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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왕씨, 연안차씨, 문화류씨의
안녕하세요?
전에 실명을 쓰는 원칙을 알지 못해서
번거롭게 해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개성왕씨 중앙종친회에
메일로 보낸 것입니다. 아직 답장이 없고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아서 반응을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제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이지만
이미 문화류씨 문중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천명된
사항입니다. 귀문(貴門)도 깊게 관여되어 있고,
조상의 역사를 사실에 맞게 기록하고 아는
것은 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것을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릴 수 있는 적당한 게시판이
보이지 않아서 이곳에 올리니 운영자님께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적절한 곳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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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개성왕씨 중앙종친회 귀중
발신: 류주환 (연락처는 하단에 있습니다)
제목: 개성왕씨, 연안차씨, 문화류씨의
계통에 관하여 드리는 말씀
요약:
개성왕씨 대동보에서는 현재 황제(黃帝)에서
시작되고 왕씨, 차씨, 류씨 등이 등장하는
계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원파록"인데,
맨 처음 원파록이 실린 것이 문화류씨의 족보입니다.
그것이 연안차씨의 족보에 실리고 후에
개성왕씨 족보에도 실렸습니다.
그런데 원파록의 근본 출처는 "차원부설원기"입니다.
그리고 최근 다년간의 연구에 의해
"차원부설원기"가 저자와 내용 모두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원파록은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미 문화류씨 집안은 원파록을 완전
폐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실정을 상세하게
알리고 개성왕씨 집안에서도
위서(僞書) "차원부설원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파록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귀문(貴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우선 저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문화류씨 홈페이지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충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귀문의 계통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외람되다 여기지 말아 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전화(02-521-0038)를 시도했는데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에 수소문 한 끝에
상주의 종친회로부터 주소를 받아서 이렇게
우편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의 개성왕씨 대동보는
그 내력을 그간 연안차씨와 문화류씨 집안에서
받아들였던 이른바 "류차동원설(柳車同源說)"
혹은 "황제연원설(黃帝淵源說)"을 받아들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 다 제가 처음 명명한 용어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귀 대동보에 실려 있는
"보계변증기(譜系辨證記)"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에 걸쳐
이 황제연원설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다면 귀 왕문(王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 하는 것과 추후의 대응 방향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일 귀문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면 사실을 상세히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귀문에 연락을 드리는
목적입니다. 저희 류문(柳門)에서는
2004년 즈음부터 계기가 있어
류차동원설(=황제연원설)을 혼신의 노력을 다해
깊이 살펴보았고, 그 결과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의 의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중 전체의 공개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는 그 사실을 대전 뿌리공원의
문화류씨 유래비, 문화류씨세보(대동보: 무자보),
총회, 공식 홈페이지, 종보 등을 통해 세상에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문화류씨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류차동원설을
사실로 받아들여 집안의 역사를 기록한
연안차씨와 개성왕씨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연안차씨 문중은
문화류씨의 시조이신 류차달(柳車達)을
문화류씨의 시조가 아니며
성도 류씨가 아니라 차씨라 하는 주장으로
소위 류차문제(柳車問題)를 일으켜서
(대략 2002년 정도부터)
결국 류문의 궁구(窮究)를 통해 류차동원설을
폐기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래서 차문(車門)에게는, 그 폐기가 세상에
천명되면서 자연스레 확실하게 알려졌습니다.
반면에 귀 왕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류문이나
다른 출처로부터 전달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데,
저도 그동안 몇 번의 시도는 해보았지만
제대로 이런 논의를 귀문에 드릴 기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류차문제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문중이 더 있는데,
순천박씨 문중(박팽년 관련)과
진양하씨 문중(하위지, 하륜 관련)입니다.
이들 문중에는 제가 임원분들과
연락이 닿아 이미 상세하게 전말을
전해드렸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면
황제연원설은 조선 중기에 비로소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꾸며진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黃帝, 王祖明, 王受兢, 車無一,
車建申, 류/차承穡, 류/차/왕恭道 등이
등장하는 장황한 계보는
모두 믿을 근거가 없어집니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신봉되어온 것이지만
잘못되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류문에서는
그런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고 오랜 기간
동안의 격론을 통해서 여전히 진실일 수밖에
없음을 검증한 다음 그 설을 폐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귀문에서
이미 인지하고 계실지도 몰라서
이번 글에서는 상세하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만일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원하신다면 제게 다시 연락을 주시면
그때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해 보여서
가급적 간략하게 언급을 하겠습니다.
황제연원설은 문헌으로 가장 일찍 기록된 것이
문화류씨의 기사보(1689년)입니다.
여기에 원파록(源派錄)이 실렸고,
그것이 연안차씨 족보(1708년)와
개성왕씨 족보(1798)에 옮겨졌고,
그 후인 1812년에 강남보(江南譜)라는
계보가 추가되어 현재의 족보에 실린 계통이
완성되었습니다. 우선 이 강남보는 위조
되었음이 연안차씨강렬공파보(剛烈公波譜)에
밝혀져 있습니다. 문화류씨 기사보의
원파록에는 대략 세 가지의
문헌이 원파의 근거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두 가지는 사실 검증을 할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의 자료이며,
원 사료가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원파록의 가장 핵심이며 모든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차원부설원기(車原頫雪冤記)"(이하 '설원기')
라는 문헌입니다. 그런데 다년간의 사학계의
연구와 재야 사학가들의 고찰을 통해
이 설원기가 위서(僞書)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설원기는 주저자가
박팽년으로 되어 있고 서문을 하위지가
썼다고 나오며, 그 외 각종 저자가
수 십 명이 등장하는데, 이 저자들도
모두 조작이며, 내용도 모두 위조이고,
책에 쓰여 있는 저작 날짜도 명백히
위조입니다. 그 중심 등장인물인
차원부(車原頫)라는 인물 자체가 조선에서
내렸다는 시호(諡號)도 조작임이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료인
"일성록(日省錄)"에서 증명되고,
과거급제는 사실이 아니고, 벼슬의 전력도
조작임이 확실시 되고, 그 행적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설원기가
위서이므로, 그 역사적 실체는 물론
실재(實在)조차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설원기의 저작 목적은 오로지
집안의 내력을 꾸며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설원기는 연안차씨가
문화류씨와 뿌리가 같음을 선언적으로
제시하고 있고 개성왕씨 역시 같은
계통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원파록의 근간입니다.
그리고, 원파록에 언급되어 있는 다른
사료들이 설원기가 조작된 것과 동일한 시기
(임진왜란 전)에 세상에 나온 것으로
파악되는데, 설원기의 위작자가 설원기를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함께
조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들이 합해지고 거기에 앞에 언급한
강남보가 합해져 현재의 원파록이 완성된
것입니다. 설원기는 난삽한 문장과 내용으로
이루어진 문헌이고, 외견상 철저하게
왕명(王命)과 대학자들과 대신들의 권위를
가장하고 있어 지금까지 사림(士林)의
유학자들까지도 속여 왔습니다. 그런데
정교하게 분석해 보기 시작하면 스스로
위작임을 명백히 드러내는 허망한 문헌입니다.
그리고 설원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학계의
논문도 여러 편 등장했습니다. 만일 이 문헌이
더 정교하게 조작되었거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모호하게 작성되어 있었다면,
류문에서도 조상들께서 수 백년 동안 신봉해온
원파록의 폐기라는 엄청난 일까지는 감히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데도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향후 귀(貴) 왕문에서도, 차문에서도,
또한 여타의 다른 많은 기록에서도
황제(黃帝)로 이어지는 계통은
삭제되고,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계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각종 역사 사전에 '차원부'와
'차원부설원기'
('운암선생설원록' 등의 다수의 이본이 있음)
등이 버젓이 올라가 있는데, 저는 이미
관계 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과 연락을
취해서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내용을 정정하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을 받은 상태입니다.
사전의 개정 작업이 한두 건이 관계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런 실정인데 문중의 계통의 기록이
그 위서(僞書) 설원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면
문제가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나서서 이런 연락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조심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그냥 기다려서 저절로 문제가
인지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알려 드리는 것이
도리일 듯하여, 다시 귀 문중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중과
역사적 차원의 문제임을 깊이 혜량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저에게 답글을
주신다면 가급적이면 아래의 이메일 주소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상의
내용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 주소를
밝힌 두 홈페이지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을 주시면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귀문의 무궁한 발전을 축원하오며,
이만 줄입니다.
2011년 12월 26일
대전에서 류주환 배상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고분자공학과 교수
문화류씨대종회 홈페이지(http://moonhwaryu.kr/)운영자
홈페이지: http://kenji.cnu.ac.kr/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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