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피플퍼스트 운동에 대한 소개를 통해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7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
지적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자립생활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아마도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숙제이다.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이 지체 중증장애인 중심의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지적·발달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은 다른 장애인들보다 더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자 일본에서 먼저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일 국제세미나 - 지적장애인과 자립생활’ 행사가 7일 늦은 2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강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일본의 지적장애인 당사자운동 조직 피플퍼스트 재팬(People First Japan)의 사사키 노부유키 회장이 일본의 지적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의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우리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피플퍼스트 운동은 1960년대 초 스웨덴에서 정신지체인 클럽을 중심으로 한 자기옹호운동에서 시작됐다. 이 운동은 지적장애인 스스로 주체가 되는 당사자운동을 지향하는데, 1968년 부모단체가 1회 자기권리주장대회를 개최한 후 영국, 캐나다, 미국 등으로 확산되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그룹홈 등 지역생활을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지적장애인들의 자조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이런 기반하에 피플퍼스트가 본격적으로 준비되면서 1994년 오사카에서 열린 1회 피플퍼스트 전국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또한 2004년부터는 정식으로 피플퍼스트 재팬을 설립했다.
▲피플퍼스트 재팬 사사키 노부유키 회장. |
지적장애인 당사자인 사사키 회장은 뇌성마비와 지적장애를 입은 채 태어났다. 그는 한 마을에 특수학교와 입소시설이 함께 있는 지역의 특수학교에 다녔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장애인으로서 차별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알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사키 씨는 “처음엔 부모님의 결정으로 장애인수첩도 발급받지 않고 살아서 지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라면서 “그러나 미국의 피플퍼스트 운동을 하는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자신보다 훌륭해 보였고, 그 후로 지적장애 당사자로서의 의식이 강해졌다”라고 밝혔다.
사사키 씨는 1995년 캘리포니아 피플퍼스트 대회에 참가하면서 ‘자기 결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어떤 우수한 지원자의 말보다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에 감화받았다고 밝혔다.
사사키 씨는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자립생활하는 동료들은 나에게 자립생활을 하라고 했고, 집에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라며 “그러나 자립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피플퍼스트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2002년부터 자립생활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자립생활을 하면서 피플퍼스트 운동을 하는 과정은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조력하는 이들의 판단에 기대지 않고 ‘자기 결정’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사사키 씨는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모임’을 꾸려가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지원자가 당사자보다 앞서 의견을 말하고 당사자를 컨트롤 하는 것 같은 상황들이었다”라면서 “실제 자립생활센터에 상담할 일이 있을 때 당사자가 아니라 지원자만 간 것에 대해 화를 내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사키 씨는 “피플퍼스트 운동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말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할 것을 추구한다”라며 “이를 위해 일본의 피플퍼스트를 설립했을 때, 세계의 동료들과 함께 장애인운동에 직접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에 기뻤다”라고 강조했다.
▲2014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 박현철 준비위원장. |
이날 세미나에는 한국에서 피플퍼스트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선언도 발표됐다. ‘2014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박현철 준비위원장은 “더 이상 부모나 전문가에게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라면서 한국의 피플퍼스트 운동을 제안했다.
박 준비위원장은 “작년 10월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피플퍼스트 대회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는데, 많은 발달장애인이 모여 시설 철폐와 지역에서 자립해 살기 위한 것들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라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발달장애인을 무시하고, 시설에서 생활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준비위원장은 “피플퍼스트를 배우면서 느꼈던 것은 발달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외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피플퍼스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2014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는 오는 10월 24일에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