듣고 느끼기도 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하고서 버림당한 사람들을 위해 저주의 진수와 핵심이 남아있습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청중이여, 이 시간은 엄숙한 시간입니다. 나는 성령께서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다시는 다른 경고를 듣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혹시 다른 경고를 받는다 하더라도 너무나 완악해져서 여러분은 그 경고를 비웃거나 멸시하게 될지 모릅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하고 불멸하는 복된 나라를 의지하고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당신에게 지금 주어진 이 신성한 기회를 던져 버리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 멈춰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주어진 감동을 당신의 영혼으로부터 지워버리기 위해 춤추러 갈 것입니까? 아! 인생이여, 웃음으로 당신을 지옥으로 보낼 수는 있지만, 그 웃음으로 당신을 지옥에서 건져낼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인격이 안정되게 고정될 때가 있습니다. 그 전환점이 오늘일 수 있습니다. 이 홀에 어떤 사람이 그 결국을 안다면 절대로 앉지 않을 어떤 엄숙한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항복 안 해, 나는 이 감동에 저항할 것이며, 무시할 것이다. 내가 잃어버림바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죄를 계속 가지고 갈 것이다.”라고 말하게 될 그런 자리가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친구여 여러분이 떠나기 전에 앉았던 자리를 표시해 두십시오. 피같은 붉은 색으로 표시함으로써 다음번에 우리가 이곳에 와서 “여기 자신을 멸망시킨 한 영혼이 있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성령께서 여러분의 가슴에 더 달콤하게 속삭이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람아 항복해라. 예수께서 너를 오라 초대하고 계시다.”오 나의 주님이 오늘 아침 여러분의 얼굴에 미소 지으며, “내가 너의 영혼을 사랑한다. 너의 영혼을 나에게 맡겨라. 죄를 버려라. 그리고 나에게 돌아오라”말씀하시기를 말입니다.  오 주 예수여 그렇게 하소서. 인생들이 당신을 거역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이소서. 그러면 그들은 굴복할 것입니다. 오,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이시여, 당신의 자비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소서. 지금 당신의 성령을 보내셔서 나그네들로 집으로 돌아오게 이끄소서. 그리고 이 홀에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당신의 사랑과 은혜에 의탁되게 하옵소서!

 

 

http://www.lloydjones.org/technote3/read.cgi?board=C307&y_number=0&nnew=2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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