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닷 되들이 그릇과 한 발 한 자의 북으로 적을 물리치다
옛날 어떤 나라는 곡식이 풍성하고 백성이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와서 빼앗으려고 하였다. 곧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다.
온 나라가 그것을 알고는 크게 군사를 내되 15세 이상에서 60세 이하까지는 모두 싸우러 가게 되었다.
그때 베 짜는 어떤 사람은 나이 60이 가까웠는데, 그 부인은 아름다워 항상 남편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남편은 늘 부인을 공경하고 어렵게 여겨 도리어 장부처럼 섬겼다.
남편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나라의 명령을 받고 나가게 될 것이니, 지금 곧 무기와 양식 담을 그릇을 준비해 주시오.”
부인은 남편에게 닷 되들이 그릇에 양식을 담고, 길이가 한 발 한 자 되는 베 짜는 북[杼] 하나를 주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이것을 가지고 가서 싸우시오. 다른 물건은 없소.
만일 이 그릇을 깨거나 이 북을 잃어 버리면 당신과 같이 살지 않을 것이오.”
남편은 작별하고 떠났다.
그러나 적군에게 상할까 걱정은 하지 않고, 다만 두 가지 물건을 잘못하여 아내를 잃을까만 두려워하였다.
길에서 적군을 만나 싸우다가 이쪽 군사가 패하여 곧 물러나게 되었다.
그는 북과 그릇 두 가지 물건을 잘못하면 부인을 잃는다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달아나는데 그만은 북을 머리에 이고 혼자서 적을 향해 갔다.
적군은 그것을 보고 용맹하다 외치면서 감히 나오지 못하고 모두 물러갔다.
그래서 이 나라 군사는 다시 진을 정돈하고, 힘을 합해 나가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그리고 적군은 패하여 거의 흩어져 죽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공이 있는 이에게 상을 주려 할 때에 여러 사람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저 베 짜는 사람이 가장 공이 많을 것입니다.”
왕은 그를 불러 사정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 큰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사실 나는 무사(武士)가 아닙니다.
내가 군사로 나올 때 집의 아내가 두 가지 물건을 주었습니다.
만일 그것을 잃으면 아내가 가버려 가정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그 두 가지 물건을 보전하려 하였기 때문에 적군을 물리친 것이요,
실은 용맹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비록 아내를 두려워하였으나 결국 나라의 어려움을 구제하였으니, 제일 큰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왕은 곧 그를 대신으로 삼고 보화와 집과 미녀들을 주어 왕을 보좌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손들도 그 복을 이어받아 대대로 전하였다.
이것은 세상에 인연으로 얻어지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인데, 부처님은 그것을 끌어와 비유로 삼으셨다.
그 아내가 남편에게 닷 되들이 그릇과 한 발 한 자의 북을 준 것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5계(戒)와 10선(善)을 가르치신 데 비유한 것이요,
남편에게 두 가지 물건을 굳게 지켜 깨거나 잃지 않아야 같이 산다고 말한 것은, 법을 가져 죽더라도 범하지 않으면 부처님과 함께 도의 집에 오름을 말한 것이며,
이미 적군을 물리치고 다시 상을 받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현세에서는 원수의 행패가 사라지고 후세에서는 저절로 천당에서 복을 받는 데 비유한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