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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각성과 효과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는 성자들이나, 육체를 초월한 초인들만이 누릴 수 있다고 하는 무한한 지복(至福)을
살면서 맛보게 하여준다는 쿤달리니-.
인도는 물론이고 중국, 아라비아, 그리스와 이집트 등 인류의 고대 문명 발상지에서는 모두 다 기원전
언제부터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활성화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실천되었으며, 고대 인도에서는 이
유기적인 장치가 평범한 사람을 천재로 만든다고 해서 연구한 뒤 실험까지 마쳤다는 쿤달리니-.
수행법이 엄격하고 까다로운 섭생이 강요되며, 커다란 위험까지 수반되므로 성취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었다고 하는 쿤달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 시대가 수 없이 바뀌어도 쿤달리니의 수행자들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수행자들은 오늘 이 순간에도 쿤달리니의 각성을 위해 세상과 담을 쌓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치르면서도
묵묵히 매진하고 있다.
물론 모든 종교가 쿤달리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며 수행법도 나름대로 모두 다르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쿤달리니 각성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행자들이 자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걸고 집착하는 쿤달리니 각성이라는 것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타요가 프라디피카(105절∼111절)의 내용을 살펴보자.
‘
열쇠로 문을 열 듯이 요기는 쿤달리니로 해탈문을 열어야 한다. 위대한 여신은 입을 다물고 잠들어 있다.
그 입은 브라마란트라, 아픔도 고뇌도 없는 장소로 올라가게 하는 문이다. 쿤달리니 여신은 칸다위에 잠들어 있다.
그녀는 요기에게 해탈을 준다. 쿤달리니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해탈된다’
이 가르침 대로라면 쿤달리니의 각성만으로도 커다란 깨우침을 얻게되며, 궁극적인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금벽고문용호경(金碧古文龍虎經)의 서문에서는‘도가(道家)의 공부는 실로 성명(性命)에 관련된 것으로,
얻는 것이 적으면 이 땅에 머무르며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크면 신선이 되고 성인이 된다’고 적고 있다.
하타요가· 프라디피카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초인적인 능력에 대해서도 쿤달리니 각성에서 뿐 만
아니라 차크라의 수행 단계에서도 부수적으로 여러 가지의 초능력이 발현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왜소함을 느끼면서 초월을 갈망하게 되며, 존재에 대한 의문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또 초감각적인 것들을 체험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절대적인 힘과 교류하여 초능력을 얻고자 하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공통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층의식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강한 원망(願望)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신앙형태로 발현하였다.
그런데 이 간절한 소망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쿤달리니라고 사라스와티는 주장하고 있다.
‘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쿤달리니의 각성과 관계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라스와티는 또 ‘영적생활의 목표는 그것이 삼매든 열반이든 합일이든 또는 해탈이든 간에 모두가 쿤달리니의
각성을 바탕에 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달라지는 것일까?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육체와 정신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다. 우선 육체적인 변화는 병의 요소가 일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우주의 원초적인 힘이라는 쿤달리니의 강력한 생명력이 세포에 가득 차기 때문인데, 병이 있던
사람도 깨끗하게 치유된다.
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머리가 아픈 적이 없고 항상 가을 하늘처럼 맑기만 하다.
이처럼 거의 완벽한 건강은 바로 고차원의 명상을 수련하도록 마련된 것이다. 육체의식을 망각할 정도의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통증이나 평상시와 다른 조그마한 이상감각이 몸에서 느껴진다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쿤달리니 각성이 정신적인 면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기로 하자.
쿤달리니가 각성 되면 큰 지혜의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창조력을 탄생시킬 수 있다.
비젼, 심령적 체험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예언자, 성자, 예술가, 시인, 작가,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완전한 각성이 이루어지면 작은 신, 신성의 화신이 된다’라고 사라스와티는 주장하고 있다.
고피 크리슈나는 쿤달리니를 각성하면 법열, 또는 입신상태에 든 요기나 신비가들 처럼 수시로 초월의식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변해가게 된다’면서,‘초월의식은 정신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물질계를 초월한 경지로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쿤달리니를 각성하면 명상 중에 별로 어렵지 않게 자신의 육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통증이나 이상감각 또는 감촉이 없는 데다 호흡까지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엷고 면면히 이어진다면 정신은 맑고
초롱초롱하면서도 육체를 초탈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경지가 바로 초월의식 즉 삼매의 전 단계인데, 여기에 도달하면 크리슈나의 말처럼 각성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나의 수행 경험에 비추어, 우주와의 합일이든지 삼매, 또는 견성 등등의 종교에서 말하는 최상의 경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것이 그 목적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몸속에서 잠자고 있던 자율제어기능이 갑자기 활성화하면서 고차원의 의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심신을 개조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마음이 바뀌고 그래서 취미나 기호, 집착하는 것까지 바뀌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눈앞의 대상들에
집착하지만 각성자들은 생각이나 행동에서 이들과는 멀리 떠난 경지를 보여 준다.
천재들의 지적, 예술적 창조에서 보여주는 능력들을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황홀, 망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의식상태를 일반인들로서는 이해가 전혀 불가능하다
쿤달리니 각성 이후의 현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세간의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여서 미덥지 않으면서
신비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천고의 비밀, 천기 누설이라든지 신비로움으로 인식되어온 쿤달리니는 이제는 더 이상 천기누설이나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쿤달리니 각성으로 조성되는 고차원적인 의식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평상차원의 의식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비밀이나 신비는 접하려고 하여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해당하는 말이다.
고피 크리슈나의 말을 들어보자
‘
쿤달리니의 각성이야말로 인류 앞에 놓인 최대의 과업이다. 인간의 지성은 아무리 바쁘게 찾아 헤매 보았자 인간이
우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것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열리지 않는다.
이것에 의해서만 과학은 생명의 근원이 생명의 배후에 존재하는 불사(不死), 전지(全知)의 힘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에 의해 선천적인 천재가 아닌 인간들이 높은 재능을 함양할 가능성을 갖게 되며, 나아가 이것에 의해 진보를
가속화하고 번영을 촉진하는 커다란 통로가 얼마든지 인간의 영안(靈眼) 앞에 전개되어 올 것이다.’
고피 크리슈나의 주장을 계속 경청해 보자
‘
정말로 이 과업이 현실화한다면 변신과정이 시작됨에 따라 초월의식이 찾아오면서 의식의 대해(大海)를 체험하게 된다.
이것은 경이 그 자체보다 더 경이로우며, 수수께끼보다 더 수수께끼로 가득 찰 것이다. 거기서는 모든 생명들이
무수한 형태로 드러난다. 모든 것이 추하면서 아름답고, 선하면서 사악하며 즐거움과 괴로움, 현실세계의 이중성이
하나로 통합된다. 이 실험은 우주창조의 절대적인 증거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인간 존엄성에 어긋나는
경박한 일들이나 부패한 오락 등에 낭비되는 인간적 에너지 및 자원을 정화하고 활용하기 위해 자연이 마련해 준
새롭고 건전한 방향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심신양면으로 고상한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로 이를 실험하고 응용한다면,
인류들은 심령적 정신적으로 거인들을 배출하는 시대를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21세기의 인류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바르게 주도할 자격을 가질 것이다.’
쿤달리니는 힌두교든 불교든 또는 기독교든 토속신앙이든 특정 종교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생을 구하거나 인간 본래의 면목을 탐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쿤달리니는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지혜를 주고,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며, 강을 건너는데 안전하고 편리한 땟목 구실도 다 하였다.
인류는 아득한 옛날부터 쿤달리니 역할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수혜자도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신비에 싸 인 채로 전해져 왔을 뿐이다.
이제 쿤달리니는 더 이상 신비스러움이 아니며, 야생마의 사나움도 가셔져, 길들이고자 하면 누구에게나 가능하게 되었다.
21세기 초과학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쿤달리니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