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16세기 루터의 교회개혁 이후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를 중심한 기독교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기독교회들을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에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로마 가톨릭과 구별하기 위해서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들에 퍼지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1940년대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성경의 근본 진리들을 수호하는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근본주의도 복음을 믿고 옹호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임에 틀림 없었다.
개념의 정의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두 입장과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포용적인 신복음주의의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의 입장이었다.
물론, 오늘날 교회 안에 '신복음주의'라는 말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른 것 같다. 많은 보수적 목사들은 신복음주의를 신학적 탈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경 무오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 등을 신복음주의의 특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런 신학적 탈선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다. 신복음주의의 본질적 성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1920년대의 소위 근본주의(보수주의)와 현대주의(자유주의) 간의 논쟁 혹은 갈등에서 외형적으로 현대주의가 승리하고 근본주의가 패배한 이후, 1930년대에 성경적 교회들이 자유적 혹은 포용적 대교단들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1940년대에 와서 그 분리된 교회들 가운데서 '신복음주의'라는 한 새로운 경향이 일어났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기보다 평화와 안정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었다. 그런 입장을 주창했던 이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적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자유주의 교회들에 속한 자들을 포함하는 폭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성경적 분리의 명령을 따르기보다 교제와 화합을 좋아했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Fuller) 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이었다. 1948년 그는 풀러 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보수적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지만, 1936년 교회 분리시 메이천을 따르기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재능과 인품이 탁월한 그는 1942년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고, 1947년 풀러 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33년간 보스톤의 파크 스트릿 교회의 담임목사로 봉사했고, 25년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이사장이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의 절친한 친구이며 신학적 조언자이었다.
오켕가는 풀러 신학교장 취임시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 안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었다(William Ashbrook, Evangelical- ism: The New Neutralism, p. 5). 그는 1957년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다(위의 책, 4쪽). 또한 그는 후에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하였다(Foreword to Harold Lindsell's The Battle for the Bible).
신복음주의 기관들로서, 1942년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가 조직되었고, 1947년 풀러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또 1951년에는 20개국의 복음주의 협의회들이 모여서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를 형성하였다. 1956년에는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다.
신복음주의는 그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던 해롤드 오켕가의 생각대로 근본주의의 분리의 입장을 반대하는 것을 본질로 하였다. 대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넓어진' 교회들을 '배교'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변론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1920년대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여하튼 외형적으로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역사적 대교단들은 '넓어진' 교회들이 되었고 그 이후 대교단들 안에서는 더 이상 자유주의를 배제하려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 분리되어 나온 소수의 보수적 교회들이 참된 기독교를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 대답을 가졌다. 오켕가의 말대로, 그들은 분리의 입장을 포기하고 그 대신 넓어진 대교단 속으로 들어가는 소위 '침투'의 입장 혹은 전략을 가지며 그 입장을 정당화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대교단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교단들을 개혁시키고 회복시키기를 원했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볼 때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시작된 운동이었고, 그것이 그 입장의 본질적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라는 말을 싫어하고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전유물처럼 사용하게 되었을 때, 복음주의는 다른 현대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던 각국의 '복음주의자 협회'(NAE)나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는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죠지 말스든의 말과 같이,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부르기 시작했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흔히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리운다(George M. Marsden, "fundamentalism," in New Dictionary of Theology, p. 268).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고,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몇몇 논평가들의 견해 검토
윌리엄 애쉬브룩의 정의
윌리엄 애쉬브룩은 오늘날의 '복음주의' 혹은 신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혹평하며 자유주의에 대해 동정적인 '신중립주의'로 묘사하였다(William Ashbrook, Evangelicalism: The New Neu- tralism). 그 증거들로 그는 이 입장의 주창자 해롤드 오켕가의 반(反)분리주의적 발언과 행위들을 든다. 또 그는 오켕가가 대중적 수준에서 신복음주의의 확신과 이념의 대변자로 제시한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방침의 변경을 다른 한 증거로 든다.
그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의 본래의 입장은 건전하였다. 빌리 그레이엄은 1951년 4월 파일롯(Pilot)지의 글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주의도 너그럽게 보거나 교제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1952년 6월 3일자 선배 부흥사 밥 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현대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스보로와 슈립포트 외에 어느 도시에서나 교회 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후 빌리 그레이엄은 자신의 입장을 변경하였다. 그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컬럼버스 등의 전도 집회에서 공공연히 자유주의적 교회 협의회의 후원을 받았다(Ibid., p. 9).
애쉬브룩은 또한 자유주의에 대해 복음주의의 포용적인 증거의 추가적인 예들로 크리스챤 라이프지 1957년 4월호가 넬스 페레, 라인홀드 니이버, 해롤드 피 등의 자유주의자들을 정통 기독교인과 거리가 멀지 않은 자들로 묘사한 것이라든가, 에드워드 카넬이 칼 바르트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라는 것 등을 들었다.
촬스 우드브릿지의 정의
촬스 우드브릿지는 신복음주의를 자유주의자들의 포용과 그들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정의하였다(Charles Woodbridge, The New Evangelicalism <1969>, p. 15). 그는 그 증거들로 신학교 영역에서 풀러 신학교가 프린스톤 신학교의 전교장인 신정통주의자 죤 매케이를 강사로 초청하는 것과 같은 빈번한 일들, 기독교 문서 영역에서 크리스챤 라이프, 무디 먼슬리,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이터니티 등이 자유주의자들의 책이나 집회 광고를 싣는 일, 교회연합 영역에서 자유주의적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전도의 영역에서 빌리 그레이엄의 협력 전도와 같이 포용적 방법을 채택하는 것 등을 들었다.
특히 마지막 문제에 관한 예로서 빌리 그레이엄이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서의 전도집회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케네디 감독은 그의 책 하나님의 좋은 소식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명확히 부정한 자라고 지적하였다(Ibid., pp. 34-39). 우드브릿지는 또한 이러한 타협적 태도의 결과로서 성경의 정경성, 완전 영감, 무오(無誤)에 대한 회의와 진보적 창조 개념의 수납 등의 신학적 변질과, 춤, 영화 등에 대한 개방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윤리의 세속화도 지적하였다(Ibid., pp. 47-57).
개리 코헨의 정의
개리 코헨은 신복음주의의 입장을 전도활동의 측면에서 정의하기를, '자유주의자들이 이단이 아니고 견해가 다른 형제들이며 따라서 그들을 주님의 일, 특히 전도의 일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입장' 즉 자유주의자들과의 협력적 전도를 주장하고 정당화하는 입장이라고 하였다(Gary G. Cohen, Biblical Separation Defended, p. viii).
박형룡 박사의 정의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는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자유주의가 득세(得勢)하고 근본주의가 실세(失勢)한데 대한 반발로 어떤 보수주의 신학 교육을 받은 소장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과 타협을 감행하기로 발족한 새 신학 운동"이라고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은 요지로 논평하였다(기독교 현대신학 난제 선평 <1975년>, 445-471쪽.)
첫째로,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해 학문성 결여, 반교파주의, 세대주의, 부정주의 등의 말로 가혹히 비판한다. 그러나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
둘째로,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타협하는 경향이 있다. 신정통주의는 성경의 파괴적 비평을 받아들이는데, 과연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무오(無誤)를 부정하고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평한다.
셋째로, 신복음주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이적 부인의 경향을 띤다.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에 대해 진화론적 개념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교리를 중요치 않게 여긴다.
넷째로, 신복음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사회 복음 운동에 따라간다. 오켕가는 말하기를,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회피한 사회적 난제들을 취급하기를 의욕함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 . . 개인 복음과 사회 복음 사이에 이분설이 있을 필요가 없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구원의 개인적 초자연적 경험과 사회 철학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은 민권 투쟁, 빈민 행진 등 과격한 사회 정치 활동에 참여한다.
다섯째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협력적 관계를 가지고 배교적 교단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신학적 대화를 원하고 그들을 강사로 초청한다. 또 빌리 그레이엄의 경우와 같이,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들과 협력하여 전도 대회를 연다.
복음주의 혹은 신복음주의에 대한 이상의 진술들은 오늘날의 복음주의 내지 신복음주의가 자유주의자들과 분리하지 않고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우드브릿지나 박형룡의 지적대로 신복음주의가 신학적 탈선들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으나, 그것은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와 협력에서 생긴 당연한 결과들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를 반대하고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는 입장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복음주의에 대한 이런 정의에 입각하여 근래에 수집된 사례들을 모아보고 그 문제점을 확증해 보자.
복음주의 협의체들
1)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 관용적 태도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 회장인 자유 감리교회 감독 케빈 매노이아는 경계선을 넓혀서 전통적 복음주의 영역 밖에 있는 양립할 수 있는 견해들을 가진 자들을 포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매노이아는 말하기를, 복음주의자 협회는 죤 윔버의 빈야드 같은 은사운동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많은 복음주의적 연합감리교인들이 복음주의자 협회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Christianity Today, 1999년 4월 5일). 그는 또한 말하기를, "우리는 판별 시험법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벽돌담들을 말뚝 울타리들로 대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 이사장 레이머 베스트는, 복음주의자 협회가 기독교를 적절하게 만들 새로운 도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4월 15일.)
자유주의 교단들, 은사주의자들, 가톨릭을 포용함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왔다. 또한 1942년에 그 단체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그 협회의 최고 지도자인 돈 아규는 이슬람교 지도자와 함께 자유주의적 미국 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하였다(Calvary Contender, 1998년 3월 1일).
또한 카리스마지는 1993년 오순절파 교회들이 복음주의자 협회 회원교회들의 약 51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말했고, 어떤 보고서는 80퍼센트가 그러하다고 하였다. 현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자신이 '보다 넓은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한다(Calvary Contender, 1993년 3월 15일; Charisma, 1999년 5월호; Calvary Con- tender, 1999년 5월 15일).
콜슨/뉴하우스의 '복음주의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 간의 다리 놓기의 한 예이다. 복음주의자 협회의 전 회장 존 화이트는 그 문서에 서명했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Calvary Contender, 1994년 5월 15일).
이단적 교리를 가진 교단을 회원으로 받음
1997년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는 '전세계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라는 교단을 회원교회로 받아들였다. 그 교단은 여러 방면에서 복음주의적이게 보이며 또한 허버트 암스트롱(Herbert W. Armstrong)의 어떤 이단적 교리들을 버렸고 이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교단은 여전히 영원한 지옥 형벌의 교리를 거절하고,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를 고집하며, 죽은 후에 구원의 두번째 기회가 있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인다(Fundamental Digest, 1997년 10월호). 지옥에 대한 그들의 결함 있는 가르침에 대한 추가적 증거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1997년 8월 12일자에서 그 교단의 한 교역자 양성 이사의 견해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Calvary Contender, 1997년 11월 1일.)
2)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원교회들이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머물게 함
세계복음주의협의회의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Theodore Williams)는 세계복음주의협의회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교회협의회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 (Calvary Contender, 1993년 12월 15일).
3)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1991년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제2회 정기총회는 "기감과 기장의 가입 문제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교단 부담금 비중 늘릴 계획," 기독교 연합신문, 1991년 1월 13일, 15쪽). 이 단체는 기감과 기장이 분명히 자유주의적 교단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단들을 배제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을 설교자와 강사로 세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는 1994년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자유주의자로널리 알려져 있는 강원용 목사에게 부탁하였고(교회연합신문, 1994년 2월 19일, 10쪽), 3월 8일 임원 취임 예배 설교를 유명한 기장측 목사인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하였다(기독교보, 1994년 3월 12일, 7쪽). 또 4월 9일 남북교회 협력을 위한 세미나의 강사 명단에 강원용 박사가 포함되었다(한국기독공보, 1994년 4월 2일 ,4쪽).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1996년 "한기총은 어디로"라는 주제의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발제자 한명수 목사(전 한기총 총무, 창훈대교회 목사,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한국교회협의회, 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찬자로 나선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전 한기총 대표총무) 역시 개신교계 대표성을 띤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 한기총과 교회협의 하나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한기총 대표회장 최훈 목사도 하나되는 소망을 갖고 일한다"며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신보, 1996년 9월 14일, 19쪽.)
1998년 2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 회견에서 한국교회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특히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기독교신문, 1998년 2월 22일, 15쪽).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회장: 이성덕 구세군사령관)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회장: 이만신 목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평화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특별연합예배'가 2000년 6월 4일 열린다고 한다. 교회협의회 김동완 총무는 "이번 연합예배를 시초로 앞으로도 교회협과 한기총이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이만신 목사는 "[이] 연합예배가 한국교회가 하나되고 통일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교회연합신문, 2000년 5월 14일, 1쪽).
4)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1990년 11월,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홍콩 국립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대전도대회의 한국 위성 중계 전도대회를 실시했는데, 그 장소는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합동측 교회들을 포함했다("위성중계 전도대회 실시," 기독신보, 1990년 11월 3일, 10쪽).
자유주의 교단의 강사를 세움
1995년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의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도 기장측 조향록 목사가 포함되어 있었다(크리스챤신문, 1995년 8월 5일, 2쪽).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1996년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의 '교회협의회(NCC) 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발표회에서, 그 협의회의 지도자인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모두 자기 반성을 해야 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NCC[교회협]이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연합 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 발표회에서 전호진 박사도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고 말했다. (기독교보, 1996년 7월 13일, 5쪽.)
5)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 총연합회의 전신인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당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다. 그 5개 교단은 예장 통합, 예장 합동, 기장, 예장 고신, 예장 대신이었다. 그 행사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들은 150여명이었다("5개 교단 연합성찬예배," 크리스챤 신문, 1986년 9월 14일, 1쪽).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 좌담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 좌담에서, 예장 통합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는 교회가 "과거 분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허위 구조 즉 정통성 수호라는 미명아래 교인들에게 강요해온 모든 허위구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주의'가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 좌담에서 기장 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교리적 확신]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대신 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제의했다. 심지어 그는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 보수 신학에선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리스챤신문, 1993년 5월 1일, 3쪽.)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3년 한장협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장로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고 진술하였다(기독교 연합신문, 1993년 5월 30일, 3쪽).
1994년의 연합 사업 계획
한장협은 1994년 사업 계획에 각종 강단교류, 신학생 예배강단교류, 세계장로교와의 교류 등을 포함하였다(기독교보, 1993년 12월 11일, 7쪽).
1997년, 장로교 연합운동에 대한 토론회
1997년 3월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개혁, 기장 등 장로교 주요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 장로교 협의회는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장로교 연합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서 예장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고, 예장통합측의 김순권 목사는 "권위주의와 신학교 난립, 감정 대립 등이 장로교 분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장로교 '일치(一致)운동' 활발," 조선일보, 1997년 4월 5일, 15쪽).
한장협과 예장협의 통합
한국의 대표적 두 장로교 협의체인 한국장로교협의회(한장협)와 대한예수교 장로교협의회(예장협)가 1997년 5월 15일 합동총회를 열어 통합하기로 했다. 양측 합동위원회 모임은 '조건 없는 합동'을 결정하였고 두 단체의 회장들은 "두 단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데 동의하였다고 한다. 예장협은 34개 교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보수적인 많은 군소교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장협은 예장통합, 기장,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개혁 등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장로교 하나 된다," 기독교 연합신문, 1997년 5월 11일, 1, 3쪽.)
1998년, 회원교단 임원 축하예배
예장협과 한장협이 연합하여 된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예장통합측 총회장 서정래 목사)는 1998년 10월 29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회원교단의 신임 총회장과 총무 임원 축하예배를 통해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매진키로 결의했다.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기장, 예장대신, 예장개혁 등 31개 회원교단 가운데 이날 참석한 신임 임원 120여명은 공동기도문에서 "지난날 장로교회가 분열된 아픔을 깊이 회개한다"면서 "장로교회가 하나로 연합해 이 땅에 바로 서서 주님의 정의를 아름답게 꽃 피우자"고 강조했다. 예장통합 직전 총회장 민병억 목사는 '한 이름 이스라엘로'라는 설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로 똘똘 뭉친 것처럼 우리 장로교도 하나 돼야 한다"면서 "하나된 장로교가 이 나라와 민족의 통일, 번영에 선구자가 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자기의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 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했다. 서정래 대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축하예배는 예장합동 길자연 총회장과 예장고신 임종만 증경총회장이 축사하고, 예장합동정통 홍찬환 증경총회장이 대표기도, 예장대신 김백수 증경총회장이 축도했다. (크리스챤신문, 1998년 11월 9일, 14쪽.)
1999년, 신년 하례회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1999년 1월 7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24개 회원 교단 총회장들과 총무들 등 120여명이 참석한 신년 하례회를 가졌는데, 거기에서 대표회장인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신년사를 통해 '장로교 연맹'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는 그것을 120여개의 장로교단들이 하나 되는 꿈을 꾸면서 현재의 총회들 질서와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보다 협력과 결속이 강화된 조직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제안은 장로교 연맹을 만들어 3년 내지 5년 후에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연합 장로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며, 그 장로교 연맹은 하나의 장로교회를 위한 전단계가 되는 것이다(기독교신문, 1999년 1월 17일, 2쪽; 교회연합신문, 1999년 1월 17일, 1쪽).
2000년 각교단 총회행사 계획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예장통합 유의웅 목사)는 2000년 회원교단들의 총회 개시일을 9월 25일로 통일시켜 이를 '한국장로교의 날'로 선포하기로 했다. 이날 30개 회원 교단 임원과 대의원들은 한 자리에 모여 개회예배를 올리고 성만찬, 축하 공연 등을 함께 갖게 된다. 한장련은 또 총회 직전 주간과 일요일을 각각 '한국 장로교 주간', '한국 장로교 주일'로 지정, 장로교 여러 교단이 형제 자매임을 고백하고 일치 의식을 확인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1999년 8월 21일, 18쪽.)
2000년 일치 간담회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김도빈 목사)는 2000년 2월 내장산 관광호텔에서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 간담회를 열었다. 그 모임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전병금 목사(한장연 서기)는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 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들로서 △ 교단 간의 강단교류 활성화 △ 총회에 상호사절단 파견 △ 2000년 장로교 총회 개회예배 함께 드리기 △ 같은 지역 안에서의 연합예배와 성찬식 △ WARC(세계 개혁교회 연맹) 참여로 국제 교회와의 연합 강화 등을 제안했다. 논찬에서 김재규 목사(대신 총회장)는 "한국교회에서 사상 논쟁이 사라졌다는 발제에 동감을 표하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대화하면 사상 논쟁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일치를 위해 "우선 실현 가능한 선교, 예배에 대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자"고 주장했다. (기독교보, 2000년 2월 12일, 10쪽.)
소속 교단들의 신대원 원우회장 모임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예장합동 김도빈 목사)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 준비위원회는 5월 1일 장신대 대회의실에서 가입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제2차 회의를 갖고 한국장로교회는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은 한국장로교회의 화해와 협력,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계기를 마련코자 실시되는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이 날 참석한 원우회장들은 예장통합측, 예장합동측, 예장고신측, 기장측, 예장개혁측 등 11개 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이라고 한다. (교회연합신문, 2000년 5월 14일, 1쪽.)
6)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
갱신 그룹들의 일치에 대한 생각
예장합동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하여 예장통합 '바른목회 실천협의회'(회장: 손인웅 목사), 예장고신 '고신정신잇기 목회자협의회'(회장: 윤희구 목사), 기장 '21세기 목회자협의회'(회장: 전병금 목사) 등 장로교단들 중 대표적인 네 교단의 목회자협의회들이 1997년 11월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장로교 목회자 모임'을 갖는다. 그 모임에서 발표되는 선언문에는 "장로교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을 참회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목회자들이 일치와 연합된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독신문, 1997년 10월 29일, 22쪽.)
1998년, 한국장로교 목회자협의회의 '교회 개혁을 위한 선언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등 장로교 4개 교단의 개혁성향의 목회자 그룹들로 구성된 한국장로교 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1998년 6월 경기도 광주 소망수양관에서 수련회를 가진 후 '교회개혁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교회 도덕적 타락현상과 대 사회 영향력 약화 현상을 뿌리뽑기 위해 목회자 개혁과 한국교회 일치가 시급하다고 천명하였다. 특히,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 현상에 대해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고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진단하였다. (기독신문, 1998년 6월 24일, 23쪽.)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변질 즉 자유주의 신학의 포용 문제이다. 오늘날 교회 개혁의 첫번째 과제는 신학적 순수성의 회복이다.
목회자협의회 발족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에서 교회갱신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협의회들은 1998년 11월 26일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에서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창립 총회를 열었다. 창립 총회에 참여하는 협의회들은 다음과 같은 14개의 교단들에 소속해 있다: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 예장(대신), 예장(합신), 기감, 예성, 기성, 기침, 나사렛,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한목협'의 설립 취지는, 비신학적, 비정치적 한도 내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도모하며 특히 성직자와 교회의 윤리성 회복을 통해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까지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총회 직전 창립기념강좌 때는 이원규 교수(감신대)와 이성구 목사(고신정신잇기 목회자협의회 총무)의 강의가 있고, 창립총회는 김진호 목사(감리교)의 사회로 대표회장과 공동회장 등 임원을 선출할 예정이다. 총회 직후에는, 창립헌신예배와 성찬식을 갖는데, 창립헌신예배는 전병금 목사(기장측)의 사회, 옥한흠 목사(예장합동)의 설교, 이동원 목사(침례교)의 기도와 현해춘 목사(나사렛 성결회)의 축도로 이어질 계획이다. 또 박경조 신부(성공회)의 창립 선언문 낭독, 유의웅 목사(예장통합측 총회장)와 장 상 총장(이화여대)의 축사, 정철범 주교(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대표회장, 성공회)와 지 덕 목사(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의 격려사 등의 순서가 포함될 예정이다. 창립선언문 초안 작성에는 김원배 목사(기장측)를 중심으로 김영만 목사(기하성), 임승안 목사(나사렛), 이성구 목사(고신) 등이 참여할 계획이다. (기독신문, 1998년 11월 11일, 23쪽; 기독교연합신문, 1998년 11월 15일, 1쪽.)
7)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회[예장연]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회(대표회장: 김경희 목사)는 2000년 1월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신년하례회를 가졌다. 이 날 예배 설교는 김의환 목사가 하였다. (교회연합신문, 2000년 1월 30일, 10쪽.) 그러나 예장연이 바로 가려면 신복음주의 정신을 가진 인사를 배제해야 할 것이다.
8) 복음주의 잡지와 학교들
(1)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개념의 정의에서 언급했듯이,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는 빌리 그레이엄에 의해 신복음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창간되었고 빌리 그레이엄이 이사장이며 신복음주의적 잡지들 가운데서 신복음주의의 대변지로서 계속 활약하였다.
최근의 한 예로서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고(故)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했고 "그는 오늘날 신약학의 탁월한 종합적 지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셨고 오류를 범하셨다고 말한 천주교 자유주의 신학자이었다. 또 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거부했고,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는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최초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Christian News, 1998년 9월 14일). 무디 성경학교의 죠셉 스토웰, 워런 위어스비, 그리고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회(IFCA) 교단의 에드 답슨은 천주교인들과 더불어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자문편집위원들'이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10월 15일.)
(2) 미국, 풀러(Fuller) 신학교
풀러 신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천주교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를 강사로 열거하였다(Calvary Contender, 1984년 10월 15일).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셨고 오류를 범하셨다고 말한 자유주의 신학자이었다. 또 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거부했고,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는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최초로 종신직 가톨릭 교수가 되었다(Christian News, 1998년 9월 14일).
풀러(Fuller) 신학교는 처음에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어느날 이 교리를 거부했고, 또한 은사운동을 조장하기 시작했다(Christian News, 1998년 6월 29일). 이 학교는 이제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일.)
아더 후크는 1999년 7월 27일 풀러 신학교를 방문하고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그는 신학부의 인기 있는 죤 골딘게이 교수의 강의실에 참석했는데, 골딘게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여리고성이 있었고 그 성벽들이 무너져내렸다는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 . . . 아마 이것은 비유일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불신앙이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9월 15일.)
"풀러 신학교에서 설교를 가르치는 '목사요 교사요 여자 성직자요 학자요 저술가'인 마가렛 서스터는 1999년 4월 20일 안식교가 후원한 위성 생중계 '대화식 세미나'를 위한 초청 설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Fundamental Digest, 1999년 7-8월호; Calvary Contender, 1999년 9월 15일).
(3) 미국, 달라스(Dallas) 신학교
1992년 2월 4일부터 7일까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브루스 메츠거 교수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강연했다. 그는 성경이 진실성과 역사성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Calvary Contender, 1992년 9월 1일.)
달라스 신학교는 위클립 성경번역 선교회와 협력하는데, 위클립 성경번역 선교회는 오래 전부터 천주교인들, 자유주의 교단들, 및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하다. (Calvary Contender, 1993년 9월 15일.)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와 관계하여 31년간 봉사했고 세계복음화 로잔위원회 명예 평생회장인 레이턴 포드는 1997년 5월 달라스 신학교 졸업식 연사이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협동편집자 앨리스터 맥그레이스는 1997년 경건회에서 그리피스 토마스 기념강연을 하였다.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인'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을 잘못된 종교체제로 인도하는 자가 '주목할 만한 자'라고 칭송되어야 하는가? 달라스 신학교 교수들은 1997년에 프로미스 키퍼즈 집회에서 그리고 휫튼 대학, 무디 성경학교 및 브라이언 대학에서 강연했다. 달라스 신학교가 신복음주의적 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의심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Calvary Contender, 1998년 2월 1일).
(4) 미국, 무디(Moody)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은 1996년 5월 1일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서 모인 전국 전도협의회에 참석하였고 거기에서 그는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연합될 때만 역사적으로 움직이셨음을 상기시켰다." 당시 전도협의회의 회장이었던 죠 앨드리히도 연합은 모든 영적 질병들을 위한 보편적 치료약이라고 주장했다(Voice, 1998년 5-6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연합을 진리보다 높이지 않는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 때문에 나뉘는 것이 더 낫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7월 15일).
교장 죠셉 스토웰의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간의 순회설교 일정은 프로미스 키퍼스, 빌 하이벨즈의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 빌리 그레이엄의 코우브(The Cove), 미국 종교 방송협회, 달라스 신학교, 생명의 말씀사, 시다빌 대학(정규침례교회 총협의회의 인준받은 학교) 및 루이지애나 침례교대회 등을 포함한다. 조용한 전진으로 스토웰은 에큐메니칼 유산을 세우고 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1월 15일.)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과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데니스 로츠는 지난 달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이사회에 추가되었다(Alabama Baptists, 1999년 11월 11일). 스토웰은, 빌리 그레이엄이 설립자요 이사장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자문 편집인이다. 스토웰은 빌리 그레이엄 훈련센터에서 강연하였고, 그레이엄은 무디 성경학교의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강연하였다. 스토웰은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의 회원이며 프로미스 키퍼즈와 남침례교회에 관련된 행사들에서 강연했다. . . . 우리는 스토웰이 최근 수년 동안 무디 성경학교를 신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안으로 취하여 들어간 가속화된 단계를 보고 슬퍼한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2월 15일.)
(5) 미국, 고든-콘웰(Gordon-Conwell) 신학교
척 콜슨과 루이스 팔라우는 1999년 5월 1일부터 유효한 미국의 고든-콘웰 신학교의 이사들로 선출되었다. 친(親) 가톨릭적 교회연합운동가들로서, 그들은 고든-콘웰의 신복음주의적 입장에 잘 맞을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고든-콘웰의 이사장으로 일해 왔고 고든-콘웰은 지난 5년에 걸쳐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로부터 4백만불의 장학금을 받았다. 고든-콘웰의 힐탑(Hilltop)지는 죤 암스트롱, 앨리스테어 벡, 그리고 케이 아서 등의 교회연합운동가들을 가을학기 강사들로 열거한다. 지난 여러 해들에 고든-콘웰은 자유주의 연사들을 단에 세웠었다(예를 들어,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극단적 자유주의자인 제임스 포브즈). (Calvary Contender, 1991년 3월 15일; 1999년 9월 15일.)
(6) 미국, 리버티(Liberty) 대학교 및 신학교
제리 팔웰 박사의 1998년 4월호 내쇼널 리버티 저널은 다음과 같이 썼다: "리버티 침례교신학교는 하워드 핸드릭스 박사가, 게리 콜린스, ['성경으로 돌아가자' 프로의] 우드로 크롤, 죤 맥스웰, 스티븐 올포드, 제리 바인즈 및 죤 월보어드를 포함하는, 우리의 탁월한 방문교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웰은 케이 아더와 다른 이들과 함께 '예수 2000 성지순례단'을 위한 연사로서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그의 1998년 대집회 연사들은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과 죤 맥스웰(로버트 슐러 연사)을 포함한다. 위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은 다 에큐메니칼적인 연사들이다(Calvary Contender, 1998년 4월 15일).
제리 팔웰이 이끄는 리버티 대학교는 이제 남침례교단과 관련을 맺었다. 그 학교는 1999년 11월 버지니아 남침례교 보수주의자 모임에 공식적으로 가입하였다(Religion Today, 1999년 11월 17일). 새로운 관계는 남침례교회 학생들로 하여금 리버티 대학교에 다니도록 격려하고 그 학교에 대한 47,000개의 남침례교회들의 재정적 후원을 가능하게 만든다. 남침례교단 총회장 페이지 패터슨은 리버티 대학교의 남침례교단 가입은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응답이다"라고 말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2월 15일.)
(7)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 학우회는 개교 15주년 기념 찬양 축제에 총신대, 장신대 신대원 학우를 초청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동신학교의 김명혁 교수는 "그 동안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던 총신과 장신, 그리고 합신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울 뿐 . . . 역사는 종종 젊은이들의 순수한 헌신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한국교회 안에 이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였다(기독신보, 1995년 11월 18일, 17쪽).
(8) 총신대학교
1997년 5월 3일 총신대학교(총장: 김의환 목사)와 장신대학교(총장: 서정운 목사) 교직원 친선 체육대회가 장신대에서 열려 학교간 친선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양교에서 15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기독신문, 1997년 5월 14일, 21쪽).
9) 신복음주의 인물들
(1)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빌리 그레이엄의 '금세기의 책'인 내 모습 그대로(Just As I Am)라는 책의 서평에서,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빌리 [그레이엄]의 접근 방식이 모든 사람들, 즉 로마 천주교인, 그리스 정교회 교인, 자유주의자에게 열려 있고 따뜻하다는 것은 . . . 분명하다. 근본주의자들 외의 모든 사람에게[!].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중심주제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적 혈육인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그레이엄과 분리된 것은, 한 부류로서의 근본주의자들이 다른이들보다 더 위선적이고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직하다. 그들이 방법론에 관하여 그렇게 엄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영적 사역에서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죄악된 불순종이라고 믿는다. . . . 빌리는 기독교계를 나누는 많은 교리들을 힘써서 무시하고, 연합하는 것을 전공한다. . . . 그의 강조점은 신앙의 순결성보다 그것의 일체성에 있다. . . . 빌리는 신학적 차이점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낮춘다" (Christianity Today, 1997년 8월 11일; Calvary Contender, 1997년 9월 15일).
로버트 슐러와의 1997년 5월 31일 텔레비젼 대담에서 빌리 그레이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빛으로 향하며,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고, 그들은 주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Foundation, 1997년 5-6월호).
로버트 코팔(Robert Kofahl)은 그의 발언을 이렇게 논평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표현한 교리는 . . . 정확히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의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수년 동안 가르쳐 왔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행하고 성경이나 은혜의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이름과 구속 사역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어떤 이교도도, 만일 그가 '좋은 사람'이고 그가 믿는 바가 무엇이든지 그 믿는 바에 있어서 신실하다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다'는 관념이다"(Calvary Contender, 1997년 10월 15일).
오 디모데(O Timothy)의 편집자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천주교 대학들에서 명예 학위들을 받았고 천주교회의 복음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교회들[천주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주었다. 그는 교황이 전도자요 도덕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천주교회 주교들을 그의 강단에 초청하고 그의 결신 초청시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한다. 그는 유아 세례시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옥이 문자적으로 불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허용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현대주의자들[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다. 그는 변질된 성경 번역본들을 장려한다. 그는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기를 거절한다. 그는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다. 그는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9월 15일.)
2000년 1월 2일 폭스(Fox) 뉴스 인터뷰에서, 토니 스노우는 빌리 그레이엄에게 질문했다: "귀하께서 천국에 도착하실 때, 누가 먼저 말씀하실 것입니까, 귀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그레이엄은 대답했다: "제가 거기 도착할 때, 예수께서 저를 환영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잘하였다, 우리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가 '너는 잘못된 곳에 있구나'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스노우: "귀하는 귀하가 잘못된 곳에 있다는 말씀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정말 염려하십니까?" 그레이엄: "예, 왜냐하면 저는 의로운 사람이지 못했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제 개인의 삶에서 속하지 않는 대(臺) 위에 저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를 실제의 저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생각하는 것 같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신문들과 잡지들과 텔레비젼은 저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테레사 수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매우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1월 15일.)
우리가 성자가 아니며 심히 부족한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만하지 못한 종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듯이 표현된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요 우리의 구원이시다!
R. L. 히머스 박사는 크리스토퍼 케이건 박사와 함께 쓴 죽어가는 국가를 위한 설교라는 책에서 "통계에 의하면, 그레이엄 박사의 전도 대회들의 결실로서 교회들에 등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숫자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히머스와 케이건은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에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하는 자들 중에 어떤 교회에 교인이 되어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 조사들을 인용한다. 그들은 또한 주장하기를,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은 그 대회들이 열린 지역들의 도덕적 분위기를 도와주지 못했다고 한다.
히머스는 한 때 그레이엄의 열렬한 후원자이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낙태와 같은 죄에 대해 강한 공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사람이 동성애자로 태어난다고 말함으로써 변명했다. 마침내 히머스는 그레이엄의 촬스 피니 스타일의 '결심' 신학과, 유대인들과 회교도들과 다른 비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 신앙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견해로 인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히머스는 위의 책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사역을 믿었다. 나는 그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추종자이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을 신뢰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속임을 당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교황을 위대한 도덕적 지도자요 전도자라고 찬양하고 테레사 수녀와 그 동료들을 기독교의 고상한 모범들로 말했을 때, 나는 이 천주교인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결국 좋은 그리스도인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그의 판단이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각별히 빌리 그레이엄을 만났고 그와 대화하였다. 나는 심지어 그와 함께 전문적 사진들을 몇 장 찍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의 결심주의(decisionism, 사람이 결심하면 믿었다고 간주하는 생각)의 오류들을 깨닫기 시작하기 전까지 매우 확실하고 매우 강하게 그레이엄 박사의 영향 아래 있었다." (Christian News, 1999년 9월 27일, 1, 18쪽.)
미국의 남침례교회는 침례교세계연맹의 주요 회원 교단이다. 데스몬드 투투는 1998년 침례교세계연맹 모임에서 연설했다(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침례교세계연맹의 1999년 10월-12월호 뱁티스트 월드(Baptist World)는 빌리 그레이엄을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라고 높여 말한 글을 실었고, 급진적 자유주의자 본훼퍼와 마틴 루터 킹과 오스카 로메로와 같은 이들을 "20세기의 선지자들"이라고 불렀다. 빌리 킴[김장환 목사]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침례교세계연맹의 회장으로 지명되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2월 15일.) 혼란스러운 일들이다.
(2) 빌 브라이트(Bill Bright, CCC 총재)
1998년의 '금식과 기도' 집회는 미션 아메리카와 대학생 선교회의 공동후원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에큐메니칼 유명인사들인데, 빌 매카트니(프로미스 키퍼스), 프랭클린 그레이엄, 돈 아규(미국 복음주의자 협회), 폴 시더, 케이 아서, 빌과 보넷 브라잇, 애드리안 로저스, 팻 로벗슨, 토마스 트래스크(하나님의 성회) 및 데이빗 브라이언트가 포함되어 있다. 빌리 그레이엄과 존 퍼킨스와 빌 브라잇은 명예공동회장이다. 위에 열거된 다른 이들은 실행위원회에 속해 있다. 스티브 그린, 로벗슨, 시더 그리고 브라잇은 한 시간을 인도한다. 다른 시간은 로저스와 매카트니에 의해 인도된다. 그것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위성중계로 미국 전역에 생방송된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10월 1일).
(3) 제이 아이 패커(J. I. Packer)
신복음주의 신학자 J. I. 패커는 "2천년대 문앞에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1995년 대회에서 근본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평하여 말했다: "보수적 개신교인들과 동방 정교회 교인들과 주류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내가 말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연합할 수 있는가? 구원 과정의 세부 사항들과 그 과정에서의 교회의 위치에 관한 우리가 이미 아는 그리고 계속되는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연합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 . 확실히, 우리의 세 전통들 내에서 근본주의자들은 이 일에 우리와 연합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긍휼이 개념적으로 정확한 사람들 위에 자동적으로 머물며, 개념적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자동적으로 보류되는 것처럼, 논쟁적 정통주의(contentious orthodoxism)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근본주의자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포커스 언 미션즈의 회장 레이 아담스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패커의] 욕설어린 비난은 이 유명한 신학자와 성경 강해자를 위해 좋은 징조는 아니다. 슬프게도, 그는 오류와 분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많은 무리와 함께 행하기를 선택한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논쟁적 정통주의의 길'이라고 정의될 수 없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9월 15일.)
(4) 에프 에프 브루스(F. F. Bruce)
스코틀랜드 신학자 에프 에프 브루스는 복음주의자로 칭송을 받았으나, 많은 자유주의 신학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Calvary Contender, 1990년 11월 15일). 그는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를 루터와 칼빈과 웨슬레와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보았다. 그는 바르트의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경의 어떤 파괴적 고등비평을 받아들였고, 바울이 여성의 지도자 역할들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루스는 "신복음주의자들이 그것 때문에 비평되는 포용주의, 예를 들어 빌리 그레이엄의 포용적 전도대회들에서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무디 먼슬리 1986년 6월호는 그를 '복음주의' 지도자로 높여 말하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일.)
(5) 제리 팔웰(Jerry Falwell)
제리 팔웰은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미국의 한 유명 인사로서 리버티 대학교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근래에 그는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히 지내왔고 빌리 그레이엄과도 가까와졌다. 1997년 5월 3일 리버티 대학교 제24회 졸업식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연설을 하였다(National Liberty Journal, 1997년 6월호).
주의 검(Sword of the Lord) 편집자 쉘톤 스미스는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둘은 다 근본주의자들로 시작하였다! 그 둘은 다 큰 성공을 이루었고 국제적 인물로 부상되었다! 그 둘은 다 그들의 사역의 거점을 그들의 근본주의적 기지로부터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진영으로 변경하였다. 표준과 분리의 원리들은 사라졌다! 타협은 규범이 되었다! (50년대에) 그레이엄에 의해 채택된 에큐메니칼 태도는 이제 리버티 대학교에서 기정화된 경기 방법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진리와 오류는 자유로이 섞인다. 바른 교리는 교제를 위하여 보류된다. 한때 성경적 권위의 강한 목소리가 있었던 곳에, 이제는 적응과 편의의 정신이 우세하다" (Calvary Contender, 1997년 6월 15일).
(6)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
1963년 씨 에스 루이스의 죽음 이후, 그의 책들의 판매는 연간 2백만불에 이르렀고, 그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일부 독자들에 의하여 최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라는 등급을 얻었다. 그러나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그의 사상의 '약한 점들'로서 속죄에 대한 그의 개념, 그가 죄의 용서에 대해 논의할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점, 세례중생론에 대한 그의 환대, 그리고 성경 영감에 대한 그의 비(非)무오적(無誤的) 견해, 거기에 덧붙여 연옥과 및 불신자로 이 세상을 떠난 일부 사람들의 최종적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긍정 등을 열거하였다. 마틴 로이드-죤스는 루이스가 과연 크리스챤이었는지 의심하였다. 루이스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다. 그는 또한 몰몬교인들에게 좋은 영접을 받았다. 그는 선하게 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중세 시대의 개념을 가르쳤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선하게 되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입된 은혜에 의한 구원은 전혀 은혜가 아니다(Christian News, 1998년 6월 29일). 루이스의 신학은 치명적 결함이 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9월 15일.)
(7) 토니 캠폴로(Tony Campolo)
미국 CNN 방송의 크로스파이어(Crossfire) 프로그램에서, 토니 캠폴로는 예수께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예수께서 오직 그리스도인들 속에만 살아계신다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중의 한 대표적 인물이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5일.)
(8) 김의환 박사
1997년 5월에 열렸던 고(故)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평가하는 '제1회 죽산 세미나'에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한철하 박사는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 사상을 전승한 '사도적 신학,' '바른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한편 총신대학교 총장인 김의환 박사는 "박 박사는 선교사들이 전수한 신학을 보다 체계화하고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보수신학을 수호하고 전수했으며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을 극복, 결과적으로 우리 교단[합동측 교단]을 만들고 지켜왔다"고 평가하였다. (기독신문, 1997년 6월 4일, 7, 21쪽.)
늦게나마 박형룡 신학의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 박형룡 박사는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주의 충성된 종이었고 자유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신복음주의 바람에 대처하여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웠던 분이셨다.
그러나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이라는 김의환 박사의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박형룡 박사는 '한국의 메이천'이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그가 메이천 박사처럼 자유주의를 철저하게 비평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고 변호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이나 박형룡의 사상을 아는 자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메이천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비평 뿐만 아니라 또한 복음주의의 타협적 입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평하였다. 그는 신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가지고 빌리 그레이엄과 같이 그들과 협력적 전도활동을 하며 배교적인 교단들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박형룡, 신복음주의 비평 <1971>, 26-58쪽).
그러므로 박형룡 신학에 대한 평가는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이러한 점을 바르게 다루지 않고서는 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날 예장합동측 목사들이 박형룡 박사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작 그 교단과 신학교에서는 그의 보수주의적 정신, 분별력 있는 바른 입장은 사라져가고 있다.
10) 복음주의 교단들
(1) 미국, 남침례교회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침례교세계연맹에서 가장 큰 회원교회이다. 침례교세계연맹 회원 교회들의 다수가 세계교회협의회와 관계가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침례교세계연맹의 회원 교회들은 약 15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여섯 번의 침례교세계연맹 대회에서 연설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그 단체를 후원하라고 격려하였다. 또 1995년 침례교세계연맹은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Baptist World, 1997년 7-9월호.)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나 침례교세계연맹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배교적 단체들이다.
1998년 3월 실행위원회 모임에서, 침례교세계연맹 총재 닐슨 패니니는, "신학은 때때로 우리를 분열시키지만, 선교와 전도는 우리를 연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Baptist World, 1998년 7-9월호). 빌리 그레이엄이 수년 전에 그와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빌리 그레이엄과 코리타 스카트 킹은 1999년 1월 9-11일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릴 '인종차별반대 국제침례교회 지도자회의'의 공동회장이 될 것이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이 배교적 침례교세계연맹의 회원교단이다.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라고 알려진 제리 팔웰은 최근에 남침례교단에 가입한 바 있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5일.) 1995년에 40,039교회, 1,566만 교인을 가진 세계 제1의 대교단인 미국의 남침례교단 안에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 교단이 배교적 침례교세계연맹의 회원교단이라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수천명의 남침례교회 목사들과 수십만명의 남침례교회 평신도들은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들이다. 프리메이슨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행위구원을 가르친다. 프리메이슨은 몰몬교와 똑같이 반(反)기독교적이다(Christian News, 1998년 6월 1일).
(2)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1997년 7월, 예장합동측, 고신측, 통합측 3개 교단의 전국 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대구에서 제4차 연석회의를 열었는데, 그들은 결의문에서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면서 첫번째 내용으로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기독교보, 1997년 7월 12일, 1쪽.) 각 교단들의 지도적 장로들이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예장합동(총회장 길자연 목사)과 예장통합(총회장 유의웅 목사)은 1999년 9월 제84차 총회시 개회예배를 함께 드리고 성찬식을 합동으로 거행하기로 계획한다. 또한 양 교단은 이에 앞서 양 교단 화해와 연합의 상징으로 내년 중 구국기도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양 교단 임원진은 이외에도 합동, 통합의 신학 교류를 위해 '총신대-장신대 신학포럼'을 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소속 교단에서 서로 노력키로 했으며, 1999년 1월에 개최되는 양 교단의 신년하례회에는 상대방 총회장을 초청하여 축사를 하도록 했다. (기독교보, 1998년 12월 26일, 2쪽.)
1999년 1월 예장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예장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서울 신림동 왕성교회)를 초청한 가운데 신년하례회를 가졌다.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하례회에서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은 믿음과 사랑을 녹여 연합과 일치로 모일 때만 가능하다"면서 "앞으로 합동측과 함께하는 여름 구국기도회와 가을 총회 개회예배를 통해 한국장로교 일치와 연합에 도움이 되며 세계 선교와 봉사에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축사에 나선 예장합동측 길자연 총회장은 "하례회 초청에 감사하고 장족의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면서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연합신문, 1999년 1월 10일, 15쪽.)
1999년 예장 총회 제83회기 총대를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이상이 예장통합과의 강단 교류와 신학 교류, 연합 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신문, 1999년 3월 3일, 1쪽.)
1999년 6월 27일 주일오후예배때 예장합동측의 역사적 교회인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영락교회의 이철신 목사와 장로 30여명과 성가대원 100여명이 승동교회의 오후 3시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또 8월 22일에는, 승동교회가 영락교회를 방문하고 예배를 인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독신문, 1999년 6월 30일, 19쪽.)
얼마 전 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의 왕성교회와 통합측 총회장 유의웅 목사의 도림교회가 이미 이런 식으로 강단교류를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예장합동측이 총회적으로 불건전한 교단과 강단교류를 금한다는 결의를 한 바가 있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켜왔기 때문에, 지난 번의 총회장의 행위나 이번 승동교회의 행위는 거룩한 총회의 결의를 무시한 무질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러한 강단교류가 합당한 일이라면, 먼저 총회적 논의를 통해 총회 결의를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2000년 3월, 한국기독교 교단총무회(회장: 김상학 목사)는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회의를 열고 교회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 움직임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단총무회는 회장에 김상학 목사(예장통합), 부회장에 서성수 목사(예장합동), 총무 심군식 목사(예장고신), 서기 한창영 목사(예장합동보수), 회계 박봉규 목사(예장개혁합신), 감사에 양회협 목사(침례교), 이요한 목사(감리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연합신문, 2000년 3월 19일, 1쪽.) 오늘날 자유주의가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교단 목사들의 입장은 이전보다 더욱 흐려졌다.
(3)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측)
1997년 예장대신측의 전총무인 조순태 목사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이라는 글에서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 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기독교보, 1997년 6월 21일, 3쪽).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심히 정신없고 무책임하고 잘못된 것이며, 그런 글이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로 알려져 있는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에 의해서 쓰여졌고 또 고신측 교단의 기관지에 실렸다는 것은 대신측과 고신측의 넓어진 노선의 증거로서 슬픈 일이다.
(4)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1997년 예장고신측 총무 심군식 목사는 "연합운동의 자세와 방향"이라는 글에서 사회적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 성향을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단합된 연합운동과 사업으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기독교보, 1997년 7월 5일, 3쪽).
예장고신측 총회임원회(총회장: 조긍천 목사)는 2000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될 한국 장로교 대회에 교단적으로 참가하기로 했고 한국의 장로교가 함께하는 연합행사에 교단이 적극 참여하여 장로교 연합과 성장에 이바지하기로 하였다(기독교보, 2000년 4월 1일, 1쪽).
11) 기타
(1) 진화론 포용
크리스챤 뉴스 1998년 7월 6일자는 신비주의(occult)에 대한 데이브 헌트의 최근의 책을 여러 곳 인용하면서, 천주교회, 교황,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빌리 그레이엄, 프로미스 키퍼즈 등 기타 많은 교회 단체들이 오늘날 진화론(進化論)과 보조를 함께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6일 창조를 옹호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 조차도 유신론적 진화론(창조와 진화론을 함께 믿는 견해)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휴 로스의 책들을 선전하여왔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8월 1일.)
(2)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포용
복음주의 인사들 다수가 로버트 슐러에 대해 포용적이며 단상에 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자신의 자기존중의 철학에 일치시키기 위해 여러 성경교리들을 재해석하였다. 그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기존중을 제공하는 예수이다. 그의 복음은 부정적 자기 개념들을 긍정적 개념들로 대치하는 것이다. 슐러에게, 죄란 단순히 자기존중의 결핍이다. 그에게 가장 큰 악은 성경적 방식으로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의 자기존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슐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는 보편구원론자다. 그의 목표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이해하고 누리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노만 빈센트 피일의 제자이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7월 15일.)
로버트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는 1999년 1월에 다음과 같은 연사들을 세웠다: 토니 캠폴로, 빌 하이벨즈, 루이스 팔라우, 죤 맥스웰, 윌리엄 베네트(천주교인), 마이클 모인한 신부, 그리고 한국의 김선도 감독 등이다. (Christianity Today, 1999년 10월 4일; Calvary Contender, 1999년 11월 15일.)
결론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문제는, 비록 20세기 초엽과 중엽에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이었지만,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보수적 교회들은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어떤 신학적 탈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의 신학적 탈선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신학적 탈선들은 이미 자유주의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고(故)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를 '신자유주의 내지 신이단운동'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던 것이다(박형룡, 신복음주의 비평, 47쪽).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은 그러한 신학적 변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제의 문제에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의 문제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평하거나 배격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는 자신의 교단이 고의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할 때도 그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며 그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성경에 밝히 계시되고 전통적으로 믿어온 진리들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싸우려는 마음이 약하며, 성경적 분리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 교훈을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이런 태도는 분명히 성경적 분리의 교훈을 어기는 일이요 주께 대한 불성실과 불순종이다. 그러므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현대 교회의 배교와 불신앙에 대해 타협하는 비성경적 입장에 불과하다. 잠언 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잭 스티븐스는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우쉽 비지터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자의 마음가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복음으로 세상을 접촉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그것이 더 빠를수록 더 좋다고 본다. 또 그는 그것을 하기 위해 그 밖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는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을 포기하며, 그가 진전시키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파괴한다. 그는 외적인 성공을 거두며 참으로 형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매우 진실하며 자기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의 형제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잘못되어 있다"(Calvary Contender, 1998년 3월 1일).
오늘날 우리 나라의 많은 보수 교회들은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별력 없는 많은 보수적 목사들은 화평과 일치와 사랑을 표방하면서 성경적 분리의 교훈을 확신하고 지키려 하는 자들을 비난한다. 많은 목사들이, 비록 하나님의 다른 일들에 대해 열심이 있어 보이나, 교회의 교리적 순결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교회를 구원 계획의 목표로 삼으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큰 잘못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명백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기독교는 마땅히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해야 하며, 자유주의자들을 참된 교회의 교제로부터 제명 출교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신복음주의는 악에 대한 타협이며 주께 대한 불충성이다. 오늘날 배교와 타협과 혼동이 점점 가득해지는 때에, 하나님의 뜻은 배교로부터의 명백한 분리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단과 오류로부터의 분리를 명한다.
로마서 16:17,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고린도후서 6:14-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 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 ". . . 성도에게 던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김효성 목사/http://www.oldfaith.net/01exposit(pdf).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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