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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사론 제3권
14) 구결처(九結處)
구결(九結)이라 하는 것은,
애결(愛結)ㆍ에결(恚結)ㆍ만결(慢結)ㆍ무명결(無明結)ㆍ견결(見結)ㆍ실원결(失願結)ㆍ의결(疑結)ㆍ간결(慳結)ㆍ질결(嫉結)을 말한다.
[문] 구결(九結)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
[답] 애결은 삼계에 각기 다섯 종류가 있으니, 모두 열다섯 종류이다.
만결과 무명결도 역시 그렇다. 에결은 다섯 종류이며 육식신(六識身)에서 생긴다.
견결은 열여덟 종류며, 실원결도 또한 그렇다.
의결은 삼계에 각기 네 종류가 있으니, 모두 열두 종류가 있으며,
간결과 질결은 욕계의 사유단(思惟斷)이며 이것은 다섯 종류가 있다.
이것이 구결(九結)의 성질이며, 이 견은 이미 종자[種]와 모습[相]과 바탕[身]에 갖고 있는 것으로 자연히 성질을 말하고 나면 곧 그 행동도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結)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결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답] 속박당한다는 뜻이 결의 뜻이고, 고통 속에 얽매인다는 뜻이 결의 뜻이며, 독약이 섞여 있다는 뜻이 결의 뜻이다.
속박당한다는 뜻이 결의 뜻이라는 것은, 속박당하는 것이 곧 결이며 결이 곧 속박당한다는 것이다.
[문]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답] 그 내용은 계경에 나와 있다. 그 경에서,
“존자 사리불이 존자 구치라에게 묻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자 구치라여, 눈이 색에 얽매이는가? 색이 눈에 얽매이는가?’라고 하였다.
구치라가 대답하기를,
‘존자 사리불이여, 눈이 색에 얽매이지도 아니하고 색이 눈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나아가 생각[意]이 법(法)에 얽매이지도 아니하며 법이 생각에 얽매이지도 아니한다.
다만 이 가운데서 음(婬)과 욕(欲)만이 서로 얽매이고 있다.
존자 사리불이여, 비유하면 두 마리의 소가 있는데, 하나는 검은 소요, 또 하나는 흰 소가 있어서, 하나는 굴레, 하나는 고삐에 매여 있다고 하자.
존자 사리불이여, 만약 검은 소가 흰 소한테 얽매여 있다느니, 흰 소가 검은 소한데 얽매여 있나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존자 사리불이여, 그는 공평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사리불이 대답하기를,
‘아니다. 현자 구치라여,
왜냐하면 현자 구치라여, 검은 소가 흰 소한테 얽매인 것도 아니고, 흰 소가 검은 소한테 얽매인 것도 아니고, 다만 굴레와 고삐에 얽매여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구치라가 말하기를,
‘그렇다. 존자 사리불이여, 눈이 색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색이 눈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생각[意]과 법(法)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법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법이 생각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가운데 음과 욕만이 서로 얽어매고 있다.
이것을 속박당하는 것이 결(結)의 뜻이라는 것이다.
고통에 얽매이는 것이 결의 뜻이라 함은,
욕계의 결은 욕계의 중생들이 욕계의 고통 속에 얽매이고 있는 것을 말하며,
색계의 결은 색계의 중생들이 색계의 고통 속에 얽매이고 있는 것을 말하며,
무색계의 결은 무색계의 중생들이 무색계의 고통에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모든 욕계의 결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가 서로를 고통 속에 얽어매고 있는 것으로 즐거움이 아니다.
또한 모든 색계와 무색계의 결도 서로가 서로를 고통 속에 얽어매고 있는 것이어서 즐거움이 아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 얽매이고 있는 것이 결의 뜻이라고 한다.
독약이 섞인 것이 결의 뜻이라는 것은,
지극히 모한 생명이 세속에 처하여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해탈을 할 경우 입(入)을 제거하게 되고, 일체입(一切入)은 성인이 있는 곳에서 제거된다.
그것은 독약이 섞여 있는 결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가령 지극히 묘한 음식에 독약이 섞여 있을 경우 지혜 있는 사람은 능히 이를 제거할 수 있다.
독약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 독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극히 묘한 생(生)을 타고난 사람이 세속에 처하여 정수에 들어가게 되면 그는 성인이 되어 능히 독약이 섞인 결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속박 당한다는 뜻과 고통 속에 얽매인다는 뜻과 독약이 섞여 있다는 뜻이 결의 뜻이 되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설했으니, 마땅히 따로 행(行)을 설해야 한다.
[문] 애결(愛結)이란 무엇인가?
[답] 삼계에 대한 애(愛)이다.
[문] 왜 칠사(七使) 가운데서는 욕계의 애는 욕사(欲使)라 세우고,
색계ㆍ무색계의 애는 유사(有使)라 세우며,
이처럼 다른 계경에서도 세 가지의 애, 즉 욕계, 색계, 무색계의 애를 세우는데,
왜 이 경에서는 삼계의 모든 애를 하나의 애결(愛結)로 세우는가?
[답] 부처님 법의 진리는 다른 어떤 진리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 진리는 법의 모습[相]을 모두 알며, 그 행(行)을 모조리 안다.
즉 법이 능히 홀로 담당할 수 있으면 그것은 독립된 법을 이루나 만약 홀로 담당할 수 없을 경우 거기에는 품계(品階)를 세우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이 중생들을 교화하시는데 사람에 따라 혹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중간치의 근기를 지닌 사람도 있고, 약한 근기를 지닌 사람도 있어서,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에게는 삼계의 모든 애를 하나의 애결(愛結)이라 설법하고,
중간치의 근기를 지닌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애를 설법하시니,
예를 들면 칠사(七使) 가운데서 욕계의 애를 욕사(欲使)라 세우고,
색계ㆍ무색계의 애는 유사(有使)라 세운 것이다.
또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는 세 가지 애를 설법하시니,
예를 들면 이른바 삼애(三愛), 즉 욕애ㆍ색애ㆍ무색애가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또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교화하시면서 때에 따라 간략하게 설법하시기도 하고 자세히 설법하시기도 하고 또 간략하고 가세함을 겸용하시기도 하셨다.
그리하여 간략하게 설법하려 하셨을 때는 저 삼계의 애를 설하시면서 하나의 애결이라 설하셨고,
자세히 설법하려 하셨을 때는 세 가지의 애를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욕애ㆍ색애ㆍ무색애가 그것이다.
간략하고 자세함을 겸하여 설하려 하셨을 때는 두 가지의 애를 말씀하셨으니,
예를 들면 칠사(七使) 가운데서 욕사(欲使)로 욕계애를 세우고,
색계와 무색계의 애는 유사(有使)라 규정한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또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교화하심에 사람에 따라 혹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始行]도 있고, 수행을 조금 익힌 사람[少習行]도 있으며, 이미 행이 이룩된 사람[已成行]도 있다.
이 가운데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에게 세 가지의 애를 말씀하셨으니, 삼애(三愛) 즉 욕애ㆍ색애ㆍ무색애가 그것이다.
다음 수행을 조금 익힌 사람을 위해서는 두 가지 애를 말씀하셨으니, 예를 들면 칠사(七使) 가운데서 욕계의 애는 욕사(欲使)라 세우고, 색계와 무색계의 애는 유사라 세운 것이 그것이다.
다음 이미 행이 이룩된 사람을 위해서는 하나의 애만을 말씀하셨으니, 삼계의 모든 애를 하나의 애결(愛結)이라 세운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고통 속에 얽매인다는 것이 결의 뜻이 된다.
즉 욕계애는 서로 얽히고설켜서 서로가 서로를 고통 속에 얽어매고 있으니 즐거움이 아니며,
색계와 무색계의 애도 그것은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고통 속에 얽어맴으로서 즐거움이 아니다.
이는 다 같이 하나의 갉은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모든 애를 하나의 애결(愛結)이라 세우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에결(恚結)은 무엇인가?
[답] 중생들에게 일어나는 악한 마음이다.
[문] 중생이 아닌 것에게도 악은 일어나는데 왜 중생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악이라 하는가?
[답] 중생들에 인하여 악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중생이 아닌 것에도 악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많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많은 경우 중생들에 인하여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중생들이 아닌 것에서 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경우는 적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흔히 악이 불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중생들에게서 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일은 많고 중생이 아닌 경우 악한 것이 불어나는 일은 적다.”라고 하였다.
[문] 만결(慢結)은 무엇인가?
[답] 일곱 가지 자만심[慢]을 만결이라 한다.
일곱 가지 자만심이란 보통의 만(慢)ㆍ증상만(增上慢)ㆍ증만(增慢)ㆍ아만(我慢)ㆍ기만(欺慢)ㆍ불여만(不如慢)ㆍ사만(邪慢) 둥 일곱 가지다. 이 일곱 가지 자만심을 만결(慢結)이라 한다.
[문] 무명결(無明結)은 무엇인가?
[답] 삼계의 무지(無知)를 말한다.
[문] 견결(見結)은 무엇인가?
[답] 세 가지 편견을 견결이라 한다.
세 가지 편견이란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을 말한다.
이 세 가지 편견을 견결이라 한다.
[문] 실원결(失願結)이란 무엇인가?
[답] 두 가지 도둑[二盜]을 실원결이라 한다.
두 가지 도둑이란 견도(見盜)와 계도(戒盜)를 말한다.
이 두 가지 도둑을 실원결이라 한다.
[문] 왜 오견(五見)을 칠사(七使) 가운데서는 하나의 견사(見使)로 세우면서 결(結) 가운데서는 두 가지 편견을 견결(見結)이라 규정하고, 두 가지 편견을 실원결(失願結)이라 세우는가?
[답] 부처님 법의 진리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진리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 진리는 모든 법의 모습을 알고 모든 행(行)을 안다.
즉 법이 홀로 담당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독립된 하나의 법으로 세우지만,
홀로 담당할 수 없을 때는 품계(品階)를 세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에서 이미 설명한, 고통 속에 얽매이는 것이 결(結)의 뜻이라 하였는데,
신견(身見)은 여자 때문에 괴로움 속에 얽매이는 것이라, 즐거움이 아니다.
또한 변견(邊見)과 사견(邪見)도 역시 여자에게 고통 속에 얽매이는 것이라, 즐거움이 아니다.
이것은 다 같이 하나의 명칭으로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 가지 편견을 하나의 견결(見結)이라 세운다.
그러나 계도(戒盜)의 경우 이는 경계 때문에 고통 속에 얽매이는 것이라, 즐거움이 아니다.
또한 견도(見盜)도 역시 경계 때문에 고통 속에 얽매이는 것이라, 즐거움이 아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의 명칭과 같은 성질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편견을 다 같이 하나의 실원결이라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종류가 같고 거두어들이는 내용도 같기 때문이다.
종류가 같다는 것은 견결(見結)도 열여덟 종류이며 실원결(失願結)도 열여덟 종류임을 말한 것이며,
거두어들이는 내용이 같다고 하는 것은 견결에도 십팔사(十八使)가 포함되어 있고 실원결에도 십팔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종류도 비슷하고 포함된 내용도 비슷하기 때문에 결(結) 가운데서 세 가지 편견은 견결이라 세우고 두 가지 편견은 실원결이라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의결(疑結)이란 무엇인가?
[답] 진리에 대한 머뭇거림[猶豫]을 말한다.
[문] 무엇을 진리에 대한 머뭇거림이라 하는가?
[답]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결정하려 한다는 것은 만약 먼 곳에서 보면 머뭇거리는 망설임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저것이 여자인가? 여자가 아닌 것인가? 저것이 남자인가? 남자가 아닌 것인가?’
또 두 갈래의 길을 보고 나서,
‘이것이 길인가? 길이 아닌가?’라는 망설임이 생긴다.
또 두 가지 옷을 보고도,
‘이것이 나의 옷인가? 내 옷이 아닌가?’라는 망설임이 생긴다.
이런 망설이는 생각을 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근본적인 의결이며, 이는 모든 욕계의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에서 오는 잘못된 행동이다.
그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려 하는 것을 의결이라 하는 것이다.
[문] 의결이란 무엇인가?
[답] 진리에 대해 망설이는 것, 이것이 근본적인 의결이다.
[문] 질결(嫉結)이란 무엇인가?
[답] 마음의 노여움[恚]을 말한다.
마음의 노여움이란 이 결은 노여워하는 모습을 지닌 것이다.
[문] 간결(慳結)은 무엇인가?
[답] 마음에서 버리고 싶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마음에서 버리고 싶지 아니하다고 하는 것은 이 결은 탐욕의 모습을 지닌 것을 말한 것이다.
[문]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가?
[답] 안정되지 아니한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안정되게 하고자 한다는 것은,
이 세간에는 질투 속에서 인색한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인색한 생각 가운데서 질투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질투 속에서 인색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좋은 물건을 보고 거기에서 질투심이 일어나,
‘저 물건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저 물건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세간 사람이 보게 되면,
‘이 사람은 지극히 인색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인색한 것이 아니고 질투하는 것이다.
인색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투하는 생각이란,
예를 들면 자기의 처자와 재산ㆍ보물을 지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물건은 이 집안에서 나가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물건은 여기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세간 사람이 보게 되면,
‘이 사람은 지극히 질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인색함이지 질투가 아니다.
즉 그의 안정뇌지 않은 질투 속에 있는 인색한 생각과 인색함 속에 있는 질투의 생각을 안정되게 하려 하는 것을 말한다.
[문] 질결(嫉結)은 무엇인가?
[답] 마음에 일어나는 노여움이다 마음의 노여움이란, 이 결은 노여운 모습을 지닌 것이다.
[문] 간결(慳結)은 무엇인가?
[답] 마음에서 버리고 싶지 아니한 것이다.
마음에서 버리고 싶지 아니한 것이란, 이 결은 탐욕의 모습을 지닌 것임을 말한다.
[문] 왜 십전(十纏) 가운데 질투심[嫉]과 인색함[慳]은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다른 것은 세우지 않는가?
[답] 부처님 법의 진리는 다른 어떤 신리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법의 모양을 다 알고 모든 법의 행(行)을 다 안다.
즉 결(結)의 모습이 있으면 결(結) 가운데 세우지만, 결의 모습이 없으면 결 가운데 세우지 아니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가장 마지막을 나타내고 가장자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저 십전 가운데 무엇을 가장 마지막이라 하고 무엇을 가장자리라 하는가?
그것은 인색함과 질투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색함과 질투를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다른 것은 세우지 않는 것이다.” 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두 가지는 낮고 열등한 결이며, 천첩(賤妾)의 결이며, 더러운 결이며, 낡아 못 쓸 결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공경받고 공양받는 것을 보면 무엇 때문에 이를 보고 질투가 일어나는가?
백천의 헤아릴 수 없는 돈과 재물이 있더라도 그 가운데서 한 푼의 돈도 지닐 수 없는 것인데 지금 이 세상에서 후세에 이르기까지 무엇 때문에 인색함을 일으키는가?
이것을 낮고 열등한 결, 천첩의 결, 더러운 결, 낡아 못쓸 결이라 말하는 까닭에 십전 가운데서 인색함과 질투만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나머지 다른 속박은 세우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인색함과 질투로 인하여 중생들은 생사윤회 가운데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멸과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
세간에는 두 가지의 사람들이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일이 있다.
하나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며,
또 하나는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지닌 사람이다.
질결(嫉結)을 닦고 익혀 많이 배우고 익히게 되면 추하고 더러운 사람이 된다.
또 간결(慳結)을 닦고 익혀 많이 닦고 익히게 되면 곧 빈궁(貧窮)한 사람이 된다.
이 빈궁과 추하고 더러운 두 가지는 부모도 경멸하며 업신여기게 되고 형제 자매들도 역시 경멸하고 업신여기며 심지어 자기의 처자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경멸하고 업신여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십전 가운데서 인색함과 질투를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다른 것은 세우지 아니한 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는 인색하고 질투하는 것이 마치 감옥을 지키는 옥졸(獄卒)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가령 어떤 중생이 옥 안에 갇혀 있는데 두 사람의 옥졸이 감옥 문을 지키면서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또한 정원을 지키는 감시도 지극히 엄하게 다스려 이미 두 사람의 문지기를 세워 아무도 정원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중생들은 악한 세계[惡趣]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옥에 갇힌 죄수와 같다.
인색함과 질투 때문에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마치 정원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인색함과 질투로 말미암아 얻는 결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십전 가운데서 인색함과 질투를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다른 것은 세우지 아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는 인색함과 질투로 인하여 하늘의 천신(天神)과 아수라도 자주 함께 싸우게 됨을 말한 것이다.
저 계경에 의하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처님 계신 곳에 찾아와 묻기를,
‘위대한 선인(仙人)이시여, 천신(天神)과 인간ㆍ아수라(阿修羅)ㆍ건달바(乾達婆)ㆍ가루라(迦樓羅)ㆍ나찰(羅刹) 등 이와 같은 부류 및 그밖에 각기 다른 몸으로 태어난 종족에게 몇 가지 결(結)이 있습니까?’라고 하니,
부처님이 그에게 알려 주시기를,
‘구익(拘翼:帝釋天王의 이름)아, 천신과 인간ㆍ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나찰 등과 각기 다른 몸으로 태어난 중생들에게 두 가지 견이 있나니, 그것은 인색함과 질투이다.’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문] 이와 같은 천신과 인간에게는 혹 구결인 경우도 있고, 혹 육결, 삼결인 경우도 있고, 결이 없는 경우도 있다.
구결이 있는 경우는 모든 범부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육결이 있는 경우는 가령 범부로서 욕애가 다 사라진 경우와 또는 성인으로서 욕애가 다하지 아니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삼결이 있는 경우는 성인으로서 욕애가 다한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결이 없는 경우는 아라한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천신과 사람만이 홀로 두 가지 결의 인색함과 질투를 성취하는 것인데,
무슨 이유로 부처님은 구익(拘翼)에게,
‘천신과 사람ㆍ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나찰 등 이와 같은 중생 및 이밖에 각기 다른 몸을 지닌 중생들에게도 인색함과 질투의 두 가지 결이 있다.’고 하셨는가?
[답] 인색함과 질투는 호족(豪族)ㆍ귀족(貴族)들에게 있는 결을 말한 것이다.
저 제석천왕은 두 하늘 중에서 뛰어난 호족ㆍ귀족이며 그 곳을 주재(主宰)하고 있기에 이것이 무거운 짐이 되어 인색함과 질투가 마음을 감아 조이고 있다.
부처님은 그를 위해서 이것을 비난하시고 풍자(諷刺)하신 까닭에 구익(拘翼)에게,
‘하늘의 천신과 사람 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나찰 등 이와 같은 중생들과 이 밖에 각기 다른 몸을 지닌 중생들에게 인색함과 질투의 두 가지 결이 있다.’라고 하시어,
인색함과 질투로 인하여 무거운 짐이 마음을 조이고 있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인색함과 질투 때문에 천신과 아수라가 자주 싸우게 된다.
그때 제석천왕은 아수라를 두려워하여 아수라가 어지럽히자 싸우던 곳을 떠나서 오래지 않아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내용을 설명하면서,
‘부처님이시여, 무슨 인으로 천신과 아수라는 자주 싸우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내용을 설명하시기를,
‘구익아, 인색함과 질투 때문에 천신과 아수라가 자주 싸우게 되느니라.
하늘 위의 음식은 미묘하고 아수라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런데 저 모든 천신들은 음식에 대해서는 인색하여 아수라가 얻지 못하게 하고,
여자에 있어서는 질투하여 ≺내가 얻게 해 달라≻고 바란다.
한편 아수라는 여자에 있어서는 인색하여 천신들이 얻지 못하게 하고,
음식에 대해서는 질투하여 ≺내가 얻게 해 달라≻고 바란다.
그리하여 천신들은 여자 때문에 아래로 내려오고 아수라는 음식 때문에 하늘 위로 올라간다.
이와 같이 하여 천신과 아수라는 자주 싸우게 된다.’고 하셨다.
그 때 저 제석천왕은 아수라를 두려워하고 아수라가 어지럽힌 싸우던 곳을 떠나 오래지 않아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묻기를,
‘위대한 선인(仙人)이시여, 천신들과 인간ㆍ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나찰 등 이와 같은 중생들과 이밖에 각기 다른 몸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몇 가지 결이 있습니까?’라고 하였고,
이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구익아, 천신과 사람ㆍ아수라ㆍ건달바ㆍ가루라ㆍ나찰 및 이 밖의 각기 다른 몸을 지닌 중생들에게는 인색함과 질투의 두 가지 결이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십전 가운데서 인색한 마음과 질투심, 이 두 가지만을 구결(九結) 가운데 세우고 다른 것은 세우지 아니한 것이다.
구결처(九結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