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들의 애곡(1-4)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을 때,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위기 상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 슬픔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드러내야 합니다. 어떻게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들의 애곡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서서 우리 신앙의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1-4)
유다 백성이 바벨론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애통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주전 722년) 지 약 140년 후, 남유다도 바벨론에게 무너졌습니다(주전 586년), 유다의 멸망 3년 전인 시드기야 9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먼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왕하 25:1-2). 시드기야 11년에 예루살렘 성전과 궁전 및 모든 집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어, 유다를 완전히 망하게 했습니다(왕하 25:9-12). 멸망 전후에 유다 백성은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써 포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시인과 이스라엘 백성의 한 무리는 바벨론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제국 바빌로니아의 수도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란 뜻으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뜻하며, 바벨론은 이 두 강 중 유프라테스 강 남동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러 강변’은 유프라테스의 강변들을 가리킵니다. 이 강은 2,850킬로미터로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이며, 에덴동산(창 2:14)과 아르메니아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역을 관통해, 남쪽에서 티그리스강과 합류하여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시인과 무리의 몸은 바벨론에 있으나 마음은 시온에 있습니다. 이 땅 바벨론에서 그들은 이방인일 뿐입니다. 시온을 생각하니 애통의 눈물이 흐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해발 780미터의 구릉) 남서쪽 산등성이를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을 지칭하거나 대체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시온은 다윗이 점령해서 거주했던 곳이므로, ‘다윗 성’으로도 알려졌습니다(삼하 5:7,9). 이후 솔로몬 때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자(대하 3:1), 예루살렘과 시온은 ‘하나님의 산’, ‘거룩한 산’(시 2:6)으로 불렸습니다. 이처럼 시온은 다윗 왕의 영화나 하나님의 임재가 깃든 곳이었지만, 이제는 바벨론과 이방 나라에게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열방 중에 큰 나라요 공주 같았던 시온이 열방의 노예가 되었습니다(애 1:1). 무리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는 순례길에서 기대에 차 바라보던 시온산(시 122:2; 125:2)이 기억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시인과 무리에게 수금을 타며 노래 한 곡조를 부르라고 시켰습니다(3). 그들은 시온에서 동포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온 자들이요, 포로들의 조국과 고향을 폭력으로 황폐케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포로의 주인이 되었고, 자기만족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 그것도 시온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수금을 연주하였으며, 언제 노래를 불렀습니까? 물론 잔치를 열 때 노래와 연주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때 수금과 비파를 타고 나팔과 피리를 불었습니다. 바벨론인들의 ‘시온의 노래’ 요구에 무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는 다름 아닌 ‘여호와의 노래’였습니다(4).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의 땅에서 어떻게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할 수 있습니까?(4) 4절의 ‘이방 땅’은 직역하면 ‘이방의 흙’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부정한 지역임을 암시합니다. 노래를 거절한 그들은 수금을 강변 버드나무에 걸어두었습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