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요의론 제6권
[1승을 믿어 알기는 더없이 얻기 어렵다(1)]
여기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니, 일승(一乘)을 믿어 알기는 더없이 얻기 어렵다.
이 일승은 모든 경전 안에서 한결같이 이렇게 설하였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 말하였다.
“나는 유정들을 위해 일승(一乘)을 일으켜서 법을 설한다.
말하자면 불승(佛乘)이니, 둘도 없고 셋도 없다.
시방(十方)에 있는 모든 세계의 법이 이와 같다.
왜냐하면 만약 과거 세상이라도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불여래들께서는 유정들을 위해 한결같이 일승(一乘)을 일으켜서 법을 설하시며,
만약 미래 세상이라도 역시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부처님 여래들께서는 유정들을 위해 한결같이 일승을 일으켜서 법을 설하시며,
만약 현재 세상이라도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부처님 여래들께서는 다시 유정들을 위해 한결같이 일승을 일으켜서 법을 설하시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승이란 이러한 연(緣)인 까닭에, 시방세계에는 오히려 가히 일으켜 세울 이승(二乘)조차 없거늘, 하물며 어찌 셋이겠느냐?’”
「진실품(眞實品)」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옛적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일승의 경계가 능히 고루 갖추어져 있는 까닭에, 부처님의 나라 안에서는 오직 일승법(一乘法)만으로 벗어나도록 하며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이승(二乘)을 세워 일으키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일찍이 여러 가지 생각을 여의셨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간혹 대승(大乘)의 법을 설하시기도 하고 연각(緣覺)의 법을 설하시기도 하고 성문(聲聞)의 법을 설하시기도 했다면,
이 사람은 여래 자리에 대해 청정하지 못한 마음과 평등하지 못한 마음과 붙잡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만약 여러 가지 생각을 설하였다면 곧 법 안에서 스스로 아첨과 거짓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정들을 위해 설하는 모든 법은 한결같이 보리 가운데에서 즐거이 대승법(大乘法)을 얻어 일체지(一切智)를 거두어 유정들이 다함께 일체지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한다.
이러한 까닭에 저 모든 승(乘)의 자리를 나누어서 가히 일으켜 세우기도 하지만 역시 나는 어떤 경지도 일으켜 세운 바가 없으며,
또한 보특가라(補特伽羅)의 일도 일으켜 세우지 않고 또한 사소한 행이든 한량없는 행이든 일으켜 세운 바가 없으며,
다시 삼승(三乘)으로 가히 분별할 수도 없으니 저 분별이 없는 성품이야말로 법계(法界)로 들어가는 문(門)이다.
단지 세속의 이치를 위해 열어 보이고 인도하여 방편으로 베풀어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뜻을 갖춘 진리 안에서는 오직 일승법(一乘法) 뿐, 둘이란 있지 않다.’”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주(天主)여, 만약 모든 천자(天子)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아직 내지 않았다면, 내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도록 하겠다.
다시 만약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낼 수 없다면 역시 내가 반드시 기뻐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저 삶과 죽음의 흐름 안에서 서로 이어짐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뜻은 저 모든 선근의 몫이 숨어 사라지는 바가 있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가장 훌륭한 저 법 안에서 얻는 바가 있도록 하겠다.’”
「대집회품(大集會品)」에서 말하였다.
“일승(一乘)은 저 일체의 승(乘)을 널리 거두어 받아들인다.
그 일승으로써 모든 승을 거두어 받아들이는 까닭에 하나의 이치로 함께 돌아가며 널리 법계의 분별이 없는 성품으로 들어간다.”
『총지자재왕문경(總持自在王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의 생각이 있다고 설하시지 않는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어 지으신 모든 것은 한결같이 한 맛[一味]으로서 법계를 가로막아 방해함이 없으며, 일체 유정들을 받아들여 스스로 정각을 이루고 나서, 다시 유정들도 깨닫도록 한다.
그런 다음에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리니, 말하자면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는 법의 바퀴이다.
비유하자면 보석을 다루는 사람과 같다.
그 보석을 다루는 곳에서 더러운 빛깔의 유리(琉璃)를 집어 들고는 먼저 잿물에 담가 문질러서 깨끗이 하고, 다음에는 검은 기름을 먹인 붓으로 다시 이것을 문지른다.
그러나 보석을 다루는 그 사람은 싫증내거나 힘들어 하지 않으며,
나중에는 고기 국물과 비단을 써서 거듭 다시 문질러 다스리고,
다시 중요한 약품과 미세하고 미묘한 옷감을 써서 차례대로 정미롭게 다스린다.
그런 다음에 그 더러운 빛깔은 없어지고 맑게 빛나서 진짜 유리와 같아진다.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아서 유정들의 세상은 본래부터 청정하지 않음을 아시고,
이에 항상되지 않다는 것[無常]과 고통이라는 것[苦]과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無我]라 청정하지 않은 법[不淨]을 널리 설하시어 윤회를 싫어하여 벗어나는 생각을 일으키도록 하신다.
그 다음에는 거룩한 법으로써 굴복시키고 방편으로 열어 인도하시되 싫증내거나 힘들어 하시지 않는다.
다음에는 비어 있다는 것[空]과 모양이 없다는 것[無相]과 바람이 없는 법[無願]을 베풀어 말씀하시어 그로 하여금 여래의 눈을 떠서 깨닫도록 하시되, 여래께서는 역시 잠시도 싫증내거나 힘들어 하시지 않는다.
다음에는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는 법의 바퀴[不退轉輪]를 굴리시며 아울러 삼륜(三輪)이 청정함을 설하시어 유정들을 인도해 여래의 경지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시며,
여러 가지 인과의 성질을 평등하게 초월하여 다 함께 여래의 청정한 법성(法性)을 깨닫도록 하신다.
이것을 일컬어 이 세간(世間)이 끝내 위없는 과보를 얻는다고 한다.”
『아유월치경(阿惟越致經)』에서 말하였다.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는 법의 바퀴는 평등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시는 법도 역시 평등하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뒤처지고 열등하게 믿어 아는 유정들의 부류가 일승법을 능히 꿰뚫어 알지 못하자, 이에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다섯 가지가 탁한 때에 나시어 훌륭한 방편으로써 저 유정들을 위해 불사(佛事)를 일으켜 세우시고 부처의 과보를 얻도록 하신다.”
『승만사자후경(勝鬘師子吼經)』에서 말하였다.
“모든 불여래께서는 이 열반법(涅槃法)을 방편으로 널리 말씀하시어 삼승(三乘)으로부터 모든 승(乘)을 내어 놓으셨다.
그러나 일승의 법으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 얻는다.”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말하였다.
“모든 번뇌의 씨앗은 지(止)와 관(觀)으로 들어가서 있는 그대로 깨달아 무루(無漏)의 경지에 머무르며,
다시 성문과 연각의 무루의 경지 안으로 들어가 세상을 벗어나는 훌륭한 행을 빠짐없이 두루 갖추어서 부사의(不思議)한 법신과 자재하신 여래를 얻고 유정들을 교화하는 모든 선한 행을 이루는 까닭에,
훌륭한 방편으로써 여러 가지 승(乘)을 설한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여래들께서는 여러 가지 경지에 대해 단지 삼승(三乘)만을 설하시지 않고 역시 다른 승법(乘法)도 설하신다.”
대승보요의론 제7권
[1승을 믿어 알기는 더없이 얻기 어렵다(2)]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대비로자나해탈길상세계(大毘盧遮那解脫吉祥世界) 안에서는 보편지염공덕당여래(普遍智焰功德幢如來)께서 일으켜 세운 한량없는 유정들이 성문(聲聞)의 경지에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연각(緣覺)의 보리(菩提)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날래고 빠른 말재주가 생겨나는 보리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티끌 없는 정진(精進)의 깃발이 생겨나는 보리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법(法)에 대한 말재주가 생겨나는 보리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청정해지고 말재주가 생겨나는 보리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열 가지 능력의 모든 행이 고루 채워짐이 생겨나는 보리를 능숙하게 이루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현전하는 경계에서 일승(一乘)이 생겨나는 보리의 법의 성(城)에서 평안히 머무른다.
한량없는 유정들이 모든 곳에서 여러 가지 신통(神通)과 일승의 이법(理法)이 생겨나는 보리를 따라 나타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모든 행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한량없는 방편이 생겨나는 보리를 일으켜 세우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삼매의 각 경지의 이법이 생겨나는 보리에 평안히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일체 대상의 경계마다 청정한 도량(道場)의 이법이 생겨나는 보리에 평안히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보살의 보리심(菩提心)을 발하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보살의 도(道)에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청정한 바라밀다의 도에 평안히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들이 보살의 초지(初地)부터 나아가 보살의 10지(地)에 이르기까지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