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수리사 고욤나무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은 안양, 군포에 걸쳐있는 산이다. 이곳에는 수리사가 있다. 수리사의 가장 오랜 자연문화유산은 고욤나무이다.
고욤나무는 감나무의 어머니 나무이다. 작은 열매는 예로부터 약으로 많이 쓰였으며 감나무와 접 붙이는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동유럽에서 아시아 일대에 걸쳐 살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이 자란다.
산의 계곡이나 습기진 곳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나무인데 뜻밖에도 수리사 대웅전 오르는 계단 옆에서 만난다. 그것도 300여년 이상 된 노거수이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자세히 보기 위해 고욤나무에 가까이 가보니 새로 쌓은 석축 위 좁은 공간에서 바짝 붙은 가파른 계단 아래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나무의 아랫 부분에는 성인 1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텅 빈 공간이 있다. 느티나무 노거수에서 볼 수 있는 텅빈 공간을 고욤나무에서 보다니 신선한 경험이다. 나무 뿌리 부분은 지나치게 흙으로 덮여있다. 공사의 여파 때문이리라 추측된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텅빈 공간은 의외로 넓다. 300여년 전 조선시대 영조 시절 시작된 이 나무의 삶은 환경이 자주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수리사에서 선수행을 한 경허스님과 선방 스님들의 삶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수리사는 창건 이후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으로 사찰 공간이 재구성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온 고욤나무가 존경스럽다. 오랜 세월 살아온 노거수로는 키가 높지 않다. 위쪽에서 두군데 주간(柱杆)이 잘린 흔적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언젠가 강한 전지를 했을 수 있다. 탐방 기준으로 볼 때 수리사 안의 키 큰 나무들이 거의 강전지 되어있음을 확인했다. 5그루의 은행나무, 대웅전 옆 노거수 느티나무 등이 강전지로 수형이 좋지 않다. 둘째, 6,25 전쟁 당시 매우 험한 격전지였던 수리산이기에 그 당시 피해를 한번은 보았을 확률이 높다. 셋째 태풍 등 강한 바람이나 낙뢰에 의한 피해를 보았을 확률도 높다. 하지만 중심 기둥은 텅비고 윗 성장가지는 부러져 없는 가운데도 고욤나무는 수많은 녹색잎으로 매우 건강한 모습이라 다행이다. 작은 고욤 열매도 가득하다. 현재 이 나무는 수리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요, 자연문화유산이다. 신라시대 처음 세워진 절의 역사에 비추어 오래전에 살던 고욤나무가 대를 잇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정 해본다.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쟁통에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질 때도 이 고욤나무는 꿋꿋이 생명을 지켰다. 하늘에서 비행기 폭격이 있고 포탄이 날라다니는 격전지 였던 수리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많은 한국군,튀르키에군, 미군 애국선열 유해가 발굴된 곳이 수리산 수리사 주위 숲이다.
고욤나무로는 매우 드문 수리사 고욤나무가 천연기념물 혹은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윗부분이 잘린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추정된다. 수령 250여년 된 충북 보은 마을의 고욤나무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전국의 고욤나무 노거수를 볼 때도 수형이나 역사, 문화 배경을 가진 손에 꼽을 정도인 수리사의 고욤나무는 당연히 잘 챙겨야 한다. 조선시대 숙종 시대쯤 자라기 시작한 고욤나무는 조선시대 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다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라 때 창건되면서부터 존재했던 고욤나무가 대를 이어온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노거수의 후계목도 미리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한 전쟁터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이 고욤나무가 텅 빈 큰 공간으로 살아온 다양한 역사의 장면을 보듬고 있다.
첫댓글 오랜 세월을 경외합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