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전쟁(薔薇戰爭 Wars of the Roses)
붉은 장미 휘장을 한 랭카스트가(家)와 흰 장미 휘장을 한 요크가(家)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512년전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깐요.
지금 경기도 부천시 도당공원에 가면 백만대군들이 제저끔 자태를 뽑내면 싸우고 있습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도 식힐 겸 꽃쌈구경을 나섰지요. 이제막 꽃잎을 열고 미혹한 자태를 뽑내며 도전의욕을 불태우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싸움에서 밀려나 통째로 시들어가는 늙은 것도 있고, 눈물을 쏟듯 꽃잎을 펑펑 내리는 놈도 있어 다툼의 참혹함이 속임없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부천 도당공원내 장미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 문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꽃송이를 한번 세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세어보기조차 어렵게 하려고 입구 돌간판에다 아예 '백 만 송이' 라고 일러듣기고 있습니다. 누가 세어보았느냐고요? 글쎄다.
'백 만 송이 장미' 어디서 많이 들은 듯 합니다. 문득 어느 여류가수가 부른 노랫말이 귀가로 스쳤습니다. 또 지극한 사랑을 얻고자 백 송이 장미를 백 만 송이처럼 여인에게 건네는 남자의 열정이 떠 오릅니다. 떼지어 찾아드는 유치원 꼬마들의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장료? 잘 감상하시고, 또 꽃밭에 들어가 사진 찍지 마시고 수고하신 분들께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이면 됩니다.
장미공원[1]
이 지구상에서 피고지는 수 만가지 꽃들 가운데서 장미만큼 인구에 회자된 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그러고보면 한 마디로 장미는 인간사와 연관되어 시끄러운 꽃임에 틀림이 없지요. 장미가 가진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가시의 상반된 이미지 때문일 겁니다. 특히 서구 문학작품에는 단골로 등장하여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소설가 최인훈(崔仁勳)는 그의 작품 <회색인(灰色人)>에 '장미꽃을 빼고서 서양 문학을 말하는 것은 달을 빼고 이태백이를 말하는 것과 같다.'고 썼겠습니까.
장미공원[2]
장미공원을 다돌아도 우리나라 이름을 가진 품종은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네들란드 뿐 아니라 '사쿠라가이(Sakuragai)', '호노카(Honoka)', '와라베우타(Warabeuta)'등 일본명을 가진 장미는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게 없다니 갑자기 마음이 우울해 집니다.
우리나라 식물에서 장미과에 속하는 것은, 목본(木本)으로 물싸리, 월계화, 가시나무, 찔레나무, 해당화가 있고, 초본(草本)으로 뱀딸기, 딱지꽃, 양지꽃 등이 있다고 합니다. 찔레꽃에 색상 하나 쉽게 입힐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앞으로 생존을 하자면 '종(種)의 전쟁'에서 이겨내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화훼관련 종사자에 따르면 꽃으로 인하여 해외로 지불되는 외화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장미공원[3]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임금이 신하에게 장미를 상(賞)으로 내린 바 있습니다. 조선 왕조 태종 2년 때, 예문관(藝文館) 관원들을 모아 장미를 상으로 내리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후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데, 이를 일러 '장미음(薔薇飮 )'이라 하였답니다. 장미 대신 감투를 통째로 하사하는 시대풍조에 식상한 이들이 생각할 때, 참으로, 참으로 근사하고 멋진 시상제도입니다.
장미공원[4]
프랑스에서 장미의 향으로 만든 향수와 화장품은 전세계인이 선호합니다. 향의 원료가 되는 장미유(薔薇油)는 장미꽃과 물을 함께 증류하여 얻는 휘발성이 강한 향유인데, 담황색 액체로 특이한 방향이 있습니다. 이를 교미(矯味), 교취제(矯臭劑)로도 쓰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꽃빛이 화사하면 향이 없는 꽃에 비하여 장미는 두 가지 것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장미로 술을 빚기도 했고, 화전(花煎)으로 지져먹기도 했으며, 녹말과 꿀물로 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답니다. 그리고 살담배를 담아 피우는 파이프도 장미뿌리로 만든 게 명품이랍니다. 명품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챙겨두어야할 품목입니다.
장미공원[5]
장미라는 단어를 가진 어휘들이 모두 좋은 것을 상징 하는 게 아닙니다. 일례로 장미소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디 이탈리아 시인 작가인 단눈치오(D' Annunzio,G)의 소설 <죽음의 승리>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세기말적인 퇴페한 냄새와 색체가 짙은 강력한 연애소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쓰임이 많은 것은 항상 귀천의 자리에서도 두루 쓰이는가 봅니다.
또 한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흔히 색상을 얘기할 때, 장미색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형성된 이 말은 본디 짙은홍색이나 담홍색을 기리킬 때 사용했지요. 그러나 장미꽃의 색깔이 개량으로 다양화된 지금, 장미색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겠지요. 어휘도 용처(用處)를 잃고 늙으면 무덤으로 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장미공원[6]
중학교 3학년 때라고 기억됩니다. 선생님이 장난질을 친 한 학생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장미촌'이 뭐냐?" 장난질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문제의 학생은 '시장골목 옆 술집이름입니다.' 아주 자신 있게 그도 또렷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교실 안은 발칵 뒤짚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미촌(薔薇村)! 당시 번화가 거리에서 더러 눈에 뜨이는 간판이름이었기에 그런 답이 나올 법도 했지요. 그러나 1921년 신문학사상(新文學史上) 최초의 시지(詩誌)의 이름이 '장미촌'이란 걸, 그 학생은 알지 못했던 게 분명했습니다.
장미공원[7]
장미는 흔히 다른 화훼에 비견하여 재배관리하기에 손길이 많이 가는 품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자주 돌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장미의 대부분 품종은 꽃잎이 낙화하지 않은 채, 꽃대에서 뭉그러뜨려진 채로 집니다. 사계절 장미인 경우 맏물을 제외하며 늘 끝물의 꽃을 감상하듯 서운함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피어나는 꽃을 구경하러 가지 이미 져버린 꽃을 구경하러 가지 않습니다. 시인 A.포우프는 '장미는 활짝 피었을 때보다 꽃봉오리가 맺혔을 때 더욱 예쁘다.' 했지요. 사계절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늘 맏물의 장미를 구경하듯, 그런 세심한 배려로 장미원을 가꿔야 더욱 사랑을 받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장미공원[8]
'먹으면서 더 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장미원을 둘러본 뒤의 느낌이 그러했습니다. 백 만 송이의 장미원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품종으로 확대 재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이곳에 와야만 그 장미를 볼 수 있다.' 는 그런 자부심으로 장미원을 다듬어 나가야 오래도록 생명력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애써 꾸민 지금까지의 노고에 삼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미전쟁에 나선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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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하체(Pink Haze)
ivory계열
비록 홀겹이지만 장미는 장미입니다. 그래도 물 건너 온 몸입니다. 홀로가 아니라 많이 모였기에 아름답습니다.
LA 크리스탈 훼어리(LA Crystal Fairy)
꽃의 크기가 잎만큼 해서야. 그러나 큰 것만이 장미가 아닙니다. 잎의 형세와 공존하여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이루어내는 지혜는 작은 것에서도 본받을 일입니다.
이곳에 가면 덤으로 볼 수 있는 것
산딸나무의 꽃?
산딸나무와 그 괴상하게 생긴 꽃과 꽃받침이 보였습니다. 벌과 나비를 유인하여 열매를 갖기 위하여 꽃받침이 꽃인양 변신을 했습니다. 진정 이 나무의 꽃은 가운데 봉긋하게 솟아오른 노랑 것이랍니다. 진정 꽃이 아닌 것이 꽃인양하는 게 어디 산딸나무의 꽃받침뿐이겠습니까.
개오동나무의 꽃
그리 흔하게 볼 수 없는 개오동나무의 꽃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나막신의 자료로 이 나무를 으뜸으로 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