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아비달마론 하권
4.2. 불상응행(1), 득(得)ㆍ비득(非得)
득(prāpti)이란, 말하자면 어떤 법을 갖는다[有法]는 사실을 칭설하는 근거[因]이다.
득에는 정(淨)ㆍ부정(不淨)ㆍ무기 등 세 가지가 있다.
정이란 신(信) 등을 말하며,
부정이란 탐(貪) 등을,
무기란 화심(化心) 등을 말한다.
곧 이 세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어떤 법을 갖는다’고 말하는데, 이 같은 칭설의 결정적인 근거를 득이라 하며, 혹은 획득ㆍ성취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탐 등의 번뇌가 현재 현전할 때 유학(有學)의 성자에게는 아직 무루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비성자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생에게도 선심이나 무기심이 일어나니 그때에는 마땅히 이염자(離染者)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성자나 모든 이생에게 열반이 획득되지 않기는 서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를 이생이라 하든지 성자라 해야 할 것이다.
법왕(法王)께서도 말씀하시길,
“득(得)을 인기하여 열 가지 무학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성자라고 이름하니, 오지(五支)를 영단(永斷)한다.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비구들은 마땅히 알라. 만약 선ㆍ불선을 성취함이 있다면 나는 이와 같은 유정류의 심(心)상속 중에 선ㆍ불선이 획득되어 무한히 증장함을 본다”고 하셨고, 또한
“너희들 비구들은 마땅히 유정의 뛰어남과 열등함을 비교하여 생각해서는 안 되며, 보특가라 덕량(德量)의 얕고 깊음을 그릇되이 취하여서도 안 된다.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이 말은 곧 뛰어남과 열등함, 얕고 깊은 선근은 이미 유정 보특가라에게 획득 성취된 것임을 의미한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외계에 결정적으로 실재하는 득이라는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득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이나 이미 상실한 것을 지금 획득[獲: prātilābha]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미 획득한 것을 상실하지 않고 성취(成就: samanvāgama)한 것이다.
그리고 비득(非得)은 이와 반대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법 중에 이러한 득과 비득이 존재하는가?
오로지 자상속(自相續)과 두 가지 멸[擇滅ㆍ非擇滅] 중에 득과 비득이 존재한다. 즉
다른 유정신의 법을 성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타상속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생물의 법을 성취하는 일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비상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득과 비득은 허공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허공을 성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법에는 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그림자처럼 형체를 따라 동시에 생겨나는 것과 같은 수형득(隨形得),
둘째 소의 우두머리가 무리를 이끌고 앞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인전득(引前得),
셋째 송아지가 어미를 뒤따르는 것과 같은 수후득(隨後得)이 그것이다.
첫 번째 득은 대개 무부무기법(無覆無記法)과 같은 것이고,
두 번째 득은 대개 상지(上地)에서 죽어 없어져 욕계에 태어날 때 욕계 선법을 획득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세 번째 득은 대개 학습[聞]과 사유[思]에 의해 획득되는 지혜[所成慧] 등과 같은 것으로, 동시생기를 제외한 여타 나머지의 득을 말한다.
여기서 이 같은 비바사(毘婆沙)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욕계계(欲界繫)의 선ㆍ불선색의 득은 획득되는 법보다 먼저 생겨나지 않으며, 오로지 동시에 생겨나든지[俱生得] 뒤따라 생겨난다[隨後得].
천안통ㆍ천이통의 지혜와 능히 변화하는 마음[變化心]을 제외하고, 아울러 지극히 잘 수습 실천된 위의로(威儀路)나 공교처의 일부를 제외한 그 밖의 모든 무부무기법과 유부무기의 표색의 득은 그 세력이 열등하기 때문에 오로지 동시에 생겨나며, 획득되는 법보다 앞서거나 후에 생겨나지 않는다.
[위의로(威儀路):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일상적인 행동거지.]
[공교처: 공예나 기술.]
그 밖의 모든 법의 득은 획득되는 법보다 먼저 생겨나든지[法前得], 후에 생겨나든지[法後得], 동시이다[法俱得].
그리고 선법의 득은 오로지 선이며, 불선법의 득은 불선이고, 무기법의 득은 오로지 무기이다.
욕계법의 득은 오로지 욕계이며, 색계법의 득은 오로지 색계이고, 무색계법의 득은 오로지 무색계이다.
무루법의 득은 삼계와 무루법에 공통된다. 이를테면 도제(道諦)와 세 가지 무위와 같은 무루법은 다 같이 더 이상의 속박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즉 도제의 득은 오로지 무루이며, 비택멸의 득은 삼계에 통한다.
그리고 택멸의 득은 만약 그것이 색ㆍ무색계의 유루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그러한 계에 속하는 것이며, 무루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무루이다.
무루법의 득은 이처럼 삼계와 무루 등 모두 네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법의 득은 오로지 학이고, 무학법의 득은 오로지 무학이며, 비학비무학의 득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다. 즉 비학비무학이란, 말하자면 모든 유루법과 무루법인데, 유루와 비택멸의 득은 오로지 비학비무학이다.
택멸의 득은 만약 그것이 유학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오로지 학이고, 무학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오로지 무학이며, 세간도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오로지 비학비무학이다.
나아가 견도소단의 득은 오로지 견소단이며, 수소단법의 득은 오로지 수소단이고, 비소단법(非所斷法)의 득에는 다시 수소단과 비소단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비소단법이란, 말하자면 도제(道諦)와 무위인데, 도제의 득은 오로지 비소단이며, 비택멸의 득은 염오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이다.
택멸의 득은 유루이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세간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오로지 수소단이고, 무루도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오로지 비소단이다.
모든 비득은 오로지 무부무기성에 포섭되기 때문에 앞의 득과 같은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已生]ㆍ미래[未生] 법에는 각기 삼세의 비득이 존재하며, 현재법에는 현재의 비득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득과 비득은 그 본질[性相]이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즉 현재 성취될 법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없으나 과거ㆍ미래 법은 성취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그것에는 비득이 존재하는 것이다.
욕ㆍ색ㆍ무색계의 법과 무루법에는 각기 모두 삼계의 비득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비득이 바로 무루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득 중에 이생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이생성인가? 말하자면 성법(聖法)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발지론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획득하지 못함[不獲]’이 바로 비득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비득은 오로지 무기성이기 때문에 무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