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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문경 하권
16. 잡문품(雜問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세에 외도들이 말하기를,
‘세존께서 옛날 화취경(火聚經)을 설하실 때에,
≺60비구는 죽고 60비구는 도를 그만두고 60비구는 해탈하리라≻’고 하거나,
또 외도들이 말하기를,
‘세존께서는 일체지가 아니시니, 왜냐하면 이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켜는 것은 벌레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것과 같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이와 같이 중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에 따라 그들을 위해 설했을 뿐, 여래의 설법은 인연이 아님이 없다.
어떤 중생이건 살생한 업이 있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 것이고,
저 중생이 법을 받을 능력이 없으면 이 때문에 도를 못 닦는 것이고,
저 중생이 법을 받을 능력이 있으면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다 그들의 인연에 따르기 마련이고, 여래가 그렇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는 세간을 따라 출생했을 뿐 부처가 세간을 만든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살생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단명하게 되고, 살행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장수하거나 또는 해탈의 과(果)를 얻기 마련이며, 이 모든 중생이 비록 도를 못 닦더라도 여래는 미래세에 반드시 그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니,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여래는 허물이 없다.
문수사리여, 마치 해와 달의 광명이 비추매 구모두(拘牟頭)ㆍ분타리(分陀利)ㆍ울파라(鬱波羅) 등 이러한 꽃들이 혹은 오므라들고 혹은 피어나고 혹은 떨어짐이 있을지언정, 이는 해와 달이 분별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해와 달은 무심(無心)하기 때문이고, 무심하기 때문에 스스로 피어나고 스스로 떨어지는 것일 뿐,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여래의 설법도 그러한지라, 중생으로서 수명이 길고 짧거나 병이 있고 없거나 병이 많고 적거나 밉살스럽고 사랑스럽거나 상중하의 우열이 있고 빈부귀천의 차이가 있거나, 혹은 남섬부주[閻浮提]에 태어나고 북구로주[鬱單越]에 태어나고 서우화주[拘耶尼]에 태어나고 동승신주[弗于逮]에 태어나거나 사천왕처(四天王處)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태어나거나,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 등에 태어나거나 자신의 업이 재물이 되고 자신의 업이 신분이 되어서 업이 태어나는 곳이 되는 것이다.
다만 업으로써 짓는 것이고 다른 물건으로써 짓는 것이 아니며, 상ㆍ중ㆍ하가 있는 것도 내가 조작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 자신의 업이 재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보시를 일삼아 부인과 아이까지도 보시하는 등의 일이 있습니다마는, 수달나(須達那) 같은 이가 두 아들을 추악한 바라문에게 보시하였다가 이 바라문이 이 두 아이를 때렸으니,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이렇게도 평등한 마음과 자비한 마음이 없습니까?
만약 보살로서 자비한 마음이 없다면 보살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평등한 마음이 있습니까?
만약 평등한 마음이 있다면 어째서 아이를 남에게 주어 두드려 맞게 합니까?
어떤 사람이 이것을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에게 두 아이가 있어서 그 작은 아이를 큰 아이에게 보시하였다면, 문수사리여, 이 부모는 평등한 마음이겠는가?
만약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때려 드디어 죽었다면, 문수사리여, 누가 죄를 저지른 것이라 하겠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모는 평등한 마음이라 죄과(罪過)가 없을 것이고, 큰 아이 스스로가 이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나 역시 중생들에게 항상 평등한 마음이라 라후라(羅睺羅)같이 사랑스럽게 여기고 생각해 주며, 제바달다(提婆達多) 역시 사랑하고 생각해 주니, 문수사리여, 이 때문에 보살은 아무런 죄과가 없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이 날마다 음식을 보시함으로써 누구나 와서 구걸하면 이 사람이 곧 보시하는데, 음식을 얻음으로 인하여 그 때문에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친다면, 문수사리여, 이는 누가 죄를 저지르는 것이겠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는 시주가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니, 시주로선 보시의 뜻이 있었을 뿐 도적이 되게 한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모든 보살도 보시의 뜻이 있을 뿐 살해하는 마음이 없다. 이 때문에 보살은 살해할 생각 없음을 이루니, 어떤 사람이건 살해한다면 스스로 살해한 죄를 얻기 마련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항상 평등한 마음을 행함으로써
보시할 때 살해할 생각이 없으니
저 스스로 살해한 죄가 있는 것이고
나의 평등함은 아무런 죄가 없네.
수명이 있거나 수명의 생각이 있고
다시 살해할 마음이 있어서
수명을 이때에 끊으니 만큼
살해하는 자는 살해한 죄를 얻으며
혹은 수명이 없을지라도
수명의 마음을 내어서
여기에 살해할 생각을 일으킨다면
역시 죄가 있다고 말하리라.
제바달다와 라후라에게도
사랑하고 생각함은 다름이 없으니
이와 같은 자비한 마음이
바로 보살의 평등한 마음이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성인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때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에 사람들의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래ㆍ세존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스물네 곳[二十四處]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곧 스물네 곳에서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스물네 곳이란, 일주왕(一洲王)ㆍ이주왕(二洲王)ㆍ삼주왕(三洲王)ㆍ사주왕(四洲王)과 사천왕(四天王)으로부터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까지와, 범신(梵身)ㆍ범부루(梵富樓)ㆍ대범(大梵)과 수다원(須陀洹)으로부터 아라한(阿羅漢)까지를 얻는 것과, 큰 지혜와 모든 선행이 있어서 동요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는 이것이 이른바 스물네 곳이다.
여래께서 이제 이미 말씀하셨고, 또 마땅히 이곳을 얻으셨을 것이니,
저 삿된 소견의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논란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여래의 설법은 이런 인연을 위해서가 아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해와 달의 광명이 모든 꽃을 이익되게 하는, 비록 이런 힘이 있어도 은혜의 갚음을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해와 달은 무심(無心)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이와 같이 갚음을 구하지 않기에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가 바로 무심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여래가 모든 법 가운데 염착(染着)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내가 설법한 것은 나를 위하는 뜻이 없었으니, 왜냐하면 옛날에 3아승기겁(阿僧祇劫)에 걸쳐 머리ㆍ눈ㆍ골수ㆍ뇌ㆍ수족 마디마디와 국토ㆍ성읍ㆍ처자ㆍ노비ㆍ코끼리ㆍ말과 갖가지를 보시한 것은 여래가 거기에 대한 갚음을 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래는 세간의 과보를 구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내가 모든 법을 설함은 나를 위하는 뜻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과 남을 위해서도 아니다.
만약 자신을 위하고 남을 위하고 자신과 남을 위해서라면 이는 여래가 곧 집착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해와 달이 꽃에 대하여,
‘꽃이 나의 은혜를 갚으리라 거나, 나의 은혜를 갚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음과 같으니, 해와 달은 무심하기 때문이다.
여래도 역시 무심하니, 왜냐하면 여래는 취(取)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취할 것이 없는데 여기에 무슨 갚음을 얻겠느냐? 밤에 비록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한 글자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래가 취할 것이 없는 까닭은 바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도 앞서 어느 때 ‘보리를 얻으면 일체 구하는 것을 다 얻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얻을 것이 없어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해와 달이 모든 꽃을 비추되
은혜를 갚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여래도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갚음을 구하지 않음이 역시 그러하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 앞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으로서 죽을 때가 아닌 죽음은 없다’고 하셨으니,
왜냐하면 반드시 죽어야 할 중생일지라도 때가 아니면 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죽을 때가 된 자는 나도 곧 죽일 수 있으니 죽이는 자는 죄과가 없다. 왜냐하면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죽여도 죄과가 없는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어떤 사람이 궁전(宮殿)을 짓는데 이미 다 완성되어 즐거이 그 궁전에 입주하기 위해 점치는 자에게 묻기를,
‘어느 날이 좋고 어느 날이 좋지 않으냐?’ 하자,
저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입주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반드시 불에 타버리기 때문이오. 누가 일부러 불에 태우더라도 타버릴 것이고, 일부러 태우지 않더라도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오’라고 하였다.
주인이 다시 묻기를,
‘만약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면 어떤 방편과 계획을 세워야 하겠소?’라고 하자,
점치는 자는 대답하기를,
‘부지런히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이오’라고 해서,
주인은 곧 부지런히 지키고 보호하기를 더하였는데 마침내 어떤 사람이 불을 가져와서 이 궁전을 태우고 말았다면,
문수사리여, 이 불을 가져온 사람이 죄과가 있겠는가, 없겠는가?”
문수사리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죄가 있을 것입니다, 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문수사리여, 죽을 때이건 죽을 때가 아니건 살해하는 자는 반드시 살해한 죄를 얻어 지옥에 들어가야 하니, 궁전을 태우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때가 이르렀건 때가 이르지 않았건
누구나 사람이 다른 이를 살해한다면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야 하니
마치 궁전을 태우는 것과 같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에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더라도 살해한 죄를 얻지 않으니, 왜냐 하면 몸을 살해했을 뿐, 수명을 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바로 수명이라면 죽은 부모의 몸을 그 아들이 불에 태우는 것도 마땅히 살해하는 죄를 얻어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몸이 바로 수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은 수명이 아니고 수명은 몸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곧 수명이고 수명이 곧 몸이라면 몸을 태우는 것은 곧 수명을 태우는 것이어야 하며, 만약 수명이 뒷세상에까지 가는 것이라면 몸도 마땅히 같이 가야 할 것인데, 만약 몸은 불에 타버려도 수명은 타버리지 않는 것이라면 이 때문에 몸이 곧 수명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수명은 불에 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몸은 수명이 아니고 수명은 몸이 아니며, 이 때문에 몸을 살해하는 것도 살해한 죄를 얻지 않으니, 왜냐하면 수명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물으면 그가 바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태우는 것이 다르고 죄 얻는 것이 다르니, 왜냐 하면 수명은 뒷세상까지 가지만 몸은 오히려 몸 그대로 있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몸은 수명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건 수명을 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으로서 수명을 살해한다면 갱생(更生)할 수 없을 것이고, 수명이 이미 살해되면 열반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몸이 곧 수명이라면 몸이 살해될 적에 수명도 살해되어야 하고, 만약 몸이 곧 수명이라면 몸을 죽이면 열반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다름이 없기 때문에 살생의 과보가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몸은 살해되어도 수명이 다시 살아나 다른 성(姓)을 받기 때문에 이 사람이 살해한 죄를 받지 않는다면 이는 곧 수명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니, 다시 살아남이란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 등으로서 이것이 이른바 다시 살아남이다. 이 때문에 몸을 살해했을 뿐 수명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좌선(坐禪)하는 선사가 여러 제자들을 가르쳐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를 제거함에 있어 그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가 다시 살아나지 않게끔 제거한다면 다시 살아나지 않으므로 다시는 몸이 없고, 다시 몸이 없으면 수명이 없고, 수명이 없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기에 이것을 일러 선사가 사람의 수명을 살해함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계율이 두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몸의 계율과 입의 계율이 그것이고,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는 계율이 아니다. 만약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가 계율이라면 계율을 지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왜냐 하면 마음이란 반연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마치 빠른 물처럼 또는 원숭이처럼 머물지 않아 수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는 계율이 없고 몸과 입만이 계율이 있으며,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는 살해하는 죄의 자리가 아니다.
왜냐 하면 계율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선정을 얻을 수 있고,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선정을 얻을 수 없으니, 학자는 선정으로써 마음을 죽이기는 하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선정이 살해한 죄를 얻는 것이고 마음이 죄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것은 그 죄의 과보가 없으니,
왜냐 하면 보살이 몸을 죽이는 그러한 일은 오직 공덕을 얻는 것이어서 나의 몸이 나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약 몸이 나로 말미암아 죄의 과보를 얻는다면 손톱을 깎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것마저 곧 죄의 과보를 얻어야 하리니,
왜냐 하면 스스로가 몸을 손상시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몸이 저절로 죽어서 중생들이 이것을 얻어먹는 것은 본래 보시의 마음이 없었으니, 이미 복을 얻지도 못하고 역시 죄도 있는 것은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이 몸을 버림은 무기(無記)가 아니고 오직 복덕을 얻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번뇌가 사라지면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뜻이 사라지고,
뜻이 사라지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사라지고,
알음알이가 사라지기 때문에 몸이 사라지고,
몸이 사라지기 때문에 수(壽)가 사라지고,
수가 사라지기 때문에 명(命)이 사라지고,
명이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감관[根]이 사라지고,
모든 감관이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느낌이 사라지고,
모든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쌓임[陰]이 사라지고,
모든 쌓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상속(相續)되지 않고,
상속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과뜻과 알음알이가 처소가 없고,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가 처소가 없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마치 때 묻은 옷을 잿물[灰汁]로 씻으면 때는 사라지고 옷은 그대로 있는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때가 이미 제거되었기 때문이고, 때가 제거됨으로 해서 옷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모든 허물이 때가 되는 것이고 지혜의 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버릴 것이니,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기 때문에 청정함을 이룩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마치 때에 더럽힌 옷을
잿물로써 깨끗이 씻으면
잿물로써 씻어버리기 때문에
이 옷이 청정해짐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허물이
마음과 알음알이를 더럽히니
지혜의 잿물로써 씻어버린다면
마음은 청정하게 되리라.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그 삿된 소견에 따라 다시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만약 세존께서 일체지라면 어째서 외도 여인 손타리(孫陀利)와 전차마니(栴遮摩尼)가 여래를 비방하리라고 예언하지 않으셨을까?
이 때문에 여래는 일체지가 아닌 줄을 알겠으니, 미리 저 비방할 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무수한 겁(劫)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게 하고, 나아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게 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럴 경우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묻겠다. 어떤 의사가 중생들의 풍증[風]ㆍ담증[痰]ㆍ열병(熱病) 등의 병을 분명히 알더라도 그 병이 아직 발생되지 않은 것을 미리 치료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여, 이 의사가 병을 알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여, 나 역시 그와 같이 모든 중생들의 탐욕이 많고 진심(瞋心)이 많고 우치가 많은 것과 수명의 길고 짧은 것과 선업과 악업을 다 알기는 하지만, 나는 비록 먼저 알아도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이 여인 손타리와 전차마니는과거세 때 항상 중생을 살해하여 불선한 업을 일으키고 항상 성인을 비방했기 때문에 아비지옥에 들어간 것이다.
문수사리여, 중생들의 악업은 나로 말미암아 짓는 것이 아니니, 어떤 중생이건 법을 들을 능력이 있으면 나는 그를 위해 설법하고, 만약 법을 들을 능력이 없으면 나는 말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의 중병을 치료할 수 없으면 의사가 버리고 가되 약을 조금도 주지 않는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니, 이 두 사람은 교화될 수 없는 자임을 알았기 때문에 미리 수기하여 말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문수사리여, 만약 수기해야 할 자였다면 내가 곧 그들을 위해 수기했을 것이다. 나는 제자가 성문ㆍ연각을 얻는다거나 보살을 얻는다고 수기하기도 하고, 또 3승(乘)의 도를 얻는다고 수기하지 않기도 하니,
왜냐 하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사람이 허공을 비방한다면 허공이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문수사리는 여쭈었다.
“허공은 말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문수사리여. 여래가 바로 허공과 같으니 허공은 말이 없고 여래도 말이 없다.
문수사리여, 5탁악세(濁惡世)가 있으니,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인가?
겁(劫)의 혼탁함과 중생의 혼탁함과 수명의 혼탁함과 번뇌의 혼탁함과 소견의 혼탁함이다.
이른바 겁의 혼탁함이란 세 재앙[三災]이 일어날 때에 서로가 살해하여 중생들이 굶주리고 갖가지 질병에 허덕임이니 이것을 겁의 혼탁이라 하며,
중생의 혼탁함이란 악한 중생ㆍ선한 중생과 상ㆍ중ㆍ하의 중생과 뛰어난 중생ㆍ하열한 중생과 제일의 중생, 또는 제일이 아닌 중생들이니 이것을 중생의 혼탁이라 하며,
수명의 혼탁함이란 10세의 중생으로부터 20ㆍ30ㆍ40ㆍ50ㆍ60ㆍ70ㆍ80ㆍ90세ㆍ백 세ㆍ2백 세ㆍ4백 세ㆍ8백 세 내지 천 세의 중생들이니, 길고 짧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명의 혼탁이라 한다.
번뇌의 혼탁함이란 탐욕이 많고 진심이 많고 우치가 많음이니 이것을 번뇌의 혼탁이라 하며,
소견의 혼탁함이란 삿된 소견과 계율에 치우치는 소견과 상견(常見)과 단견(斷見)과 있다는 소견과 없다는 소견과 나라는 소견과 중생이란 소견이니 이것을 소견의 혼탁이라 하니,
이러한 다섯 가지 혼탁함이 여래에겐 모두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여래는 허공과 같거늘
무슨 말이 있겠느냐.
여래가 다섯 가지 혼탁이 없기에
이 때문에 미리 수기하지 않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에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들은 부처님을 비방하면서 이러한 말을 할 것입니다.
‘만약 여래께서 일체지라면 어째서 중생들의 죄 짓는 것을 기다린 연후에 계율을 제정하셨겠느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것이 바로 일체지의 상(相)이니, 만약에 내가 계율을 미리 제정했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였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어째서 굳이 말씀하실까? 이는 일체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비방하거나,
또 ‘나는 죄과가 없는데 일부러 여래께서 자비심이 없어 중생들을 요익케 하지 않고 중생들을 거둬들이지 않으면서 마치 아들 없는 사람이 어느 때쯤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공연히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니, 어찌 믿을 수 있으랴.
왜냐 하면 진실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말로 아들을 낳은 것을 보게 되면 믿는 마음을 내리라’고 이렇게 비방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아직 죄를 짓지 않은 사람ㆍ하늘들인데 그 죄 짓는 것을 보지도 않고서 어찌 계율부터 미리 제정하겠느냐. 요컨대 죄를 본 연후라야 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마치 의사가 풍증ㆍ담증ㆍ열병 등 그 병이 발생한 유래를 알고 또 무슨 약으로 이 병을 치료할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어떤 용건(勇犍)한 사람으로서 몸에 질병이 없음에도 이러한 사람이 의사의 치료를 기다리겠느냐?”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치료를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병이 발생될 때에 의사가 곧 치료해야만 세간에서 제일의 의사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그렇다. 문수사리여,일체 성문과 일체 중생들 중에는 계율의 제정이 필요한 자가 있고 필요하지 않은 자가 있는지라, 내가 일체 중생들 그 마음의 소행을 알기 때문에 아직 죄를 짓지 않은 자에겐 나도 계율을 제정하지 않고, 이미 죄를 지었으면 나도 곧 계율을 제정하니, 내가 이렇게 한다면 세간은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중생들 중에 상ㆍ중ㆍ하가 있으므로 여래가 계율을 제정하는 것도 그러하다.
문수사리여, 가령 보리와 깨와 콩 등을 심어 움이 처음 돋아날 때에 이미 사용될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아직 사용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일체 중생들의 선근(善根)이 성숙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으므로 계율의 제정이 필요하지 않다.
문수사리여, 가령 구물두꽃[拘物頭花]이나 우발라꽃[優鉢羅花]이 처음 자라날 그때 햇빛이 비추어 피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로소 생겼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선근이 성숙되지 못한 것도 그러하다.
여래가 왜 이와 같이 계율을 제정하지 않는가?
시절(時節)이 아니기 때문이니, 만약 시절이 아닌데 미리 계율을 제정한다면 중생들이 받아들이지 않고서 말하기를,
‘나는 죄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계율을 제정하는가?’라고 할 것이다.
문수사리여, 가령 곡식을 심어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것을 수확할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수확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시절이 아니면 꽃도 없을 텐데 하물며 쌀이나 쭉정이인들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여, 내가 계율을 제정하지 않음도 이와 같다. 모든 제자가 범하는 일이 없으면 역시 범하는 계율이 없기 마련이니,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나는 계율을 미리 제정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죄가 없는데 계율을 미리 제정하면
중생들이 믿어 받지를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죄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때 비로소 계율을 제정하네.
마치 움과 줄기가 처음 돋을 때
아직 열매가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비구가 죄가 없으면
계율을 제정하지 않음도 그러하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들은 또 이러한 말을 할 것입니다.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이 이 세간(世間)을 조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삿된 말을 어떻게 깨뜨려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야말로 진실이 아닌 허망한 말이다.
또 다른 외도들은 말하기를,
‘마혜수라가 조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니,
만약 마혜수라가 조작한 것이라면 그들 스스로가 비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그로부터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로부터 조작되었다면 일체 세간은 마혜수라로써 스승을 삼을 뿐 다른 스승이 없어야 하며,
만약 일체 세간이 각각 스스로 스승이 있다면 모든 세간은 마혜수라가 지은 것이 아니다.
만약 일체 일이 마혜수라로 말미암는다면 마혜수라를 섬기는 것도 의심할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마혜수라의 경전에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이 말이 있다면 중생들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이 세간은 마혜수라가 조작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하며, 진실이 아니고 모두 허망한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거듭 말씀하셨다.
만약에 모든 선업과 악업이
마혜수라가 조작한 것이라면
세간은 사실의 증거가 없으므로
결단하여 말할 이 없다 하겠지만
이러한 일은 진실이 아니니
비록 말은 하여도 성립되지 않으리.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법신(法身)이란 바로 법 가운데 몸이 있다는 것입니까?
법으로써 몸을 삼는다면 일체 법을 어떻게 허공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법 가운데 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허공 가운데 허공이 있지 않은 것처럼 허공은 처소가 없고,
처소가 없기 때문에 허공이라 하며,
허공은 마음으로 즐거워함이 없기 때문에 허공을 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허공은 형체가 없고 조작이 없기 때문에 허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여, 허공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왜냐 하면 어느 곳에 있는 것도 없고 어느 곳에 없는 것도 없기 때문이며,
왜냐 하면 처음이 있기 때문에 뒤가 없게 되고, 처음이 없기 때문에 뒤가 있게 되거나, 처음이 있으면 뒤도 있어야 하고 뒤가 없으면 처음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여덟 가지의 말이 일체 법을 통한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나는 어떤 물질이 몸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일체 부처는 허공과 같아서 널리 두루 하기 때문이며,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며, 처소가 없기 때문이며, 안팎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세존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른바 부처라 함은 입ㆍ몸ㆍ뜻으로써 깨닫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라 하는 것이니,
왜냐 하면 허공이 바로 몸ㆍ입ㆍ뜻으로써 깨닫지 않은 허공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에 마음과 뜻이 없다면 이 자리를 있는 것이라 하겠는가, 없는 것이라 하겠는가?
만약 있는 것이라면 정말 있고 없는 것이라면 정말 없겠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도 없고 선서(善逝)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취(取)할 수 없기 때문이며,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허공과 같다면 빛깔과 모양이 있습니까?
만약에 빛깔과 모양이 있다면 이는 곧 무상(無常)한 것일 것이니, 무상한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두 손을 합하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소리가 왼쪽 손으로부터 나온다 하겠는가, 오른쪽 손으로부터 나온다 하겠는가?
만약에 왼쪽 손에서 나온다면 왼쪽 손에 항상 소리가 있어야 하고 오른쪽 손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왜냐 하면 두 손이 항상 있기 때문이며, 한쪽 손으로선 음성이 없지만 합하면 음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처가세간을 따라 출현하여도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치 연꽃이 물을 따라 출생하여도 물에 더럽혀지지 않음과 같으며, 손을 합하여야만 소리가 있는 것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잡을 수 있기도 하고 잡을 수 없기도 함이 물속의 달과 같으니, 여래ㆍ정변지도 그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