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의 이름에 붙은 접두사의 의미도 재미나다. 자생지를 의미하는 “갯_, 골_, 벌_, 물_, 돌_, 섬_”등과, 생김새를 뜻하는 “가시_, 가는_, 긴_, 우산_”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크기, 색깔, 장소, 모양, 냄새 등에 따라 야생화에게 예쁜 이름이 하나씩 붙여져 있다. 그러므로 “갯_메꽃”은 격포 해안에서 만날 수 있고, “벌_노랑이”는 양지바른 야산에서 만날 수 있으며,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식물의 유사성을 의미하는 접두사에는 “참_, 나도_, 너도_, 개_, 새_”등이 있다. 원조라는 의미로 “참”을 부여하고, 분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식물에게는 “너도_”와 “나도_”, 기본 종(種)에 비해 질이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른 식물에게는 “개_”,“새_”,“뱀_”등을 붙여 구별하는 것이다.
너도바람꽃의 학명은 Eranthis stellata Maxim 이다. 미나리아재비과 너도바람꽃속으로 변산바람꽃과는 속(屬)이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하다. 그래서 너도바람꽃이다. 양지바른 낮은 산, 부엽토가 많이 쌓인 습한 지역이나 계곡 옆에서 자생하는 변산바람꽃에 비해 너도바람꽃은 약간 높은 산 중턱 계곡 옆이나 이끼가 많이 자라는 활엽수림 밑에서 자생한다. 키와 크기도 변산바람꽃에 비해 현저히 작아 눈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5년 전 2월 말 , 지인에게서 너도바람꽃의 자생지를 전해 듣고 설레는 마음 주체 못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나들이 하던 복장으로 완주군에 소재한 한 야산을 찾았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콩밭인 놀이공원에 있는데 가족들을 부추겨 카메라를 들고 능선을 따라 30여 분을 헉헉 올라갔다. 하지만 너도바람꽃이 있다고 한 곳엔 돌무더기와 이끼가 있을 뿐 꽃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한 참을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기에 내가 잘못 찾았나싶어 허탈하게 하산을 마음먹고 발밑을 바라보는데, 5cm남짓의 눈깔사탕만한 흰 꽃이 눈에 띄더니 그 일대가 모두 너도바람꽃 군락이었다. 상아색의 별천지가 있는 지상은 아직 잔설이 남은 겨울의 끝자락이라는 게 믿겨지질 않았다. 아이들은 저만치 칭얼대듯 선 채, 아직은 거침없이 나뭇가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바람이 찬 석양에 서울 갈 길 재촉해야 할 아빠가 행여 꽃이 밟힐 새라 겅중겅중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 위를 뛰어다니며 사진 담는 모습을 더 신기한 듯 바라보았었다.
너도바람꽃은 전라북도를 기준으로 변산바람꽃이 만발할 즈음인 2월 말에 개화를 시작한다. 역시 우리가 꽃잎으로 알고 있는 별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이 마치 꽃잎처럼 5-8장씩 열리고, 그 안에 끝이 둘로 갈라진 깔때기처럼 생긴 노랑색(변산바람꽃은 초록색)의 꽃잎이 꿀샘을 머금은 채, 안쪽에 자리 잡은 수술과 합방하기를 따사로운 이른 봄빛에 소원하며 벌 나비를 유혹한다.
너도바람꽃과 변산바람꽃이 필 즈음, 대지는 꿈틀대기 시작한다. 해빙을 고민하는 지상의 번뇌를 야단치듯 야산의 풀과 들꽃, 나무들의 뿌리가 큰 호흡을 하며 빨대로 음료수를 빨아마시듯 이제 막 시작한 부엽토 밑 해빙의 찬 물을 헉헉 들이마신다. 아직 추위를 탓하며 아랫목과 양지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앞산에 진달래가 피려나~” 하늘만 바라보거나, 어느 찜질방에서 고로쇠약수를 들이킬 무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