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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1권
4. 땅의 까시나
4.1. 땅의 까시나의 아홉 가지 측면
131. 우선 땅의 까시나를 설명할 때 아홉 가지 측면을 설해야 한다. 그것은
① 네 가지 까시나의 허물
② 까시나를 만드는 것
③ 만든 까시나를 수행하는 방법
④ 두 가지 표상
⑤ 두 가지 삼매
⑥ 일곱 가지 적합함과 부적합함
⑦ 열 가지 본삼매에 능숙함
⑧ 정진의 평등함
⑨ 본삼매의 과정이다.
나머지의 명상주제에 대해서는 각각 그것에 맞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이 각각을 수행하는 규정에서 드러낼 것이다.
이와 같이 명상주제를 설명해주면 그 수행자는 표상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
132. ‘표상을 가지고’ :
‘이것은 앞의 구절이고, 이것은 뒤의 구절이고, 이것은 그 뜻이고, 이것이 여기서 요구하는 것이고, 이것은 비유이다.’라고 이와 같이 각각의 측면을 [마음에] 잘 묶어 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표상을 가지고 공손하게 경청할 때 그는 명상주제를 잘 얻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의지하여 수승한 증득을 성취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지고’(§131)라는 단어의 뜻을 밝힌 것이다.
133. 이제 명상주제를 주는 선우를 친근하고,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자기의 기질에 맞는 어떤 명상주제를 들고(§28)’라는 이 구절을 모든 측면에서 상세하게 설했다.
4.2. 삼매를 닦는 장소와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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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4.2의 내용은 ‘3.3.0. 세간적인 삼매의 여섯 가지’의 ④-⑥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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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적당하지 않은 사원과 적당한 사원의 설명
1. 삼매를 닦는데 적당하지 안은 사원을 떠나 적당한 사원에 살면서라고(Ⅲ. §28) 앞서 말했다. 이제 여기서 스승과 같은 사원에서 사는 것이 편하면 그곳에서 명상주제를 분명하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편하지 않으면 4분의 1유순이나 아니면 반 유순이나 1유순 정도 내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명상주제의 어떤 부분에 의심이 생기거나 잊어버리더라도 알맞은 시간에 사원의 의무를 행한 뒤 가는 도중에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스승의 숙소로 가서 그 날 스승의 곁에서 명상주제를 분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스승께 절을 올린 뒤 출발하여 돌아오는 도중에 탁발하여 지치지 않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1유순 내에서도 편히 살 곳을 얻지 못한 자는 명상주제에 대해서 어려운 점을 모두 해결하여 명상주제로 확고하게 전향(轉向)하고는 더 먼 곳으로 가도 된다.
거기서도 삼매를 닦기에 적당하지 않은 사원을 피하고 적당한 사원에서 살아야 한다.
2. 적당하지 않은 것은 18가지 허물 중의 하나를 가진다.
이것이 18가지 허물이다.
큰 것, 새 것, 낡은 것, 길가에 있는 것, 약수터가 있는 곳,
도시 부근에 있는 곳, 삼림 부근에 있는 곳, 경작지 부근에 있는 곳,
화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항구부근에 있는 곳, 변방에 있는 곳, 국경 부근에 있는 곳,
적합하지 않은 곳, 선우들을 얻지 못하는 곳이다.
이 18가지 허물 중의 하나를 가진 것을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 한다. 이런 곳에 살아서는 안된다.
3. 왜 그런가?
① 큰 사원에는 각가지 목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서로 대립하여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는다.
보리수 아래의 단 등이 청소되지 않은 채로 있고, 마실 물과 허드렛물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탁발 가는 마을로 탁발을 가야지’라고 의발을 수하고 나가다가 아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보거나 물 항아리가 비어있음을 보면 그가 의무를 행해야 하고 물을 준비해야 한다.
그가 하지 않으면 의무를 게을리 한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의무를 행하면 시간을 놓쳐버린다. 너무 늦게 마을에 도착하면 걸식이 끝나버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한거에 들었는데도 사미와 젊은 비구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대중공사로 인해 산만해진다.
그러나 모든 의무가 충실하게 실행되고 다른 방해가 없는 그런 곳이라면 큰 사원에도 살 수 있다.
4.
② 새로 지은 사원에는 새 일거리가 많다. 거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비난한다. 그러나
‘스님은 편안하게 공부하십시오. 불사는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비구들이 말하는 그런 곳에서는 살아도 된다.
5. ③ 낡은 사원에는 수리해야 할 일이 많다. 최소한 자기의 숙소라도 수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비난한다. 수리하다보면 명상주제를 놓치고 만다.
6.
④ ‘길가에 있는 사원’:
대로변에 있는 사원에는 밤낮으로 객들이 붐빈다. 시도 때도 없이 온 객들에게 자기의 숙소를 내어주고 나무 아래나 돌 위에서 지내야 한다.
다음 날도 역시 그와 같다. 명상주제를 들 기회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객들로 인한 방해가 없는 곳이면 살아도 된다.
7.
⑤ 약수터란 바위의 샘물을 말한다. 물을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든다. 왕실로부터 후원을 받는 도시에 사는 장로들의 제자들이 옷감을 물들이기 위하여 온다.
그들이 용기와 목판과 함지 등을 찾을 때 어느 곳에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
이와 같이 항상 대기해 있어야 한다.
8. 갖가지 ⑥ 야채가 있는 곳에서 낮 동안에 명상주제를 들고 앉아있을 때 그의 곁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나물을 캐는 여자들이 이성의 소리로 침해하여 명상주제를 방해한다.
갖가지 ⑦ 꽃의 덤불이 만발한 곳에도 역시 그와 같은 위험이 있다.
9. 갖가지 망고, 잠부, 잭 과일 등 ⑧ 과일이 있는 곳에는 과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와서 달라고 한다. 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우격다짐으로 가져간다.
저녁 무렵에 경내를 경행하면서 그들을 보고
‘청신사들이여, 왜들 이러시오?’라고 하면,
그들은 화를 내고 싶은 만큼 맘껏 화를 내고 그를 쫒아내려고 할 것이다.
10. ⑨ 유명하고 세상에 잘 알려진 닥키나기리, 핫티꿋치, 째띠야기리, 찟딸라빱바따 같은 사원에 머물면
‘이분은 아라한이시다’라고 존경하면서 참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그러므로 편하지 않다. 그러나 그곳이 적당하면 낮에는 다른 곳에 갔다가 밤에는 살아도 된다.
11.
⑩ 도시부근에 있는 곳에는 이성(異姓)이라는 대상이 나타난다. 물 긷는 하녀들이 항아리로 부딪히면서 지나가고, 그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저명인사들이 경내에 돗자리를 펴고 앉는다.
12. 판재와 목재로 사용될 나무가 있는
⑪ 삼림부근에 있는 곳에는 나무를 구하는 사람들이 앞서 설한 야채와 곷을 따는 사람들처럼 편하지 않게 한다.
사원에 나무가 있으면
‘이들을 베 가지고 가서 집을 지어야지’라고 사람들이 와서 밴다.
만약 저녁 무렵에 선실에서 나와 경내를 경행하면서 그들을 보고
‘청신사들이여, 왜들이러시오?’라고 하면
그들은 화를 내고 싶은 만큼 맘껏 화를 내고 그를 쫓아내려 할 것이다.
13. 사방이 경작지로 둘러싸인
⑫ 경작지부근에 있는 사원에서는 사람들이 경내에 탈곡장을 만들어 놓고 타작을 하고 그것을 앞마당에다 말리며 남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절에 딸린 재산이 많은 곳에서는 절의 머슴들이 농가의 소를 쫓아버리기도 하고 [경작지에 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벼이삭을 가져와
‘절의 머슴들이 한 짓을 보시오.’라고 대중에게 보여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왕이나 왕의 대신의 대문을 들락거려야 한다.
이런 것도 경작지부근에 잇는 사원에 포함된다.
14.
⑬ ‘화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서로서로 화합할 수 없고 적개심을 품은 비구들이 사는 곳에서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스님’ 이러지 마십시오’라고 제지를 받으면
‘이 누더기를 입은 자가 온 이후로 우리는 망했어’라고 말하는 자들이 사는 곳이다.
15.
⑭ 항구부근이거나 육지로 통하는 입구에 있는 곳에는 계속해서 배와 마차를 타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장소를 좀 달라, 물을 달라, 소금을 달라고 밀치면서 불편하기 만든다.
16.
⑮ 변방에는 사람들이 삼보에 신심이 없다.
(16) 국경부근에는 왕이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 지역을 이쪽에 있은 왕이,
‘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공격한다.
저쪽에 있는 왕도 역시,
‘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공격한다.
이 비구는 어떤 때는 이쪽 왕이 정복한 땅에서 살고 어떤 때는 저쪽 왕이 정복한 땅에서 산다.
그러면 그 비구를 두고 ‘이 사람은 첩자다’라고 생각하면서 재앙에 빠뜨린다.
17.
(17) 적합하지 않은 곳이란 이성의 모습 등의 대상을 만나거나 도깨비가 나타나는 위험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그 일화다.
한 때 어떤 장로가 숲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한 처녀 도깨비가 풀로 만든 그의 토굴 문 앞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장로는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섰다. 그녀는 경행처의 끝으로 가서 노래를 불렀다. 장로는 경행처의 끝으로 갔다. 그녀는 백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장로는 돌아왔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그를 낙아챈 뒤 ‘스님,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두 사람 먹어치운 것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18.
(18) 선우들을 얻지 못하는 곳은 스승이나 스승과 동등한 자나 법사나 법사와 등등한 자나 선우를 얻지 못하는 곳이다. 선우들을 얻지 못함은 큰 손실이다.
이 열 여덟 가지 허물 가운데 한 가지를 가진 것을 적당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주석서들에도 이와 같이 설했다.
“큰 절, 새 절, 길가의 절
약수터, 야채, 꽃, 열매가 있는 길, 유명한 절
도시부근, 삼림, 경작지, 화합할 수 없는 곳, 항구
변방, 국경, 부적합한 곳, 선우를 얻지 못하는 곳
이것이 열여덟 가지 경우라고 현자는 알고서
위험한 길을 멀리 피해야 한다.(KpA.39)”
19. 걸식하는 마을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 등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 것이 적당한 곳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숙소가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숙소가
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오고 가는 길이 있으며
② 낮에 거의 붐비지 않고 밤에 소리나 음성이 거의 없고
③ 파리, 모기, 바람, 햇빛, 뱀과 접촉이 거의 없으며
④ 그 절에 살 때 의복, 음식, 침상과 의자, 환자를 치료하는 약품을 쉽게 얻고
⑤ 그 절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있어 그들을 자주 찾아 뵙고,
‘존자시여, 이것은 어떻게 됩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어보고 질문하면,
그 존자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어 주고 명백하지 않은 것을 명백하게 해주어서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법들에 대해서 의문을 풀어준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소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다.(A.v.15-16)”
이것이 ‘삼매를 닦는데 적당하지 않은 사원을 떠나 적당한 사원에 살면서’라는(Ⅲ,§28) 구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4.2.2. 사소한 장애를 끊음
20.
(5) ‘사소한 장애를 끊고’(Ⅲ. §28):
이와 같이 적당한 사원에서 살 때 사소한 장애라도 있으면 그것을 끊어야 한다.
즉 긴 머리카락과 손 ㆍ 발톱과 몸의 털을 깎아야 한다.
헤진 옷들을 수선하고 꿰메야 한다. 더러워진 옷은 빨아 물들여야 한다.
만약 발우에 녹이 났으면 다시 구워야 한다. 침상과 의지 등을 소제해야 한다.
이것이 ‘사소한 장애를 끊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4.2.3. 닦는 절차
21.
(6) 닦는 모든 절차를 놓치지 않고 삼매를 닦아야 한다. (Ⅲ. §28) 라는 구절에 대해,
이제 당의 까시나를 시작으로 모든 명상 주제를 통해 [그 닦는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와 같이 사소한 장애를 끊은 비구는 공양을 마친 후, 결식으로부터 돌아와서 식곤증을 떨쳐버리고 한적한 곳에 편안히 앉아서 만들었거나 자연적인 땅의 표상을 취해야 한다.
22.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땅의 까시나를 배울 때 땅에서 표상을 취한다.
그것은 만든 것이거나 자연적인 것이다.
한계를 가진 것이다. 한계를 갖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장자리를 가진 것이다. 가장자리를 갖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주위를 가진 것이다. 주위를 갖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제한된 것이다. 제한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체만하거나 찻잔만하다.
그는 그 표상을 잘 들고, 잘 호지하고, 잘 구분한다.
그는 그 표상을 잘 들고, 잘 호지하고, 잘 구분한 뒤,
그 표상의 이익을 보고 보배라고 인식하고 존경심을 내고 사랑스러워하면서,
‘틀림없이 이 도닦음으로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라고 그 대상에 마음을 묶는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 초선에 들어 머문다.
23. 전생에 부처님 교단이나 출가한 선인들의 무리에 출가하여 땅의 까시나에서 사종선(四種禪)과 오중선(五種禪)을 이미 일으킨 적이 있거나 그러한 공덕을 갖추었고 그런 것을 강한 의지처로 가진자는 경작된 땅이나 탈곡장과 같은 자연적인 땅에서 표상이 일어난다.
말라까(Mallaka) 장로의 경우처럼. 장로는 경작된 땅을 쳐다봤을 때 그곳만 한 크기의 표상이 일어났다.
장로는 그것을 확장하여 오종선을 일으킨 뒤 禪을 가까운 원인으로 하는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