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견율비바사 제5권[5]
[사리불품(舍利弗品)]
우파리는 율장의 근본을 증명하려고 하였는데, 이에 사리불은 고요한 데서부터 일어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물었다.
“무엇을 고요함[靜]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조용하고 소리가 없음이니, 또한 한 마음이 되어 조용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부처님 법이 오래 머무르느냐 함은 비바시(毘婆尸) 부처님에서 대답하였으니, 나머지 것의 뜻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물었다.
“사리불은 어째서 자신의 신력으로 살펴보아 알지 못하고 와서는 부처님께 아뢰었습니까?”
“될 수 없었습니다. 사리불은 혹시 신력으로 살펴보아 바로 모든 부처님의 오래 머무름과 오래 머무르지 못함을 알 수 있지마는 만약 모든 부처님의 인연을 분별하는 데는 통달하여 환히 알 수 없습니다.
대덕 대연화(大蓮華)는 할 수 있다 하니, 왜냐하면 우두머리 아라한은 16종지(種智)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는 족히 어려운 것은 아니로되 여래에 의지하여 세존이 으뜸 됨을 나타내려 하였으므로 와서 부처님께 아뢰며 물었고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머지 율문 구절은 차례로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인가?
이 이치는 알기 쉽습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비바시 부처님을 처음으로 말하리라. 모든 부처님은 게으르시지 않으셨으니, 혹은 한 사람 두세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점점 많아져서 일체 삼천대천 세계의 중생들에게 설법하시되 저마다 다른 마음을 내셨으니, 그것은 대중들이 적으면 간략히 말씀하시고, 대중들이 많으면 자세히 말씀하셔야 되었기 때문이니라.
또한 높고 낮은 설법을 하시지 않았고 다 평등하게 한 가지로 설법하셨으니,
마치 사자가 이레 만에 한 번 일어나서 먹이를 찾다가 중생들을 잡으려 할 적에는 크게 작음이 없이 먼저 외치고서 잡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만약 사자가 중생을 잡을 때에 먼저 크게 외치지 않으면 마음에 가벼이 여기어 혹은 달아나게 될 수도 있으므로 모두 외쳐서 중생들이 무서워서 복종하게끔 하고 잡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들에게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은근히 말씀하시느니라.
만약 간략히 말씀하면 중생들이 혹은 부지런한 마음으로 닦아 익히지 않기도 하리라. 왜냐하면 여래는 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 세존의 설법은 마치 큰 바닷물이 동일한 맛인 것처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그와 같았느니라. 그러나 중생들이 마음은 가르치기 쉬우니, 이제 한 게송의 이치를 말하여 4제에 들게 하리라. 그러므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법인 수등(修登)ㆍ게야(偈耶)를 널리 말씀하시지 않았느니라.”
법사가 말하였다.
“앞 구절은 이미 말하였으므로 거듭 말하지 않습니다.”
<‘성문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지 않는다’에 대해서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왜 성문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 성문 제자들이 그릇됨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위덕바라제목차(威德波羅提木叉)도 정하지 않았으며 반 달[半月] 한 달의 설계를 않은지도 6년에 이르렀습니다.
6년이나 그만두셨다가 교수바라제목차(敎授波羅提木叉)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래가 스스로 말씀하셨음이요, 성문들에게 말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염부리의 땅 반두마저(槃頭摩底) 왕사성(王舍城) 교마(翹摩) 녹야원(鹿野園)은 비바시 부처님이 머무르셨던 곳이니, 일체 비구승들이 다 모여서 부처님의 포살(布薩)ㆍ뭇 상가의 포살ㆍ3인의 포살ㆍ2인의 포살ㆍ1인의 포살이 있었습니다.
옛날 염부리의 땅에는 8만 4천의 절이 있었고, 혹은 10만이나 20만의 비구들이 있었는데, 시끄럽지도 아니하고 모두 고요하게 살았습니다.
이때 여러 천인들의 생각은 부처님의 설계를 들으려고 하여 항상 해를 세다가 6년에 이르러서야 대중들을 모아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 설계를 기다렸습니다.
이때 비구들은 신력이 있는 이면 왔고, 신력이 없는 이는 하늘들이 와서 아뢸 때에 가야겠다고 하고 옷과 바리를 지니어서 비구들은 천인들의 신력을 입고서야 포살하는 당(堂)에 닿았습니다.
가서 닿자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매, 때에 비바시 부처님은 대중들이 모였음을 알고 교수바라제목차를 말씀하셨습니다.
인욕은 제일의 도요
열반은 부처님이 가장 훌륭하셨으니
출가하여 다른 이를 괴롭히면
사문이라 하지 않느니라.
온갖 나쁨은 짓지 아니하고
마땅히 선한 법을 두루 갖추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괴롭히지 않고 허물을 말하지 않고
남의 일을 파괴하지 않으며
계율에 말씀한 바와 같이 행하고
밥 먹음에 양을 조절할 줄 알며
온갖 것에 그치고 족한 줄 알며
항상 즐거이 한가한 곳에 있음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방편으로써 일체 과거 모든 부처님은 이 게송으로 바라제목차를 가르치셨으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수명장단이십니다. 그러므로 같이 짧은 목숨을 말하셨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성문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셨으며, 이것이 위덕바라제목차이니, 여래의 말씀이 아니요, 성문 제자들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20년 동안 모두 교수바라제목차를 말씀하셨으며, 또 어느 때에는 부바승가람(富婆僧伽監)과 미가라모(眉伽羅母) 궁전에서 비구들이 앉자마자 곧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이후에 나는 포살을 짓지 않겠으며, 나는 교수바라제목차를 말하지 않으리니, 너희들이 스스로 말하라. 왜냐하면 여래는 청정하지 못한 대중들의 포살에서 바라제목차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성문 제자들이 위덕바라제목차를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문 중의 말씀에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모든 부처님은 위덕바라제목차를 말씀하지 않으셨고, 교수바라제목차를 말씀하셨으며, 비바시 (등의) 세 부처님은 바라제목차를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니라.
세 부처님이 이미 열반에 드시고 성문 제자들도 열반에 들었으니, 최후의 성문 제자의 성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이름도 한 가지가 아니어서 성은 구담이기도 하고, 성은 목건련이기도 하며, 이름은 불무덕(佛無德)이기도 하고 이름은 담무덕(曇無德)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 가지가 아니어서 혹은 바라문 종족이요, 혹은 거사 종족이요, 혹은 찰리 종족이다.
또 한 가지의 집이 아니어서 혹은 부자 집이요, 혹은 가난한 집이요, 혹은 하천한 집이었으니, 따라서 이와 같이 갖가지어서 하나의 집이 아니었느니라.
하나의 성씨 등이 출가하여 맑은 행을 지음이 아니고 한 종족ㆍ성씨ㆍ이름이 바른 법에 들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 그 뜻하는 곳을 써서 부처님 법에 서로 이어받지 못하였으니, 부처님 법이 오래 세상에 머무르지 못한 소이는 이들 때문이었느니라.’”
물었다.
“비구들은 어째서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지 아니하여 바른 법이 속히 무너져 없어지게 하였습니까?”
대답하였다.
“먼저 대덕들이 오히려 잘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 하고, 각자가 법장을 수호하지 않았으므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속히 없어지게 했을 뿐입니다.”
‘실로써 꿰뚫지 못함’이란 바람이 불면 곧 흩어지리니 꿴다고 함은 잡아맴을 말한다. 비유컨대 여러 가지의 꽃을 실로 꿰지 않으면 바람에 불리어서 곧 흩어져버리는 것처럼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계율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써 먼저 관한 뒤에 성문을 가르친다’에 대해서이다.>
“그 뜻은 무엇입니까?”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먼저 성문들의 마음을 관한 뒤에 가르치셨으니, 성문(聲聞)들을 반연하여 이치를 깨닫기가 쉽기 때문에 부처님도 자세히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움의 숲’이란 이 숲에 만약 들어가는 이가 있으면 곧 두려움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너희들은 생각하라’ 함은 세 가지 생각이 있는데 출가가 처음이 도니, 그대들은 부지런히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함은 세 가지 나쁜 법이 있는데 탐욕을 생각함이 처음이 도니 그대들은 부디 이와 같은 것을 생각지 말고, 그대들은 마음에 기억하고 지니어서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를 관할 것이요, 마음에 한결같이 기억하고 지니어서 이런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생각하지 말라’ 함은 무상을 항상 하다고 하는 이치로 생각지 말며, 부정을 깨끗하다고 생각지 말지니 그대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들의 버려야 하는 것이다’ 함은 모든 나쁜 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으켜서 머물러야 한다’ 함은 선한 법은 그대들이 일으켜야 하니, 만약 이미 하였다면 늘리고 자라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번뇌를 일으키지 않음으로부터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 함은 마음에 번뇌를 지니지 않는 까닭에 해탈함이요, 또한 없앰[滅]으로 일으키지 않고 없앰에서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본에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음으로부터 마음에 해탈함을 얻느니라’고 하였으니, 일체가 다 아라한이다. 비유컨대 연꽃이 햇빛이 나자마자 피어남과 같다.
‘사리불이여, 옛날 두려움의 숲 안에서’라 함은 만약 사람이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하고 이 숲에 들어가면 숲에 위엄이 있는 형상이 있으므로 모두가 머리털이 곤두선다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인연이니라’에 대해서이다.>
법사가 말하였다.
“다음 구절의 뜻은 쉬우니,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함은 비바시 부처님의 수명은 8만세요, 성문들도 그와 같았으니 부처님이 세간에 계심으로부터 최후의 성문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법이 세간에 머무르기 백천 6만세였다. 시기(尸棄) 부처님의 수명은 7만세에 성문 제자의 수명도 그러하였고, 유위(惟衛) 부처님의 수명은 6만세에 성문의 수명도 그와 같았으니, 두 부처님 수명과 최후의 성문에 이르러서 부처님 법이 세간에 머무르기 백천 42만세로서 차례로 등급이 있었으므로 부처님의 법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이에 사리불은 세 부처님의 불법이 오래지 않았음을 들었다.
듣고는 마음에 다시 부처님 법이 오래 머무름을 묻고자 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써 불법이 오래 머무르십니까?”
“모든 부처님의 수명에 구나위(拘那衛) 부처님의 수명은 4만세요,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 부처님의 수명은 3만세요, 가섭 부처님의 수명은 2만세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명은 1백세이며, 그 성문 제자들의 수명도 그와 같으므로 불법이 오래 머무르느니라.
나 지금의 세존은 가섭의 반의 수명인 1만세를 취하여 이때에 세간에 나와야 하나, 중생들의 근기가 익지 못했음을 살펴보고는 5천 세로 나와야 하고, 차례로 5백 세에 나와야 하고, 또 다시 근기가 익은 중생들이 없으면 1백세까지 이르니, 그런 뒤에야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심에 수명이 짧아지고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으므로 불법의 오래 머무름은 앞과 같느니라.
세 부처님의 법은 수명과 함께 없어졌으므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나 뒤의 세 부처님은 부처님이 비록 멸도하여도 불법은 오히려 세상에 있나니 이를 오래 머무름이라 하느니라.”
이에 사리불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불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고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성문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시옵소서.”
율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리불은 삼매로부터 일어나서’라고 하였으니, 나머지 두 글귀는 차례로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그만두라, 그만두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고 하시자,
사리불은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시옵소서.”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이 법은 성문 연각이 알 바가 아니요, 부처님과 부처님만이라야 아실 뿐이니라.”
<‘아직 때[垢]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때라고 합니까?”
“때라 함은 지금의 세상과 후세에 여래의 법에서 잘못함이니, 이를 때라고 합니다.”
<‘아직 성문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지 않았다’에 대해서이다.>
“무엇 때문에 성문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번뇌[漏]가 없는데 여래께서 계율을 정하면 중생들은 비방하는 생각을 내니, ‘어째서 구담 사문은 여러 성문 제자들처럼 다 귀한 성바지요, 혹은 왕위였는데도 그 재물과 궁전과 처자 권속들을 버리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모두 족한 줄을 알며 세간에서 바라고 구하는 바가 없는데, 어째서 구담은 도리어 바라제목차로써 잡아매실까? 구담은 아직 세상 사람들을 잘 분별하지 못하시는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계율을 정하면 세상 사람으로서도 공경과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리라. 비유컨대 의사가 병을 잘 다스리지 못함과 같다. 사람에게 처음 악창(惡瘡)이 생기려 함을 보고 악창의 성질은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크게 곪지도 않았으면 곧 그것을 따고, 딴 뒤에는 피가 나와 낭자하여 크게 고통을 받는 것을 약을 발라 악창이 도로 아물었다고 하자.
의사가 말하였다.
≺나는 그대를 위하여 병을 다스렸으니 나에게 값을 치러야한다.≻
환자가 대답하였다.
≺이 어리석은 의사야, 만약 나에게 병이 있었다면 나를 치료하는 게 좋았으리라. 나는 본래 아픔도 없었는데 억지로 살을 째서 피가 흘러나오고 큰 고통을 생기게 하고는 도리어 나에게 값을 요구하니, 어찌 미치광이가 아니겠느냐.≻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만약 먼저 계율을 정하면 비방을 일으켜 ≺나 자신이 죄가 없는데 억지로 계율을 정하시는구나≻고 하리라. 그러므로 여래는 먼저 계율을 정하지 아니하노라.’”
<‘만약 번뇌가 일어나면’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번뇌가 일어난다고 합니까?”
“만약 번뇌가 상가 중에서 이미 일어났다면 이때 여래는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여 바라제목차를 지시하셨을 것입니다.
비유컨대 어진 의사가 병에 알맞게 약을 베풀어 낫게 하고 크게 상을 타며 또 칭찬을 받되,
‘이는 좋은 의사로서 나의 병환을 잘 다스렸도다’라고 하는 것처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죄에 따라서 제정하면 기쁘게 받아 지니며 원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본에서,
‘그만두라, 그만두라. 사리불이여, 만약 번뇌의 법[漏法]이 생기면 연후에 세존은 계율을 정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나머지의 글귀는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불법 중에서 누가 먼저 출가했느냐 하는 것인데, 붕건다아(崩揵多兒)의 이름은 우파사나(憂波斯那)였습니다.
우파사나로 인하여 계율을 제정하셨으니 아직 10납(臘)이 차지 않았는데도 제자를 위하여 구족계를 주었는데, 우파사나는 2납이요, 제자는 1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차례로 이로부터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만약 10납이 차지 못하면서 제자를 위하여 구족계를 주면 돌길라(突吉羅) 죄를 범하느니라.’
부처님은 계율을 정하여 마치셨는데, 다시 어떤 비구가 10납이 찼거나 10납이 넘었지만 어리석어서 지혜가 없는데도 제자를 위하여 구족계를 주었으므로,
부처님은 또 계율을 정하시며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가 없으면서 남을 위하여 구족계를 주면 돌길라 죄를 얻느니라.’
부처님이 지혜 있는 사람에게는 허락하신다 함은 10납이거나 10납을 넘었거나 하여 잘 가르칠 수 있으면 제자를 위하여 구족계를 주는 것을 허락하심입니다.
‘아직 많지 않다’ 함은 대중 스님 가운데 늙고 젊은이가 아직 많지 못하며 방사도 아직 크지 못한데 만약 대중 스님들이 많으면 번뇌의 법을 범하는 이가 있을 것이므로 이때에 여래는 연후에 계율을 정하십니다.
만약 비구가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한 이와 함께 자되 두세 밤을 지내면 이 비구는 파야리(波夜提) 죄를 얻습니다.
만약 비구가 해마다 제자를 제도하면 이 비구는 파야리 죄를 얻습니다.
만약 비구니가 해마다 제자를 제도하면 이 비구니는 파야리 죄를 얻습니다.
이미 하신 말씀이 이와 같으니, 그대들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큰 이끗[大利養]’이라 함은 만약 대중 스님들이 큰 공양을 얻으면 유루법(有漏法)이 생기니, 이때에 여래는 계율을 정하실 것입니다.
만약 비구가 나형(裸形) 외도의 남자나 여자가 손수 음식 주는 것을 받으면 이 비구는 파야리 죄를 얻습니다.
‘아직 많이 듣지 못하였다’ 함은 대중 스님 가운데 아직 많이 들은 이가 없다 함이니,
만약 비구승 가운데서 많이 듣고는 번뇌 법을 내되 1아함이나 5아함을 읽고 외워서 환히 알면서도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써 뒤바뀐 뜻을 해설하고, 그릇된 계율을 옳은 계율이라 하며, 그릇된 법을 옳은 법이라 하므로 부처님은 계율을 정하십니다.
만약 비구로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은 내가 이미 안다’고 이런 말을 하면 이 비구는 파야리 죄를 얻으니, 다음에 사미가 하는 말 같은 것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유루법을 원인하셨지마는 우리가 어떻게 제자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겠습니까?”
“어떤 것을 번뇌라고 합니까?”
“도둑입니다.”
“무엇을 도둑이라 합니까?”
“불법에서 계율을 범하면 바로 도둑입니다.”
“어째서 도둑이라 합니까?”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나는 사문이라 하며 4배(輩)의 물건을 겁탈하므로 계율에서 ‘번뇌 법이 아직 없으면 겁탈하는 사람이 아직 없으며 계율을 범하는 사람도 아직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가 없음’이란 번뇌가 없음을 말하며, 또한 근심도 없고 계율을 범함이 없음을 말한다.
‘검은 법[黑法]에 물들지 않음’이란 검은 법은 파계(破戒)로 말하고, 또한 대중 스님들이 깨뜨리지 않음을 말한다.
‘지극한 청정[極淨]’이란 지극한 광명에 머무름을 말한다.
‘진실지(眞實地)’란 계(戒)ㆍ삼매ㆍ지혜ㆍ해탈가 진실한 자리에 머무름이다.
법사가 말하였다.
“나는 차례로 말하겠습니다.”
비란야국에서 전 여름 석 달에 5백의 비구들은 최소한 수다원의 도를 얻었습니다.
물었다.
[수다원 도]
“무엇을 수다원 도라고 합니까?”
“수다원은 유(流)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유라고 합니까?”
“도(道)이니, 만약 사람이 이 유의 도에 들면 수다원도라고 합니다.
경전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수다원을 어째서 수다원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사리불은 ‘이는 세존이시여, 여덟 가지 도를 잘 꿰뚫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도라 함은,
첫째 정견(正見)이요, 둘째 정사(正思)요, 셋째 정구(正口)요, 넷째 정행(正行)이요, 다섯째 정생(正生)이요, 여섯째 정근(正勤)이요, 일곱째 정식(正識)이요, 여덟째 정삼매(正三昧)이옵니다’고 하였습니다.”
[수다원]
다시 물었다.
“무엇을 수다원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사람이 여덟 가지를 꿰뚫기 때문에 착한 도에 이르는 것을 수다원이라 하며, 이와 같은 이름과 이와 같은 성은 도(道)로 인하여서 과(果)를 이름하므로 수다원이라 하니, 그대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법[不墮落法]’에서 않는다[不]고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인데, 수다원인 사람은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짐이 없다. 왜냐하면 번뇌를 끊었기 때문이요, 도(道) 때문이다.
‘곧 보리에 회향한다’ 함은 앞의 세 가지 도에 회향하여 반드시 이를 것이니, 왜냐하면 도(道) 때문이다.
이와 같이 큰 지혜인 사리불은 여래께 대답하여 마쳤고, 비란야에서 여름 석 달의 큰 자자(自恣)가 끝났다.
‘그때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에서 말씀하셨다[告]는 것은 말한 것이고, 또한 깨닫게 하셨음[覺]을 말한다.
불법에 오랫동안 이런 법이 있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사람의 별청(別請)을 받은 뒤에 떠날 수 있다’고 하셨으나 성문 제자는 별청이거나 별청이 아니거나 뜻대로 떠나간다.
[부처님 다니심의 세 가지 경계]
‘부처님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시려고 하셨다’에서 부처님이 여러 나라를 다니신다 함은 부처님의 다니심에 세 가지의 경계가 있다.
첫째는 대경계(大境界)이요, 둘째는 중경계(中境界)요, 셋째는 소경계(小境界)인데 세 가지의 경계에 뜻대로 다니셨다.
물었다.
“무엇을 대경계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9백 유순입니다.”
“무엇을 중경계라고 합니까?”
“6백 유순입니다.”
“소경계는 어떠합니까?”
“1백 유순입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대경계에 다니시려고 할 적에는 큰 안거가 끝나고 9월 1일에 비구승들에게 둘러싸여 떠나시며, 차례로 마을에 닿으시어 교화하시고 설법하시며, 여러 음식을 받으시며, 제도해야 할 이는 곧 제도하시고, 아직 제도할 수 없는 이는 복과 이익을 얻게 하셨다.
아홉 달을 다니시는데 여름 석 달 중에 많은 비구들이 삼매의 법을 행하여 아직 마치지 못하면 여래는 큰 자자를 하시지 않고 작은 자자가 도달함을 기다려 9월 15일에 마치고서 떠나셨다.
중경계(中境界)에 다니실 때는 여덟 달을 다니셨다.
소경계에는 먼저 중생들의 근기가 익음을 살피시고 머무르며, 다음에 근기가 익으면 떠나시니, 11월 1일이 되면 비구승들에게 둘러싸여 떠나시며, 일곱 달을 다니셨다.
이 세 가지의 경계 중에서 곳곳의 중생들에게 번뇌를 여의고 네 가지 도의 과를 얻게 함은 교화를 위해서이니,
비유컨대 꽃을 따는 사람이 산중을 두루 다니다가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있음을 보면 문득 따가지고 가는 것처럼, 여래도 그와 같으셨다.
또 부처님 법이 있으니, 맑은 아침나절에 선정의 즐거움에 들었다가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큰 자비로써 시방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시어 제도해야 할 이면 여래는 곧 가시어 제도하셨다.
또 모든 부처님 법이 있으니, 새로 다른 나라로부터 오는 이가 있으면 여래는 곧 서로 위문하고 설법하여 그 인연으로 계율 정함을 발기하려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도법(道法)이다.
물었다.
“무엇을 성문의 법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두 번 대중들을 모았으니, 무엇이 두 번이었는가?
첫 번은 처음 여름에 들어 앉아 선정을 취하려 함이요,
둘째 번은 여름에 앉기를 끝나면 실제로 얻는 바가 있으니, 이것이 성문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본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부처님은 아난에게 “마땅히 함께 가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간다’고 함은 바라문을 이별함이니, 이별이라 함은 바라문에게 ‘안거가 이미 끝났으니, 나는 이제 다른 나라를 다니려고 합니다’라고 함이다.
그때 세존은 가사를 입으시고 의복을 정돈하시어 새벽에 떠나시자 아난이 시종하여 가서 성문에 닿았다. 닿으시자마자 들어가시어 큰 광명을 놓아 성안의 거리와 집들을 두루 비추시니, 모두가 금덩이와 같아서 검붉고 누르며 다섯 가지 빛깔이 번개빛과 같았다.
곧 비란야 바라문 집을 향하여 문에 당도하여 서시니, 심부름꾼이 갑자기 부처님 광명을 보고 들어가서 바라문에게 아뢰었다.
“구담 사문께서 지금 문 밖에 계십니다.”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깨닫고 곧 일어나 모직물을 가져다 평상자리에 깔아 두고 몸소 나가 맞이하면서 세존께 아뢰었다.
“이 길로부터 들으시옵소서.”
이에 부처님은 들이시어 앉으셨다.
그때에 비란야 바라문의 본심은 세존 곁에 가까이 앉으려고 하였으나 앉을 수 없으므로 자리 곁에 합장하고 섰다.
법사가 말하였다.
“차례로 다음 구절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바라문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드려야 할 것을 아직도 못 드렸습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이는 바라문이 먼저 허락했던 것을 일으켜서 여래를 공양하려 한 것입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제가 먼저 여래께 석 달 여름 안거를 청하였으니, 날마다 밥ㆍ죽ㆍ단 과일ㆍ음료(飮料)를 보내어 세존을 공양하였어야 할 터인데 곧 어리석게도 잊어버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없어서 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받들어 베풀 수가 없어서 입니다. 저는 속인인 까닭에 여러 사무가 많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핍박하여 헷갈리고 어지러워 저의 마음에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바라문이 이런 말을 하는가?
악마 왕이 헷갈리게 한 줄을 모르고 스스로를 꾸짖으며 속인으로서의 일 때문에 마침내 세존을 잊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라문은 생각하였다.
‘나는 부처님을 청하여 석 달이나 공양할 것을 도무지 베풀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제 석 달 동안에 공양할 것을 합쳐서 하루에 베풀리라.’
“세존께서는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들이소서”라고 하였다.
‘명일(明日)’이라 함은 바라문이 여래를 공양하되 명일에 곧 준비함이다.
부처님은 바라문의 마음이 극히 크게 기뻐함을 살피시고, 부처님은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만약 내가 청을 받지 않으면 이 바라문은 나쁜 마음을 내어 이런 말을 하리라.
≺구담 사문은 석 달 동안의 청에 아직 공양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원한으로 나의 청을 받지 않는 것이다.≻
또 이런 말을 하리라.
≺구담 사문은 일체지가 아니요, 능히 잠깐도 참지 못하는구나.≻
혹은 이와 같은 말을 하며 여래를 가볍고 천히 여기어 큰 죄의 과보를 얻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이제 청을 받아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