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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대장엄경 제6권
15. 집을 떠나는 품[出家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니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고요한 밤중에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내가 만약 부왕(父王)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사사로이 집을 떠나 버리면 두 가지의 허물이 있으리라.
첫째는 법과 가르침에 어긋남이요,
둘째는 세속의 조리에 따르지 않음이니라.’
그리고는 그가 사는 곳으로부터 부왕의 궁전에 나아가면서 큰 광명을 내쏘아 일체 대전(臺殿)과 누각이며 동산 숲이 갑절 더 꾸며지고 광명이 빛났느니라.
왕은 광명을 만나자 곧 깨어나서 사자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무슨 광명이냐? 밤이 아직도 다하지 않았는데 어찌 햇빛이라 하겠느냐?’
시자가 대답하였다.
‘햇빛은 아니옵니다.’
거듭 게송으로 왕에게 아뢰었느니라.
대(臺)와 정자와 그리고 누각과
담장과 벽이며 동산의 숲에
뭇 그림자가 죄다 생기지 않았거니
그러므로 햇빛은 아니옵니다.
원앙새와 비취새와
공작이며 가릉가(迦陵迦)의
새들이 아직도 날며 울지 않거니
그러므로 햇빛은 아니옵니다.
이 빛은 매우 희유한지라,
옛날에 일찍이 못 보았사오며
능히 마음을 기쁘게 하여
뜨거움 없애고 시원하게 하나니
이야말로 훌륭한 덕이 있는 사람이
광명을 드리워서 여기를 비춥니다.
때에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시방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보살의 몸을 비로소 보매
거룩한 덕이 더할 나위 없었네.
깊은 마음으로 극히 존중하여
일어나서 공경하려 하였지마는
보살의 신통력으로
굳이 왕을 일어나지 못하게 했네.
길게 무릎 꿇고 합장을 하고
나아가 부왕에게 아뢰옵기를
대왕은 근심 고통 하지 마시며
저 때문에 꺼림하다 하지 마시고
이번에 집 떠나기 원하옵나니
가엾이 여기어 허락만을 하소서.
대왕은 때에 이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무슨 계교 세워서
슬피 울면서 보살을 향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왕위와 나라의 재물까지도
온갖 것을 죄다 버릴 수 있지마는
집 떠나는 일만은 그만둔다면
나머지는 모두가 아까움이 없도다.
보살은 미묘한 음성으로써
거듭 부왕에게 아뢰옵기를
남 몰래 네 가지 서원이 있는데
본래의 마음에 맞지 못하니
대왕께서 만약 들어주시면
집 떠나는 소망을 끊겠나이다.
첫째 원은 쇠하거나 늙지 않는 것이요
둘째 원은 늘 젊고 젊은이인 것이며
셋째 원은 언제나 병 없음이요
넷째 원은 항상 죽지 않음이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보살에게 이르며 말하기를
이 일만은 매우 어려운 것이라
나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라.
모든 선인이 겁(劫)을 산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무너지며 없어지거나
누가 나고 늙고 죽음 여의게 되어
혼자만 늘 사는 몸을 구하겠느냐.
보살은 왕에게 대답하기를
네 가지 소원을 만약 얻기 어려우면
이제 다만 한 가지 소원만을 구하리니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게 하소서.
왕은 보살의 말을 듣고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엷어지며
이와 같이 말을 하기를
나는 이제 또한 따라 기뻐하리니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해서
너의 원을 만족하게 할 것이니라.
이와 같은 말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롭네.
보살은 그때에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나니, 비록 갔다가 왔지마는 아는 사람은 없었느니라.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왕은 친족과 여러 석가 성바지를 불러 말하였다.
‘태자가 어제 밤중에 와서 집 떠나기를 청하는데 만약 허락하면 나라를 이을 후사가 없으니, 그대들은 이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그의 마음을 쉬게 하라.’
때에 여러 석가 성바지가 대왕에게 아뢰었다.
‘우리들 함께 태자를 수호하겠나이다. 태자가 무슨 힘으로 억지로 집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부왕은 여러 친족에게 신칙하여 가비라성 동쪽 문 밖에 5백 석가 동자들을 배치하였는데 뛰어나게 위엄 있고 용맹하고 씩씩한지라, 그들이 향하는 곳에 이길 적이 없었나니,
하나하나의 동자에는 5백 냥의 전투하는 수레가 있어 엄히 호휘하였고,
하나하나의 수레 곁에는 5백의 역사(力士)가 창을 쥐고 앞에 섰으며,
남쪽ㆍ서쪽ㆍ북쪽의 문에도 각각 5백씩 있었나니, 위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그 성 위의 둘레에는 칼과 몽둥이를 가진 사람들이 널리 깔려 있었느니라.
또 먼젓번의 여러 석가 대신들은 네거리에 벌려 앉아 죄다 진영을 쳤고,
왕은 몸소 훈련된 5백 장사를 뽑아서 갑옷을 입고 창을 가지고 모두 코끼리와 말을 태워 성의 사면에서 밤낮으로 순찰하며 잠깐도 쉬는 일이 없게 하였느니라.
이때 국태부인(國太夫人) 마하파사파제는 왕궁 안에서 모든 처녀들을 모우고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은 오늘 저녁에
잠을 자지 말고
묘하고 높은 당기를 세워
마니보(摩尼寶)로써 촛불 밝히라.
사면에 구슬과 영락으로써
또한 큰 광명이 나게 하여서
궁전 가운데를 빛나게 하되
해와 같이 모두가 보이게 하라.
저 하늘의 풍악 울리고
줄에서는 미묘한 소리를 내며
꽃 상투 반달처럼 내려드리고
보배 다리 사자처럼 치장하여라.
옥의 귀고리와 옥의 팔찌며
갖가지로 몸을 꾸밀 것이며,
문에는 이중으로 빗장 질러서
단단히 하고서는 열쇠 지니고
나듦[出入]에 모두가 친히 만나며
거동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
너희들 시중하는 사람들까지
마땅히 병기를 가질 것이니
투륜(鬪輪)도 가지고 견삭(羂索)도 가지며
창과 작은 창도 가져야 한다.
게으른 마음은 내지를 말고
섬돌과 작은 문을 두루 지키며
너희들은 태자를 지키는 것을
사람이 제 눈을 지키듯 하라.
세간을 버리는 것
마치 코끼리 떠나감과 같게 하지 말 것이니
보배 자리 이어받을 후사가 끊어지며
국토는 거룩한 빛이 없어지리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때에 28야차 대장에서 반차가(般遮迦)가 우두머리인데 먼저 저 비사문(毘沙門) 궁전에 머물러 있다가 함께 서로가 의논하였느니라.
‘보살께서 지금 집을 떠나려 하는데 나와 그대들은 무엇을 공양할까?’
때에 사천왕이 야차들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장차 집을 떠나려 하면 그대들은 말의 발을 받들어야 하리라.’
때에 석제환인은 삼십삼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오늘 밤에 집을 떠나려 하니, 그대들은 도와 드려야 하리라.’
때에 그 대중 가운데 정혜(靜慧)라는 한 천자가 있다가 말하였다.
‘저는 가비라성에 있는 일체 군사와 채녀들로서 보살을 지키는 이들은 죄다 잠을 자게 하여 알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또 장엄유희(莊嚴遊戱) 천자는 말하였다.
‘저는 그 성의 안팎에 있는 코끼리와 말이며 여러 가지 종류들을 고요히 소리가 없게 하겠습니다.’
또 엄혜(嚴慧) 천자는 말하였다.
‘저는 거기서부터 허공에다 변화로 보배의 길을 만들되, 모두 금과 은ㆍ유리ㆍ차거(硨磲)ㆍ마노ㆍ진주며 매괴(玫瑰) 등 여러 가지 보배로써 채우고 이름 있는 꽃들을 뿌려 그 위에 가득히 깔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어 길 곁에 벌려 세우겠습니다.’
또 여러 큰 코끼리들에서 이발라왕(伊鉢羅王)이 우두머리인데, 말을 하였다.
‘나는 코끝에 변화로 누각을 만들어 그 가운데서 하늘 여러 채녀들이 울리고 춤을 추며 타고 노래하게 하면서 모시겠습니다.’
또 여러 큰 용왕들에서 발우나왕(婆婁那王)이 우두머리인데 말하였다.
‘우리들은 전단향 구름과 침수향 구름을 뱉으며 전단 가루와 침수 가루를 비처럼 내려 미묘한 향기가 자오록하여 허공에 두루 차게 하겠습니다.’
또 법행(法行) 천자는 말하였다.
‘나는 이제 궁중에 파견된 모든 단정한 여인들의 모양을 무너뜨려 버려서 가까이할 수 없게 하겠습니다.’
또 개발(開發) 천자는 말하였다.
‘나는 한밤중에 보살을 깨우겠습니다.’
석제환인은 말하였다.
‘나는 이제 또한 저 보살을 위하여 길을 열어 보이리라.’
이와 같이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와 마후라가 등이 그 해야 할 바를 다하여 보살을 돕기로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음악전(音樂殿) 가운데 단정히 앉아서 생각하였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죄다 네 가지의 미묘하고 큰 서원을 세우셨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서원인가?
첫째 서원은,
〈나는 미래에 스스로 법의 성품을 증득하여 법에 자재하며 법왕이 되고 정진관 지혜로써 온갖 감옥에서 애욕에 얽매여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원하여 모두를 벗어나게 하리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중생들이 이 생사의 캄캄하고 빽빽한 숲에 걸려들거나 저 어리석음과 무명으로 눈병을 앓으면,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으로써 등불이 되어 그 어둠에서 헷갈림을 깨뜨리고 그 무거운 업장을 없애며, 이와 같은 방편의 지혜 문을 성취하게 하리라〉 하는 것이다.
셋째는,
〈모든 중생들이 젠 체하는 당기를 세우고 나와 내 것[我所]임을 일으켜 마음의 소견이 뒤바뀌고 허망하게 집착하면, 그들에게 법을 말하여 그들을 깨우치게 하리라〉 하는 것이다.
넷째는, 〈중생들이 고요하지 않은 데 있으면서 세 세상을 헤매는 것이 마치 볼 바퀴 돌 듯하며 또한 엉클어진 실과 같이 자신이 얽매고 자신이 둘러쌈을 보면 그에게 법을 말하여 그들을 얽매임에서 풀어나게 하리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넓고 큰 서원과 바른 생각이 앞에 나타났느니라.
그때 법행 천자와 정거천들은 신통력으로써 모든 채녀들의 몸과 자태를 죄다 변화시켜 무너뜨리고 살고 있는 궁전도 마치 무덤 사이와 같게 하고 이것을 나타내어 마치자 허공에서 보살에게 말하였느니라.
얼굴 모습 깨끗하여 연꽃과 같고
공덕과 지혜는 견줄 데 없으면서
여인들을 살펴서 멀리 여의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여기에 집착심을 내나이까.
그때 보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나는 이제 여기의 음욕 경계 살펴보매
온통 변화되어 썩은 주검 같구나.
원컨대 영영 모든 애욕에서 뛰어나
다시는 그 속에서 집착 내지 않으리라.
그때 보살은 궁중 안에 있는 미녀들의 모양이 변화되어 못쓰게 됨을 보았나니,
어떤 자는 옷이 떨어져서 몸뚱이가 추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옷이 떨어져서 몸뚱이가 추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꽃 관이 찢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얼굴 모습이 바짝 마르고 영락과 패물이 부수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입이 비뚤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눈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입을 딱 벌리고 숨이 끊어질 것같이 하고,
어떤 자는 눈물과 침을 질질 흘리고,
어떤 자는 기침을 계속하고,
어떤 자는 손을 휘두르며 발을 내던지고,
어떤 자는 얼굴빛이 새파랗고 괴이한 형상으로 사람이 무섭게 하고 있기도 하였느니라.
어떤 자는 피부가 찢어져서 피고름으로 더럽혀지고,
어떤 자는 슬피 울고, 어떤 자는 크게 웃고,
어떤 자는 또 이를 갈고, 어떤 자는 또 알랑거리고,
어떤 자는 벽을 기대어 섰고,
어떤 자는 평상을 기대어 똑바로 앉고,
어떤 자는 북을 베개 삼아 누웠고,
어떤 자는 쟁(箏)을 안고서 자고,
어떤 자는 잠을 자면서 통소를 물고 깨무는지라 소리가 나고,
어떤 자는 여러 악기를 가져다 어지럽게 멋대로 내던지고,
어떤 자는 반듯이 하여 자고, 어떤 자는 얼굴을 땅에 파묻고,
어떤 자는 입을 딱 벌리고, 어떤 자는 눈을 딱 감고 있고,
어떤 자는 오줌ㆍ똥을 잘못 싸서 더러운 냄새가 잇대어 자꾸 나고,
어떤 자는 머리를 덮어 쓰고 있으며,
어떤 자는 목을 내놓고 거꾸로 되어 흩어져서 제 마음대로 누워 있기도 하였나니,
전날에 지녔던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들이 하늘들의 신통력으로 죄다 변화되어 못쓰게 되었느니라.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형상들을 보고 고요한 마음에서 생각하였다.
‘여인의 몸과 형상은 깨끗하지 못하며 폐가 되고 해가 된다.
범부는 여기에 망령되이 탐과 사랑을 내는구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애달프다, 세간이여. 괴롭도다, 세간이여. 매우 두렵거늘 범부는 모르고서 해탈을 구하지 않는구나.
이곳은 거짓이어서 사랑할 만한 일이 못됨은 마치 그림 병에 여러 가지 더러운 것과 독을 담은 것과 같으며,
이곳은 넘기 어렵고 스스로 나올 수 없음은 마치 늙은 코끼리가 저 깊은 진흙에 빠진 것과 같으며,
이곳이 아주 괴로움은 마치 푸주에서 모든 목숨을 끊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깨끗하지 못함은 마치 떼 돼지들이 변소 안에 있는 것과 같으며,
이곳은 맛이 없는데 망령되이 맛이 있다는 생각을 냄은 마치 굶주린 개가 살 없는 뼈를 씹는 것과 같으니라.
이곳이 자신을 불사름은 마치 부나방이 밝은 촛불에 날아드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고생됨은 마치 물 속 동물이 마른 땅에서 볕을 쪼이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매우 궁함은 마치 방이 없는 사슴이 불에 해를 입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무서움은 마치 사형수가 시내에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가라앉음은 마치 바다를 건너는 배가 파괴되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위험함은 마치 장님이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이익이 없음은 마치 노름에 재물이 온통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윤기가 없음은 마치 큰 가뭄에 풀과 나무가 말라 타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상처를 냄은 마치 날카로운 칼에 꿀이 발라졌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가 없어서 핥으면서 맛을 찾는 것과 같으며,
이곳이 닳아 없어짐은 마치 흑월(黑月)이 점차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고,
이곳이 모든 선한 법을 없애어 남음이 없게 함은 마치 겁불[劫火]에 온갖 것을 태워 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말을 하고, 여러 가지의 비유로 자세히 헤아리다가,
다음에는 자기 몸을 머리로부터 발까지 돌며 자세히 살피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하고는,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는 애욕으로 업의 밭을 걸우어[潤]
인연 따라 나고 죽음 받았었으며
여러 가지 부정할 것 쌓고 모아서
어울리고 합쳐서 이 몸을 이루었네.
비장(脾臟)ㆍ신장(腎臟)ㆍ간장(肝臟)ㆍ폐장(肺臟)ㆍ심장과
장(腸)과 위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이며
가죽과 살과 또 뼈며 골수와
터럭ㆍ머리카락ㆍ손톱ㆍ발톱과 어금니는
옮고 움직여서 기관(機關)과 같고
벌레들의 굴과 구멍과 같네.
똥과 찌꺼기가 언제나 가득 차고
피와 고름이 늘 흘러 쏟아지며
생사와 근심 고통 침범해 들고
노병(老病)과 기갈(飢渴)이 괴롭게 구네.
지혜로운 이는 이런 고통을
모두가 원수와 같은 줄 살펴
허망한 몸뚱이 버려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집착을 내는 것일까.
보살이 이렇게 자기 몸을 자세히 살피고 생각을 매어서 앞에 나타내어 고요히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더니, 공중에서 여러 하늘들이 있다가 법행 천자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집을 떠나려 하다가 이제 머뭇거리며, 의심과 뉘우침을 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건대 보살은 채녀들을 살펴보면서 혹은 기쁜 듯이 빙그레 웃기도 하고 혹은 찡그리고 슬퍼하며 언짢아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보살이 그리워하며 집착을 내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의 마음은 마치 큰 바다와 같으므로 우리들의 천박(淺薄)으로 측량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자 법행 천자는 말하였다.
‘보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온갖 머리와 눈ㆍ골수ㆍ뇌ㆍ나라ㆍ성ㆍ아내며 자식까지 버리면서 서원을 세워 위없는 보리를 구하며 마음에 물러남이 없었거늘,
하물며 지금의 이 최후의 몸으로서 폐해인 애욕에 그리워하거나 집착을 내겠습니까?’
그때 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 7보로 이루어진 그물과 장막을 걷어 올리고 편안하고 자상하게 천천히 나와 합장하며 서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바르게 생각하였느니라.
이 생각을 하여 마치자, 바로 천주 제석환인과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일월(日月) 천자는 저마다 도맡은 이를 거느리고 있음을 보았다.
동방의 제두뢰타(提頭賴吒) 천왕은 건달바왕을 거느리며 동쪽으로부터 오는데,
거느린 한량없는 백천의 건달바들이 여러 풍류를 울리며 치고 춤추고 타고 노래하면서 가비라성에 닿아서는 세 둘레로 에워싸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남방의 비루륵차(毘婁勒叉) 천왕도 구반다왕을 거느리며 남쪽으로부터 오는데,
거느린 한량없는 백천의 구반다들은 저마다 지닌 보배의 병에 향수를 가득 담고,
가비라성에 닿아서는 세 둘레로 에워싸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서방의 비루박차(毘婁博叉) 천왕도 여러 용왕을 거느리며 서쪽으로부터 오는데,
거느린 한량없는 백천의 여러 큰 용들이 저마다 손에 여러 가지 값진 보배인 진주ㆍ영락과 갖가지 꽃과 향을 가지고,
또 향의 구름ㆍ꽃의 구름과 보배 구름들을 흩으며, 미묘하고 가볍게 쏠리는 향기의 바름을 움직이며,
가비라성에 닿아서는 세 둘레로 에워싸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북방의 비사문(毘沙門) 천왕도 야차왕을 거느리며 북쪽으로부터 오는데,
거느린 한량없는 백천의 큰 야차들이 손에 보배 구슬을 받들었고,
그 광명은 빛이 나서 세간의 백천 가지 등불과 횃불보다 뛰어났으며,
몸에는 투구와 갑옷을 입고, 손에는 활과 칼ㆍ창ㆍ방패ㆍ바퀴 창[輪矟]과 찌르는 궁노(弓弩) 등을 가지고,
가비라성에 닿아서는 세 둘레로 에워싸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그때 천주 제석환인은 삼십삼천으로부터 그 권속들인 모든 하늘 백천만 대중들과 함께 하늘의 꽃다발과 가루 향ㆍ바르는 향과 의복ㆍ보배 일산이며 수없는 당기ㆍ번기와 영락을 가지고,
가비라성에 닿아서는 세 둘레를 에워싸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일월 천자는 좌우로 와서 역시 갖가지 공양 거리를 가지고 공중에 서서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살을 향하여 절을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시방을 자세히 살펴보고 허공과 여러 별들을 쳐다보며,
아울러 호세사대천왕(護世四大天王)과 건달바ㆍ구반다ㆍ여러 하늘ㆍ용ㆍ신이며 야차들을 보고 또 천주 석제환인을 보았는데,
저마다 백천의 자기 부족 권속들에게 앞뒤에서 인도되고 따르며 허공에 두루 가득 찼으며, 불사(弗沙)의 별도 바로 달과 합하였었느니라.
때에 여러 하늘들은 큰 소리로 말하였다.
‘보살께서 훌륭한 법을 구하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오니 빨리 집을 떠나야 하십니다.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큰 법의 바퀴를 굴리시리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생각하였다.
‘오늘 밤이 고요하고 집 떠날 때가 이르렀구나.’
그리고는 곧 차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차닉아, 너는 나를 위하여 건척(乾陟)에게 안장을 입혀서 오라.’
그때 차닉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이 밤중인데 왜 건척을 쓰려고 할까?’
그리고는 보살에게 말하였다.
‘안팎이 매우 편안하고 급한 재난이거나 좋고 나쁜 일도 없사온데 잘 모르겠거니와 왜 건척을 쓰려고 하십니까?’
그때 보살은 차닉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의 몸은 이미
온갖 상서(詳瑞)로운 일 완전히 갖춘지라,
마땅히 집을 떠나가려 하노니
너는 이제 나를 어기지 말라.
이에 차닉은 다시 보살의 이러한 게송을 듣고 온몸을 떨면서 어쩔 줄을 모르는지라, 그때 보살은 거듭 차닉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번뇌의 도둑을 항복 받으려 하는 까닭에 그 건척이 필요한 것이니, 나의 뜻을 어기지 말고 빨리 입혀서 데려오너라.’
차닉은 이때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 궁 안이 모두 듣고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보살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는 항상 잘못되심이 없고 모든 하시는 일은 반드시 그때를 가리더니 지금 무엇 때문에 건척을 찾습니까?’
그러나 허공의 여러 하늘들은 신통력으로 그들 모두가 알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은밀히 게송으로써 차닉에게 말하였느니라.
차닉아, 너는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 이곳을 자세히 살펴보매
온갖 것이 참으로 두렵기가
마치 무덤들의 사이 같노라.
나찰과 함께 사는 것 같고
또한 악성 종기의 벌레 구멍 같으며
또 태(胎) 속의 물과 같은데
여기저기 흩어져서 잠을 자누나.
나는 5욕(欲)의 고통을 보고
마음과 뜻이 지극히 불안하여
이 궁중에 살고 싶지도 않다.
동산 숲서 유람할 적에
저 늙고 병드는 고통을 보고
아울러 죽어 있는 시체를 보고
나는 꼭 집을 떠나려 하니
너는 빨리 건척을 가져다 주라.
이때 차닉은 보살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옛날 어린이셨을 적에 관상쟁이가 점을 치고서 왕에게 아뢰기를,
〈왕의 태자는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져서 전륜성왕이 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또 일찍이 듣기에 세간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고행(苦行)을 닦되,
혹은 손발톱도 깎지 않기도 하고,
혹은 거꾸로 달리기도 하고,
혹은 옷은 나무 가죽으로써 하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기도 하고,
혹은 소와 사슴 등의 계율을 받기도 하며,
혹은 다섯 가지의 열로 몸을 지지기도 하면서 이 괴로운 인을 닦아 즐거움의 과보를 원하며 구하거늘,
하물며 다시 태자는 전륜성왕이 되어 4천하를 통솔하고 7보가 두루 갖추어지는 것이겠습니까?
일체 세간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태자는 반드시 이 전륜왕의 자리를 얻으리라〉고 합니다.
선인(仙人)이 예언한 바가 허망함이 없을 터인데, 이러한 보배 자리를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그때 보살은 차닉에게 말하였다.
‘옛날 선인이 다만 전륜왕만이 되리라고 예언했느냐?
또한 부처님 도를 이루리라고도 예언이 있었거늘 두 가지의 예언 중에서 어찌 어느 것만을 정하여 말하느냐?
부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러자 차닉은 말하였다.
‘옛날 아사타 선인이 합장하고 말하되,
〈대왕은 아셔야 합니다.
왕의 태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요, 마침내 집에나 있으면 전륜왕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상호는 똑똑하지마는 전륜성왕의 상호는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으나,
다만 석가 성바지들이 숨기고 전하지 아니한 것은, 태자께서 집을 떠나 도를 배울까 두려워하여 태자께 말을 하지 아니하였거늘, 오히려 이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보살은 말하였다.
‘차닉아, 나는 옛날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올 때와 태 안에 있을 때며 낳는 때까지도 모든 일을 죄다 잊지 아니하였거늘, 하물며 다시 선인이 나에게 예언하여 주었던 것을 잊을 수야 있겠느냐?
차닉아, 여러 하늘들이 또 나에게 권하기를,
〈보살은 빨리 집을 떠나십시오. 꼭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법의 바퀴를 굴리셔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므로,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
차닉아, 나는 이제 차라리 몸을 베고 끊으며 독이 섞인 밥을 먹고 큰 불 더미에 들어가며 저 높은 바위에 던져짐을 당하더라도 집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욕심의 일은 받을 수가 없다.
이러한 세간의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는 죄다 무상하여 매우 두려운 것이니라.’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나는 옛날 다섯 가지 욕심을 받았지만
지금 실로 고통 인(因)을 두려워하며
끝없이 쌓았던 애욕의 흐름은
마치 바다 채우기 어려움과 같더라.
아지랑이 따르면 더욱 목마르나니
꿈에 있으면서 아직 깰 줄 모르누나.
날기와는 단단하지 못한 것이며
잘 차린 음식의 독(毒)들과 같다.
또 구름은 반드시 흩어져 없어지고
떨어지는 이슬은 오래 있지 않으며
요술은 그 마음을 미혹시키고
물거품은 잠깐 만에 일어났다 없어지며
파초는 단단하게 차 있지 아니하고
빈주먹이 어린아이 속이는 것 같으니라.
뱀의 머리는 가까이할 수 없으며
독의 덩굴 마침내 대기가 어렵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멀리해야 하는 것
마치 깊은 구덩이를 피함같이 하리로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 게송을 말하여 마치고, 또 차닉에게 말하였다.
‘나 또한 일찍이 사천왕인 하늘 내지 6욕천(六欲天)도 되었었고, 일찍이 저 색구경천(色究竟天)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도 났었나니,
나는 옛날 한량없는 생(生) 동안에 어리석고 헷갈려서 추악한 욕심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인 때리고 욕질하고 얽어맴을 골고루 받고 몸과 목숨을 해치며 죽어서 나쁜 길에 들어갔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여기에 깊이 싫증을 내고 떠나려 하여 바로 여러 하늘에서의 훌륭하고 묘한 경계도 오히려 탐내거나 물듦이 없게 하거늘, 하물며 이 인간의 다섯 가지 욕심에 빠져서 그리워하고 집착을 내겠느냐?
전륜성왕이 비록 자재롭다 하더라도 마침내 나고 죽는 환난은 면하지 못하느니라.
나는 세간을 자세히 살피건대,
번뇌의 들판은 매우 두려울 만하여서 돌아가 의지할 것도 없으며 믿고 의뢰할 것도 없다.
또 언제나 나고 죽음의 물속에 빠져서 근심과 슬픔에 허덕이고 성을 내는 데에 내달리며 좋아하고 욕심 내는 데서 소용돌이치고 원한에 맴돌리고 있다.
모든 소견인 나찰이 언제나 사람을 엿보나니,
나는 그 속에서 6도(度)를 닦아 배워서 떼를 삼되,
지혜로 노가 되고 믿음으로 단단하게 하여 자신을 건진 뒤에는 다시 일체 중생을 거두어 잡아 저 언덕에 이르게 해야겠노라.’
이때 차닉은 보살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이제 마음으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자 보살은 차닉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차닉아, 너는 알아야 하리.
나는 이제 이미 결정했으며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려고
정진의 마음을 일으켰나니
움직이지 않음은 수미산 같아
마침내 물러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금강 우박과
칼과 방패와 창 등이며
번갯불과 뜨거운 쇳덩어리가
나의 이마 위에 떨어져 있더라도
마침내 세속의 경계에서는
사모함과 집착심을 내지 않으리.
그때 한량없는 백천 하늘들은 공중에서 기뻐 날뛰며 여러 하늘 꽃을 비처럼 내리며 게송을 읊었느니라.
뛰어나고 깨끗함이 허공과 같아
연기ㆍ구름ㆍ티끌ㆍ안개 물들이지 못하리니
온갖 경계에 집착한 바 없어서
선한 이익 구족하여 보리 이루리.
이에 정혜(靜慧) 천자와 장엄희유(莊嚴戱遊) 천자는 가비라성의 일체 인민을 모두 정신없이 잠을 자게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차닉에게 말하였다.
‘차닉아, 너는 이제 나를 근심하거나 성내게 하지 말고 빨리 건척을 입혀서 와야 하리라.’
이때 차닉은 보살에게 말하였다.
‘지금이 한밤중이라 아직 다닐 때가 아니며, 온갖 궁중 성을 죄다 방위하는데 누가 여기에서 자물쇠를 열겠습니까?’
때에 석제환인은 신통의 힘으로써 모든 문들이 모두 저절로 열리게 하였으므로, 차닉은 중성 문이 열림을 보고 당황하여 근심과 그리움에 더욱더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벗이 없구나. 이 성의 안팎에 있는 네 가지 병사와 여러 석가 신하들과 왕ㆍ왕자ㆍ야수다라며 후궁 채녀들이 잠을 자며 깨어 알지 못하는데, 지금 어디를 떠나가려고 하고, 다시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할까?
태자의 마음은 결정되기가 이러하니, 내가 지금 간절히 아뢰며 청하여도 따르지 아니하신다. 스스로 생각해도 힘이 없거니 어찌 막아낼 수 있겠는가?’
이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서 차닉에게 말하였다.
‘차닉아, 빨리 건척을 꾸며 입혀서 데리고 오라.
보살의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이 나지 않게 하라.
왜냐하면 너는 어찌 한량이 없는 백천의 큰 보살들과 석제환인ㆍ사천왕ㆍ여러 하늘ㆍ용ㆍ인이며 건달바 등이 저마다 그 대중들과 함께 공경하고 공양하며 광명이 빛나서 허공을 두루 비추는 것도 보지 못하느냐?’
차닉은 이 말을 듣고 건척에게 말하였다.
‘건척아, 태자께서 이제 너를 타고 나가시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 최상의 금 굴레와 보배 안장이며 꾸미개를 가지고 말에게 입히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몰아다 바치면서 보살을 찬탄하였다.
‘엎드려 원하노니, 태자께서는 바라는 바 있으시면 죄다 원만히 이루시고 온갖 장애가 모두 녹아 없어지시며, 세간에게 안온한 즐거움을 얻게 할지이다.’
보살은 여기에서 말을 타고 처음 걸음을 들어 올릴 때에 시방의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으며,
허공을 올라서 갈 때에는 사대천왕은 말 발을 들었고 범왕과 제석천은 보배 길을 열어 보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큰 광명을 놓아 일체 그지없는 세계를 비추어서 제도될 만한 이는 모두가 제도 해탈을 얻고 괴로움 있는 중생은 모두 괴로움을 떠나게 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가비라성을 돌아서 굽어보며 말하였다.
‘만약 내가 이제부터 생사의 끝까지 다하지 못하면 끝내 다시는 가비라성을 보지 않겠거늘 하물며 다시 그 속에서 가고 서고 앉고 눕겠느냐?’
그 뒤에 여러 사람들은 여기에 탑을 일으켰느니라.
비구들아, 이때 보살이 이미 궁중을 떠나자 궁중의 채녀들은 죄다 깨어나서 곳곳을 찾았지만 보살이 보이지 않는지라,
야수다라는 소리를 내어 크게 울며 땅에 뒹굴어져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고 몸의 영락을 끊으면서 슬피 울며 말하였다.
‘어찌 그리 애통하고, 어찌 이리 괴로운가?
나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까?
태자께서 나를 버리고 떠나갔으니 다시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슬피 울고 괴로워하며 어쩔 줄을 몰랐으며,
궁녀들이 다 모여 울부짖으며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마치 고기가 물을 잃은 것 같고 나무에 뿌리가 끊어진 것과 같았으니,
슬퍼서 통곡하는 소리가 궁중 밖에 들렸느니라.
이때 궁녀들은 부왕에게 아뢰었다.
‘오늘 밤에 잠자다 깨었더니 태자가 보이지 않았나이다.’
그 마구를 맡은 신하도 말하였다.
‘이제 저 건척을 잃어버렸나이다.’
왕은 이를 듣고서 소리 내어 크게 외치며 말하였다.
‘아아, 아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어디를 갔느냐?’
말을 한 뒤에 기절하여 땅에 넘어졌으므로 곁의 신하가 곧 찬물을 얼굴에 뿌리자 한참 있다가 깨어나서 방위하던 신하들을 불러 칙명하였다.
‘그대들 장수들이 몸소 조심하지 않다가 나의 아들을 잃게 되었으니,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안팎으로 나누어 가서 빨리 찾을지니라.
만약 만나게 되면 좋은 말로 타일러서 데리고 궁중으로 돌아오라.’
이때 신하들은 왕의 칙명을 받들고 돌아가며 서로 말하여 명령을 전하면서 가며 보살을 찾았지마는 하늘들의 신통력으로 영영 만날 수 없었느니라.
그때 보살은 가비라성을 떠나 미니야(彌尼國) 나라에 닿자 그 밤은 새었으며 지나온 길은 6유순(由旬)이었나니,
그 여러 하늘과 용ㆍ야차ㆍ건달바 등은 모시고 따르기를 여기까지 하다가 할 일을 마치자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느니라.
보살은 가서 그 옛날 선인이 고행하던 숲 속에까지 닿자 말을 내리며 차닉을 위로하였다.
‘착하도다, 차닉아. 세간 사람들은, 어떤 이는 마음으로 따르면서 몸은 따르지 아니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몸으로 따르면서 마음은 따르지 아니하기도 하는데,
너는 이제 마음과 몸이 모두 나를 따랐으며,
세간 사람들은 가멸하고 귀한 이를 보면 다투어 와서 받들어 섬기고, 가난하고 천한 이를 보면 버리고 멀리하거늘,
나는 이제 나라를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오직 너 한 사람만은 혼자 나를 따랐구나.
착하구나, 차닉아. 매우 희유하도다. 나는 지금 이미 한적하고 넓은 곳에 닿게 되었으니, 너는 곧 건척을 데리고 함께 돌아가라.’
그리고는 곧 스스로 상투를 풀어 마니 보배를 가져다 차닉에게 맡기며 말하였다.
‘차닉아, 너는 이 보배를 가지고 궁중 안에 돌아가서 대왕에게 받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니,
〈태자는 이제 세간의 법에 다시 바라는 바가 없사오며,
하늘에 나서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을 받기 위함이 아니요,
효도를 아니하고자 함도 아니며,
성을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재물과 자리와 봉록을 구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다만 일체 중생들이 바른 길을 헷갈려서 생사에 빠져 있음을 보고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는 것을 따름이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하라.
대왕께서 만약 내가 지금 나이가 적고 아직 집을 떠남에 마땅하지 않다고 하시면,
네가 나의 말로써 방편으로 묻고 아뢰기를,
〈나는 늙고 병들고 죽음이 어찌 규정된 때가 있으며, 사람이 비록 젊고 한창일지라도 누가 홀로 면하는 이 있겠습니까?
옛날 모든 전륜성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를 구하러 산림에 나아가서 중도에 도로 다섯 가지의 욕심을 받음이 없었거니, 나의 이제 사사의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만약 위없는 보리를 얻지 못하면 마침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것이며,
안팎의 권속들이 모두 나에게 은혜와 애정이 있을 터이니 나의 뜻으로써 잘 이해를 시켜야 하리라.’
그리고 또다시 몸에 걸었던 영락(瓔珞)을 벗어 차닉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네가 이것을 가져다 마하파사파제에게 바치며 이르기를,
〈나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끊기 위하여 이제 일부러 집을 떠나 이 서원을 채우려 함이니, 근심하지 마소서〉라고 하라.’
또 여러 다른 몸의 꾸미개를 벗으면서 말하였다.
‘야수다라에게 주며 말하기를,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사랑하다가 반드시 이별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제 이 모든 고통을 끊기 위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우는 것이니, 사모와 집착 때문에 함부로 근심을 내지 말라〉고 하라.
그리고 궁중 채녀들과 아울러 석가 종족의 같은 나이인 어린아이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무명의 그물을 깨뜨리려 하노니, 떳떳하게 지혜의 광명을 얻고 할 일이 끝나면 돌아가서 서로가 만나리라〉라고 하라.’
이때 차닉은 보살의 몹시 간절한 말을 듣고 슬피 울고 괴로워하면서 자신을 땅에 내던지고 말하였다.
‘제가 이미 힘으로 태자를 왕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거늘,
만약 제가 여기로부터 혼자 돌아간다면 왕과 이모님과 여러 석가 성바지들이 반드시 성을 내어 저를 때리며 꾸짖되,
〈너는 태자를 데려다 어디에 버려두었느냐?〉라고 할 것이고,
그러면 저는 반드시 핑계가 없으리니, 장차 어떻게 대답을 하오리까?’
보살은 대답하였다.
‘차닉아,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
왜냐하면 세간에서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가져다 간곡하게 그를 향하여 자세히 말하면 돌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상을 타기도 할 터인데 근심만을 하지는 말라.
차닉아, 너는 빨리 궁중으로 돌아가서 대왕에게 근심과 괴로움을 내지 않게 하라.’
이에 차닉은 땅에서 일어나 소리를 높여 크게 울었고,
건척은 머리를 숙이고 나아가 두 다리를 꿇고 보살의 발을 핥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울었느니라.
그때 보살은 손으로 건척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건척아, 네가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울지 말라. 크게 너에게 보답하리라.’
비구들아, 보살은 생각하였다.
‘만약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지 않으면 집을 떠난 이의 법이 아니로다.’
그리고는 이에 차닉으로부터 마니검(摩尼劒)을 가져다 몸소 머리를 깎았으며, 머리카락을 깎아서 공중으로 내던지매,
때에 천제석은 희유한 일을 보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곧 하늘 옷으로써 공중에서 받아 잡아서는 삼십삼천으로 돌아가 예배하여 섬기고 공양하였느니라.
그때 보살은 수염과 머리칼을 깎고 스스로 몸 위에는 아직도 보배 옷을 입었음을 살펴보고 또 생각하였다.
‘집을 떠난 이의 옷으로서는 이러함이 마땅하지 않구나.’
때에 정거천은 변화하여 사냥꾼이 되어 몸에 가사를 입고 손에 활과 살을 가지고 보살의 앞에 잠자코 섰었느니라.
보살은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입은 것은 바로 옛날 모든 부처님들의 옷이거늘 어찌하여 이것을 입고서 죄를 짓습니까?’
사냥꾼은 말하였다.
‘나는 가사를 입고 떼 사슴을 달래나니, 사슴이 이 옷을 보면 곧 와서 나를 가까이합니다. 나는 이것으로 인하여 곧 죽일 수가 있습니다.’
보살은 말하였다.
‘그대가 가사를 입음은 오로지 살해를 위함이로되, 나는 만약 얻으면 오직 해탈만을 구하겠으니, 그대는 나에게 이 가사를 주실 수 있습니까?
그대가 만약 나에게 주면 나는 그대에게 교사야 옷[憍奢耶衣]을 줄 터이니, 그대는 어찌 그 하찮은 옷을 아끼겠소?’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장하십니다, 인자(仁者)여. 이러한 하찮은 옷은 실로 아까울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는 곧 가사를 가져다 보살에게 주자 보살은 그때에 마음으로 기뻐하며 곧 그 교사야 옷을 주었다.
때에 정거천은 신통의 힘으로써 갑자기 본래의 형상이 되며 허공을 날아올라 한 생각 동안에 도로 범천에 닿았다.
보살은 그것을 보고 이 가사를 갑절이나 더 중하게 여기었나니, 그 후 여러 사람들이 여기에 탑을 세웠느니라.
때에 보살은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고 몸에 가사를 입고 거동과 용모를 고쳐서 말하였다.
‘나는 이제 비로소 참답게 집을 떠났다고 이름하겠구나.’
그리고 차닉을 보내자 건척을 데리고 돌아가는지라, 흐르는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하여 차닉을 이별하였으며,
차닉을 이별하고는 편안하고 자상하게 천천히 걸으며 그 발거(跋渠) 선인이 고행하는 숲 속을 거닐었느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차닉은 이미 보살의 뜻이 돌아서지 않을 것을 보고 건척을 끌고 슬퍼하면서 돌아갔나니, 그 뒤에 여러 사람들이 여기에 탑을 일으켰느니라.
이에 차닉은 사직하고 멀리서 보매,
보살의 머리에는 천관(天冠)이 없고 몸에는 영락도 없고 갖가지 보배 옷이 모두 없는지라,
손을 올려 가슴을 치며 슬피 통곡하고 다시는 바랄 것도 없으므로 목이 메어 느린 걸음으로 비틀거리면서 거닐었다.
건척은 슬피 울며 머리를 돌려 우러러보고는 머뭇거리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느니라.
차닉은 때에 점차로 성에 닿자 마치 사람이 빈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으니,
그 성의 안팎과 동산이며 샘과 수풀은 보살이 떠났기 때문에 모두가 말라 버 렸느니라.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보살은 보이지 않고 차닉만이 보이는지라, 다 그 뒤를 따라와서 물었다.
‘실달(悉達) 태자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차닉은 대답하였다.
‘태자께서는 지금 다섯 가지 욕심을 버려 버리고 혼자 산간에 계십니다.’
여러 사람들은 듣고 전에 없던 일이라 괴이히 여기고 사람마다 서로가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태자를 따라가 그 산 숲에서 살아야겠다.
왜냐하면 거룩한 태자를 떠나서 어떻게 살아가며 성질이 쓸쓸하여 사랑하고 좋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때 차닉이 건척을 끌고 아울러 영락과 값을 칠 수 없는 보배 관이며 여러 꾸미개를 가지고 왕궁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 말의 울음소리가 궁중 안에 들렸느니라.
이때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며 후궁 채녀들은 모두 와 모여서 함께 서로 말하였다.
‘건척의 소리가 이제 가까이 들리니 태자께서 궁중으로 돌아오심은 아닐까?’
이때 차닉은 궁문을 들어가자 이모와 비와 여러 채녀들은 간절하게 보려고 다투어 궁문으로 나왔지마는 오직 차닉만이 보이고 보살은 보이지 않는지라 한꺼번에 통곡하면서 차닉에게 물었다.
‘태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고 너 혼자만이 돌아오느냐?’
차닉은 대답하였다.
‘태자께서는 다섯 가지의 욕심을 버리고 도를 구하기 위하여 저 산 숲에 계시면서 가사를 입고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렸나이다.’
마하파사파제는 이 말을 듣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어쩔 줄 모르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통곡하며 차닉을 꾸짖었다.
‘내가 이제 어떻게 너를 믿겠느냐. 나의 거룩한 아들을 데려다 저 산 숲에 보내 놓았으니, 사나운 짐승과 독벌레가 매우 두려울 터인데 이제 혼자 가서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차닉은 말하였다.
‘태자께서 저에게 말과 여러 보배 꾸미개를 맡기면서 저를 재촉하여 빨리 돌아가게 하심은 부인께서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실까 두려워하심이옵니다.’
이때 궁중 채녀들은 애욕의 인연 때문에 깊이 애착하여 몸과 마음으로 괴로워하면서 슬피 울며 목이 메었느니라.
마하파사파제는 눈물을 머금고 말하였다.
‘아아, 태자야, 너의 몸은 본래 전단으로 닦고 씻은지라 거룩한 덕의 빛이 크거늘, 이제 어떻게 산 숲에서 야위며 모기와 등에에게 살갗을 물리는 이런 괴로움에 편안하려느냐.
아아, 태자야, 집에 있을 때는 교사야 옷을 입었거늘 이제는 어떻게 추악한 옷을 입으려느냐.
아아, 태자야, 집에 있을 때는 백 가지로 조화된 향기롭고 깨끗한 음식이었거늘 이제는 어떻게 맛이 없는 추잡한 음식을 먹으려느냐.
아아, 태자야, 집에 있을 때는 앉고 누웠던 이부자리가 가늘고 부드럽지 않음이 없었거늘 이제는 어떻게 가시덤불을 덮고 깔면서 참고 받으려느냐.
아아, 태자야, 집에 있을 때는 가멸하고 귀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하여 너를 섬겼어도 오히려 실수할까 두려웠거늘 이제는 어떻게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이 혹은 너를 속이지나 않으려느냐.
아아, 태자야, 집에 있을 때는 단정한 채녀들과 항상 재미있게 즐기며 다섯 가지 욕심을 멋대로 하였거늘 이제는 어떻게 스스로 산 숲에 놓여서 혼자 다니고 혼자 머물겠느냐.’
마하파사파제는 갖가지로 말을 하여 슬피 울면서 괴로워하다가 땅에서 일어나 거듭 차닉(車匿)에게 물었다.
‘나의 아들이 떠나갈 때에 너를 향하여 무엇을 부탁하더냐?
나의 아들의 머리카락은 지금 누구의 곁에 있으며, 또 누가 깎았느냐?’
그러자 차닉은 울며 어쩔 줄 모르다가 부인에게 대답하였다.
‘태자께서 저에게 부탁하시기를,
〈네가 궁중에 가서는 나의 어머님에게 두 번 절하면서 은근히 청하되,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머지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돌아가서 만나 뵙게 되리이다 하고 말하라〉고 하셨사오며,
보배 칼을 잡고서 스스로가 머리카락을 깎아 허공에 내던지니, 하늘들이 이내 받아 가지고 돌아가서 공양하였나이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는 더욱더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아아, 태자야, 머리카락은 매우 길고 부드러워 검푸른 빛이며, 하나의 털구멍에서 하나의 털이 돌며 나서 왕관을 쓰고 왕위를 받을 만하거늘, 너는 이제 무엇 때문에 베고 끊어 내던져 버렸느냐.
아아, 태자야, 두 팔은 가늘고 길며 복사뼈도 드러나지 아니하고, 걸음걸이도 자상하고 고와서 사자와 같으며, 눈은 푸른 연꽃과 같고 몸은 순금 빛깔이며, 말소리는 은은하여 북소리와 같고 우레 소리와 같거늘, 이러한 사람이 어찌 도를 닦을 만하겠느냐.
살피건대 이 땅이야말로 거룩한 왕이 있어야 하고, 이런 덕이 왕성한 사람이라야 그 주인으로서 마땅하니라.’
곧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만약 이 땅이 복된 곳이 아니라면
이 훌륭한 덕인을 안 낳아야 할 것인데
희유한 공덕 몸을 이미 나타냈으니
세상 위해 거룩한 왕이 되었어야 하리라.
그때 야수다라는 소리 내어 슬피 울며 차닉을 꾸짖었다.
‘차닉아, 태자께서 떠나가실 때 나는 그 밤에 잠이 깊이 들어 깨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거니와 너는 태자를 데려다 어디에 보내 두었느냐.
지금 떨어짐이 가깝냐, 머냐. 너 혼자만이 돌아왔느냐.
차닉아, 너야말로 이로움이 없도다. 나를 해쳤으니 바로 나의 원수로다.
너는 나쁜 일을 하여 이제 이미 갖추어졌거늘 거짓으로 울지 말라.
차닉아, 이 말은 언제나 우는 소리가 수 리까지 들렸는데 그 밤만은 어찌하여 고요하였으며, 오늘에야 슬피 울어 애달픈 정감만 더한단 말이냐.
너와 건척은 모두 좋지 못하다. 나에게 주인이 없게 하고 성과 읍이 텅 비게 한 것은 이 건척과 너 차닉 때문이니라.’
그러자 이에 차닉은 슬피 울면서 야수다라에게 대답하였다.
‘대비시여, 지금 건척을 욕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저를 꾸짖음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저와 건척은 처음부터 허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건척이 떠나갈 때에 의심됨이 없지 않은지라, 슬피 울며 땅을 딛고 앞발을 떼지 않으면서 우는 소리가 반 유순에 사무치고 말굽 소리는 1구로사까지 들렸지마는, 다만 여러 하늘의 신통력 때문에 비를 깨지 못하게 하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건척이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대왕께서 먼저 엄한 칙명으로 온갖 좌우 분들에게 더 잘 마음을 써서 태자를 지키도록 한 모든 성문지기 병사들도 모두가 잠을 자며 깨어 알지 못한 것이나,
태자께서 처음 나가시면서 해가 하늘에 오른 듯이 큰 광명을 내쏟아 널리 세계를 비추매 길을 갈 즈음에는 제가 먼저 앞을 인도하며 저는 도리어 찬성하여 돕던 것이나,
모든 성의 문들이 저절로 열려진 것이나,
건척이 이때 땅을 밟지 않는 것이나,
머리카락을 깎아 공중에 내던지고 옷을 바꾸는 것 등의 여러 가지 일이,
모두 이는 하늘들의 신통의 힘으로 한 일입니다.’
그러자 그때에 야수다라는 몹시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땅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괴롭도다, 괴롭도다. 무엇 때문에 태자께서는 나를 버리고 떠나가셨을까.
어찌 위타(韋陀:베다)에 있는 말을 듣지도 못했을까.
옛날 어떤 임금이 깊은 산에 들어갈 제 그 왕비를 이끌고서 같이 거룩한 행을 닦았다는데, 어째서 오늘 혼자 나를 버리고 떠나가셨단 말이냐.
차닉아, 태자께서 혹은 하늘에 나기 위하여 모든 고행을 닦으며 여러 천녀들을 구한다더냐.
그러나 그 천녀들을 하필이면 구할까.
왕위를 버리고 우리들까지 버려 버리고 말이다.
차닉아, 나는 참으로 혼자 하늘에 나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인간의 묘한 낙을 구하지도 않는다.
소망은 나와 주인이 함께 태어나는 곳마다 한결같이 부부가 되고 도리어 지난번과 같이 훌륭한 과보를 받는 것이로다.’
이 말을 하여 마치고,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차닉아, 나의 주인께서 지금 어디 계시냐.
나를 무단히 마침내는 외로운 과부가 되게 하였구나.
지금부터는 좋은 옷도 입지 않겠고,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겠고, 향과 꽃과 영락은 나의 몸과는 영원히 끊어졌다.
비록 집에서 산다 하더라도 항상 산 숲의 생각만을 하리로다.’
야수다라는 수없이 천 마디 말로써 차닉을 꾸짖었느니라.
차닉은 앞에 나아가 간하며 말하였다.
‘대비시여, 그렇게 몹시 괴로워하지 마소서.
왜냐하면 태자께서 나가실 때에 여러 하늘들이 모시고 따랐나니,
동방 천왕과 건달바주(乾闥婆主)며, 남방 천왕과 구반다주(鳩槃茶主)며, 서방천왕과 대룡주(大龍主)며, 북방 천왕과 야차주(夜叉主)들이 그 몸에 죄다 금강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혹은 활과 칼을 잡기도 하였고, 혹은 창을 가지기도 하였고, 혹은 앞을 인도하며 혹은 뒤에 따르기도 하였으며,
범왕과 제석천과 일월천이 모두 권속들을 거느렸으며,
욕계의 천자들이 변화하여 마나바신(摩那婆身)이 되었으며,
천인들이며 보녀들의 수없는 천억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여 하늘의 묘한 꽃을 가져와 태자의 위에 뿌렸는데,
태자께서는 살펴보시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아니하셨으며,
탐내지도 않고 높은 체하지도 아니하심이 마치 허공에 걸리는 바가 없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니,
제가 이제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때 수단왕이 멀리서 궁 안의 슬픈 곡성을 듣고 자신의 궁중으로부터 허둥지둥 바삐 나왔는데,
이때 차닉은 보살의 보배 관과 구슬ㆍ영락이며 비단 일산을 가지고 건척을 끌며 와서 왕 앞에 닿아 낱낱이 자세히 말하면서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느니라.
때에 수단왕은 보살의 모든 꾸미개를 보고 겸하여 차닉이 하는 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크게 외쳤다.
‘아아, 아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하루아침에 나를 배반하고 이제 어디로 갔느냐.’
그렇게 뒹굴며 울부짖다가 기절하여 버렸느니라.
이때 가비라성의 모든 사람들이 죄다 슬퍼하여 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으며, 모든 석가 권속들이 저마다 슬퍼하고 사모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서로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두 와서 간하며 왕을 부축하여 앉게 하였는지라,
왕은 잠깐 소생하였으나 조금 만에 도로 기절하였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서 차닉을 꾸짖었다.
‘너는 나의 아들을 데려다 어디에 버렸느냐?’
차닉은 당황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태자께서는 다섯 가지 욕심을 버리고 세간에 물들지 아니하신지라 은근하고 간절히 간하였지마는 도무지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나이다.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간하지 말라. 나는 이제 온갖 애욕과 즐거움은 필요가 없으며, 나라의 자리를 버리고 이 산 숲에서 즐기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셨나이다.’
때에 수단왕은 거듭 차닉에게서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면서 차닉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끝이 났구나. 기운과 세력도 없고 손발이 죄다 꺾였음이 마치 썩은 나무 둥치와 같고, 또한 큰 나무에 가지와 잎이 없음과 같다.
적의 경계에서는 혹은 나를 업신여기기도 할 것이니, 나는 이제 홀몸으로 해낼 수가 없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가장 뛰어난 장부로서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의 소망을 어기고 떠났느냐.
아아, 나의 아들아, 모든 상호가 만족하고 백 가지 복으로 장엄하여서 하나하나의 상 가운데는 모두가 다 갖추어졌거늘 여러 채녀들이 잠자며 깨어나지 않음을 엿보아 갑자기 나갔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재주 좋고 지혜가 많아 옛날 궁 안에 있을 제는 내가 근심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 나를 버리고 떠나가니 다시는 의지할 것이 없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으뜸 되는 성바지 안에서 태어나 언제나 여러 사람들의 존중함을 받더니 보배 자리와 사방의 일체 권속들을 버리고 홑몸으로 떠나감이 마치 흰 코끼리가 큰 나무를 꺾어 버리는 것과 같구나.
나의 아들이 떠나갈 때에 모든 성문은 열기도 어렵고 닫기도 어려워서 여닫는 때의 그 소리야말로 멀리 사무치거늘 어찌하여 이 밤에 사람들은 모두가 듣지 못했을까. 반드시 이는 천신이 소리와 메아리를 없게 한 것이리라.
아아, 나의 아들아, 보배 자리 버리기를 눈물과 침 뱉듯 하였구나. 나는 먼저 너를 위하여 세 철의 궁전을 지어서 추움과 더위를 알맞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나가서 들판에서 즐기고 산 숲에서 노닐며 날짐승 길짐승과 함께 짝하려 하느냐. 지금부터는 성을 지키는 모든 신들이 죄다 이 성을 버리고 떠나갔구나.
아아, 나의 아들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나의 골수에 사무쳤다. 무엇 때문에 나를 버리고 산 숲으로 들어갔느냐.’
그때 수단왕은 보살을 생각하여 밤낮으로 돌아오게 하려 하였으며, 또 생각하였다.
‘선인(仙人)이 옛날 예언하되,
〈만약 집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되어 7보가 저절로 있고 4천하를 도맡으며 천의 아들이 갖추어져서 단정하고 씩씩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만약 집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시방을 교화하리라〉라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알겠구나. 나의 아들은 반드시 돌아오려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대신들을 널리 불러서 말하였다.
‘경들은 집에 있으며 모두 자식들이 함께 서로가 재미있게 즐기고 눈앞에서 위로를 하는지라, 나의 근심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의 아들이 기특한 상호가 거룩하게 통달하여 마땅히 전륜성왕이 되어 4천하를 맡아야 했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별하여 깊은 산 깊은 골의 아주 험준한 곳으로 들어갔으니,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더움을 누구에게 보살피게 하겠소?
경들의 자제에서 다섯 사람을 선택하여 따르며 시중하게 해야 하오. 만약 중도에서 돌아오면 경들의 5족(族)을 멸살하겠소.’
그러자 대신들은 칙명을 받들어 곧 다섯 사람을 뽑아 산에 들어가 시중하게 하였느니라.
이때 다섯 사람은 쫓아가도 미칠 수 없는지라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뛰어난 분이라 다니시는 데 길을 선택하지 않거니 어찌 길이 있겠느냐.
우리가 만약 돌아가면 반드시 우리의 가족을 죽일 터이니, 살 만한 곳을 선택하여 뜻을 따라 머무름이 좋겠구나.’
그리고는 이에 다섯 발다라(跋陀羅)는 산 숲에 숨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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