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방에선 마루 까는 작업이 한창이다. 남편은 그 일을 위해 며칠 전부터 세심하게 준비했다. 가운데 부분은 비교적 쉬웠지만, 문이 닿는 부분과 꺾여진 벽을 둘러갈 땐 줄자로 길이를 재고, 연필로 표시한 후 그 모양에 맞게 잘라냈다. 정확하지 않으면 들어맞질 않으니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줄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위에는 수많은 눈금이 똑같은 간격으로 줄을 서 있고, 인치와 센티미터가 표시돼 있다.
얼마 전 킬로그램을 재정의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그 말인즉, 우리가 알던 킬로그램에 뭔가 오류가 생겼다는 건데. 단위란 모름지기 바뀌지 않는 걸 기초로 하는 부류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기준에도 업데이트가 필요한 걸까.
원래 나누고 재는 걸 좋아하는 인간들 곁에서 날카로운 칼을 들어 세상을 쪼개고, 잘라내며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 중, 킬로(kilo) 가(家)는 확실히 그쪽에선 명망 있는 가문임에 틀림이 없었다. 백삼십여 년을 그렇게 살며 가족도 늘어났다. 킬로보(baud), 킬로비트(bit), 킬로가우스(gauss), 킬로파스칼(pascal) 등. 달린 식구가 많으니 책임감도 더했을 터다.
모두의 기준이 되어줬던 집안의 가장, 킬로그램은 몇 년 전부터 시대 변화에 맞춰 새 옷을 입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선뜻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나이가 들었다는 건 몸의 부피가 줄었다는 뜻이다. 공기 중으로 산화된 그의 일부. 백 년간 오십 마이크로 그램이나 줄었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확함이 생명인 현장에서 더 날을 벼렸어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 줄어가는 몸뚱이를 어쩌란 말인가.
킬로미터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자 청했다. 그의 동료였던 마일(mile)이란 놈은 잽싸게 강대국을 등에 업고 그 큰 나라에서 자동차 계기판에서조차 킬로미터보다 더 크게 이름을 박아 넣는 데에 성공했다. 놈의 근원이 로마 시대로부터 온 걸 생각해 볼 때, 이 업계에선 괄목할만한 성공사례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하지만 큰 시장에서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는 녀석 아래, 만년 과장 딱지를 단 킬로미터는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 역시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언제 그놈의 기세에 눌려 교과서나 문제집에만 겨우 남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힘의 원리가 아니겠는가. 이미 이런 변화를 한 번 넘어온 그일지라도 잘나가는 동료와의 대결에선 영 자신이 없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킬로미터가 힘내라며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줬다.
킬로그램은 회사에서 새 작업복을 받았다. 과연 정확하게 떨어지는 매무새가 매력적이었다. 입기만 해도 최신형 로봇이 된 듯 세련미가 흘렀다. 하지만 그 옷에 적응하기 위해선 늘어진 뱃살을 날카롭게 베어내고 허리를 곧추세워 코르셋을 입은 듯 올바른 자세와 체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플랑크 상수(h)의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앞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 그건 더 살아봐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인간들의 요구사항도 달라지는 법이니까.
킬로그램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단위 명문가가 세계화로 인한 변화에 체질을 바꾸지 못해 몰락해 갔던가. 바탕, 목, 사, 수동이, 심지어 되마저도 전통시장에 좌판을 깔고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달력이 윤달, 윤년을 만들어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처럼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젠 인간들이 들이민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할 일만 남았다. 다행히 그 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mol)도 이번 업데이트에 동참하게 되었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렇게 술 한 잔을 목에 털어 넣으며 킬로 가는 몰락의 길에서 잠시 비껴가게 되었다는 말씀.
남편이 반나절을 넘게 깐 마루를 다시 뜯고 있다. 처음부터 어긋난 길이가 점점 벌어져 틈새를 만든 탓이다. 꽤 꼼꼼했던 우리 집 가장도 이젠 업데이트가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