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장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 그러나 멸망
(찬송 532장)
2024-10-11, 금
맥락과 의미
“이 말을 들으라.” 3,4,5장은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5:1-17절은 대칭구조 (chiasmus, 원래 물건과 거울에 비친 물건이 순서가 다르게 보이듯이 주제를 연결하는 것: A-B-C-B’-A’)로 되어 있습니다.
A.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 (1-3)
B. 회개하라: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 (5-6)
C.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 (7-13)
B’. 회개하라: 살기 위하여 선을 찾으라 (14-15)
A’. 심판에 대한 백성 자신의 탄식 (16-17)
18-27절은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여 공동체의 정의가 없이 종교활동만 무성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6장도 “화 있을진저”로 시작합니다.
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불의한 백성에 대한 심판 경고, 회개 촉구(1-17절)
1) 이스라엘이 심판 받을 것에 대한 여호와의 탄식 (1-3절)
여호와께서 장례식의 장송곡을 지어 부르십니다. 1-6절은 구절의 끝에 하나님의 백성을 “000집”이라고 부르면서 반복합니다. 이스라엘 집(바이트 이스라엘1절)을 위하여 슬픔의 장송곡을 부릅니다. “처녀 이스라엘” (버툴라 이스라엘, 1절) 이 엎드려 진 것을 탄식합니다. 이스라엘 집 (3절)에서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이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2) 회개를 촉구 (4-6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 (4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찾으라 (바카셔) 그리하면 살리라.” 다른 말로 벧엘 (벧-엘: 하나님의 집)”을 가지 말라. 벧엘, 길갈, 브엘 세바는 백성이 하나님 대신에, 혹은 하나님과 함께 우상 신을 섬기는 곳입니다.
벧엘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집과는 다른, 이방신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벧엘은 허무하게 (아웬)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 호세아도 우상 숭배의 헛됨을 말하기 위해 벧엘을 아예 “벧 아웬”이라고 비꼬면서 이름 불렀습니다(호 4:15, 5:8, 10:5). 하나님께서 요셉의 집 (요셉은 북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 6절)에 불같이 심판하러 오실 때, 벧엘에 불 끌 자가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이유 (7-13절)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차디크)와 그 공의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정의(미셔파트)를 쓰나 쓴 풀처럼 나쁘게 변하게 (하파흐) 하기 때문입니다 (7절).
그러나 여호와는 하늘과 밤낮과 바다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변하게 (하파흐)” 하는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기 때입니다.
가난한 자를 짓밟고 재산을 뺏습니다. 정의가 사라지므로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입니다 (12절). 그렇게 돈을 벌어 집을 짓고 포도원을 심는 악한 자들이,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도록 심판하십니다.
4) 회개를 촉구 (14-15절)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다라셔) 악을 구하지 말라”(14절)은 4절에서 “나를 찾으라 (다라셔)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라”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선을 사랑하며 정의(미셔파트)를 세우라”(15절)은 7절에 나타난 잘못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14, 15절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온 세상을 정벌하시는 총사령관 여호와께서 회개하는 백성을 돌보실 것을 약속합니다.
5)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 당하는 백성의 탄식 (16-17절)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할 때 모든 사람은 장례식 때처럼 울 것입니다. 포도원도 결실이 없고 약탈을 당하므로 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집트를 벌하시기 위해 그 도시들 가운데로 지나가셨던 것처럼, 이제는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지나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구원이 아니라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18-27절)
1) 심판의 여호와의 날 (18-20절)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임한 고통들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하실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개는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기대하는 날은 사실은 어두움의 날입니다. 빛이 아닙니다.
2) 형식적 종교행위에 애쓰기보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물같이 (21-27절)
24절 중간 절이 이 단락의 핵심입니다. 아모스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오직 정의(미셔파트)를 물같이 공의(차디크)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 그 앞과 뒤의 세 구절씩 (21-23절, 25-27절)은, 불의를 행하면서 드리는 그 무성한 제사와 종교활동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메섹 밖으로,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심판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겠다고 말하시면서 백성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작은 심판들을 하지만 더 큰 심판을 미루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도 더러움을 버리고 거룩한 삶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집 나간 탕자 같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의지하여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우리 아버지는 간절히 기다립니다.
불의한 일을 행하면서, 특히 약하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면서,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더라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활동을 해도,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의 의를 추구하고 기도하며 실천하지 않는다면, 헛것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종교활동만 무성하게 하지 맙시다.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합시다. 양심으로 서로를 의롭게 대하고 특히 약한 자들을 돌보고 나눕시다. 그 의로운 삶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는 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와 같습니다 (히 13:16).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