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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도론 제6권
8. 행문품 ③[2]
[10부정상]
[방창상]
[문] 무엇이 증장상(增長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증장상이란 일체처에 가득한 것이다.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이 속에 가득한 배낭(排囊)과 같은 시체를 방창(膖脹)이라 한다.
방창의 상(相)을 바른 지혜로 아는 것을 방창상(膖脹想)이라 한다.
이 상을 닦아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방창상에서 그 모습을 따라서 관하는 것을 상(相)으로 삼고,
방창상을 싫어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냄새나고 더럽고 부정하다고 작의하는 것을 처로 삼는다.
어떤 공덕이 있는가?
방창상에는 아홉 가지 공덕이 있다.
내신(內身)에 대한 염(念)을 얻고, 무상상(無常想)을 얻고, 사상(死相)을 얻고, 과환에 대한 혐오[厭患]가이 많아지고, 음욕을 조복하고, 색교(色憍)를 끊고, 무병교(無病憍)를 끊고, 선취로 향하게 하고, 제호(醍醐)로 향하게 한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신참 좌선인은 현재에서 방창(膖脹)의 부정상(不淨相)을 취한다.
무이(無二)의 행으로써, 동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는 염(念)으로써, 모든 근을 안으로 모음으로써, 마음이 외부로 나지지 않음으로써 그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갖가지 시체가 있는 부정한 곳이다.
그곳에 머물며 역풍을 벗어나 부정한 상을 마주하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기대거나 앉는다.
그 좌선인은 기대거나 앉아 부정처 근처의 돌이나 흙더미나 나무나 그루터기나 덩굴에서 상(相)을 짓고 사(事)를 지어,
‘이 돌은 부정하다. 이것은 부정상이다’라고 사유한다.
이 돌과 같이 흙더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을 짓고 나고, 사를 짓고 나서는 10행으로 방창의 부정상을 그 자성부터 수행하고 마땅히 관해야 한다.
즉 색깔[色]ㆍ남녀의 형상[男女形]ㆍ방위[方]ㆍ장소[處]ㆍ마디[節]ㆍ구멍[穴]ㆍ구덩이[坑]ㆍ평지(平地)ㆍ평등(平等)ㆍ일체처(一切處)로써 관해야 한다.
색깔로 관한다는 것은,
검으면 검다고 관하고,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면 검지도 희지도 않다고 관하고, 희면 희다고 관하고, 냄새나는 피부면 냄새나는 피부라고 관하는 것이다.
형상으로 관한다는 것은,
여자의 형상인지 남자의 형상인지 관하고, 어린아이인지 성인인지 노인인지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한다는 것은 키가 크면 크다고, 키가 작으면 작다고,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왜소하면 왜소하다고 그것에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방위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방향에 내던진 머리가 있고, 이 방향에 내던진 손이 있고, 이 방향에 다리가 있고, 이 방향에 등이 있고, 이 방향에 배가 있고, 이 방향에 내가 앉은 자리가 있고, 이 방향에 부정상이 있다고,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밝은 장소[光明處]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손[手]을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다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머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내가 앉은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부정상이 있는 자리라고 관하는 것이다.
분별로 관한다는 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아래로부터 머리까지, 모발과 피부를 끝[邊]으로 삼고,
“이것은 하나의 똥 무더기이다”라고 분별로 관하는 것이다.
마디로 관한다는 것은,
두 손에 있는 여섯 마디, 두 다리에 있는 여섯 마디, 관절(髖節)과 항절(項節), 이것을 열네 개의 큰 마디라 한다.
구멍[孔穴]으로 관한다는 것은,
입을 벌렸는지 다물었는지 따라서 관하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따라서 관하고, 손가락 사이 발가락 사이의 빈 공간을 관하는 것이다.
구덩이[坑]로, 또 평등지(平等地)로 관한다는 것은,
부정상이 있는 처소를 따라 공처(空處)에 있는지 땅 위에 있는지 그 처소를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또 ‘나는 공처에 있고 부정상은 땅 위에 있다’,
혹은 ‘부정상이 땅 아래 있고 나는 땅 위에 있다’고 따라서 관한다.
일체처로 관한다는 것은,
나로부터 너무 멀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2심(尋)이나 3심 거리에서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그 좌선인이 이와 같이 일체를 올바르게 따라서 관하여 그 상을 보았다면 훌륭하고도 훌륭하니, 이와 같이 수지하고, 선으로 스스로를 편안케 한다.
그 좌선인은 훌륭하게 상을 취한 뒤에, 훌륭하게 수지한 뒤에,
훌륭하게 스스로를 편안케 한 뒤에 둘이 없이 한결같이 행하고,
동요하지 않는 염으로 마음이 어리석지 않고, 모든 근을 안으로 잘 모으고,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가고 오며, 걷건 앉건 그 부정을 보고 마음으로 항상 수지한다.
둘이 없는 행[無二行]이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염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리석지 않게 하고, 모든 근을 안으로 모으고,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오고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역풍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악취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너무 멀리 혹은 가까이 앉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너무 멀면 그 상을 없앨 수 없고 너무 가까우면 그 싫음이 생기지 않아 그 성품을 보지 못하고, 그 성품을 보지 못함으로써 그 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게 취하지 않는다.
앉아서 일체상을 두루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어리석지 않은 것이라 한다.
만약 좌선인이 적적처로 들어가 부정상을 보고 그것이 자기 앞에 있게 되면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 따라서 좌선인은,
“죽은 시체가 일어나 쫓아온다 해도 일어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사유한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기억하고, 바른 지혜로 수지하여 이미 관한 상이 변재한 것, 이것이 그 변상(遍相)이다.
이와 같이 작의하는 것을 어리석지 않음이라 한다.
[문] 10종 행상을 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답] 마음에 속박한다는 것이다.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차제법을 일으키기는 것이다.
차제법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좌선인이 적적처에 들어가면 어떤 때는 마음이 심란하여 불상(不常)을 관함으로써 부정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좌선인은 일체의 마음을 모아 마땅히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해야 하고, 좌선처를 관해야 하고, 변상을 관해야 하고, 마땅히 열 가지 취상을 관해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자주 현재에서 관하고 다시 또 상을 일으켜 눈으로 직접 보듯이 한다.
이것을 차제법을 일으킴이라 한다.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이 시신에 진보상(珍寶想)을 일으켜 이와 같이 환희하고, 마음에 수지하며, 마음으로 항상 닦고, 모든 개(蓋)를 소멸한다.
그러면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된다.
그 좌선인은 이미 욕망을 떠나고 이미 불선법을 떠나 각이 있고, 관이 있으며, 적적으로 이루어진 희와 낙이 있어 초선정 및 방창상에 든다.
[문] 어떤 까닭에 부정행(不淨行)으로써 초선을 일으키며, 다른 선은 일으키지 않는가?
[답] 이 행은 아직 관을 생기게 하지 않는 까닭에, 또 이것은 속박처를 만드는 까닭에, 항상 각과 관을 따른다.
각과 관은 항상 나타나 그 상을 일으키며, 각과 관을 떠나서는 그 마음이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초선은 생기지만 다른 선은 생기지 않는다.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의 색깔과 형상 등 하나가 아닌 행으로써 사유한다.
행사유(行思惟)를 일으킨다는 것은 각과 관의 작용이니, 각과 관을 떠나서 사유의 행을 능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고,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은 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마음에 떠올릴 수 없을 때에는 부정처에서 마음이 희락을 말미암는 까닭에 각과 관의 방편을 제외한다.
각과 관의 방편의 힘에 의지할 때는 악취 나는 똥과 같다는 것을 말미암아 수행한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며,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 견디기 어려운 일에서 어떻게 희락을 일으키는가?
[답] 견디기 어려운 일은 희락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또 개(蓋)의 열기를 잘 끊는 까닭에, 마음을 닦음으로써 자재한 까닭에 희락의 행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방창상을 마친다.>
[청아상]
[문] 무엇이 청어상(靑瘀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청어란 죽은 뒤 하룻밤을 지내거나, 2ㆍ3일을 지낸 뒤 청어상이 성립한다.
푸르게 물든 것과 같은 색이 따라서 생기는데 이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그 청어를 청상(靑相)이라 하고,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청상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그 상을 닦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청어상을 마친다.>
[궤란상]
[문] 무엇이 궤란상(潰爛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궤란이란 혹은 죽어서 2ㆍ3일 지나면 허물어지고 문드러져 마치 우유죽을 붓은 것처럼 고름이 흘러나온다. 몸이 허물어지고 문드러지는 것을 궤란이라 한다.
이런 궤란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궤란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궤란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고,
그 상을 취하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궤란상을 알아야 하며, 궤란상을 마친다.>
[참작이산상]
[문] 무엇이 참작이산상(斬斫離散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참작이산(斬斫離散)이란 칼로 신체를 잘라 흩트리는 것이다. 또 내던져진 시신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참작이산이라 한다.
이 참작이산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참작이산상(斬斫離散想)이라 하고,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참작이산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문]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양쪽 귀에 두 손가락을 대어 편편상(片片想)을 만들고, 참작이산상을 만든다.
이와 같이 상을 취하고, 일이(一二) 상에서 그 공상(空相)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참작이산상을 마친다.>
[식담상]
[문] 무엇이 식담상(食噉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식담이란 까마귀ㆍ까치ㆍ올빼미ㆍ독수리ㆍ돼지ㆍ개ㆍ여우ㆍ늑대ㆍ호랑이ㆍ표범 등이 뜯어먹은 시신이다. 이것을 식담이라 한다.
그 식담에서 그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식담상(食噉想)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식담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식담상을 마친다.>
[기척상]
[문] 무엇이 기척상(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기척이란 곳곳에 그 수족이 흩어져 내던져진 것이다. 이것을 기척이라 한다.
기척상에서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想)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모든 신체부위를 한 곳에 모아 각 부분을 맞춘 뒤 2촌정도 서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에 기척상으로써 그 상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기척상을 마친다.>
[살육기척상]
[문] 무엇이 살육기척상(殺戮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피살되어 버려진 것이란 칼이나 몽둥이, 혹은 화살로 곳곳을 자르고 토막 내어 죽인 시신을 말한다. 이것을 살륙기척이라 한다.
살육을 당해 버려진 이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살륙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살륙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살륙기척상을 마친다.>
[혈도염상]
[문] 무엇이 혈도염상(血塗染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혈도염이란 수족이나 몸뚱이를 잘라 피가 흘러 온 몸에 범벅인 것, 이것을 혈도염이라 한다.
혈도염의 상(相)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혈도염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혈도염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혈도염상을 마친다.>
[충취상]
[문] 무엇이 충취상(蟲臭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충취란 갖가지 벌레가 생겨 그 몸에 가득한 것이 마치 흰 구슬과 같고, 온전히 그것이 벌레무더기인 것이다. 이것을 충취라고 한다.
충취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 아는 것, 이것을 충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충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충취상을 마친다.>
[골상]
[문] 무엇이 골상(骨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 골(骨)이란 갈고리와 쇠사슬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살과 피와 힘줄과 혈맥이 서로 엉켜있거나, 피와 살은 없고 힘줄만 남아 엉켜있거나, 혹은 피와 살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을 골이라 한다.
이 골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골상을 마친다.>
[10부정처의 산구]
[문] 부정처에서 무엇이 산구(散句)인가?
[답]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무거운 번뇌를 가지고 있으므로 종류가 아닌 것[不種類]에서 상을 취해서는 안 된다.
종류가 아닌 것이란 남녀의 몸과 같다.
만약 부정업을 지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정상을 작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항상 사(事)를 관하는 까닭에 싫어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축생의 몸에서 깨끗한 상을 일으키지 않고, 하나의 골로써 상을 일으키며, 자재하게 그 골을 취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만약 부정상을 색(色)으로써 일으켰다면 일체입을 말미암아 마땅히 관해야 하고,
만약 공(空)으로써 일으켰다면 계(界)로써 마땅히 관해야 하며,
만약 부정으로써 일으켰다면 부정으로써 마땅히 관해야 한다.
[문] 어떠한 까닭에 열 가지 부정뿐이고, 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가?
[답] 몸을 잃는 데에 열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10인에 의하는 까닭에 10상(想)이 이루어진다.
욕인(欲人)은 마땅히 방창상을 닦아야 한다.
색애욕인(色愛欲人)은 마땅히 청어상을 닦아야 한다.
정욕인(淨欲人)은 마땅히 괴란상(壞爛想)을 닦아야 한다.
나머지 또한 알아야 한다.
또 부정상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일체 부정상은 욕을 대치하는 까닭에, 만약 욕을 행하는 자가 이것을 얻으려면 그는 마땅히 상을 취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 부정을 설하여 10종 부정상이라 한다.
[문] 어떠한 까닭에 증장시키지 않는가?
[답] 만약 사람이 욕을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면, 자성신(自性身)의 상을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자성신의 상이 있으면 그 상에서 싫어하는 피분(彼分)을 속히 얻기 때문이다.
이미 부정상을 증장시켰다면 그 신상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자신의 상을 없앴다면 속히 그 싫어함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증장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만약 무욕(無欲)을 얻으면 대심(大心)을 닦기 위하여 증장시키도록 한다.
아비담에서,
“이욕(離欲) 등에 처하여 초선을 정수하고 방창에 머물며 나아가 무량사(無量事)를 일으킨다”라고 설한 것과 같고,
대덕 내구부(摨狗父)가 게송으로 설한 바와 같다.
불가재(佛家財) 비구가
포외림(怖畏林)에 머물러
이미 골상을 닦아
두루 이 땅에 가득케 한다.
나는 그 비구가
욕염을 속히 끊으리라는 것을 안다.
<10부정처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