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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4권
4. 입도부(入道部)
[여기에 네 가지 연이 있음〕
4.1. 술의연(述意緣)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인연(因緣)이란 임시로 있는 것이건만 중생들의 근기를 막고 있으나, 법은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니어서 지극한 사람의 미묘한 이치이다. 그런 까닭에 삼계의 여섯 갈래 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업장(業障)을 지어 스스로 미혹되었으므로 팔해(八解)와 십지(十智)를 존귀하게 여겨 귀의해야 할 종지(宗旨)로 삼고 마음을 허활(虛豁)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능인(能仁)대사께서 인연을 따라 가르침을 펴서 염택(焰宅)이 이미 타버렸음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욕류(欲流)의 영원한 안개속에서 헤메는 것을 슬프게 여기시어 백정(白淨)의 가문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여 황금의 몸으로 태어나셨다.
이 세 가지 미혹 속에 살면서 그림 상자가 진실된 것이 아님을 보이시고 저 네 가지 문밖에 나아가 쉽게 사라지는 뜬구름 같은 인생음 보시고 싫어하셨으며, 인생이 표류하다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이 이와 같음을 스스로 탄식하셨다.
그 때 천왕(天王)를 떠받들고 성을 넘었고 급사(給使)가 보배관을 가지고 궐내로 나아갔으며,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시어 참다운 자취를 찾게 한 뜻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비록 또한 진대(秦代)의 소사(簫史)와 주(周)나라 시대의 왕자 진(晋:王子喬)의 일과 허유(許由)가 기산(箕山)에서 귀를 씻은 일과 장주(莊周:莊子)가 복수(濮水)에서 꼬리를 끈 일이 있지만 이런 따위의 세속을 버린 일을 어찌 멸시해 버릴 수 있겠는가?
그 덕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끊고 몸을 세우게 하며, 그 기풍을 흠모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깨끗이 하여 선행을 닦게 하였다.
몸을 무너뜨려야 그 뜻을 성취할 수 있나니 그런 까닭에 수염과 머리카락과 아름디운 용모를 버렸던 것이고,
세속을 변화시켜야 그 도를 알게 되나니 그런 까닭에 윤왕(輪王:轉輪聖王)의 화려한 의복까지 버렸던 것이다.
비록 몸으로는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효도할 생각을 가지셨으며, 예로써 주인을 섬기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은혜를 거두어 들이셨다.
그리하여 혜택이 원친(怨親)에 고루 미쳐서 크게 순종함을 이루고 복이 유현(幽顯)에까지 적시셨으니, 어찌 사소한 어긋남에 구애받겠는가?
상지(上智)의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때문에 유익하게 되고 하층 범부의 무리들은 성인의 가르침을 없어지게 하기 때문에 손해를 당한다.
악을 징계하면 외람된 자들이 저절로 새로워지고 착한 일을 권장하면 통달한 사람조차도 감화를 받는다.
그런 까닭에 선림(仙林)은 처음으로 비녀를 뽑은 땅이 되었고 신하(禪河)는 고행(苦行)을 일으킨 자취가 되었으며, 깨끗한 금구(金軀)를 물에서 목욕하고 도량(道場)의 길상한 나무에서 수행하셨으며, 음식은 유미죽을 받아 드셨고 자리는 풀을 깔아 만드셨다.
그리하여 십력(十力)의 지원(智圓)과 육통(六通)의 신족(神足)으로 마병(魔兵)은 자리를 거두었고 대각(大覺)께서는 도를 이룩하셨던 것이다.
4.2. 흔염연(欣厭緣)
『문수문경(文珠問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공덕은 출가(出家)한 사람의 마음만한 것이 없다.
왜냐 하면 속가에 머물러 있는 이는 허물과 걱정이 많기 때문이요, 출가한 사람은 공덕이 한량없이 많기 때문이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이에겐 장애(障礙)가 있고 출가한 사람에겐 장애가 없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겐 그곳이 바로 더러운 곳이요 출가한 사람에겐 그곳이 곧 더러움이 없는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욕심의 진흙탕에 빠져 있고 출가한 이는 욕심의 진흙탕에서 벗어났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법을 따르고 출가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법을 멀리한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바른 생활[正命]을 얻지 못하고 출가한 사람은 바른 생활을 얻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근심과 슬픔과 번뇌의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환희의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결박의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해탈의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상해(傷害)하는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상해함이 없는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이익을 탐하는 괴로움이 있고 출가한 사람은 이익을 탐하는 괴로움이 없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시끄러운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 이 곧 적정(寂靜)한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하천(下賤)한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고귀하고 훌륭한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번뇌(煩惱)에 타는 바 되고 출가한 사람은 번뇌의 불을 끄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他人:처자와 권속]을 생각하고 출가한 사람은 항상 자가 자신만을 생각한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삼고 출가한 사람은 벗어남을 즐거움으로 삼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가시를 무성하게 하고 출가한 사람은 가시를 제거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작은 법을 성취하고 출가한 사람은 큰 법을 성취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법의 작용이 없고 출가한 사람은 법의 작용이 있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삼승(三乘)을 헐뜯고 비방하며 [毀訾]출가한 사람은 삼승을 찬탄한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고 출가한 사람은 항상 만족할 줄 알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마왕(魔王)의 사랑을 받고 출가한 사람은 마왕을 두렵게 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방일(放逸)함이 많고 출가한 사람은 방일함이 없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남의 종이나 심부름꾼이 되고 출가한 사람은 종이나 심부름꾼의 주인이 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깜깜하고 어두운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빛나고 밝은 곳이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교만(憍慢)을 증장(增長)하는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바로 교만함을 소멸하는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과보(果報)가 적고 출가한 사람은 과보가 많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첨하고 왜곡됨이 많고 출가한 사람은 마음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항상 근심과 고통이 있고 출가한 사람은 항상 기쁘고 즐거움을 가지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속이는 법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것이 곧 참되고 고요한 법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산란(散亂)함이 많고 출가한 사람은 산란함이 없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유전(流轉)하는 곳이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유전하지 않는 곳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독한 약과 같고 출가한 사람은 감로(甘露)와 같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안의 사유(思惟)를 잃고 출가한 사람은 안의 사유를 얻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귀의(歸依)할 곳이 없고 출가한 사람은 귀의할 곳이 있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성냄이 많고 출가한 사람은 자비(慈悲)를 많이 행한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니고 출가한 사람은 무거운 짐을 버리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죄와 허물이 있고 출가한 사람은 죄와 허물이 없으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생사(生死)의 바다에 유전(流轉)하고 출가한 사람은 그 한계가 일정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재물로써 보배를 삼고 출가한 사람은 공덕으로 보배를 삼는다.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생사를 따라 흐르고 출가한 사람은 생사를 거슬러 흐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곳이 곧 번뇌의 큰 바다요 출가한 사람은 그곳이 곧 큰 배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결박을 당하고 출가한 사람은 결박을 여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국왕의 가르침과 훈계를 따르고 출가한 사람은 부처님 법의 가르침과 훈계를 따르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반려자(伴侶者)들 쉽게 얻고 출가한 사람은 반려자를 얻기 어려우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상해(傷害)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고 출가한 사람은 섭수(攝受)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번뇌를 증장하고 출가한 사람은 번뇌를 벗어나 떠나가며,
속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가시 숲에 머무는 것과 같고 출가한 사람은 가시 숲을 벗어난 것과 같다.
문수사리야, 만약 내가 속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무라고 출가한 사람을 찬탄한다면 그 말은 허공을 가득 채우고도 그 말은 오히려 다함이 없나니, 이것을 속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과환(過患)이라 말하고 출가한 사람의 공덕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속가에 머물고 있는 이의 급박[迫]하고 협착[迮]함은 마치 감옥과 같아서 모든 번뇌가 그로 인해 생겨나고 출가한 사람은 너그럽고 넓음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온갖 착한 법이 그로 인하여 증장한다.
속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안에 있으면 아내와 아이들을 근심하고 염려하며 밖에 나가면 왕의 부역[役]에 허덕인다.
만약 부귀하고 지체가 높거나 뛰어나면 방일하여 마음대로 방종하며, 가난하여 괴롭고 하천(下賤)하면 배고픔과 추위로 뜻을 잃으며,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에 분주하게 나부대면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애쓰고, 온갖 사무에 얽매이게 되나니 어느 겨를에 도를 닦을 수 있겠는가?.”
또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에서 말하였다.
“속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온갖 번뇌가 많다.
부모와 처자의 은애(恩愛)에 얽매이게 되어 항상 재물과 여색을 생각하고 탐하고 구하여 만족함이 없다. 조금 얻게 되면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느라 갖가지 근심과 걱정이 많으며, 여섯 갈래 세계를 흘러다니면서 부처님의 법을 어기고 떠나간다.
그러므로 반드시 속가는 원수의 집이요 악지식(惡知識)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반드시 속가에서 사는 것을 싫어하여 출가할 마음을 내어야 한다.
속가에 살고 있으면서는 최상의 보리도(菩提道)를 닦아 쌓을 수 없고 모두 출가함으로 인하여 최상의 도를 증득할 수 있다.”
또 『출가공덕경(出家功德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남녀와 노비(奴婢)와 인민들을 다 놓아주어 출가시키면 그 공덕은 한량 없이 많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천하를 가득 채운 아라한에게 백 년 동안을 공양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열반을 위하여 하루 낮 하루 밤을 출가하여 계를 받는 공덕의 무량함만 못하다.
또 일곱 가지 보배의 탑을 세워 그 높이가 삼십삼천에 닿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출가의 공덕만 못하니라.
또 『대연경(大緣經)』에서 말하였다.
“하루 낮밤 동안이나마 출가하였기 때문에 이십 겁(劫) 동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하루 낮밤 동안이나마 출가하여 깨끗한 행 [梵行]을 닦은 사람은 육백육천육십 년 동안 세 갈래 세계의 괴로움을 여읠 것이다.”
또 『출가공덕경(出家功德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출가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출가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그 사람을 억제(抑制)하면, 이 사람은 곧 부처님의 종자를 끊는 것이므로 온갖 악함이 그 몸에 쌓여 마치 큰 바다와 같게 된다.
그리하여 현재 세계에서는 문둥병에 걸리고 죽어서는 깜깜하고 어두운 지옥에 들어가서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또 『가섭경(迦葉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대왕과 태자는 출가의 공덕이 매우 심오하다는 말을 듣고 다 함께 발심하여 출가하였으므로 사천하에는 한 중생도 속가에 사는 사람 없이 모두 다 발심하여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하였다.
저 모든 중생들이 이미 출가한 뒤에는 농사지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 땅에서는 저절로 온갖 쌀이 생산되고 온갖 나무에서는 저절로 온갖 옷들이 나온다. 모든 하늘들도 공양하고 모시며 심부름을 해준다.”
또 『불장경(佛藏經)』에서 말하였다.
“꼭 일심으로 도를 수행하고 법 수행을 따르고 순종하되 의복이나 음식을 걱정하지 말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래께서는 백호상(白毫相) 중 한 부분만으로 말법시대에 출가한 모든 제자들에게 공급하여도 또한 다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백 사람의 맹인이 있는데 어떤 명의(明醫)가 그 눈을 치료하여 일시에 밝게 보게 하고,
또 일백 사람이 눈을 뽑혀야 죄를 지었을 때 어떤 세력 있는 사람이 그 죄를 다 구제하여 눈을 잃지 않게 해 주었다면,
이 두 사람의 복은 비록 한량없이 많을지라도 오히려 사람들의 출가를 허락하거나 자기가 출가한 그 공덕의 넓고 큰 것만은 못하느니라.”
4.3. 출가연(出家緣)
“처음 출가하려고 하는 사람은 율법에 의하여 우선 두 스승을 청하나니,
하나는 화상(和上)이요, 다른 하나는 아사리(阿舍利)이다.”
[법을 청하는 것을 율(律) 대로 한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먼저 화상을 청하여 열 가지 계(戒)를 받을 때에는 화상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열 가지 계를 받을 수 없다.
만약 화상이 죽었다는 말을 들어 알았으면 계를 받을 수가 없으며,
만약 스승이 죽었다는 말을 듣지 않있으면 계를 받을 수 있다.
아사리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또 『청신사도인경(淸信士度人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머리를 깎으려고 하면 우선 머리카락이 떨어질 자리에 향 달인 물을 땅에 뿌리고 사방 일곱 자 안의 네 모퉁이에 번기를 달고 높은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고 출가한 사람이 앉는 시늄을 하고 다음에는 흘륭한 자리 두 개를 만들어 두 스승이 앉는 시늉을 한다.
출가하려고 하는 사람은 본래 입었던 속인(俗人)의 옷을 입고 부모와 존친(尊親) 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나서 입으로 게송을 설한다.
삼계(三界) 가운데 흘러다니면서
은혜와 사랑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은혜를 버리고 무위(無爲)로 들어가나니
진실로 이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라네.
이 게송을 외우고 나서 속인의 옷을 벗어버린다.”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향을 달인 물로 목욕하여 속인[白衣]의 기운을 없애야 한다.”
『도인경(度人經)』에서 말하였다.
“아무리 출가한 사람의 의복을 입었다 해도 다만 니원승(泥洹僧)과 승기지(僧祇支)만을 입는데 그칠 뿐 가사(袈裟)를 입어서는 안 된다.
도량(道場)에 들어갔을 때에는 마땅히 화상의 앞에 이르러 꿇어앉아야 한다.
화상은 마땅히 자신이 나은 아이라고 생각하여 미워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되며,
제자는 스승에 대하여 꼭 부모라는 생각으로 존중하고 공양해야 한다.
화상은 갖가지 법을 설하여 그 마음을 경계하고 힘쓰게 한 다음에 아사리 앞으로 가서 앉아야 한다.”
『선견론』에서 말하였다.
“향을 달인 물을 정수리 위에 뿌리고 다음 게송으로 찬탄한다.
훌륭하구나. 대장부(大丈夫)여,
세상이 덧없음을 잘 깨달아
세속을 버리고 니원(泥洹:涅槃)으로 나아가나니
보기 드문 일이요, 사의(思議)하기도 어렵다네.
이 게송을 외우고 난 다음 그로 하여금 시방 부처님께 예배하도록 가르쳐 마치게 한 다음 다시 다음 게송으로 찬탄한다.
큰 세존님께 귀의하오니
삼유(三有)의 고통을 잘 건져주시고
또 부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무위(無爲)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하소서.
이 게송을 외워 마치고 난 연후에 아사리는 비로소 그의 머리를 깎아준다.”
『도인경(度人經)』에서 말하였다.
“머리를 깎아줄 때에 곁에 있는 사람들은 출가의 범패를 외운다.
형상을 허물어 지절(志節)을 지키고
사랑을 끊어 친근히 하지 말게.
속가를 떠나 커다란 성인의 도에 들어가
모든 사람들 제도하기 바란다네.
머리를 깎아줄 때에는 마땅히 정수리에 다섯 또는 세 개의 머리칼을 남겨 두고 화상의 앞에 이르러서 꿇어앉는다.
화상은그에게 묻는다.
‘지금 너를 위하여 정수리의 머리털을 깎아도 좋겠는가?’
그가 대답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한 뒤에 화상은 가사를 입힌다.
가사를 입을 때에는 『선견론(善見論)』에 의거해 다시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한다.
위대하구나. 해탈의 옷이여,
모습이 없는 복전(福田)의 옷이여,
이것을 입고 계율대로 받들어 실천하여
모든 중생들 널리 제도하리.
『도인경(度人經)』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였다.
‘이미 가사를 입고 나서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도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도인과 속인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 세 바퀴 돌고 난 다음에 다시 스스로 게송을 외워 경하(慶荷)하는 마음을 나타내야 한다.
만났구나. 부처님을 만났구나.
누구인들 기뻐하지 않으리.
복과 소원과 때를 한꺼번에 만났으니
나는 지금 법의 이익 얻었네.
도를 행하는 예를 두루 마치고 나서 또 대중들과 두 스승에게도 예배하여 마쳐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랫자리에 앉아 육친(六親)에게 절과 경하를 받고 출가하여 세속을 여왼 뜻을 마음으로 기뻐해야 한다.
그러면 부모와 여러 친족들은 모두 그에게 예배하고서 그의 도에 대한 뜻을 기뻐하며 호응하는 가운데, 앞에서 머리 깎은 것을 가장 좋아하여 그로 하여금 재(齋)를 얻게 한다.”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 말하였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뒤엔 화상은 그를 위하여 삼귀(三歸)와 다섯 가지 계율을 준다.”
[이 밖의 법의 의식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고 그때 그때 참작해서 하면 더욱 뛰어난 선(善)을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