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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소행찬 제4권
16. 병사왕제제자품(甁沙王諸弟子品)
그때 저 다섯 비구인
아습파서(阿濕波誓) 등은
그가 법 알았다는 소리를 듣고
개탄하며 스스로 부끄러워졌네.
합장하고 더욱 공경하면서
높은 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네.
여래(如來)는 훌륭한 방편으로써
차례로 그들을 바른 법에 들게 하셨네.
앞뒤로 저 다섯 비구들
도를 얻어 모든 감관[根] 조복함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다섯 별이
밝은 달을 늘어서 모시는 것 같았네.
그때 저 구시성(鳩尸城)에 있는
장자(長者)의 아들 야샤(耶舍)가
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
그 권속을 보았네.
남자 여자들 모두 알몸으로 누워 있는 것 보고
곧 싫어져 떠날 마음 생겼네.
이것은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어리석은 범부를 속여 유혹한다 생각하였네.
곧 옷을 장식하고 영락을 차고
집을 나와 숲으로 나아가서는
길을 따라가면서 높이 외치길
“아아 괴롭다, 괴로워 미치겠다”고 하였네.
여래께서 밤에 나와 거니시다가
괴롭다고 외치는 소리 들으시고는
곧 명령하여 말씀하셨네.
‘그대들 잘 왔다. 여기 안온한 곳 있으니
열반(涅槃)은 지극히 맑고 시원하며
적멸(寂滅)은 모든 번뇌 여의느니라.’
야사는 부처님의 가르침 듣고
마음 속으로 못내 기뻐하였네.
본래부터 싫어해 여의려는 마음 더하여
거룩한 슬기 활짝 열렸네.
마치 맑고 시원한 못에 들어가듯
엄숙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나아갈 때
그 몸은 아직 세속 모습 그대로이나
마음은 이미 번뇌가 다하였네.
오랫동안 심어 온 선근(善根)의 힘으로
어느새 나한과(羅漢果)를 이루었다네.
맑은 지혜의 이치 가만히 깨달아
법을 듣자마자 쉽게 알았네.
비유하면 마치 곱고 흰 비단
물감으로 물들이기 쉬운 것 같았네.
그는 이미 스스로 깨달아 알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쳤으나
아직 장엄 그대로인 자기 몸 돌아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생겼네.
여래께서는 그 생각 짐작하시고
그를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네.
“영락으로 그 몸을 꾸몄으나
마음은 모든 감관을 항복받아서
평등하게 중생을 관찰하되
법을 행하고 그 모양 헤아리지 않느니라.
몸에는 출가한 이의 옷을 입고도
그 마음은 번뇌를 잊지 못하여
숲 속에 있으면서 세상 영화 탐하니
이는 곧 속인이라 하리라.
모양은 비록 세속 모습 가졌어도
마음이 높고 좋은 경계에 머물면
집에 있어도 산림(山林)과 같아
곧 내 것[我所]이라는 마음 여의느니라.
결박을 푸는 것 마음에 달려 있으니
모양에 어찌 정해진 상(相)이 있으랴.
갑옷 입고 겹 도포 입으면
강한 적이라도 능히 누를 수 있고
형상을 고치고 물들인 옷 입으면
번뇌 원수를 항복받을 수 있네.’
그리고 곧 ‘비구여 오라’고 명령하시자
그 소리 따라 세속 모양 사라지고
출가한 이의 모습을 두루 갖추어
모두 다 사문(沙門)이 되었네.
일찍이 세속에서 함께 놀던 벗 있으니
그들의 수는 쉰네 명이었네.
그들 착한 벗으로 출가한 이 찾아
차례대로 바른 법에 들었네.
그들은 과거의 착한 업 때문에
그 묘한 결과 이제 이루었으니
좋은 잿물에 오랫동안 담가두었다가
물로 빨아낸 뒤에 깨끗해지듯
웃 항렬의 모든 성문(聲聞)으로서
예순 명의 아라한(阿羅漢)에게
모두 그 아라한의 법을 따라
순리대로 가르치고 훈계하였네.
“그대들은 이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저쪽 언덕으로 이미 건너가
해야 할 일을 벌써 마쳤으니
일체 공양을 받기에 충분하도다.
너희들은 제각기 모든 나라를 노닐며
아직도 제도되지 못한 이 제도하여라.
중생의 괴로움은 치솟는 불꽃 같건만
오랫동안 아무도 구호할 이 없구나.
너희들은 제각기 혼자 노닐며
가엾게 여겨 거두어 주라.
나도 또한 지금 나 혼자 걸어서
저 가사산(伽闍山)으로 돌아가리라.
거기에는 지금 큰 선인(仙人)이 있으니
왕족의 선인과 범지(梵志) 선인들
그들 모두 다 거기 있으므로
온 세상의 뿌리가 되느니라.
그 중에도 가섭(迦葉)이란 고행 선인은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섬기고
그를 따라 배우는 이 매우 많으니
내 이제 거기 가서 제도하리라.”
그때 저 예순 명의 비구들
가르침 받아 법을 널리 펴려고
제각기 과거의 인연을 좇아
자신의 생각대로 제각기 흩어졌네.
세존께서는 혼자 걸어서 노니시다가
가사산으로 향하셨네.
비고 고요한 법숲[法林]으로 들어가
가섭 선인에게 나아가셨네.
그는 불을 섬기는 굴에 있었는데
거기는 사나운 용(龍)이 사는 곳이었네.
숲은 지극히 맑고 넓은데
곳곳마다 편안하지 않은 곳이 없었네.
세존께서는 그를 교화시키기 위해
그에게 말해 묵고 가기를 청하자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네.
“다른 데는 묵고 갈만한 곳이 없고
오직 불을 섬기는 굴이 하나 있는데
맑고 깨끗하여 있을 만하나
다만 거기는 사나운 용이 머물고 있어
틀림없이 사람을 해칠 것이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네.
“하룻밤 묵고 가게만 해주오.”
가섭은 갖가지로 만류했으나
세존의 간청은 멈추지 않으셨네.
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내 마음엔 허락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일러 인색하다 하리니
우선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부처님께서 곧 화실(火室)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바르게 사유하셨다.
그때 사나운 용이 부처님을 보자
성을 내어 독한 불 내뿜었네.
온 방안이 시뻘겋게 탔지만
부처님 몸에는 미치지 못했네.
집이 다 타고 불은 절로 꺼졌으나
세존께선 오히려 편안히 앉아 계셨네.
마치 겁화(劫火)가 일어나
범천(梵天)의 궁전이 다 타버려도
범천의 왕은 바른 자세로 앉아
걱정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음 같았네.
사나운 용은 세존 얼굴을 보고
빛나는 안색 조금도 다른 기색이 없자
독을 멈추고 착한 마음 내어
머리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네.
가섭은 밤에 그 불빛 보고
탄식하면서 ‘아아, 괴상하여라.
저렇듯 도덕을 지닌 사람이
용의 불길에 타 죽다니’라고 하였네.
가섭과 그의 권속들
이른 아침부터 모두 와서 구경했으나
부처님께서는 사나운 용 항복받아
발우 안에 담아 두고 계셨네.
그들은 부처님의 공덕을 알고
기특하다는 생각 내었지만
교만한 습관 익힌 지 오래되어
여전히 “내 도(道)가 높다”고 말하였네.
부처님께서는 그 적당한 때를 맞춰
갖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시고
그의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살펴
변화해가며 적절히 대응하셨네.
그로 하여금 그 마음 부드럽게 하여
바른 법의 그릇이 되기 충분케 하되
그 도(道)가 아직 얕아서
세존께는 미치지 못함을 알게 하셨네.
그러자 결정코 겸손하고 하심(下心)하여
시키는 대로 바른 법을 받았고
울비라가섭(鬱毘羅迦葉)과
그 제자 5백 사람이
스승을 잘 따르고 마음을 조복받아
차례차례 바른 법을 받았네.
가섭과 그의 제자들
모두 바른 교화를 받은 뒤에는
선인들 모두 그들의 살림살이와
불을 섬기는 모든 기구를
모두 물 속에 던져 버리니
떠올랐다 잠겼다 하며 물결 따라 흘러갔네.
나제(那提)와 가사(伽闍) 등
두 아우는 하류(下流)에 있다가
그 옷과 모든 기구들
물 따라 어지럽게 내려오는 것 보자
큰 변(變)을 만났다는 생각에
근심스럽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다가
두 사람은 그 제자 5백 사람과
강물을 따라 올라가 형을 찾았네.
그 형은 이미 출가(出家)하였고
그 모든 제자들 또한 그러함 보고는
일찍이 없던 법을 얻은 줄 알고
기특한 일이라 생각하였네.
‘형은 지금 이미 저 도(道)에 항복했으니
우리들도 또한 그를 따라야 한다.’
그들 형제 세 사람과
그 제자 권속들 위해
세존(世尊)께서 설법하시되
불을 섬기는 일로 비유하셨네.
“어리석음의 검은 연기 일어나고
어지러운 생각의 부시와 부싯돌 생겨
탐욕과 성냄의 불길이
모든 중생을 불사른다네.
이와 같이 이 번뇌의 불도
언제나 치성하여 그치지 않는다네.
나고 죽음에 더욱더 빠져들고
고통의 불길 또한 항상 타오르네.
이 두 가지 불이 성하게 타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곳 없다네.
어떻게 마음 있는 사람으로서
싫어하여 떠날 생각 내지 않느냐.
싫어하여 떠나려고 탐욕 버리고
탐욕이 다하면 해탈 얻는다네.
만일 이미 해탈을 얻었으면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기느니라.
그리하여 나고 죽는 흐름을 관찰하여
모든 범행을 닦아 마치고
모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그 일천 비구들
세존의 설법을 들었네.
모든 번뇌 영원히 일어나지 않고
모두 마음이 해탈[心解脫]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등
일천 비구를 위해 설법하셨네.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깨끗한 지와 묘한 장엄과
모든 공덕 있는 권속들에게
계(戒)를 주어 모든 감관 깨끗하게 하였네.
이에 큰 덕 있는 선인 길을 떠나자
저 고행림(苦行林) 영화 잃음이
마치 사람이 계(戒)의 덕을 버리고
빈 몸으로 헛되이 사는 것 같았네.
세존께서 많은 권속 거느리시고
왕사성(王舍城)으로 나아가시자
일찍이 그 마갈왕(摩竭王)에게
약속했던 일을 생각하셨네.
세존께서 이미 거기에 도착하시어
장림(杖林)에 머물러 계셨네.
병사왕(甁沙王)은 그 소문 듣고
그 많은 권속들과 함께 하였네.
장림(杖林): 범어로는 Yastivana라도함. 왕사성(王舍城) 교외의 원림(園林). 나중에 이곳에 부처님과 스님들을 위해 정사를 세웠는데 안거(安居) 중에 여기서 머무는 일이 많았다고 함.
온 나라 남녀들 거느리고
세존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네.
멀리서 여래께서 앉으신 모습 보자
마음 낮추고 모든 감관[根] 단속한 채
온갖 속된 모습 떨어버리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나아가니
그것은 마치 저 제석천왕이
범천왕에게 나아가는 것과 같았네.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공경 다하여 안부를 여쭐 때
부처님께서 위로하여 마치고 나서
명하여 한쪽에 앉게 하셨네.
그때 왕은 마음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석가(釋迦)의 큰 위엄과 힘은
훌륭한 덕을 가진 가섭 등을
이제 모두 제자로 삼으셨다.’
부처님께서 여러 사람 마음 아시고
가섭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떠한 복과 이익 보았기에
불 섬기는 법을 버렸느냐?”
가섭은 부처님 분부 받고
대중 앞에서 놀라 일어나
두 무릎 땅에 꿇고 합장한 채
높은 소리로 부처님께 아뢰었네.
“복을 닦으려고 불신[火神]을 섬겼으나
그 과보(果報)는 윤회(輪廻)뿐이었고
생사(生死)의 번뇌만 더했으니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열심히 애써 불을 받들어 섬겨
5욕(欲)의 경계를 구하려 하였으나
애욕은 더해 끝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불 섬기고 주술(呪術)을 닦았으나
해탈 못하고 생(生)을 받았으니
생을 받음은 괴로움의 근본이라
그러므로 버리고 다시 안락 구하였습니다.
나는 본래부터 고행이라 말하는 것
제사하고 또 큰 모임을 여는 것을
제일 수승한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바른 도(道)와는 더욱 어긋났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그것 버리고
보다 훌륭한 적멸(寂滅)을 구하여
생ㆍ노ㆍ병ㆍ사를 완전히 여의고
다함 없는 맑고 시원한 경계 구하나이다.
저는 이 이치 알았으므로
불 섬기는 법을 버렸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섭이
스스로 알고 깨달았다는 말을 듣고
모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한 믿음 내게 하기 위하여
가섭에게 말씀하셨네.
“너 대사(大士)는 여기에 잘 왔다.
갖가지 법을 분별함으로
훌륭한 도(道)를 따랐었는데
이제 이 대중들 앞에서
너의 훌륭한 공덕 나타내 보라.
마치 거부(巨富) 장자(長者)가
그 보배 창고를 열어 보여
가난하고 괴로워하는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 싫어 여의는 마음 더하게 하는 것처럼.”
“좋습니다. 거룩한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는 곧 대중들 앞에서
몸을 여미고 정수(正受)에 들었다가
나부끼듯 허공으로 올라갔네.
거닐다 섰다 앉았다 누웠다
혹은 온몸이 벌겋게 되어
왼쪽 오른쪽으로 물과 불을 내어도
타지도 않고 또한 젖지도 않았네.
온몸에서 구름과 비를 내고
뇌성벽력으로 천지를 진동했다.
온 세상 모두 우러러볼 때
눈이 뚫어져라 보아도 싫증 없었네.
여러 사람들 똑같은 말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네.
그런 다음 그는 신통 거두어
세존의 발에 절하면서 말했네.
“부처님은 저의 큰 스승이시요
저는 그 어른의 제자 되었네.
이런 일을 행하라는 분부 받들어
이제 내 할 일은 이미 마쳤다.”
온 세상 모두가 저 가섭이
부처님 제자라고 한 것 보고
결정코 저 세존께서
진실한 일체지(一切智)임을 알았네.
부처님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대중들
능히 법 받을 만한 근기임을 아시고
병사왕에게 말씀하셨네.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시오.
마음과 뜻과 또 모든 감관[根]
이것은 모두 다 나고 멸하는 법이니
나고 멸하는 허물 분명히 알면
그것은 곧 평등한 관찰이라오.
만일 그와 같이 평등하게 관찰하면
그것은 곧 몸을 아는 것이요
몸이 나고 멸하는 그 법을 알면
취(取)할 것도 없고 받아들일 것 없음을 알리.
만일 이 몸의 모든 감관[根] 깨달아 알면
나[我]도 업고 또 내 것[我所]도 없나니
그것은 순수한 괴로움 덩어리
괴로움에 살다가 괴로움에 멸하는 것
이미 이 몸의 모든 상(相)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는 줄 알면
그것은 곧 제일가는
다함 없는 맑고 시원한 곳이라오.
내가 있다고 보는 따위의 번뇌는
모든 세상 사람을 결박하나
이미 내 것이란 것 없다고 보면
모든 결박은 다 풀리리라.
진실 아닌 것 보면 결박되고
진실을 보면 곧 해탈하리니
세상에서 섭수(攝受)하는 나라는 것
그것은 곧 삿되게 받아 지니는 것이리.
만일 거기 내가 있다면
상(常)과 혹은 무상(無常)
나고 죽는 두 극단적 견해 생길 터이니
그 허물 제일 심한 것이네.
만일 모든 것 무상(無常)하다 한다면
행을 닦아도 과(果)가 없을 것이요
또한 뒷몸도 받지 않을 것이며
공력[功] 없이도 해탈할 것이네.
만일 그것을 항상한 것이라 한다면
죽음과 삶의 나뉨도 없으니
그것은 응당 허공과 같아서
남[生]도 없고 또한 멸함도 없으리.
만일 내가 있다면
마땅히 일체는 다 같아서
일체에도 다 내가 있을 것이니
업(業)과 과(果)는 스스로 이뤄지지 않으리.
만일 나라는 것 만든 이 있다면
괴롭게 수행할 것 없을 것이요
거기에 자재(自在)로운 주인 있다면
무엇을 구태여 만들려 하리.
만일 내가 곧 항상한 존재라면
변하고 달라짐 용납하지 않겠거늘
괴롭고 즐거운 모양 있음을 보나니
어찌 항상한 것이다 말할 수 있으리.
지혜 생기면 곧 해탈하여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읠 것이나
일체가 다 항상한 것이라면
어찌 해탈할 필요 있으리.
무아(無我)란 다만 말만 아니라
이치가 진정 실성(實性)이 없나니
내가 하는 일 볼 수 없거늘
어떻게 내가 하는 것이라 말하리.
나는 이미 하는 일 없고
또한 나를 만든 자 없나니
이 두 가지 일 없기 때문에
진실로 나라는 것 없는 것이네.
만든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으며
주인도 없으나 항상 옮겨가나니
남[生]과 죽음[死]은 밤낮으로 흘러가네.
그대는 이제 내 말 들으시오.
여섯 감관[根]과 또 여섯 경계(境界)
그 인연으로 여섯 식(識)이 생기네.
이 세 가지가 만나 촉(觸)이 생겨
마음과 생각과 업(業)을 따라 옮겨가네.
양주(陽珠)가 마른 풀 만나면
햇빛을 인연하여 불이 따라 생기나니
모든 감관[根]과 경계와 식(識)이
사람에게서 생기는 것 또한 그러하다네.
싹은 종자로 인해 생기지만
종자가 곧 싹은 아니네.
합한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니
중생이 생기는 것 또한 그러하다네.”
세존께서 이렇게 진실하고 평등한
위없이 묘한 이치 말씀하시자
병사왕은 못내 기뻐해
번뇌[垢]를 여의고 법안(法眼)이 생겼네.
왕의 권속과 많은 백성과
백천의 모든 귀신들까지도
감로법(甘露法) 설함을 듣고
또한 따라서 모든 번뇌 여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