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
-잊어버린 착한 마음
"그림을 그리는 건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야! "
“할아버지 그림은 게으름뱅이나 그리는 건가요?”
“글쎄....잘 모르겠다만...
마리아님의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난 그 그림을 보면 늘 마음이 평화로워 진단다.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그림을
게으름뱅이가 그릴 수는 없지 않겠니?”
할아버지는 네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구나.
대신 네가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땐 마음껏 그리려무나...
해맑은 네로의 미소. 착한 소년과 개의 우정이 담긴 이 이야기는 네로의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해지게 된다.
‘프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로아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순수를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버려진 개 파트라슈이다.
일찍이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이런 대답을 해주시는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비단 지식의 가르침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한 없이 헤아려주는 믿음이야 말로 그 어떤 가르침보다 힘이 된다. 사랑과 믿음이 어디 말로만 되는 것인가?
아마도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그런 사랑의 대상이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사라져버린 먼 후일에야 나는 비로소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 같은 기억 속에 이 슬픈 동화의 추억이 내게는 그림처럼 순수하고 한 없이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깊이 각인 되어있다.
포악한 주정꾼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길가에서 죽어가던 늙은 개 파트라슈는 네로에 의해 살아나게 된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가난한 생활을 하지만 꿈과 사랑을 주시는 할아버지가 있기에 결코 불행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 다스가 죽자, 네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마을에서 쫓겨나게 될 처지에 몰린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미술공모전에서 낙선하자 네로는 아로아의 집에 파트라슈를 맡기고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집도 먹을 것도 없어진 네로는 마지막 죽음을 홀로 맞으려 하지만 그의 곁으로 파트라슈가 달려온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꼭 껴안은 채 루벤스의 그림 아래서 아기 천사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네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할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그리고 미술 공모전출품을 위해 할아버지와 파트라슈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할아버지는 네로의 기억 속에 영원한 존재로 살아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처럼.
네로가 그린 할아버지의 추억어린 모습. 네로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 공모전에는 낙선을 하고 만다. 필자는 이 작품의 방영당시 이런 네로의 스케치와 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 등을 보며 그림의 꿈을 키워 나갔다.
1975년 이가라시 유미코의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같은 해에 태어난 세계명작만화영화 ‘프란다스의 개'는 쿠루다 요시오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명작 만화영화의 효시격인 작품이다. 원작은 1872년 영국작가 위다의 작품으로(위다는 필명. 본명은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 벨기에 플랜더스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안트 베르펜 외곽의 호보켄) 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은 실제 벨기에 안트 베르펜 대성당에 지금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로가 힘겨울 때 혹은 할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바라보았던 그림이 바로 <성모승천>이라는 그림이다.
플랑드르의 대표 화가이자 바로크 회화의 대가였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성모승천>과 네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십자가 내리기>의 작품을 그렸으며, 이곳 안트 베르펜은 루벤스가 말년을 보내며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루벤스의 작품. ‘플란다스의 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위 그림은 실제 존재하는 루벤스의 말년 작품이다. 오른쪽 아래 그림이 네로가 처음 보았던 루벤스의 <성모승천>이며, 위 그림이 <십자가 내리기>이다.
그토록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착한 네로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던 인자한 할아버지 다스 그리고 죽음마저 함께 자리한 파트라슈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착한 마음의 소중함을조용히 일깨워 준다.
착한 사람이 바보 취급받는 오늘의 인간사를 바라보며 다시되새김하게 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필자는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착한 짓을 손가락질하니 착한 짓도 숨어서 해야 하는 이 세상.
사람을 바보취급하고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며 웃기는 것조차도 호통을 쳐야하는 이시대의 개그를 보며, 아! 이제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이런 착한 사람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
루벤스의 그림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네로의 그 착하고 착한 마음을...
네로와 파트라슈가 서로를 사랑하며 아껴주는 그 착한 마음을.....!
추운 겨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네로는 그림공모전에서 낙선하고, 집도 쫓겨나게 된다. 눈보라치는 길을 홀로 떠나는 네로와 그를 찾아가는 파트라슈 그리고 아로아의 애절한 모습이 그려진다. 중간의 오른쪽 그림은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죽음 직전의 네로다. 이제야 보게 된 루벤스의 그림은 네로에게 마지막 행복을 안겨 준다.
기어이 필자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고야 말았던 ‘프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
극장용 엔딩에 비해 그림의 차이나 공간의 깊이표현 등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으나 적어도 분위기와 표정묘사만큼은 극장용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연출이었다. 필자 개인적으론 세계명작 만화영화史의 엔딩 중 백미라 일컫고 싶다.
특히 구도의 <아베마리아>와 성가 <주여 임 하소서>가 연이어 나오는 배경음악 또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먼동이 터 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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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극장판 이미지 |
첫댓글 ^^기억이 나네요~ 많이도 울었었는데...
글씨가 짤려있어요!
다 읽을 수 있도록 다시 편집하세영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