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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La République, πολιτεία(정의에 관하여, Sur la justice)
M. Dixsaut, in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 265-266. (P.2190.)
-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Aristoclès 427-347; 80살) 기원전387년 조금 이후 쓴 작품.
- 디소(Monique Dixsaut s.d.) 프랑스여성철학자. 고대철학 플라톤전공, 파리3대학명예교수.
-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Politeia ē Peri dikaiou Πολιτεία ē Περὶ δικαίου
# 장소
케팔로스의 집(la maison de Céphale de Syracuse).
# 등장인물들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트라시마코스(Thrasymaque, Θρασύμαχος, 전459-?)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포스포러스해협의 오른쪽(터키쪽)의 비티니아(La Bithynie, Βιθύνια/Bithýnia)지방의 칼케돈(Chalcédoine, Χαλκηδών / Khalkêdôn)출신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고르기아스와 동시대라 한다.
케팔로스(Céphale de Syracuse, Κέφαλος, s.d.) 무기 상인이며, 제외거류민, 페리클레스가 불러 들였다. 연설가 뤼시아스의 아버지(le père du célèbre orateur Lysias) et son fils Polémarque, / 세 아들과 딸이 하나 있다. 공화국 1권에 나오는 에우튀데모스(Euthydème0, 연설가인 리시아스, 30인 참주 때 목숨을 잃은 철학자인 폴레마르코스(Polémarque, πολέμαρχος), 마지막으로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은 브라퀼로스(Brachyllos)와 결혼했고 이들의 딸은 리쉬시아스와 결혼한다. [폴레마르코스(Polémarque, πολέμαρχος)란 the polemos (war) and archon (ruler/leader)의 결합어로 as "warleader" or "warlord"로 번역된다. 아테네는 매년 아홉 전쟁리더(he nine archontes, ἄρχοντες)를 뽑는다.
글라우콘(Glaucon d'Athènes, Γλαύκων, 전409-전389) 철학자 음악가. 소크라테스 제자. 파르메니데스편에서도 나온다. 글라우콘과 아디만테스는 플라톤의 형제들이다.
글라우콘과 아디만테스(Glaucon et Adimante) 플라톤의 형제들. 소크라테스가 주변에서 가장 품위 높은 인간이라 말한다.
클레이토폰(Clitophon, Κλειτοφῶν. s.d.) 아테네 정치가. 실제인물인지 논쟁거리다.
벤디데이아 축제(Les Bendidées ou Bendideia, Βενδιδεια), 이는 트라키아 지방의 기원으로 달의 여신 벤디스(la déesse Bendis)의 축제이다. 프로클로스(Proclus, Πρόκλος, 412-485)가 전하는 바, 430년경에 아테네의 항구인 페이라이에우스(Le Pirée, ὁ Πειραιεύς / Peiraieús)에서 봄의 달인 타르겔리온(Thargélion: printemps)달 19일에 개최된다.
에르 신화(Le mythe d'Er, Ἤρ) 2격 에로스(Ἠρός)와 에로스(Eros) 혼동하지 말 것. 플라톤의 폴리테이아의 제10권 마지막에 나온다(10권, 614b-621d). 이것은 내밀한 죽음의 경험적 첫 증거로서 고려되었다. / 이것은 플라톤의 순수 발명이 아니라, 오르페우스교와 퓌타고라스학파에게서 중요 요소를 빌려왔다. 그러나 플라톤 자신의 습성에 맞게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작품에 넣었다. / 신화에서 에르는 아르메니오스(Ἀρμένιος, Armenios of Pamphylia)의 아들이다. / 팜퓔리아(Pamphylia, Παμφυλία, toutes les tribus: 모든 종족들의 뜻이다) 지방은 현 터키 반도의 중남부 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 내용
공화국(La République, πολιτεία(정의에 관하여,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De la justice)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디소(Monique Dixsaut s.d.) 해제,
[이 해제는 문단 나누기 없이 한 문단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상 문단 구분하였다. - 디소의 글 자체는 희랍어를 단 두 단어, 기술(art, τέχνη)와 탁월함(l'exelence, ἀρετή)뿐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첨가한 것이다. - ]
이 공화국편은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소크라테스가 벤디데이아 축제(Les Bendideia, Βενδιδεια) 축제 때, 항구인 페이라이에우스(Le Pirée, ὁ Πειραιεύς)에서 그 전날 일어났던 대화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한 가지 질문 “정의(正義 la justice)란 무엇인가?”에 관해서이다. 이 정의(定義 la définition)는 개인과 사회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고려하기에 앞서서 있었다. 영혼과 국가의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의 원리는 주제의 통일성과 방법적 통일성을 보증해 주고, 분석의 각 양태는 - 정치적 또는 심리학적 - 다른 양태로 항상 번역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시작으로 정의로운 영혼과 국가의 모델을 묘사한다(2권에서 4권). 모델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조건들을 발언하면서 이 묘사를 완성한다(5권에서 7권). 결국 그는 부정의(불의)한 정도들에 따라서 생겨나는 해체의 단계를 그린다(8권에서 10권).
제1권은 아마도 이것들보다 앞선 시기에 속한다. 그러나 결코 독립적인 대화편이 아니다. 플라톤 그 자신에 따르면, 제1권은 “서설”(un prologue)을 구성한다. 이 개시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케팔로스(Céphale, Κέφαλος)는 즐기며 사는데, 늙음을 평화롭게 하고, 부(재산)가 자신을 불의로부터 보호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Polémarque, πολέμαρχος)에 따르면, 정의(正義)란 각자에게 자기에 되돌아 갈 것을 되돌려 준다고 하고, 자기에 친구들에게는 선으로, 자기의 적에게는 악으로 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상업적 매매계약에서 정의의 제한, 정의의 기술적(technique)인 개념작용은 불합리한 귀결들로 이끈다. 게다가 친구와 적 사이에 주관적 구별은 객관적인 근거로서 선한 것(자)과 악한 것(자)의 구별을 요구한다. 정의(正義)는 반대항들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art, τέχνη/téchnē)로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탁월함(l'exelence, ἀρετή/aretē)로서 생각되어야만 한다. 트라시마코스는 항의하여 일어나서, 소크라테스에게 정의(定義)에 대한 모든 형식적 시도를 금지한다. 그는 실재론적인 언설을 제안한다. 정의는 가장 강한 자의 이익이라고.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충분히 강한 어떤 강한자라는 상대적 개념 대신에(루소는 이에 대해 회상하게 될 것이다), 어떤 지식을 부여하는 합리적인 힘의 개념으로 대신하자고 한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정의 혜택을 받는자 즉 가가 약한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 주제는 전도되었기 때문에, 트라시마코스는 부정의함의 이로운 점들을 묘사한다고 불평한다. 부정의를 실재적 내용으로 삼은 그 정의(正義)는 부정의에게 반대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지라도, 트라시마코스는 선과 악, 무지와 지식 사이에서 그 반대[대립]를 부정할 수 없다. 어떻게 산다는 것을 아는지가 관건일 때, 논리적 반박은 충분하지 못하다. 소크라테스는 기능적인 전망을 택한다. 즉 각 사물은 [본연의]본성에 의해 각각에게 고유한 임무가 있고, 그것의 완성은 각각의(그의) 탁월함을, [즉] 각각의 행복의 조건을, 구성한다는 전망을 채택한다. 영혼의 임무는 조종하는(gouverner, 다스리다, 키를 잡다) 것이다. 영혼의 고유한 덕(탁월함)은 즉 정의는 영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불의보다는 훤씬 더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방법적 오류는 명백하다(patente). 어떻게 본질을 정의하지 않고서 속성을 증명하는가? 제1권은 이중의 난관(un double échec, 궁지)에 몰린다. 아무것도 정의(定義)되지 못했고, 산파술은 트라시마코와 마주하여 놀랄정도로 소피스트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제까지의 대담자들 중 글라우콘과 아디만테스에게 정의(定義)의 요청을 상기하게 한다. 이 요청은 변증법적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에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모든 정치 사회는 임무들의 분업(la division)을 함축하는 필요(le besion, 요구)로부터 생겨났다. 이 필요들의 급속한 증가가 건전한 사회에 이어 사치로 부풀려진(enflée) 도시 국가로 나가게 한다. 이 도시국가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기원이다. 그런데 전쟁은 자연적인 것과 고요한 도제훈련들을 요구하는 하나의 직업이다. 국가는 수호자들로서(comme gardiens) 반대되는 성향들을 지닌 자들과 동맹을 맺고 또 이들의 교양을 높이는 그런 자들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들은 각 세대에 맞게 선별하게(trier) 하는 시련들(시험들)을 거치게 할 것이다. 수호자들의 공동체 생활은 수호자들 자신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완전한 도시국가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각각은 그 도시에서 각자의 고유한 업무를 환수하기 때문이다. 개인에 있어서 정의도 유사한 위계작 통일성을 갖는다. 영혼 안에서 욕구들[절제]과 에너지[용기]는 이성의 봉사에 소용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두 성 사이의 평등의 역설(파라독스)과 여성과 어린이들의 공동체의 역설은 아디만테스에게는 그러한 통치제도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현존하거나 현존하지 않거나 간에(플라톤은 미리 “유토파아”의 모든 문제를 실격시켰다), 이렇게 구성된 국가는 정의롭다. 결국 철학자-왕들의 역설을 발설한다. 그 철학자는 존재론적 차이라는 이름으로 독사와 에피스테메 사이를 따로 떼어 놓는다. 독사, 즉 의견인 것은 존재(l'être)와 비존재(le non-être)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고, 에피스테메, 즉 지성적인 것은 진실로 항상 존재자(étant)인 것이고 철학자가 사랑하는 것이다. 횡령하는(usurpateur, 찬탈하는) 소피스트에 반대하는 자연적 철학자를 정의(définition)하는 것은, 도시에서 (무용하거나 또는 퇴폐적인?)철학자들의 모호한 지위를 설명한다. 따라서 진실한 철학자들은 철학의 다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다스려야(gouverner) 한다. 어떻게 이 진실한 철학들을 교육시킬 것인가? 무엇을 교육시킬 것인가? 그러한 것은 무엇에게 선한가?
온선(le Bien)을 정의한다(définir)는 것은 너무나 높은 기획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이미지들에 의해 절차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이로써 분석의, 그리고 이어지는 위상론의, 지적(dianoétique, διανοητικός) 본성에 대해 지적해나간다. 태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소에 있다는 점에서, 온선이 지성적으로 알 수 장소와 유사하다. 진리의 원천(la source 근원)으로서 온선은 예지의 완전한 연습을 허락하며, 인식된 대상들에게 이것들의 지적 본질을 부여한다. 사유가 변화하는 사물들로부터 흐려진다고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온선의 권능(la puissance)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지성적인 구별들의 원리(Principe)와 변증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형상(Forme)은 현존과 인식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ineffable, 숭고한) 원천이며(모든 신플라톤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온선은 사람들이 온선의 “놀라운 우수성”(merveilleuse supériorité)을 존재론적으로 변증법적으로 해석하기를 허락한다.
태양의 이미지[태양 비유]는 변증법적 지식의 차이를 보증하고 침묵의 사색을 향하여 나가게 하는데, 그 이미지의 기능은 영혼의 두 방향으로 대립하게 한다. 네 개의 선분으로 나누어진 선의 이미지[선분 비유]는 원본과 반사의 연관에 따라서, 감각적인 것(이미지들과 대상들)과 지식적인 것(가설들과 형상들) 나누는 것을 허용하며, 인식의 네가지 야태들을 제시하게 해준다. 즉 상상, 확신, 추론적 사유, 예지(intellection)이다. 동굴의 알레고리는 - 하이데거는 이것의 “역동적”(dynamique) 성격을 폭로했다 - 운동들을 서술한다. 운동들이란 단절들, (병 등의)재발들(rechutes), 해방이다[등을 표현한다]. 이 운동들은 교육의 운동이며 기원적으로 감옥살이하는 본성[인성]에 적용되어야 할 교육의 운동을 의미한다. 정의로운 국가의 실현은 정치과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철학자들의 현존에 근거한다.
제도화 모델 국가는 어떻게 타락될 수 있는가? 태어난[생겨난] 모든 것은 타락[소멸]될 수 있다. 결혼들의 나쁜 조직화에 의해 자연적[본성적] 철학자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중적인 원인성의 압력으로 해체가 작동될 것이다. 소유제[재산]는 도시를 둘로 나누고, 증가하는 가난은 봉기를 일으킨다. 열등한 심리적 경향은 억압하면서도 지배하기를 원한다. 최고 좋은 자[탁월한 자]의 정치제는 [처음에는] 훼손된 통일체에 자리를 내주고, 그러고 나서는 허울뿐인 통일체에게 자리를 내주고, 결국에는 민주적 다양체에게 자리는 내준다.
모든 정체의 모자이크인 민주정은 그 반대로, 즉 모방-통일체인 단 한명의 참주제로 이끌려간다. 참주제의 그 인간은 정의보다 더 행복한가? 세 가지 논증의 증명들이 확립된다. 즉 진실한 쾌락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에 그는 가장 불행하다. 국가들 속에서 불의 중요한 원인은 시인들에 의해 주어진 교육에 있다. 이 시인들은 착각(illusion)과 고양의 기술을 실행하며, 지식 없이 모방한다. 그러나 불의(不義)는 영혼을 파괴할 힘이 아니라, 퇴폐로 나가게할 힘이다.
불멸의 영혼을 지닌 자에게서 최상의 가치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 에르 신화(에르 신화(Le mythe d'Er, Ἤρ)는 조화(Harmonie, Ἁρμονία)와 필연(Nécessité Ἀνάγκη)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서 각 영혼이 자기의 숙명에 대해 선택한다는 것을 환기 시킨다. 그의 철학만이자기자신의 불행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영혼에게 그 불행을 행하지 않게 한다. 폴리테이아편에서 영혼의 부분들 또는 국가의 부분들은 - 탁월함들, 즐거움들, 과학들, 인식의 대상들과 양태들, 삶의 종류들 - 이것들의 정당한 배열을 발견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거기에서 지성의 침투에 따른 모든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삶이 반대하는 저항을 상기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본성[자연] 상으로도 우발 상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한 부분이 항상 질서를 전복시킬 수 있다.
(47SKJ)
첫댓글 [자연적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루소는 이런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했을 것이다. 소통과 교환을 중요시하는 소피스트와 경작하며 함양하는 농민의 본성을 루소가 플라톤에서 읽었다면 흥미롭지 않는가. (52RMB)]
[플라톤의 상기란 박홍규의 “플라톤과 전쟁”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의 훌륭한 정치체제(귀족정 또는 선량한 군주제)를 회상하는 것일까? 아니면 푸이예처럼 또는 다른 학자들처럼 라케다이몬 지역(스파르타)의 아르카디아(이상향)에 대한 회상일까? 아마도 플라톤이 아테네의 정체를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소크라테스가 이상으로 삼은 아르카디아의 헤라클레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그런데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제도의 상기라기보다 자연적으로 타고 태어났다고 할 것이다.(52RMB)]
Monique BENSIMON (ép. DIXSAUT), 플라톤 전공 철학자. ENS출신이며 파리1대학 명예교수이다.
12/01/1980 Le naturel philosophe. Essai sur les Dialogues de Platon. Maurice DE GANDILLAC(지도교수) :학위논문인데, 늦게서야 학위한 것 같다. 제목이 "천부적 철학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최근저술로 Platon - Nietzsche, L'autre manière de philosopher, Paris, Fayard, « Ouvertures », 2015.(53O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