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998년, 『전남 서원의 목판』, 전라남도 -
1997년과 1998년에는 소장 목판에 대한 조사를 실사하였다. 전라남도 지원으로 전남대학교문헌정보연구소에서 전남 소재 서원에 대한 목판 일괄조사(조사위원 송일기·전종주·김희태·노기춘)를 실시했는데, 필암서원 소장 목판도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조사 결과 하서전집목판 258판, 하서선생전집 목판 392판, 초천자문 목판 18판, 무이구곡 목판 13판, 『유묵』 4판, 백련초해 목판 13판, 인종필 묵죽도 목판 3판이 확인 되었다. 조사 내용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으며, 전라남도에서는 이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여 1999년에 필암서원 소장 목판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서 김인후의 문집은 그가 세상을 뜬지 8년만인 1568년(선조 1)에 처음 간행되어 1686년(숙종 12) 중간본과 1797∼1802년에 걸쳐 세 번 간행되었다. 초간본 목판 1매, 중간본 목판 258매, 세 번째의 목판 391매로 총 650매이다.
광해군 2년(1610)에 새긴 『초서천자문』 18판(1610년)과 『해자무이구곡』 18판(1610년), 선조 1년(1568년) 새긴 『백련초해』 13판과 『유묵』 4판, 그리고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판 3판으로 선조 1년(1568년)과 영조 46년(1770)에 새긴 것이다.
안진경체에 바탕한 김인후의 초서체 글씨는 당시 성리학자 특히 호남 학자들 사이에 전형적인 모범 글씨가 되었다.『백련초해』는 100가지 싯구를 한글로 해석한 것인데,『백련초해』한글판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섰고 인종의 판체인 묵죽도판은 판각의 변천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4. 기록자료의 연구와 홍보·활용 현황
1) 필암서원에 대한 기록자료의 연구와 홍보·활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필암서원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1972년에 제기(祭器)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이 나온다. 1975년에는 필암서원 문서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 587호로 지정된다. 1949년 『필암서원지』 구서적편에 기록된 서원 관련 성책문서 14책과 고문서 64매이다. 그리고 1976년에는 향토사분야에서, 1981년에는 역사학 분야에서 필암서원 연구 논문이 발표된다. 1983년에는 소장 고문서에 대하여 전남대박물관에서 학술조사가 실시되어 고문서자료집이 간행된다. 1988년에는 목포대박물관에서 전남의 서원 사우를 조사하면서 사액 서원사우편에서 연혁, 인물, 건축, 자료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남기숙, 이조시대 祭器에 관한 연구 -서울 문묘와 전남 필암서원의 사례중심-,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1972
이종일, 필암서원과 하서선생의 사상,<장성향토문화> 제3집, 향토문화개발협의회·장성문화원, 1976
송정현, 필암서원 연구, <역사학연구> 10, 전남대사학회, 1981
김상오, 하서 김인후의 생애와 문묘종향의 경위, 전북사학 제5집, 전북대학교사학회, 1981
변시연, 하서선생과 필암서원, <상서> 4, 1982
류정동, 하서 김인후의 天命圖에 관하여, 동방사상론고, 유승국박사화갑기념논문집 간행위원회, 1983
이상보 , 하서 김인후의 국문학 연구, 어문학 제3집, 국민대학교 어문학연구소, 1984
김상일, 하서선생약사, 전남대학교출판부, 1984
정익섭, 호남가단에서의 하서 김인후의 위치, 동양학 제17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87
목포대학박물관·전라남도, <전남의 서원·사우> -사액서원·사우편-, 1988
오병무, 하서 김인후의 성리철학과 異端·異說에 대한 그의 비판, 전라문화연구 3, 전북향토문화연, 1988
박준규, 하서 김인후와 그의 시문학, 어문논총 9, 전남대어학연구소, 1989
2) 다음으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축과 역사분야에서 연구가 어어진다. 먼저 건축과 조경 분야에서는 건축적 특성과 공간배치, 식재현황과 정비방안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조상순, 필암서원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 1997
조상순·이상해, 필암서원의 건축 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7-2, 1998.
이원호,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의 식재현황과 정비방안,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9-1, 2011.
3) 그리고 역사분야에서는 소장 고문서의 분석, 배향인물과 서원 운영 자료의 분석, 지역 유림의 동향과 추배 활동 등을 통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안승준, 1745·6년의 필암서원) 노비보(奴婢譜), <고문서연구> 4-1, 1993.
전형택, 조선후기 필암서원의 경제기반과 재정, <역사학연구> 11. 1997
윤희면, 전라도 장성 필암서원의 정치사회적 기능, <역사학연구> 17, 2001
김덕진, 양자징의 학구당 건립과 필암서원 배향, <남도문화연구> 12, 2006.
이해준, 하서 김인후의 현양활동, 광주광역시,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문학사상>, 1995
전형택, 필암서원의 고문서, 광주광역시,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문학사상>, 1995
조상순, 필암서원 연구―필암서원지 해석을 중심으로―, <文化財> 31, 문화재관리국, 1998
4) 그리고 노비보에 기록된 인명에 대한 연구(어학분야), 중학교 교육과정과 향토사 학습, 관광자원의 활용 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진다.
조강봉, 필암서원지 奴婢譜의 인명연구, <口訣硏究> 6, 2000.
강을희,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한 중학교 향토사 학습지도 방안-, 울산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2
정화현, 문화재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관광활용방안 -장성 필암서원을 중심으로-, 경희대 관광대학원 석사논문, 2008
5) 필암서원 배향인물에 대한 연구는 주향인 하서 김인후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특히 광주시 주관으로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문학사상에 대한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단행본이 발간된다. 그리고 하서학술재단에서도 하서의 문학과 사상을 주제로 학술논문집을 간행 하고 있다. 또 하서의 절의정신에 대한 개인 저서도 나온다.
조종업, 하서 김인후 시에 나타난 자연의식의 양상, 우리문학연구 9, 1992
하서학술재단, <하서 김인후의 사상과 문학> 제1집, 하서기념회, 1994
조기영, <하서 김인후의 시문학 연구>, 아세아문화사, 1994
광주광역시,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문학사상>, 1995
김진웅, <인종승하와 김하서 절의>, 명성출판사, 1996
박은순, 16세기 동서당 계회도 연구, 미술사학연구 212, 한국미술사학회, 1996
신호열 옮김, <하서시선>(나랏말싸미 302), 솔, 1997
박래호, 하서 김인후선생의 관직생활과 문묘종향의 경위, 향토문화 제16집, 향토문화개발협의회, 1997
오종일, 문정공 하서 김인후, 동국십팔현 -생애와 사상- 중, 율곡사상연구원, 1000
정병련,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성리학, 유교사상연구 제12집, 한국유교학회, 1999
하서학술재단, <하서 김인후의 사상과 문학> 제2집, 하서기념회, 2000
허경진, 하서 김인후 시선(한국의 한시 49), 평민사, 2000
안봄, 하서 김인후의 문학사상 연구, 조선대 박사론문, 2000
백승종, 16세기 조선의 사림정치와 김인후, 진단학보 92, 진단학회, 2001
김진영 외, 하서 김인후 시어 색인, 이회문화사, 2002
신호열, 양재영, 하성흡, <긴 담장에 걸리운 맑은 노래>, 현실문화연구, 2002
백승종, 대숲 앞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돌베개, 2003
조창록, 조선조 漢詩 교육의 실제와『百聯抄解』, <동한문학> 21, 2004
이동희, 전북 순창의 훈몽재와 하서 김인후 , 전주사학 9, 전주대 역사문화연구소, 2004
하서학술재단, <하서 김인후의 사상과 문학> 제3집, 하서기념회, 2005
오종일 하서선생이 천명도와 중화사상, 필암서원 산앙계 학술강연 발표요지, 2005
고영진, 하서학과 호남사림의 동향, 국학연구 제7집, 한국국학진흥원, 2005
울산김씨문정공대종중·대동문화재단, 하서 김인후선생 이야기, 2007
김정수 지음, <전라도 사람들> 6 -조선시대 김인후-, 장문산, 2009
조기영 옮김, <백련초해>, 지만지고전천줄, 2009
이형성 , 16세기 호남사림의 학문 교류 및 논변 고찰, 한국사상과 문화 제48집, 한국사상문화연구원, 2009
이수우, 하서 김인후에 대한 고찰, 울산문화연구 2, 울산남구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2009
조기영, 하서 김인후의 <孝賦>에 대한 고찰, 동양고전연구 41, 동양고전학회, 2010
김세곤,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義의 길을 가다-, 온새미로, 2010
안동교, 하서선생의 강학활동과 문인양성, 필암서원 산앙계 특강자료
김종서, 하서 김인후 시의 표현미와 선비정신의 형상화, 한국한문학연구 47, 한국한문학회, 2011
6) 2003년에는 필암서원과 인근 거리에 있는 하서 김인후의 생가 동네(황룡면 맥호리 맥동) 유적에 대해서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김인후 신도비(神道碑, 송시열 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219호, 김인후 난산비(卵山碑, 윤행임 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1호로 지정(2003.10. 4.)하였다.
7) 2007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하서 김인후와 필암서원> 특별전을 개최한다.
특별전은 2007년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하서 김인후와 필암서원-하서 세상으로 나오다->을 주제로 열린다. 2011년에 울산김씨문정공대종중에서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한 31점의 기증유물을 토대로 보물로 지정된 필암서원 소장 유물, 구립박물관(중앙, 전주, 청주, 진주), 선산유씨종회, 울산김씨문정공대종중, 필암서원, 현곡 조대섭 등 개인과 기관 단체 등에 소장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도록을 발간하였다. 중요서원의 국립박물관 전시는 확대가 필요하다.
8) 필암서원 유물전시관(원진각) 개관과 유물 3,795점 기증
필암서원 유물 전시관 원진각은 2008년 4월 15일 개관하였다. 규모는 538㎡(163평), 목조기와, 사업 기간은 2007.1.5~2008.4.10, 사업비는 2,650백만원(국비 1,745, 전남도비 290, 장성군비 325, 특별교부세 290)을 들였다. 전시현황은 다음과 같다.
o 입구 - 데스크 : 안내소, 수장고, 화장실 등 / 사액서원, 모신 인물, 배치도
o 전시
- 서원이란 : 서원의 개요, 성립, 발달, 기능, 이름난 서원, 서원의 교육내용 및 방법, 평가
- 필암서원 : 연혁, 창건과 재건, 건축구조, 조직, 공부하는 모형,
- 김인후 : 연혁, 동상, 제자, 인종과 하서, 출생과 성장, 관직생활, 문학, 학문
- 관련유물 : 노비보, 원장선생안, 봉심록, 장서, 목판, 경장각, 장판각, 앞다지, 책장, 교지
- 양자징 : 연혁, 향토활동, 가계보, 하서의 가르침
o 출구 - 장성소개 : 장성선비 의리, 역사, 8경, 호남정신, 홍보스크린
한편, 2008년 4월 4일에는 양영재단과 하서학술재단로부터 3,795점의 유물을 기증받기에 이른다. 양영재단은 고유물, 탁본, 고서적 등 2,394점, 하서학술재단은 고서적 등 1,401점이다.
9) 2010년에는 하서선생 탄생 500주년기념 문화축전을 장성(필암서원, 군민회관, 부조묘)과 서울(성균관대), 광주(유림회관, 대동갤러리)에서 개최(2010.8.28.~12.31)하였다. [사업비 : 225백만원(도비 100, 군비 100, 기념사업회 자담 25)]
8.28. 고유제 - 필암서원, 하서선생 부조묘
9.24. 전국 성독대회 - 필암서원, 하서 선생 전집 27명 성독
10. 8. 국제학술발표회 - 성균관대, 발표 8명(국내 4, 국외 4)
10.15. 국제학술강연회 - 광주 유림회관, 국내교수 3명
10.21.~10.28./11.1.~11.7. - 서예초대전, 광주 대동갤러리/필암서원 집성관(56점)
10.22. - 기념식, 군민회관, 참석 : 600여명(주민, 유림, 문화계)
10.22. - 판소리, 군민회관, 하서선생 일대기 판소리 발표회(KBS1 국악한마당)
11. 1.~12.31. - 하서 등 유교특강, 필암서원, 하서선생 등 장성의 인물
12. 1 - 출판행사, 500주년 기념 책자(3,000부), 문집, 시집 발간
5. 전승 자료의 내용(목록)
장성 필암서원 소장 자료는 고문서와 전적, 목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책 문서 14책과 고문서 64장은 보물 587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목판은 2종으로 나누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장성 필암서원 하서선생 문집목판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5호(1999. 7. 5. 지정), 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6호(1999. 7. 5. 지정)이다.
○ 필암서원 문적일괄(보물 제587호) - 성책문서 14책
보물 제587-1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奴婢譜
보물 제587-2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院長先生案
보물 제587-3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執綱案
보물 제587-4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文契案<1>)
보물 제587-5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文契案<2>
보물 제587-6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西齋儒案書
보물 제587-7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院籍<1>
보물 제587-8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院籍<2>
보물 제587-9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院籍<3>
보물 제587-10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筆巖書院院籍<4>
보물 제587-11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長城筆巖書院成冊
보물 제587-12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奴婢案<題纂, 長城筆巖書院>
보물 제587-13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奉審錄
보물 제587-14호 필암서원 문적 일괄-梁子澂名祝關係稟目
○ 필암서원 문적일괄(보물 제587호) - 고문서 64매[64건]
○ 필암서원 소장 전적류
1802년 『필암서원원적』(4)(보물 제 587호-12) - 서책 30종(234권[책])
1949년 『필암서원지』- 서적 44종[282책], 구서적[고문서] 15종[24건]
1969년 『이조서원문고목록』(국회도서관)- 한적본 132종[595책]
1975년 『필암서원지』 장서목록 - 206종[777책]
1996년,『한국전적종합조사목록』(문화재관리국)- 54종[486책]
○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고문서
울산김씨문정공종중에서 201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모두 31점으로 2007년에는 하서 김인후와 필암서원 특별전(9.18~11.11)을 개최하고 도록을 발간하였다.
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契會圖, 1542년[중종 37](광 3869)
同湖契會圖, 1545년[인종 1](광 3870)
교지, 1668년[현종 9, 康熙 7년] 金麟厚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左賓客(광 3675)
교지, 1668년[현종 9, 康熙 8년] 淑人尹氏贈貞夫人(광 3876)
교지, 1669년(현종 10, 康熙 8년] 金麟厚贈諡文靖公(광 3877)
교지,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金麟厚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광 3882)(광 3883)
교지,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金麟厚贈諡文正公[道德博聞曰文 以正服之曰正](광 3886)(광 3887)
교지,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贈貞夫人贈貞敬夫人(광 3888)
署經狀,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사간원(광 3885)
署經狀,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사헌부(광 3884)
교서,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10.26 문묘배향 허락 교서(광 3889)
교서,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11. 7 (광 3891)
교서,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 11. 9 (광 3892)
교첩 1572년[선조 5, 隆慶 6년] 學生金從虎今壬申年蔭取才入格(광 3871)
교첩 1603년[선조 36, 萬曆 31년] 宣務郞金南重爲宣敎郞(광 3874)
沈翼賢上疏文, 1789년[정조 13]
致祭文, 1786년[정조 10, 乾隆 51년](광 3879)
致祭文, 1786년[정조 10]((광 3895)
致祭文, 1796년[정조 20, 嘉慶 원년](광 3890), 국왕, 좌부승지 이면긍
致祭文, 1828년[순조 28, 道光 8년](광 3893), 효명세자, 예조좌랑 임원배
致祭文, 1855년[철종 6, 咸豊 5년](광 3894), 국왕, 능주목사 이병례
服齋傳筆歌幷序文, 신흠(申欽, 1566~1628)(광 3873)
仁宗大王墨竹圖[목판본](광 3868)
御畵墨竹跋文, 劉肅基, 1736년[영조 12](광 3878)
○ 懸板․記文, 柱聯 등 자료
筆巖書院 扁額, 1662년 사액, 윤봉구(1681~1767) 書
廓然樓 扁額, 송시열(1607~1689) 書
淸節堂 扁額, 송준길(1606~1672) 書
敬藏閣 扁額
祐東祠 扁額, 주자대전 집자
筆巖書院重修記, 1889(무자), 知府 金升集 무자 書, 기축 揭板
白鹿洞學規 懸板, 1710년(崇禎 기원후83 경인)
國忌 懸板. 1887년,
松江·淸陰板刻詩 懸板 외
○ 碑石, 巖刻文
筆巖書院 繫牲碑·廟庭碑(전면 계생비, 후면 송병선 찬 묘정비문)
하서 김인후 望谷壇 卵山碑(1843년[헌종 9] 건립, 尹行恁 찬, 李翊會 글씨, 윤정현 추기, 전남 문화재자료 제241호,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105 맥동마을)
붓바위[‘筆巖’ 銘 巖刻](傳 윤봉구[1681~1767]필)(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입구)
金麟厚先生遺墟碑(1929년 건립,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186 맥동마을)
하서 김인후 신도비(1742년[영조 18] 건립, 宋時烈(1607∼1689)찬, 李縡(1680~1746) 書, 金鎭商(1684∼1755) 篆, 전남 기념물 제219호,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25 맥동마을)
하서 김인후 신도비(1983년 새로 건립, 송시열 찬 비문, 화산 권용현 찬 추기, 진원 박하주 書)
하서 김인후 묘비(김수항[金壽恒] 찬, 김이소[金履素] 글씨, 12대손 김경중[暻中] 改竪][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大麥洞 願堂山]
김령(齡) 묘갈[송순 찬][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大麥洞 願堂山]
烈女幸州奇氏泰仁朴氏旌閭閣)1683년[숙중 9] 장성유림 건립, 전남 장성군 맥호리 186 맥동마을]
文正公河西金先生遺墟碑(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훈몽재터 유허비)
魚巖書院遺墟碑(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 전북대학교 박물관(호남기록문화시스템 검색)
癸亥年[1923年]에 筆巖書院에서 光州鄕校로 發送한 通文
甲子年[1924年]에 筆巖書院에서 光州鄕校로 發送한 通文
乙丑年[1925年]에 筆巖書院에서 光州鄕校로 發送한 通文
乙丑年[1925年]에 筆巖書院에서 光州鄕校로 發送한 通文
丁卯年[1927年]에 筆巖書院에서 作成하여 各 郡에 보낸 通文
○ 한국국학진흥원[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고문서[원소장처 진성이씨 향산고택]
신축년(1961) 7월에 필암서원 집강 박하철(朴夏轍) 등 2인이 유학(幼學) 이동흠(李棟欽)에게 제관으로 초청하는 건으로 보낸 망기(望記)/17990, 문서크기(cm)39.0×48.0
○ 개인, 단체, 기관 소장 유물
連韻詩文, 1548~1549년[현곡 조대섭 소장]
連韻詩文, 1548~1549년[현곡 조대섭 소장] : 김인후가 순창에서 은거 강학할 때 수운헌 조희, 영천 신잠(1491~1544), 호음 정사룡(1491~1570) 등과 일련의 시문을 지으면 교우하였다.
次水雲亭韻, 1548~1549년[현곡 조대섭 소장]
瀟沙 筆帖(『朝鮮名賢筆帖』, 국립중앙박물관/덕수2260) : 2권으로 두 번째 권에 이언적, 조광조, 신잠, 이황, 서경덕, 정유길, 조식, , 노수신, 양사언, 휴정스님, 박순 고경명 등 조선 명현의 글 수록
서간문, 1549년[嘉靖 기유], 安瑑에게 보낸 서찰(『古簡』, 국립중앙박물관/동원 3389)
서간문, 1549년[嘉靖 기유], 安瑑에게 보낸 서찰(『簡牘』, 개인소장/2001년 퇴계 이황전 공개)
天命圖解[綾城本, 1578년 초간본](고려대학교도서관/만송貴-356)
瀟灑園四十八詠 懸板(소쇄원 제월당)
붓 1518년 기준이 하서에게 선물[필암서원 보관유물]
○ 각종 문집에서 산견되는 필암서원 관련 기사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과 『전남권문집해제』1·2(전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7) 등을 통하여 검색한 필암서원 관련기사[검색어 : 필암]는 다음과 같다. 『필암서원지』(1949/1975)에도 다수의 기문이 정리되어 있다. 추가 검색과 조사, 그리고 원전의 확인 등이 필요하다.
김우급(金友伋, 1574~1643), 筆巖書院上樑文, <秋潭先生文集> 권8
김우급(金友伋, 1574~1643), 筆巖書院重營後有感, <秋潭先生文集> 권6
송준길(宋浚吉, 1606~1672), 長城筆巖書院移建告由文[院享河西金先生], <同春堂先生文集> 권16
송준길(宋浚吉, 1606~1672), 答金久之[辛亥], <同春堂先生文集> 권13 ; 필암서원 상량문을 청하는 내용
송시열(宋時烈, 1607∼1689), 長城筆巖書院移建後奉安河西金先生文, <宋子大全> 권151
송시열(宋時烈, 1607∼1689), 答筆巖院儒[辛酉五月十三日], <宋子大全續拾遺> 권1
송시열(宋時烈, 1607∼1689), 筆巖書院春秋享祝文, <宋子大全拾遺> 권8
기정익(奇挺翼, 1627~1690), 筆巖書院垓宇上梁文, 松岩先生文集 권5
김창흡(金昌翕, 1653~1722), 筆巖書院。謹次曾祖考韻, <三淵集拾遺> 권10
오대시(吳大始, 1658~1727), 擬次筆巖書院齋壁韻, 黙軒詩集
신성하(申聖夏, 1665~1736), 筆巖河西金先生書院。謹次先生韻, <和菴集> 권3
윤봉구(尹鳳九, 1681~1767), 筆巖書院。次淸陰先生韻[河西金先生所享 卽長城地], <屛溪先生集> 권4
송명흠(宋明欽, 1705~1768), 筆巖書院。次淸陰先生韻, <櫟泉先生文集> 권2
송명흠(宋明欽, 1705~1768), 長城筆巖書院廓然樓重修上梁文, <櫟泉先生文集> 권14
瀟灑園事實 권8 諸賢贈章, 請配享筆巖書院疏
윤행임(尹行恁, 1762~1801), 卵山碑銘[幷序[, <碩齋稿> 권18
이경집(李敬緝, 1775~?) 등, 本道儒林請享鼓岩先生于筆巖書院上章(李敬緝등), 瀟灑園事實 권8 諸賢贈章
이휘규(李徽圭[鼎圭], (1779~1857), 奉審筆巖院, 黙齋遺稿 권1
송달수(宋達洙, 1808~1858), 筆巖書院。皷巖梁公春秋享祝文, <守宗齋集> 권10
김평묵(金平默, 1819~1888), 長城途中, <重菴先生文集> 권4
김평묵(金平默, 1819~1888), 與金稺敬 祿休[丁亥七月二十日], <重菴先生文集> 권12
박기종(朴淇鍾, 1824~1898), 答筆巖書院通文, 竹圃集 권10
송병선(宋秉璿, 1836~1905), 答筆巖院儒[壬寅十月], <淵齋先生文集> 권 15
송병선(宋秉璿, 1836~1905), 筆巖書院廟庭碑, <淵齋先生文集> 권32
송진봉(宋鎭鳳, 1840~1898), 謹次金玉汝璣烈金正三台漢過筆巖韻, 思復齋集 권1,
구문모(具文謨, 1844~1918), 筆巖書院儒生鄭公源外二十六人(辛未八月 日), 松澗遺稿 권4 通文
김기열(金璣烈, 1845~1914), 筆巖書院, 覺齋遺稿 권1
조종덕(趙鍾悳, 1858~1927), 乙丑二月中丁參河西先生筆巖書院, 滄庵集 권1
양재경(梁在慶, 1859~1918), 謹次筆巖書院淸節堂韻, 希庵遺稿 권1
김한익(金漢翼, 1863~1944), 筆巖書院祠宇重建記, 華東遺稿 권2
김용선(金容璿, 1865~1927), 奉審筆巖書院, 省菴遺稿 권1
조우식(趙愚植, 1869~1937), 筆巖書院奉審金河西先生, 省菴集 권2
위계룡(魏啓龍, 1870~1948), 筆巖書院謹次重峰先生板上韻, 梧軒遺稿 권1
위계룡(魏啓龍, 1870~1948), 筆巖書院秋亭韻, 梧軒遺稿 권1
이정원(李正遠, 1871~1957), 筆巖書院祭享韻, 樂吾齋遺稿 권2
안규용(安圭容, 1873~1959), 筆巖書院山仰契發起通文, 晦峯遺稿 권5
조덕승(曺悳承, 1873~1960), 欽齋先生文集 권1, 題筆巖書院
유흥선(柳興善, 1875~1952), 敬次筆岩書院淸節堂板上韻, 東川遺稿
김옥섭(金玉燮, 1878~1930), 奉審筆巖書院步其原韻, 愼軒遺稿 권1
김경현(金敬鉉, 1879~1947), 筆巖書院次淸陰先生韻, 沙隱遺稿 권1
이종욱(이종욱, ?~1926), 長城筆巖書院通狀, 蒙巖集 권3
박기청(朴淇靑, 1882~ ? ), 過筆巖院慕河西金先生, 竹坡遺稿 권1
송석의(宋錫義, 1884~1967), 筆巖書院重修韻, 松隱集
임동선(任東宣, 1892~1960), 筆巖院舍業日訪裔孫時中, 守菴逸志
김재석(金載石, 1895~1971), 自然堂先生筆岩廓然樓前方塘韻伋感吟, 月潭遺稿 권1
김재석(金載石, 1895~1971), 筆岩書院重修記, 月潭遺稿 권3
여창현(呂昌鉉, 1897~1975), 答筆巖書院執綱, 雲沙遺稿
정철환(鄭喆煥, 1901~1981), 筆岩書院重修後, 東樵文稿 권1
정철환(鄭喆煥, 1901~1981), 筆岩書院謹次權韠先生韻, 東樵文稿 권1
정철환(鄭喆煥, 1901~1981), 筆岩書院秋享日講, 東樵文稿 권1
김규태(金奎泰, 1902~1966), 筆巖書院敬次淸陰先生韻, 顧堂遺稿 권1
김규태(金奎泰, 1902~1966), 筆巖書院謹次河西先生韻, 顧堂遺稿 권3
김상진(金相晉, 1902~?), 謁筆巖書院, 碧農私稿 권1
김상진(金相晉, 1902~?), 筆巖書院重修韻, 碧農私稿 권1
김상진(金相晉, 1902~?), 筆巖書院享禮後京鄕多士(止)明燭達曙, 碧農私稿 권2
고재익(高在益, 1912~1982), 謁筆巖書院, 省窩遺稿 권1
고재익(高在益, 1912~1982), 筆巖書院齊宿吟(二), 省窩遺稿 권1
고재익(高在益, 1912~1982), 筆巖書院春享齊宿吟, 省窩遺稿 권1
민영석(閔泳碩) 등, 武城院發通于筆巖院, 靈光金氏四孝錄 권2
김홍수(金鴻洙) 등, 筆巖發通, 靈光金氏四孝錄 권2
6. 향후 활용의 과제
1) 소장 자료의 종합 조사, 자료집 발간, 연구
필암서원 소장 자료는 앞에서 살핀 것처럼 다양하게 전해져 오고, 소장처 역시 분산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자료지의 발간이 선행되야 하리라 본다. 몇차레 조사와 자료집이 발간되었지만,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고문서 사례에서 보듯이 원형이 변형되어 소개되었거나 오류가 있기도 하였다. 전적류에 대해서는 몇차례 조사가 이루어 졌지만 원 자료의 소장 전래경위, 가치와 성격, 타 서원이나 다른 자료와의 비교 연구 등은 이루어져 있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학제간 연구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평가를 할 계기가 마련되어야 하리라 본다.
2) 하서의 강학 활동과 학맥의 연구
필암서원 소장 자료의 종합조사, 자료집 발간, 연구와 함께 중요하게 주목하여야 할 대상이 하서 김인후의 강학 활동과 학맥의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김인후의 학문의 연원과 강학활동 과정의 추적, 다양한 자료를 망라하여 문인들과 그들이 남긴 문헌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직 뚜렷하지 않은 김인후의 학문적인 계보와 학파의 성격을 밝혀 나가고 이러한 가운데에서 필암서원과 장성, 순창 등 인근 지역의 인물과 교류활동을 규명해 나가면서 필암서원의 지역 사회에서 또는 역사적인 위상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암서원지』(1949년)「淵源圖」에 卞成溫, 奇孝諫, 趙希文, 鄭澈, 吳健, 梁子澂, 南彦紀, 盧適, 尹祁, 申覺, 徐台壽, 金從虎, 安璔, 金齊顔, 梁山海 등 15명이 기록되어 있고, 『필암서원지』(1975년)「淵源圖」에 朴元恂이 추가되어 16명이 등재되어 있다.『하서전집』속에서는 卞成溫, 奇孝諫, 趙希文, 鄭澈, 梁子澂, 南彦紀, 盧適, 申覺, 徐台壽, 徐浩, 李至男, 吳希吉 등 12명의 문인 성명을 찾을 수 있다. 이 들 가운데 하서와 사승관계가 애매한 문인들도 있긴 하지만, 이러한 문인들과 그들의 제자들, 그리고 필암서원관의 관련 등에 대해서 조사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3) 필암서원 자료의 문화재 지정 확대
필암서원 소장 자료의 종합조사와 함게 검토 할 것이 문화재 지정의 확대이다. 이미 필암서원 문적일괄 14책 64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소장 목판은 하서문집 목판과 하서유묵 목판으로 구분하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이 가운데 인종 필 묵죽도 등 유묵 목판 등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을 추진하여 전라남도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일부가 도난을 당하여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러한 자료가 빨리 찾아 지기를 기대하며 다른 자료들에 대해서도 문화재 지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 검토는 두 가지 방향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소장 전적류에 대한 정밀 조사와 함께 가치를 판단하여 지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필암서원 소장 전적류는 몇차레에 걸쳐 정리되고 있음을 볼 수 있지만, 현재의 전적류에 대한 자세한 조사기 필요한 실정이다. 1802년 필암서원 문서를 통해서도 소장 서책 가운데 내사본(內賜本)이 7종이라고 기로되어 있지만, 1949년 『필암서원지』에는 『인종어제』와 『오경백편』, 『경국대전』 등 3종만 내사(內賜) 표기가 있다. 그 이후의 목록에서도 1802년 기록상의 내사 표가 있는 책명은 보이지만, 동일한 내사본인지 여부 등도 확인이 필요한 실정이다.
다른 한가지 방향은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된 하서 김인후 관련 유물에 대한 문화재 지정 검토이다. 다른 지정 사례와 검토해 볼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화순 총마계회도의 경우 1591년 작품으로 가치가 있어 보물 제1722호(2011.9. 5 지정)로 지정된 바 있다. 김인후 유물인 <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契會圖>(1542년)와 <同湖契會圖>(1545년)는 조선 전기의 계회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契會圖>(1542년[중종 37](광 3869))는 1542년 3~7월경 사마시에 함께 급제한 동기생들이 십수년을 전후하여 대과에 급제한 뒤 모임을 가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린 그림이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정유길, 민기(1504~1568), 남응운(1599~1587), 이택(1509~1573), 김인후, 윤옥(1511~1584) 등 7명이다. 이 그림에는 홍문관 정자인 김인후가 쓴 칠언율시가 있으며 끝에 그의 자인 후지(厚之)를 썼다. 김인후에 대한 좌목은 ‘從仕郞弘文館正字兼經筵典經春秋館記事官金麟厚 厚之 本蔚山 父學生 齡’으로 기록되어 있다.
<同湖契會圖>(1545년[인종 1](광 3870))는 1545년에 임형수, 이황, 윤형, 남응룡, 민기, 이홍남, 김수, 이담, 이원록, 박승임, 노수신 등 15명이 동호에서 계회를 하고 이를 기념하여 그린 것이다. 동호는 지금의 한강을 기고 있는 응봉일대로 사가독서를 하던 곳이다. 당시 김인후의 관직을 옥과현감으로 적고 있어 잠시 제술관으로 조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 모임에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인후의 증직, 추증, 증시, 문묘배향 상소, 문묘배향 교서, 치제문 등은 조선시대 후기 문관의 관료 생활과 현양활동 등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제도사와 서원연구, 교육사 등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서 지정문화재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특히 대다수 유물들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서원 유물의 일괄 문화재 지정을 검토해야 하리라 본다.
4) 기록자료의 교육, 홍보, 체험 자원활용
마지막으로 이들 기록자료를 제대로 활용한 필암서원의 교양 해설자료, 교육, 홍보자료의 편찬이 필요하다. 이미 하서 김인후라는 초등용 자료를 발간한 있긴 하지만, 보다 더 광범위한 대상을 포함한 홍보자료를 보급하여야 한다.
역사와 정신이 포함되고 경관이나 건축, 제향인물의 행적이 수요층에 따라 알기 쉽고 다양하게 정리되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필암서원만의 모습들이 축약적으로 편집 온축하려면 연구, 편집, 교육자들이 힘을 합쳐 수요자에 맞는 3-4종의 서로 다른 홍보, 교육자료들을 개발하여 간행하여야 한다. 그럴 때 교육·체험자료로 효율적 활용도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필암서원을 공간으로 한 체험교육 활동은 몇 가지가 추진되어 왔는데, 이를 보다 더 발전시켜 가야 하리라 본다.
o 필암서원 선비학당 운영 : 장성군에서는 학문을 숭상하고 호국충절 정신이 투철한 선비의 고장으로서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바람직한 정신문화 함양과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하여 필암서원에서 서비학당을 운영해 왔다. 문향으로서 전통학문 습득을 통한 예절과 도덕정신 함양과 자랑스러운 서원에서 현장감 있는 과정으로 진행하였다. 1999년 4월 29일 필암서원내 청절당에서 강사(훈장, 박래호동양학연구원 원장)를 초빙하여 주 3회 2시간씩 매회 20여명이 참여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교육내용은 사자소학, 명심보감, 대학, 효경, 하서 김인후 등 장성출신 학자의 사상과 정신에 대한 것이다.
o 문불여(文不如), 무불여(武不如) 장성에서의 1박 2일 캠프 : 2011년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재 생생(生生)사업은 지역의 문화재 인프라를 활용하여 현장 체험과 교육을 통해 문화재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 및 문화재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아 보는데 있었다.
장성군에서는 문화재 관련 단체[대동문화재단]와 함께 두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첫째는 ‘문불여 부불여 장성에서의 1박2일 캠프’는 초중생을 대상으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일대기, 조선 왕세자 교육 체험, 박수량 백비를 참배하며, 인종을 향한 충절, 조선시대의 왕세자 교육, 청렴정신 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기간은 2011.8월부터 2011.10월까지 매회 30명씩 7회를 실시하여 모두 183명(장성군 관내 90명, 관외 93명)이 참여 하였다. 관외에서는 광주, 보성, 무안, 경기도, 대전 등지에 참여 하였다.
o 외국인과 함께하는“두번째 나라 한국 체험” : 2011 문화재청 문화재 생생 사업으로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외국인과 함께하는 두 번째 나라 한국 체험’은 결혼 이주여성들의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배울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로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기간은 2011. 9. 7(1기), 9. 28(2기)로 20명씩 2회를 실시하였는데 프로그램은 ① 필암서원 집성관 집결, 서로 인사 나누기, ②플래시상영(한국의 명절과 예절), ③한국음식 만들기 체험(떡케잌, 송편 등), ④ 한국전통예절배우기(다도, 절 하는 법 등), ⑤ 문화재 탐방, 필암서원 둘러보기를 내용으로 하였다. 참여한 사람의 국적은 중국(10), 캄보디아(4), 필리핀(7), 베트남(15), 일본(4)이었다.
5) 장성 필암서원-한국의 서원을 연계한 DB와 GIS 구축
앞에서 예시한 다양한 조사와 홍보 활용 사례, 그리고 활용의 방안 등은 개별 서웡이나 특정 지역의 유산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종합적으로 활용하면서 정신이나 문화를 계승하고, 그것이 또한 시대에 맞게 이어져 가야 한다. 다문화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고루 참여하면서 인식을 공유해야 하고, 특히 정보산업의 발달과도 맞춰 DB와 GIS 구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던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조사를 하던 중에 민족문화백과사전을 탑재한 웹사이트를 이용하던 중, 서원 설명 편에 일부 소재처가 잘 못 기록되어 있는 점을 발견하였다. 미훼철 47개소 중 무성서원과 필암서원이 ‘경상도 태인’과 ‘경상도 장성’으로 오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시정 요청(2012.4.2)을 하여 ‘시정을 하겠다’ 답변 메일을 받기는 했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DB와 GIS 구축은 종합조사와 자료의 공유, 학제간 연구를 기초로 하여 진정성을 확보한 뒤에 그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별 유산이 아니라 통합·융합적인 체계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장성 필암서원의 기록자료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한국의 서원’으로 연계되어야 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유산’으로 국민의 인식속에 자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세계적인 보편성과 특수성은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자료 1 : 필암서원 기탁유물 목록(지정문화재 14책64매)[국립광주박물관]
첫댓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