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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5권[1]
[태전 화상] 太顚
석두石頭 화상의 법을 이었고, 조주潮州에서 살았다. 원화元和 13년 무술년[戊戌歲]에 원화元和 황제가 안원문安遠門에 나아가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맞아들여 몸소 향을 피우고 정례하니, 황제와 백관들이 오색 광명을 보고 모두가 부처님의 광명이라 하여 백관들이 거룩한 감응에 예배하고, 하례했으나 시랑侍郞 한유韓愈만은 부처님의 광명이 아니라 하여 절도 하지 않고 거룩한 공덕을 하례하지도 않았다.
이에 황제가 물었다.
“부처님의 광명이 아니라면 무슨 광명인가?”
그러나 시랑이 대답을 못 하자 조주潮州로 귀양을 보냈다. 시랑이 조주에 이르자, 곧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어떤 도덕이 높은 선객이 있는가?”
“태전太顚 화상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시랑이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어 초청했으나 모두 응하지 않더니, 나중에 부처님의 광명이 있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스스로 찾아왔다. 이때 시랑은 만나 주지 않고, 사람을 시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세 차례나 초청해도 오시지 않더니, 이젠 어째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세 번 초청해도 오지 않은 것은 시랑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요, 부르지 않아도 온 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위해서입니다.”
시랑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전에 있었던 사실을 고하고,
이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제자가 그때 부처님의 광명이 아니라 했는데 이치에 맞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시랑이 물었다.
“부처님의 광명이 아니라면 그 당시 그것은 무슨 광명이었습니까?”
선사가 답하였다.
“그것은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제석ㆍ범왕 등이 부처님의 덕화德化를 돕는 광명입니다.”
이에 시랑이 말했다.
“그때에 서울에 스님 같으신 분이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제자가 이리로 귀양을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부처님도 광명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광명입니까?”
선사가 시랑을 불러 시랑이 대답하자, 선사가 말했다.
“보시오. 보셨지요?”
시랑이 말했다.
“제자는 이러한 경지境地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 경지를 알면 그것이 진짜 부처님의 광명입니다. 그러므로 불도는 한 가닥으로서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이 아니고 수미산을 꿰뚫고, 산ㆍ강ㆍ땅덩이를 두루 비추지만 귀나 눈으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다섯 개의 눈으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두 개의 귀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이 부처님의 광명을 알면 온갖 범부나 성인이라는 허깨비가 홀리지 못합니다.”
선사가 산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한 수 읊었다.
그대에게 하직하나니 너무 빨리 산으로 돌아간다 흉보지 말라.
송라松蘿가 달빛 사이에 있음이 그리워서이다.
집과 방은 자물쇠를 잠그지 않았건만
올 때에 절로 흰 구름에 감추어졌노라.
그 뒤에 시랑이 특별히 산으로 찾아가서 다시 절을 하고 물었다.
“제자는 공무에 바쁘니, 불법 가운데서 요점이 되는 곳을 지시해 주십시오.”
선사가 양구良久하니, 시랑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때마침 시자侍者인 삼평三平이 등 뒤에 있다가 선상을 치니, 선사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뭐하는가?”
삼평이 대답했다.
“빛은 먼저 정定으로써 움직이고 뒤에 지혜로써 합니다.”
시랑이 삼평을 향해 말했다.
“화상의 문풍門風이 격조가 높으셔서 제자는 어리둥절했는데, 지금 시자에 의해 들어갈 곳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삼평에게 절하여 하직하고 다시 조주로 돌아갔다.
다음날 산에 올라와 선사에게 절을 하려 하니,
선사가 낮잠을 자다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채 물었다.
“산 구경을 하러 왔는가, 나에게 절을 하러 왔는가?”
“화상께 절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면 절을 하지 않고, 어느 때를 더 기다리는가?”
시랑이 곧 절을 하였다.
또 어느 날 산에 올라오니, 선사가 물었다.
“산 구경을 왔는가, 나에게 절을 하러 왔는가?”
“산 구경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면 유산장(遊山杖:지팡이)을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빈손으로 와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또 어느 날 선사가 말했다.
“노승이 지난해에 석두를 뵈었더니, 석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너의 마음인가?’
그래서 바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화상께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석두 스님께서 할喝을 하셨다.
이로부터 며칠이 지나 다시 화상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전날 말씀드린 것이 어째서 옳지 못합니까?
그것을 떠나서 어느 것이 제 마음입니까?’
석두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눈썹을 치켜 눈알을 움직이는 따위 온갖 일을 빼고서 마음을 가져와야 한다.’
‘마음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석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까까지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니, 이제는 어째서 마음이 없다고 하는가? 마음이 있다거나 마음이 없다거나 모두가 나를 속이는 짓이니라.’
내가 그때 이 말씀에 이 경지를 크게 깨닫고 다시 다음과 같이 물었느니라.
‘저로 하여금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동자를 움직이는 등 온갖 일을 제거하라고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제거하셨습니까?’
‘나는 모두 제거하였느니라.’
그래서 나도 말하였다.
‘저도 이미 화상께 보였습니다.’
석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이미 나에게 보인 그것은 어떠한 것이더냐?’
‘화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석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와는 관계없는 일이니라.’
‘본래 아무 물건도 없었습니다.’
‘그대 역시 없는 물건이니라.’
‘물건이 없다는 것이 참 물건입니다.’
‘참 물건을 얻을 수 없는 것이 그대 마음의 현량現量이다. 뜻이 이러하니, 잘 보호하여 지녀라.’”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물었다.
“그 가운데(마음)의 사람을 만난 때는 어떠합니까?”
“이미 가운데가 아니니라.”
“이 가운데는 어떠합니까?”
“그는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느니라.”
[장자 화상] 長髭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 수현攸縣에서 살았다. 행장을 보지 못해 그 생애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나 선사(장자)가 처음 석두를 참배하고 현묘한 뜻을 비밀히 전해 받고, 이어 조계로 가서 탑에 예배한 뒤에 다시 석두에게로 돌아오니,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이에 석두가 물었다.
“대유령大庾嶺 마루의 한 폭 찬란한 공덕은 이루었는가?”
“모든 일은 이미 준비되었고 점안點眼만이 빠졌을 뿐입니다.”
“점안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점안해 주십시오.”
석두가 한 다리를 번쩍 들어 보이자, 선사가 수십 차례 절을 거듭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석두가 말했다.
“저놈이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절만 하는고?”
그래도 선사가 절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석두가 앞으로 걸어 나와 꽉 붙들고 말했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절만 하는가?”
“마치 뜨거운 화로 위의 한 점의 눈송이와 같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선사가 10세가량 되는 아이를 얻어서 8년이나 길렀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화상에게 말했다.
“저는 계를 받으러 가고자 하는데 가도 좋겠습니까?”
“계는 받아서 무엇 하려는가?”
“저의 할아버지[祖公]께서 남악南嶽에 계시는데, 거기에 가서 뵙고자 하나 계를 받지 않은 탓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계를 받으려면 20세가 되어야 하니, 우선 가만히 있거라.”
선사는 이렇게 말한 뒤에 갑자기 느낀 바 있어 그를 불러 계 받으러 갈 것을 허락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어린 스님[少師]이 선사에게 하직하니, 선사가 말했다.
“너, 돌아올 때에는 꼭 석두 화상이 계신 곳에 들렀다가 오너라.”
어린 스님이 대답하고 곧 남악 반야사般若寺로 가서 계를 받았다.
나중에 석두에게 가서 뵈니,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장자長髭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여기서 묵어라. 그래도 괜찮겠는가?”
“모든 것을 화상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어린 스님이 이튿날 아침에 올라와서 문안을 드리니, 화상(석두)이 곧 새로 계를 받은 이[新戒]를 데리고 산 구경을 갔다. 가는 도중 길가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이를 보자 화상이 말했다.
“나의 앞길을 막고 있는 이 나무를 네가 베어 버려라.”
“저는 도끼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내게 칼이 있느니라.”
“그러시면 제게 주십시오.”
이에 화상이 칼을 꺼내어 칼자루를 쥐고 건네주니,
새로 계를 받은 어린 스님이 말했다.
“어찌 칼자루 쪽을 주시지 않으십니까?”
“그쪽 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가?”
이에 새로 계를 받은 어린 스님이 크게 깨달으니, 화상이 어린 스님에게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어린 스님이 석두 화상의 곁을 물러나서 선사(장자)에게로 돌아오니,
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떠날 때에 석두에게 들르라고 했었는데, 들렀던가?”
“들르기는 했으나 제자로서의 폐백幣帛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구에 의해 계를 받았는가?”
“남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거기서는 그랬거니와 여기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기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구나.”
“혀끝을 더럽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곧 꾸짖었다.
“에끼, 새로 계를 받은 이 말 많은 어린 중아, 나가거라.”
이가 후일의 석실石室 화상이다.
[용담 화상] 龍潭
천황天皇의 법을 이었고, 예랑주澧郞州에서 살았다. 휘諱는 숭신崇信이요, 성은 알려지지 않았다. 속가에 있을 적에 대대로 떡 장사를 하면서 천황天皇 남쪽 마을에서 살았는데, 천황 화상이 절 안의 조그마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문을 꽉 닫고 좌선坐禪만 하므로 온 천하[四海]의 선객들이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떡 장수(선사)만은 밥 때만 되면 몸소 호떡 열 개를 가지고 와서 공양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몇 해 동안 계속하였는데, 천황은 때마다 떡 하나를 남겼다가 떡 장수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이렇게 주어서 자손의 공덕을 쌓노라.”
날마다 이렇게 하기를 습관처럼 하였는데,
용담 선사는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이 나서 물었다.
“이 떡은 제가 가지고 온 것인데 어째서 돌려주십니까?”
이에 천황이 말했다.
“네가 가져온 것을 네게 돌려주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선사가 이 말을 듣자 무엇인가 조금 느껴지는 듯하여 다시 물었다.
“제자의 덧없는 삶이 분주하기만 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천황이 대답했다.
“집에 있으면 감옥이라 옹색하고, 출가하면 자유롭고 넓으니라.”
이 말을 듣고 바로 천황에 의해 출가하니, 천황이 말했다.
“그대가 옛날에는 복福과 선善을 숭상하다가 이제 내 말을 믿으니, 숭신崇信이라 이름하라.”
이렇게 하여 계를 받고, 몇 년 동안 시봉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천황에게 물었다.
“제가 승려의 무리에 끼이게 되어 묵은 소원은 풀었다 하나 화상의 심요(心要:마음을 가리키는 중요한 법문)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 가르쳐 주십시오.”
“네가 내게로 온 이래, 너에게 심요를 보여 주지 않은 적이 없느니라.”
“어디가 화상께서 저에게 심요를 보여 주신 곳입니까?”
“네가 차를 가져오면 나는 차를 마시고, 네가 밥을 가져오면 나는 밥을 먹고, 네가 인사를 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니, 어디가 그대에게 심요를 보이지 않은 곳인가?”
선사가 고개를 숙이고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천황이 말했다.
“보려면 당장에 봐야지 생각하려 들면 어긋나느니라.”
선사가 이 말을 듣자 그 참뜻을 얼른 깨닫고,
다시 물었다.
“끝내 어떻게 보임保任하여야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이 없겠습니까?”
천황이 대답했다.
“성품에 맡겨 자유롭게 하고 인연을 따라 걸림 없이 할지언정 선禪에 안주하거나 정定을 익히지 마라. 성품은 본래 거리낌이 없으니, 귀를 막거나 눈을 감을 필요도 없으며, 신령한 광채가 환하게 빛나지만 어리석은 듯, 어눌한 듯하여야 행行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느니라. 오직 범부의 마음을 다할지언정 별달리 성스런 견해가 없나니, 그대가 능히 그럴 수 있다면 무슨 근심 될 일이 있으리오.”
선사가 종요宗要를 얻고 나니, 눈에 띄는 일마다 환하여 마치 객지의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는 집을 떠날 생각을 그만둔 것과도 같고, 가난한 이가 보배 창고를 차지하여 부족하거나 더 이상 구하는 바가 없이 된 것과 같았다.
형저荊渚로부터 예양澧陽, 용담龍潭에 이르러 머묾에 그의 행동이 속세를 놀라게 하지 않았으니,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고, 그의 기봉을 일으켜 드러낸 적이 없으니, 진리를 배우려는 무리들이 묻고 뵈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선사가 살던 암자가 조그마한 개울가의 연못 곁에 있었는데, 때마침 시절이 몹시 가물어서 군민들 모두가 여기에 모여서 비를 빌었기 때문에 용담龍潭 화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물었다.
“상투 속의 여의주(如意珠:심성에 대한 비유)를 누가 얻습니까?”
“즐겨 갖고 놀지 않는 이가 얻느니라.”
“어디에다 갈무리합니까?”
“장소가 마련되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어떤 비구니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찌하여야 스님이 될 수 있습니까?”
“그대는 비구니가 된 지 얼마나 되는가?”
“스님이 될 때가 있기는 하겠습니까?”
“그대는 지금 무엇인가?”
“현재에 여자인 것을 어째서 모르십니까?”
“누가 그대를 알겠는가?”
[취미 화상] 翠微
단하丹霞의 법을 이었고, 서경西京에서 살았다. 휘諱는 무학無學이다. 희종僖宗 황제의 조칙으로 대궐에 들어가 깊은 진리를 크게 펼치니, 황제가 몹시 기뻐하여 자색 가사와 광조廣照라는 법호를 내렸다.이 밖에는 행장을 보지 못해서 중생을 제도한 인연의 처음과 끝을 결단해 기록할 수 없다.
선사가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올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늘 나한에게 공양을 올리시면 나한께서 오시겠습니까?”
“그대가 매일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운암 화상] 雲巖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의 예릉현澧陵縣에서 살았다. 휘諱는 담성曇晟이요, 성은 왕王씨이며, 본시 종릉鍾陵의 건창현建昌縣 사람이었다. 그가 태어날 때, 저절로 태를 왼쪽 어깨에 걸쳐 마치 가사를 입은 것 같았다. 석문石門에게 출가하고 처음으로 백장百丈에게 참문하여 십수 년 동안 입실하였다가 다음으로 약산에게 참문했다.
약산이 물었다.
“그대의 스승 백장은 그대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시던가?”
선사가 대답했다.
“스승께서는 요즘 무슨 물건을 보이십니까?”
약산이 말했다.
“그대를 인하여 백장을 알게 되었노라.”
선사가 약산의 법을 이어받은 뒤에 심수현心攸縣에서 크게 법화法化를 폈다.
선사가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어느 집 자식이든 묻기만 하라. 대답하지 못할 것이 없노라.”
이에 동산洞山이 물었다.
“그 집에는 서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한 글자도 없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게 되었습니까?”
“밤낮으로 잔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동산이 말했다.
“묻기만 하면 대답하지 못할 것이 없다 하셨는데, 한 가지 일을 물으려 하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말할 수 있는 것이 곧 말할 수 없는 것이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석두 화상과 이야기를 하다가 왔습니다.”
“석두 스님께서 머리를 끄덕여 주시던가?”
“스님께서 묻기 전에 벌써 머리를 끄덕이셨습니다.”
선사가 경을 보는데, 동산이 말했다.
“스님의 눈동자를 얻고자 합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것은 누구를 주었느냐?”
“저에게는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있다면 그대는 그것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
동산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말했다.
“빌릴 수 있는 눈동자를 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동산이 말했다.
“눈이 아닙니다.”
선사가 꾸짖었다.
“에끼, 나가거라.”
도오道吾가 선사에게 물었다.
“초조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조사의 뜻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있었다면 다시 와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단지 있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선사가 종자粽子를 나누어 주는데, 동산이 받고 나서는 또 손을 벌리며 말했다.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 사람도 먹는가?”
“주기만 하면 먹습니다.”
동산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비록 화상을 하직하나 머무를 곳을 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호남湖南으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이에 선사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언제 돌아오겠는가?”
“화상께서 머무르실 곳이 생기면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이렇게 헤어진 뒤로는 다시 만나기 어렵겠구나.”
이에 동산이 응수했다.
“이제 이렇게 헤어진 뒤로는 만나지 않기 어렵겠습니다.”
동산이 위산潙山에 도착했다. 위산은 곧 대원大圓 선사이다. 그는 당시 영근郢近 지방에서 대중을 모으고 있었는데, 천 명의 무리가 모여 삼상三湘 지방에까지 그 위세가 떨쳤다.
그(위산)는 동산이 오는 것을 보자단번에 특이한 사람임을 알았다. 다음 날 위산이 가만히 방을 떠나 숲 샛길을 거니니, 동산이 불지佛地의 서쪽에 있는 일터까지 그의 뒤를 급히 쫓아와서는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말했다.
“제가 들으니 국사께서 무정無情설법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들은 뒤로는 항상 그 깊은 뜻을 궁구하면서 매일 마음으로 격려했더니, 이제 그 소원이 여기서 다하게 되었습니다.”
위산이 돌아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그 말을 들었는가?”
동산이 처음과 마지막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설명을 끝내니, 위산이 말했다.
“나에게도 그것이 약간은 있다. 다만 인연 있는 이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법에 인색해서가 아니니라.”
“지금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
“부모의 인연으로 생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느니라.”
이에 동산이 절도 하지 않고 물었다.
“스님과 더불어 같은 때에 도를 흠모하신 분이 계십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여기서 예릉현澧陵縣의 옆으로 가면 석실과 마주 인접한 곳에 운암雲巖이라는 도인이 있으니, 만일 거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면 반드시 그대가 그를 존중하게 되리라.”
동산이 얼른 선사에게 물었다.
“무정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무정설법은 무정의 중생이 듣느니라.”
“화상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내가 만일 들었다면 그대는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니라.”
“그렇다면 저는 화상의 설법을 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의 설법조차 듣지 못하거늘 하물며 무정 중생의 설법이겠는가?”
동산이 이로 인하여 의심을 끊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참으로 기이하구나, 참으로 기이하구나.
무정물이 설법할 줄 안다 하니 부사의하여라.
만일에 귀로 들으면 소리가 안 나타나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으리.
선사가 어떤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부모께서는 살아 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몇이신가?”
“80세이십니다.”
“어떤 이의 아버지는 나이가 80세가 아닌 이도 있다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렇게 연세 들어 오신 이가 바로 그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아직 어린 아기니라.”
이에 동산洞山이 말했다.
“설사 아니라고 해도 역시 아기니라.”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한 생각을 문득 일으켜 당장 마계魔界에 떨어질 때는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부처님 세계에서 올 수 있었는가?”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단 말을 말라. 설사 안다 하여도 역시 갈팡질팡하리라.”
선사와 도오道吾와 선자舡子 세 사람이 산 밑 단월檀越의 공양 청을 받고 가는데,
한 사람은 말하기를,
“공양하는 곳에 가려면 해가 지겠다” 하였고,
한 사람은 “가까우니 걸음을 떼기만 하면 곧 도착한다” 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느 한 사람은 발걸음을 떼지 않고도 바로 이르나니, 어찌된 것인가?”
얼마 후 동산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했다.
“이 말씀에 가장 힘을 주어야 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확탕鑊湯ㆍ노탄爐炭 지옥에 들어가서도 타거나 데이지 않는 것 같아야 한다. 여기에서 영원히 잃지 않을 수 있으면 다른 곳에서도 잠시 동안 휴식을 얻게 된다. 간절히 바라나니, 무엇보다도 혀끝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남의 말이나 일을 기억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그러한 공부는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며, 총명과 기억을 말미암는 것도 아니다. 한가한 곳에서 공부를 버려두고 한 걸음도 돌아보지 않고 어둡게 여러 겁을 보내지 말라.
그러므로 운암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모습 안에서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가장 괴로우니, 이보다 더한 괴로움이 없다’ 하셨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향을 더 사르고 옵니다.”
“부처님을 뵈었는가?”
“뵈었습니다.”
“어디서 뵈었는가?”
“하계下界에서 뵈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옛 부처님이로다, 옛 부처님이로다.”
선사께서 차를 달이는데,
도오가 와서 물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차를 달인다.”
“누구와 드시려고 차를 달입니까?”
“어떠한 사람이 달라고 하는구나.”
“어째서 그 사람더러 스스로 달이라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선사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마침 내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약산藥山이 선사에게 물었다.
“듣건대 그대가 사자師子를 놀릴 줄 안다던데 몇 가지나 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여섯 가지로 놀립니다.”
“나도 놀릴 줄 아노라.”
“스님께서는 몇 가지나 놀릴 줄 아십니까?”
“나는 한 가지로 놀리느니라.”
이에 선사가 말했다.
“하나가 곧 여섯이요, 여섯이 곧 하나입니다.”
위산이 선사에게 물었다.
“듣건대 장로(선사를 가리킴)가 약산에 있을 때 사자를 놀릴 줄 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위산이 다시 물었다.
“계속 놀리는가, 아니면 그만둘 때도 있는가?”
“놀리려면 놀리고 쉬려면 쉽니다.”
“쉴 때 사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쉽니다, 쉽니다.”
선사가 어떤 노숙老宿의 방을 엿보니, 노숙이 말했다.
“그렇게 엿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선사가 도오에게 물었다.
“노형의 가풍家風이 어떠한가?”
도오가 대답했다.
“그대에게 점검이나 받아서 무엇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주인공)이 없이 지낸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이에 도오가 대답했다.
“이가 아직도 떨떠름합니다.”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수행의 바른 길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수행함은 담[墻]과 참호[塹]요, 수행하지 않음은 머리를 싸맨 사람이니라.”
선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모두가 대답했다.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지옥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금생에 이러한 몰골로 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가장 괴로우니, 이 괴로움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느니라.”
선사가 동산과 생강 밭을 매다가 옛 어른들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동산이 물었다.
“이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선사가 잠깐 동안 양구했다가 말했다.
“무엇이라고, 무엇이라고?”
동산이 다시 말을 받았다.
“너무 늦으십니다.”
이때 어떤 스님이 나서서 두세 마디의 말을 선사에게 말하니, 선사가 다시금 깊이 생각한 끝에 말했다.
“나는 아까부터 그대의 소리만 들었고 그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 나서라. 그대를 보고자 하노라.”
그 스님이 다섯 손가락을 세우니, 선사가 말했다.
“몹시도 사람을 괴롭히는구나. 하마터면 잘못해서 저 놈을 놓칠 뻔하였구나.”
이에 동산이 물었다.
“저 스님이 다섯 손가락을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오분법신五分法身을 나타낸 것인데 지금의 것은 어느 분分이겠는가?”
선사가 열반에 들 시기가 임박하였을 때,
동산이 물었다.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지 1백 년 뒤에 누군가가 ‘화상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에게 무엇이라 대답하리까?”
선사가 대답했다.
“다만 그에게 ‘그저 그런 놈이었느니라.’ 하라.”
동산이 깊이 생각에 잠기자, 선사가 말했다.
“이 한 물건이 까칠하여서 삼켜도 넘어가지 않나니, 제발 그만두어야 한다. 사리 그대가 한 생각 깜빡 일으켜도 풀이 한 길이나 깊을 터인데 하물며 말로써 표현함이겠는가?”
선사는 동산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속마음을 설파하려 하자, 동산이 말했다.
“설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사람 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 일에 애를 씁니다.”
선사가 입적한 뒤에 태상太相의 재를 지내기 위해 사형과 함께 위산潙山으로 가려고 하는데, 담주潭州에 이르러 큰 개울을 건널 때 사형은 먼저 건너고 동산은 이 언덕을 떠나 아직 저 언덕에 이르기 전에 물속의 자기 그림자를 보고 예전 일을 크게 깨달으니, 얼굴빛이 화창하게 변하여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에 사형이 물었다.
“아우님, 무슨 일인데 웃으시오?”
“돌아가신 스승님의 정중하신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있어야 하리라.”
이에 동산이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절대로 남에게서 찾으려 말라.
멀고멀어서 나와는 서먹하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그는 바로 지금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다.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여여하게 계합하리라.
나중에 어떤 사람이 동산에게 물었다.
“운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저 그런 놈이었느니라 하라.’고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동산이 대답했다.
“하마터면 나도 처음에 잘못 알아들을 뻔하였느니라.”
보자報慈가 이 일을 들어서 동산에게 물었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또 앞의 물음에 이어서 물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또 동산에게 물었다.
“운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저 그런 놈이었느니라 하라.’ 하셨는데, 그가 일이 있는 줄은 알았습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스승께서 일이 있는 줄 알지 못하셨다면 어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리오?”
양구良久했다가 다시 말했다.
“만일 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어찌 그렇게 말하였겠는가?”
보복保福이 이 일을 들어서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이미 일이 있음을 안다면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질문이다.”
“옛날에 운암은 또 어째서 그리하였습니까?”
“자식을 길러 봐야 부모의 자애로움을 아느니라.”
선사가 비색완(比色垸:아름다운 그릇)에다 감귤을 담고 있는데, 동산이 와서 인사를 하고 서 있자,
선사가 물었다.
“거기에도 이런 것이 있는가?”
“있어도 이것보다 더 쓸모가 없습니다.”
“있어도 그대에게 준 적이 없거늘 무슨 쓸모가 있다 없다 따지는가?”
동산이 그때는 대답이 없다가 사흘이 지나서 말했다.
“화상께서 저에게 주실까 걱정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인정하였다.
선사가 황벽의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그대의 화상께서도 설법을 하시던가?”
“그도 설법을 하십니다.”
“그대도 들었는가?”
“저도 들었습니다.”
“말씀하실 때야 듣겠지만 말씀하시지 않을 때에도 듣는가?”
“듣습니다.”
“말씀하실 때야 그대 뜻대로 듣겠지만 말씀하시지 않을 때엔 무엇을 듣는가?”
“그 사람(설법 듣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잠자코 있는 것이 그 사람인가,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인가?”
“잠자코 있는 것이 그 사람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하마터면 저 놈을 놓칠 뻔했구나.”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문으로 들어오는 이는 보배가 아니요, 설사 설법을 해서 돌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도 역시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니라.”
그리고 또 말했다.
“마음으로 하려 해도 어긋나거늘 하물며 말을 해서야 되겠는가? 보이는 바가 있으면 더욱 멀어질까 걱정이다.”
어떤 스님이 석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노승의 눈앞에 있는 한 뭉치 풀은 30년 동안 아무도 뽑지를 않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어서 선사에게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소는 난간 곁의 풀을 뜯지 않느니라.”
남전이 말했다.
“지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은 말로 할 수 없나니, 말하면 뿔이 생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선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형제들이여, 말하지 마라. 그 일을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 손상을 입는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동산에게 물었다.
“운암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길 가는 도중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동산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말해 버렸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소산疎山에게 물었다.
“운거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한 방에 용과 뱀을 모두 때려죽이느니라.”
선사가 마당을 쓸다가 소리를 지르니,
원주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혹사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혹사하지 않는 어떤 사람도 있느니라.”
“어디에 두 번째 달이 있습니까?”
이에 선사가 빗자루를 세워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은 몇 번째 달인가?”
원주가 대답이 없었다. 이에 현사玄沙가 대신 말했다.
“그것 역시 두 번째 달입니다.”
동산洞山이 선사에게 물었다.
“한량없는 겁 동안 남은 업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지금까지 여전히 짓고 있지는 않겠지?”
“더 수승하고 묘한 것이 있더라도 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기뻐하는가?”
“쓰레기 더미에서 한 개의 밝은 구슬을 얻은 것 같아서 감히 기뻐할 수 없습니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노승의 점을 쳐 보아라.”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동산이 대신 말했다.
“화상의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회창會昌 신유년辛酉年 초부터 갑자기 병환을 보이다가 12월 17일에 이르러 입적하니, 시호는 무주無住 대사요, 탑호塔號는 정승淨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