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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 제6권
5. 십유편(十喩篇)[2]
5.2. 내적인 열 가지 깨우침으로 외적인 열 가지 다른 점에 대한 대답
첫째, 내적으로 좇아 나는 데 뛰어남과 열등함이 있음
둘째, 교를 세움에 얕고 깊음이 있음
셋째, 덕과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음
넷째, 교화하는 인연에 넓고 좁음이 있음
다섯째, 오래 살고 일찍 죽음에 늘어나고 빠름이 있음
여섯째, 화거(化去)하신 행적에 앞과 뒤가 있음
일곱째, 옮기고 사퇴(謝退)함에 나타남과 어두움이 있음
여덟째, 상호(相好)에 적음과 많음이 있음
아홉째, 위의에 같고 다름이 있음
열째, 법문에 돈(頓)과 점(漸)이 있음
[열 가지 다른 점에 대답하는 서문]
대저 초란(椒蘭)과 포사(鮑肆)에 익숙해지면 이에 가까이 따르게 되고 양문(陽文)과 돈흡(敦洽)을 궁구하게 사랑하면 그의 곡진한 뜻을 반연하게 된다. 그러기에 함지(咸池)의 옥영(玉英)도 묵적(墨翟)에게는 소리가 아니라는 논박(論駁)이 있었고, 순황(淳皇)과 예후(睿后)에게도 전파(田巴)는 성인을 헐뜯는 말이 있었으니, 대개 그것이 법도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린과 사슴은 바탕이 달라도 노(魯)나라의 풍속은 그의 얼굴을 동일하게 보고, 사슴과 말은 형체가 달라도 진(秦)나라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한가지로 여기니, 대개 느낌의 변함이 이에 이르거니 하물며 유유(悠悠)한 자이겠는가?
그러기에 중경(仲卿)이 불교와 도교의 우열(優劣)을 진술한 까닭이 있다. 내가 그를 불쌍하게 여겨 뒤의 논(論)에 모두 다 적는다. 대답한 하나하나의 조건은 위의 글에서 적은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1) 외적인 측면에서 태어난 것이 왼쪽과 오른쪽의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성인의 자취를 응하심은 범부들의 태어남과 달라서 혹은 용과 코끼리를 타고 와서 태(胎)에 처하고 잠깐 옆구리를 열어서 세상에 출현한다. 그러기에 비록 다시 두 기운과는 관계없으나 두 어버이를 빌려 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왼쪽 옆구리로 남과 오른쪽 옆구리로 나는 것의 우열이 다르다 함이
첫 번째이다.”
내적으로 좇아 나는 데 뛰어남과 열등함이 있음
[노자의 어머니는 뇌향(賴鄕)의 평씨(平氏)인데 노자가 와서 바탕을 위탁하였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摩耶)부인은 가유라위(迦維羅衛) 임금의 왕후로서 석가모니가 그를 인하여 세상에 내려왔다.]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것은 융적(戎狄)들이 높이 숭상하는 것이요, 오른쪽으로 명하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숭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춘추(春秋)』에
‘가경(家卿)에 명(命)이 없고 개경(介卿)에 있는 것은 또한 왼쪽이 아니겠는가? 하였으며,
『사기』에
‘인상여(藺相如)의 공이 컸기 때문에 지위가 염파(廉頗)보다 오른쪽에 있었는데, 염파가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하였으며, 또
‘장의(張儀)는 정승이 되어서 진(秦)나라를 오른쪽으로 하고 위(魏)나라를 왼쪽으로 하였으며,
서수(犀首)는 한(韓)나라를 오른쪽으로 하고 위나라를 왼쪽으로 하였으니, 대개 왼쪽을 편치 못하게 여긴 것이다’ 하였고,
『예기』에
‘좌도(左道)가 군중을 어지럽히기에 죽였다’ 하였으니,
이들이 다 오른쪽을 우수하게 보고 왼쪽을 하열하게 본 것이 아니겠는가?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노자는 초(楚)나라의 상(相) 사람이다. 와수(渦水)의 남쪽에 집을 두고 살았으며 상종자(常樅子)를 스승으로 섬겼기에 상종자가 병이 들자 노자가 가서 병을 위문하였다’ 하였고,
혜강(嵆康)은
‘노자는 연자(涓子)를 좇아 아홉 신선의 술법을 배웠다’ 하였으며,
태사공(太史公) 등의 여러 서적을 검사하여 보니, 거기에 노자가 왼쪽 옆구리를 가르고 나왔다는 말이 없다.
이미 정사(正史)에 없었으면 다 이것이 거짓말이어서 그대로 믿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징험하여 아는 것은 창을 휘두르고 문한(文翰)을 잡는 것이 대개 문과 무의 먼저이고 5기(氣)와 3광(光)은 참으로 음과 양의 우두머리이다.
그러기에 불교에서는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또한 사람들의 사용을 도와주었다고 하겠다.
장릉(張陵)의 좌도(左道)는 참으로 천상(天常)을 거스른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불교에서는 무연(無緣)의 자비를 일으켜 유기(有機)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그의 행적을 말하면 행은 3아승기에 차고 상호는 1백 겁에 원만하였으며, 신(神)이 내려올 적에 옥 코끼리를 타고 햇빛을 가리며 자마금색(紫磨金色)의 모양으로 탄생하셨다.
서른두 가지 상서로움의 아름다운 징조가 지부(地府)에서 열렸으며 18범천(梵天)의 상서로움이 천궁(天宮)을 놀라게 하였으며 신령스러운 모습이 시방에 두루하였고 신기한 광채가 팔방[極]에 나타났다.
그의 근본을 진술하면 오랫동안 둥글고 밝음을 증득하였기에 미진수와 항하의 모래로도 그의 수명을 계산할 수 없고 일찍이 적조(寂照)함에 올랐기에 허공으로 그의 체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 오직 가지를 휘어잡고서 거룩한 상서라 하겠으며 흰 머리를 징험하여 상서로움을 본받겠는가?
이는 마치 형광(螢光)과 용촉(龍燭)이 빛을 다투는 격이요 어목(魚目)과 사주(蛇珠)가 함께 빛을 다투는 격이니
도교가 용렬한 것의 첫째이다.”
2) 외적인 측면에서 교문(敎門)의 생멸(生滅)이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대저 불교와 도교가 다 같이 생멸이 없음을 말하니 그 이치는 같으나 세상을 인도하여 범부들을 이끄는 데는 차이가 있다. 다만 생(生)한다는 것은 모두가 기뻐하는 것이요, 멸(滅)한다는 것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의 길은 얻기 어려우니 반드시 닦는 공덕을 기다려야 하고, 멸하는 법은 구하기 쉬우니 어찌 물어서 배우는 수고를 하겠는가?
이러므로 도교에서 말하는 대로 신(神)을 솟아오르게 하고 그림자를 타는 데는 스스로 적겁(積劫)에 몸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기가 다하고 형체가 죽으면 진실로 마땅히 일시에 신이 가야 한다.
이는 교문의 다름의 두 번째인 것이다.”
내적으로 교를 세움에 얕고 깊음이 있음
[노자의 가르침은 하나를 안고 어리석음을 지키며 형체를 버리고 지혜를 멸하여야 비로소 무위(無爲)에 나아간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널리 두루하고 원만하게 닦아서 여러 덕을 갖춘 뒤에 묘각(妙覺)을 말하였다.]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대저 몸을 멸하는 것은 큰 근심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지혜를 끊는 것은 길이 수고함을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령(生靈)들을 달린 사마귀같이 의논하고 성품을 왕락(王樂)에서 없애려는 것이 대개 노자와 장자의 말이다.
또는 면면(綿綿)하게 항상 머무르니 고황(古皇)이 곧 죽지 않고 끝마치지 아니함이요, 승승(繩繩)하여 이름이 없으니 노자가 곧 다시 물건 없는 데로 돌아간다.
그러나 항상 있다는 것은 길이 없다는 일컬음이 아니요, 물건이 없다는 것은 어찌 장생(長生)의 교화이겠는가?
다시 그의 깊고 얕음을 밝히겠다.
만일 약함을 보전하고 암컷을 지키는 글과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 논에 이르러서는 덧없는 인생이 한량이 있음을 살피고 지혜의 물은 가없음을 탄식하였다. 그래서 그 크기를 말하면 구역 가운데 국한되어 있으며 도균(陶鈞)하여도 성품의 분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대개 그의 뜻이다.
그러나 대각(大覺)께서는 다함없는 인연을 여시고 원극(圓極)의 비춤을 뛰어나서 미미(微微)함을 헤아리면 절소(絶鄛)에 다하고 이치를 궁구하면 방소가 없음에 공재(控在)하여서 아름다운 기운이 합하여 함께 어울리고 자금색의 몸이 태허(太虛)와 더불어 견줄 만큼 튼튼하며 그 양을 말하면 숭산(嵩山)과 화산(華山)이 개미집과는 높이가 다르고, 큰 바다와 조그만 우물물의 그 깊이가 다른 것과 같다.
그러니 도교가 하열함의 두 번째이다.”
3) 외적인 측면에서 방위의 동ㆍ서가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대저 동쪽과 서쪽의 두 방위는 스스로 음과 양의 구별이 있으며, 왼쪽과 오른쪽의 두 위치는 문득 인(仁)과 의(義)의 다름을 이루는 것이다.
인은 오직 길이 착한 것이요, 양은 또 생과 통하며, 의는 마름하여 이루어짐을 주관하고, 음은 숙살(肅殺)함을 논한다.
그러기에 두 기운이 교(敎)로 나타날 적에는 음이 양만 같지 못한 것이요, 다섯 덕으로 말하면 인은 심원하고 의는 천근(淺近)한 것이니,
이는 방위의 다름의 세 번째이다.”
[주] 탄(彈)이 말하였다.
“건(乾)은 양이 되고 아버지가 되며 위치는 서북이고, 곤(坤)은 음이 되고 어머니가 되면서 서남쪽에 위치한다.
북쪽에 있으면 성음(盛陰)의 곳이니 그러기에 중남(中男)의 위치가 되는 것이요,
남쪽에 있으면 성양(盛陽)의 땅이니 그러기에 거꾸로 중녀(中女)의 거처가 된다.
남자와 여자가 이미 일정한 방위가 없으며 음과 양이 항상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목(木)은 토(土)를 대적[賊]하여서 기(己)로써 갑(甲)의 아내로 삼는다.
금(金)은 목(木)을 이기므로 을(乙)로써 경(庚)의 아내를 삼는다.
건(乾)은 이미 지위가 높기에 이에 서북쪽에 있게 되고 진(震)은 능히 나와서 임금이 된다. 그러기에 다시 동쪽에 있게 된다.
예(禮)의 자리도 만일 남북 쪽에 깔면 곧 서쪽으로써 위가 되는 것이니 건의 높음에 순응함을 말한다.
그리고 동서쪽으로 벌리면 곧 남쪽이 위가 되니 그것은 양이 성함을 따른 것이다. 우열함과 열등함이 스스로 나타난다 함이 이를 이름이겠다.”
내적인 측면에서 덕의 지위가 높고 낮음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 말하였다.
“대저 금(金)이 지아비고 목(木)이 아내이니 음과 양을 뉘라서 영원히 잡겠으며, 이(离)가 남쪽이요, 감(坎)이 북쪽이니 남자와 여자가 일정한 방소가 없다.
그러기에 자방(子方)과 오방(午方)의 동쪽이 양이 되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동쪽에서 남을 취한 것이요, 자방과 오방의 서쪽이 음이 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쪽에서 늙음을 말한 것이니, 이는 곧 생(生)과 노(老)로써 음과 양을 판정한 것이요, 높고 낮음으로써 뛰어나고 용렬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가령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쪽에 있다 해서 응당 자식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되고 남자와 여자가 동쪽에 있다 해서 어찌 감히 아버지를 높이리오.
인(仁)은 의(義)가 아니면 이루지 못하고 의는 인이 아니면 기르지 못한다.
그러기에 아들이 동쪽에 있는 것은 인이요, 아버지가 서쪽에 있는 것은 의이니 곳을 따라 기준을 세운 것이지만 큰 방소에는 미혹하지 말 것이다.
진실로 나는 곳을 국집하여 판정하고 봉역(封域)에 얽매여 제한한다면 또한 마땅히 서강(西羌)에서 큰 우임금이 나와야 하니, 인범(仁汎)의 덕이 갑작스럽게 비게 되고 동이(東夷)에서 문왕이 나와야 하니 재성(裁成)의 가르침이 영원히 빠질 것이다.
황하(黃河)를 마시고 한수(漢水)를 들이는 것은 추애(湫隘)의 더러운 곳이 아닐 것이요,
위수(渭水)에 뜨고 경수(涇水)를 의거하면 제황(帝皇)의 신택(神宅)이 없을 것이다.
[앞에서는 삿된 것을 꺾고 다음에는 바름을 감탄한 것이다.]
그런데 대저 석가모니는 하늘 위와 땅의 아래에 개연(介然)히 그 높은 데 있으시고 삼계와 6도(道)에 뛰어나게 그의 묘함을 미루었다.
더구나 소승인 2승(乘)의 무리들과 대승의 마음인 5품(品)의 무리들이 비유하면 여러 별들이 북극성[北辰]에게, 두 손을 마주잡고 공경을 표하며 금산(金山)이 푸른 바다에 빛나는 것과 같아서 족히 사슴의 머리에 코끼리의 얼굴을 한 것들로 하여금 교항(矯抗)하는 마음을 굽히게 하고 6이(異)와 10선(仙)으로 하여금 복응(伏膺)의 예를 펴게 한다.
그러니 어찌 서갑(徐甲)을 용렬한 남자라고 꺾고 윤희(尹喜)를 관의 아전이라고 인도하는 데 그치겠는가? 이와 어금니의 사이에 품학(稟學)한다.
[주] 『고사전』에
‘상종자(常樅子)가 인하여 그 입을 벌리니
노자가 ≺이(齒)는 강하므로 망하고 혀는 부드러워서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하니,
상종자가 ≺다하였구나. 이름을 장사(藏史)의 사이에 거두겠구나≻라고 하였다’ 하였다.
그러기에 도교가 용렬한 것의 세 번째이다.”
4) 외적인 측면에서 화(華)와 이(夷)에게 가서 교화함이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대저 화(華)와 이(夷)는 예의가 높고 낮음에 격(隔)하였음은 저술에 전신(典信)이 있고, 변(邊)과 정(正)은 도의가 이기고 지는 데 어긋나는 것이 사책(史冊)에 있다.
그러기에 융적(戎狄)의 임금이 참람되게 왕을 일컬음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초(楚)나라와 월(越)나라의 임금이 스스로 낮추어서 자(子)라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오랑캐의 미미한 장인(匠人)이 우리 천왕(天王)의 큰 스승을 필적하겠는가?
이것이 화와 이의 다름의 네 번째의 이유이다.”
내적으로 교화하는 인연에 넓음과 좁음이 있음
[노자는 구복(九服)에서 맑고 빈 교화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5천의 교장(敎章)을 말하였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삼계를 두루 아는 법의 임금이 되었다. 그래서 8만 가지의 묘한 법장(法藏)을 열었다.]
내적으로 깨우쳐 말하였다.
“조사하여 보니, 『도덕경(道德經)』의 서문에
‘노자가 도를 닦아 스스로 숨어서 무명(無名)에 힘썼기에 주(周)나라가 쇠하자 함곡관을 나가서 두 편의 가르침을 지었다’ 하였다.
그러나 주서(周書)의 전모(典謨)에는 노자가 지은 것이 없다.
조사하여 보니, 『이교론(二敎論)』 등에
‘5천의 글은 용성(容成)이 말한 것인데 노자가 윤희를 위하여 말하였으니 대개 기술(記述)하고 창작(創作)은 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또 ‘노자의 직위가 오직 장사(藏史)로서 지위가 아형(阿衡)이 아니니 융성한 주나라의 스승이라 함은 장차 없음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앞의 것은 삿됨을 꺾은 것이요, 뒤의 것은 바름을 찬탄한 것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가유라위국에 태어나셔서 바탕을 왕궁에 의탁하셨다. 지혜는 실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도는 오직 두루 깨달으셨다. 그래서 혜명(惠明)을 백억(百億) 세계에 연설하시고 법운(法雲)을 대천(大千) 세계에 펴셨으니 신령스러운 은택이 시방세계에 두루 하고 신기하신 교화가 4표(表)에 크셨다.
높은 벼랑과 높은 벽처럼 많은 경전과 용이 살고 코끼리가 짊어진 경문이 여기에 가득 찼기에 비록 상홍양(桑弘羊)과 같은 계산 잘하는 기술로도 그 작은 겨자만큼도 기록하지 못할 것이요, 추연(鄒衍)과 같이 하늘을 말하는 의론으로도 그 한 방울도 의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노자의 80의 장전(章典)과 5천(千)의 글만이겠는가?
한스러운 것은 그대가 한 길 되는 담을 엿보지 못하여서 무숙(武叔)의 헐뜯음이 있게 되니 또한 다시 해와 달의 잘못이라 하겠는가? 다만 그의 알지 못함을 생각할 뿐이다.
그러기에 도교가 하열하다는 네 번째의 이유이다.”
5) 외적인 측면에서 태어남에 오래 살고 일찍 죽음이 있는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대저 노자는 도가 환중(環中)에 계합하여 허공과 더불어 양(量)이 같으며 신(神)이 상(象)의 밖으로 초월하기에 변화를 따르면서 다함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수명이 범부와 같지 않고 숨고 나타남이 거연(居然)히 세속과 다르다.
석가모니는 생애가 한정이 있고 수명이 기한을 재촉하며 한 번 멸하고서 다시 살지 못하였다.
[주] 탄(彈)은
‘노자가 이미 장생(長生)한다고 하였으니 오늘날에 어느 군현(郡縣)에 나서 있는가?’ 하였다.
석가모니의 수명이 80이라 하였는데 그와 비교하여 어찌 위태[危脆]롭다 하는가?
이는 오래 살고 일찍 죽음이 있는 다른 점 다섯 번째이다.”
내적으로 오래 살고 일찍 죽음에 느림과 빠름이 있다.
[노자에 대해서는 『사기(史記)』에 ‘주나라 태사 담(聃)은 2백30여 년을 살았다’ 하였고,
석가모니에 대해서는 『법화경(法華經)』에 ‘5백만억 아승기와 미진수(微塵數)의 겁을 받았다’ 하였다.]
내적으로 깨우쳐 말하였다.
『도덕경』의 서문에
‘이씨를 품으니 이씨가 태에 있은 지 81년이라’ 하였다.
대개 태양의 명운이 1백60년이니 이씨가 태에 있은 지 이미 그 반이 지났다. 세 번 5백을 변하였다 하니, 이는 억지로 희귀하고 괴이함을 일컬음이 아니겠는가?
태사공(太史公)은
‘초나라 노래자(老萊子)와 주나라 태사 담(聃)을 다 노자라고 하였다’고 했다.
혹은 2백30년이라고 하였고, 혹은 1백60세라고 하였다.
황보밀은
‘제자(諸子)의 글에서 노자에 관하여 가까운 것은 믿기 어렵다. 오직 진시(秦矢)가 조문하였다 하니 노자가 죽은 것은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은 곡신(谷神)이 죽지 않았으니 이를 현빈(玄牝)이라 이른다고 한 것을 보고서 일을 좋아하는 자들이 드디어 가탁(假託)하였다’ 하였다.
『신선전』에는
‘울화자(鬱華子)ㆍ녹회자(錄回子)ㆍ부예자(傅豫子)ㆍ태성자(太成子)ㆍ적정자(赤精子)ㆍ무성자(武成子)ㆍ윤수자(尹壽子)ㆍ진행자(眞行子)ㆍ석사자(錫射子)ㆍ반색선생(反色先生) 등 이것이 모두 노자의 몸이라 한 것은 다 부스러기의 글만 본 것이요, 신선의 정경(正經)에는 나오지 않았으니 근거하여 쓴 것이 못된다.
대저 하늘과 땅이 있으면 도술(道術)이 있으니 도술의 선비들이 어느 때인들 잠시라도 없겠는가? 그러니 어찌 하나의 노자뿐이겠는가?
이는 다 늦게 배우는 무리들이 기이함을 좋아하고 이상함을 숭상하여 진실로 노자를 추숭(推嵩)하여 무한(無限)하게 한 것이요, 얕은 소견의 도사들이 노자로써 신기하고 이상하게 하여서 후세에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궤설(詭說)을 한 것이다’ 하였으니,
참답구나. 이 말이여, 영원히 거울삼을 만하다.
대저 묘한 즐거움은 3덕(德)을 의뢰하여서 이에 법신(法身)을 이루고 5분(分)의 세우는 것이 된다. 이로써 생과 멸을 한꺼번에 보내고 원각(圓覺)의 성품이 이에 드러나며 공(空)과 유(有)를 겸하여 융통(融通)하여서 영의(靈儀)의 묘함이 이에 있다. 그러기에 형체가 보고 들음의 밖을 뛰어넘고 이름이 정진(情塵)의 밖에서 쉬게 된다.
담연(湛然)하게 항상 즐거우니 문계(文系)가 아직 전표(詮表)하지 못한 것이요, 빼어나게 항상 밝으니 언상(言象)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 열매가 여러 번 익어도 연명(延命)하는 것이 아니요, 동쪽 바다와 뽕나무 밭이 자주 변하여도 영생(永生)하는 것이 아니다.
5운(雲)과 9전(轉)이 노끈에 새가 잠깐 머무는 것을 슬퍼하고 휘날리는 눈과 검은 서리가 틈을 지나는 노는 말에 비기어서 견고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종규(終馗)는 대춘(大椿)처럼 오래감이 없고 하루살이는 거북과 고니[鵠]처럼 오래 사는 것이 드물다.
이것이 도교가 열등한 것의 다섯 번째이다.”
6) 외적인 측면에서 태어난 것이 앞뒤가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는 자가 말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두 경전에 각기 출생에 대한 말이 있어서 혹은 겁마다 세상에 출현한다 하여 다투어 이보다 앞섬이 없다 하였고, 혹은 대(代)마다 출생한다 하여 오래 전에 출생하였음을 다투어 말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아득하고 먼 것을 취하여 증득하여 알기 어렵다.
그러기에 이제 전하는 역사에 의지하여 그가 출생한 시대를 정하겠다. 인륜(人倫)으로 말하면 늙은이가 높고 젊은이가 낮으며, 향당(鄕黨)으로 말하여도 형을 어른으로 하고 아우를 어린이로 하니,
이것이 먼저 나고 뒤에 남이 다른 것으로 여섯 번째이다.”
내적으로 교화한 행적에 먼저 하고 뒤에 함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융성한 주나라 초기이고 노자가 난 것은 주나라[姬季]의 말기이다.
그러므로 출생한 해로 봐도 2백여 년의 차이가 있고 임금의 세대로 보아도 10여 임금의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붉은 기운과 푸른 소의 이야기는 소왕(昭王)과 장왕(莊王)의 세대가 아닐 것이요,
신기한 광명과 흰 코끼리의 이야기는 환왕(桓王)과 경왕(景王)의 해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욱한 안개가 하늘을 어둡게 하고 혼탁한 흐름이 땅을 덮으며 문중(文仲)이 거꾸로 제사하였어도 공자는 그를 지혜롭지 못하다고 하지 않았으며, 자금(子禽)이 성인을 헐뜯어도 자공[賜]이 그의 실언(失言)을 기롱하지 않았다.
말에 티가 있는 것은 갈아 없애기 어려워서 사마(駟馬)의 빠름도 혀를 따르지 못한다 함이 참으로 헛말이 아니다.
[먼저는 삿된 것을 꺾고 뒤에는 성인임을 찬탄하였다.]
대저 행적을 낮추어서 범부에 응하였기에 바탕을 인간에 의지하여 태어나서 기틀을 밟아 중생을 교화하여 수명을 백 년을 함께하였다. 그러기에 과(果)가 인(因)의 닦음에 국한되었다.
신상(信相)이 이로 말미암아 의혹을 일으켰으며 연령은 짧으나 교화는 넓다. 미륵보살이 이 때문에 의심을 일으켰다.
그러나 큰 멧부리는 저울추로 헤아릴 것이 아니니 수명이 오래되어 더욱 먼 데 비유한 것이요, 현묘한 허공은 길이나 자로서 판단할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겁(劫)은 멀어도 다함이 없음을 비긴 것이다.
그러니 어찌 사혈(蛇穴)에서 신선되기를 구하나 도리어 요절하고 예영(蜺纓)이 약을 기다렸으나 연령을 연장하지 못함과 같으리오.
대개 솟아오르는 뱁새가 붕새와 함께 우연히 높이 날고 노둔한 말이 기마(驥馬)와 더불어서 멀리 감을 다투는 격이다.
그러기에 도교의 열등함이 여섯 번째이다.”
7) 외적인 측면에서 신(神)을 옮김과 고요함에 돌아감이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노자는 처음 탄생하는 날부터 이미 범부들과 달랐으며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진실로 세상과 달랐다. 그러기에 서쪽으로 유사(流沙)에 갈 적에 길이 함곡관을 지나면서 푸른 소를 타고 경계를 나갔고 자색 기운이 하늘에 떠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었고 방역(方域)을 알지 못하였다.
석가모니는 사위국(舍衛國)에서 위독한 병을 앓았고 사라쌍수에서 운명을 고하였으며, 관을 불사르고 시체를 화장한 것이 도리어 오랑캐의 법대로 여서 기운이 다하고 신이 가는 등 모든 것이 범부와 다르지 않았으니,
이는 세상을 떠나가는 것에 다름이 있는 일곱 번째이다.”
내적으로 옮기고 사퇴하는 데 나타남과 숨음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도덕경』의 서문에
‘노자는 이씨(李氏)의 태에 형체를 의탁하여서 사람에게 처음과 끝이 있는 뜻을 보였다’ 했으니,
이것이 어찌 생과 멸이 아니겠는가?
이는 장자(莊子)가 말한 ‘노담이 죽음에 진일이 조문했다’ 함이 이것이다.
그런데 노자가 날 적에는 뇌향(賴鄕)을 의지하였고 죽어서는 괴리(槐里)로 나갔다.
그런데도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다 하니 어찌 그리 장님인가?
[먼저는 삿된 것을 꺾고 뒤에는 바름을 찬탄하였다.]
석가모니는 큰 자비로 교화함이 원만하고 덕이 원만하였기에 인연이 끝나고 기틀이 없어지니, 어진 배가 두 하수(河水:尼連禪河와 跋提河)에 빠지고 지혜의 해가 쌍수(雙樹)에 잠긴 것 같았다.
그 6천(天)과 8국(國)의 무리들과 법의 무리와 성인의 무리들이 또한 번개가 합한 듯이 바람처럼 달려서 구름처럼 모였다. 신령한 치아(齒牙)와 상서로운 뼈는 뛰어난 복을 다른 지방에까지 빛냈고 감색의 머리털과 붉은 손톱과 발톱은 신비한 공덕을 절대(絶代)에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알겠다. 오지 않고 가지 않으면서 널리 제도하는 덕이 훌륭하고, 나타나지 않고 어둡지 않으면서 성화(聲華)의 풍도가 성하다. 그러니 어찌 정호(鼎湖)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나 교산(嶠山)의 무덤이 홀로 있는 것이나 유사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여 부풍(扶風)의 무덤에 나무만 성한 것과 같으리오.
[주] 『황람(皇覽)』에
‘황제(黃帝)의 무덤은 교산에 있고 노자의 무덤은 부풍에 있다’ 하였다.
그러니 도교의 열등함의 일곱 번째이다.”
8) 외적인 측면에서 성현(聖賢)의 상호가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대저 성인의 묘한 모습은 본래 범부와 다르다. 석가모니는 여덟 가지 채색과 두 개의 눈동자와 하수의 눈과 바다의 입과 용의 얼굴과 학의 걸음과 반우(反宇)와 기호(奇毫)의 형상이 있다. 심지어 고수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오랑캐 사람의 본 모양이요, 코가 높고 눈이 깊은 것은 오랑캐들의 일상(日常)의 모습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 성인의 기특한 모양을 쓰는 것과 같겠는가?
만일 부처를 섬겨서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면 중국의 사녀(士女)들이 도리어 오랑캐의 모습이 될 것이니
이는 상호가 다른 것의 여덟 번째이다.”
내적으로 상호에 적고 많음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성인들의 모습과 바탕은 일정함이 없어서 방위를 따라 묘함을 나타낸다.
그 때문에 뱀의 몸과 용의 머리를 한 성인은 도가 상황(上皇)으로 화목하였으며,
눈동자가 둘이요, 젖이 넷인 임금은 덕이 중고(中古)에 빛났으며,
주공(周公)이 토하고 머리채를 잡은 것은 기린(麒麟)의 한 털과 같으며,
우(禹)임금의 귀가 어깨에 나란히 있음은 곤륜산의 한 조각 옥과 같아서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앞의 것은 의심을 풀고 뒤의 것은 바름을 찬탄한 것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법신(法身)이 여여(如如)한 것과 같아 방위가 없다. 그러기에 이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으며, 교화하는 몸은 물건을 응함을 말미암는다. 그러기에 묘한 바탕이 이름과 말에 관계되겠는가?
그러기에 백호(白毫)와 감색 눈동자의 빛남과 과일 같은 입술과 꽃 같은 눈의 고움과 만자(萬字)와 일천 거폭(車輻)의 모습과 해와 달의 채색의 뛰어남과 색이 아니면서 묘한 색의 얼굴과 모습을 여의면서 모습을 갖춘 몸은 박구(薄拘)는 있으면서 갖추지 못하였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은 갖추어 있지만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주] 『살차경(薩遮經)』에서
‘색(色)이 아니면서 성품을 내는 뛰어남과 여러 상호에서 백복(百福)의 뛰어남은 80가지의 묘한 뛰어남으로써 부처님 해의 몸을 장엄하였다’고 했다.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에서 4생(生) 중생들이 모두 전륜성왕을 이루고,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부처님의 한 털구멍의 공덕을 이루며,
거기서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하나의 좋은 공덕을 이루며,
거기서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상호 하나의 공덕을 이루며,
거기서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의 공덕을 이루며,
거기서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하나의 무견정상상(無見頂上相)의 공덕을 이루며,
거기서 다시 1백 배를 더하여야 비로소 하나의 범려성(梵蠡聲)의 공덕을 이루게 된다.
그러기에 아사타(阿私陀) 신선은 이를 한 번 보고서 스스로 슬퍼하여 쇠한 잎이 되고 또 나이 많음을 슬퍼하였으며, 범지(梵志)는 이를 보고서 느낌이 나서 신령스러운 꽃을 드물게 만남을 감탄하였다. 그러니 어찌 다섯을 밟고 열을 잡아서 기특함을 표하며 몽기(蒙倛)와 단치(斷菑)로서 이상함을 나타내는 데 그치겠는가?
[주] 조식(曹植)의 『상론(相論)』에서
‘공자의 얼굴은 몽기와 같으며 주공의 형체는 단치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양문(陽文)이 종멸(鬷蔑)과 고움을 견주겠으며 맹취(孟娶)가 농염(儱廉)과 고움을 다투겠는가?
그러므로 도교가 하열한 것이 여덟 번째이다.”
9) 외적인 측면에서 위의를 표시한 것이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노자의 가르침은 행동거지와 위의와 절하고 엎드리고 읍하고 사양하는 것과 검은 수건과 누런 갈옷[褐]과 홀(笏)을 가짐과 신을 끄는 법상(法象)의 표함이 분명하니 대개 중국의 옛 제도이다.
[주] ‘도사는 원래 유교의 복식(服飾)을 입어서 세속 사람과 다르지 않았는데 주나라 무왕(武王)의 대에 이르러 비로소 횡피(橫披)가 있었다. 스물네 바늘을 자수하니 그것은 음과 양의 24기운에 응한 것으로서 사람의 뜻에서 나왔고 또한 전거가 없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가사(袈裟)가 왼쪽으로 걸리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었으며 전 폭이 가로 된 치마요, 반 조각 기지(奇支)의 옷이며 머리를 깎고 정수리를 드러내며 개같이 거좌(踞坐)하고 여우같이 걸터앉으며 인륜에 참예하지 않으니 참으로 되놈의 풍속이다. 그러니 어찌 이러한 모양을 써서 우리의 위의에 필적하겠는가?
이것이 용복(容服)의 다른 아홉 번째이다.”
내적으로 위의에 같고 다름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도교에서 옥을 차고 금으로 웃옷을 하는 것은 땔나무를 하는 시골에서는 베풀 수가 없고 연꽃 옷과 혜초(蕙草)의 띠는 임금의 뜰을 밟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응기(應器)는 영묘(靈廟)의 진설하는 것이 아니요, 옷을 물들인 것은 조종(朝宗)의 복식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도를 타는 자는 혹은 기틀을 순응하여 물건에 법도가 되고, 덕을 의거하는 자는 혹은 시대를 바로잡고 세상을 가르친다.
이 때문에 머리를 깎고 문신(文身)을 하였어도 공자는 태백(太伯)이 착하다고 칭찬하였으며 보통을 반대하여 도에 합하였어도 당시의 사람들은 당체(棠棣)의 꽃을 아름답게 여겼다. 하물며 성품에 돌아와서 신(神)을 맑히고 범부를 막으며 성인의 지위를 밟으면서 그의 얼굴과 복장을 다르지 않게 하는 이는 없다. 그래서 의복으로 하여금 복전(福田)을 상(像)하고 기량이 법과 같이 하여서 거문고가 귀를 매혹하지 않으며 붉은 빛과 자주빛이 눈을 현혹함이 없으며 가벼운 가죽 옷과 살찐 말도 그의 몸에 친압(親押)함이 없으며 세력의 다툼이 그의 마음을 놀라게 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불경에서
‘아라한(阿羅漢)은 진인(眞人)이다. 소리와 빛이 더럽히지 못하고 영화와 지위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니 어찌 반드시 할관(鶡冠)과 작변(雀弁)으로 도리어 얽매이고 스스로 결박하며 합치(磕齒)와 허기(噓氣)로서 도라고 일컫겠는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면 갈수록 멀어지고 배에다 표시를 하고 검을 찾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루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도교가 열등한 것의 아홉 번째이다.”
10) 외적인 측면에서 규모를 말한 역(逆)과 순(順)이 다른 점
외적으로 논하여 말하였다.
“노자는 모범을 지음이 오직 효성스럽고 오직 충성되며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을 제도함이 극히 자애롭다. 그 때문에 성교(聲敎)가 길이 전하여져서 뭇 임금들이 고치지 않고 현묘한 바람이 길이 미쳐서 만고(萬古)에 어긋남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나라를 다스리고 집을 다스려서 항상 모범이 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의(義)를 버리고 어버이를 버려서 어질지 못하고 효성스럽지 못하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은 아버지를 죽였어도 도리어 죄가 없음을 얻었으며, 조달(調達)은 형을 쏘았어도 죄를 얻었다 함을 듣지 못하였다.
이로써 범속(凡俗)을 제도하면 다시 긴 악이 될 것이요, 이로써 세상의 모범으로 삼으면 어찌 착함을 내리오.
이는 역과 순이 다른 열 번째이다.”
내적으로 법문에 점(漸)과 돈(頓)이 있음
내적으로 깨우쳐서 말하였다.
“의리는 곧 도덕의 낮은 것이요, 예의는 충성과 믿음이 엷은 데에서 생겨난다. 그러기에 세세한 어짊은 필부에게 기롱받았고, 큰 효도는 빠트리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흉한 일을 당하여 노래하고 웃는 것은 중국의 용모에 어긋나고 상(喪)을 임하여 물동이를 두드리는 것은 중국 풍속의 교훈이 아닌 것이다.
[원양(原壤)은 어머니가 죽자 관을 타고 노래하였는데, 공자가 제사를 도우면서 꾸짖지 않았으며, 자상(子桑)이 죽음에 자공(子貢)이 조문하였는데 네 사람이 서로 보고 웃었으며,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음에 물동이를 치면서 노래하였다.]
그러기에 효도로써 가르치는 것은 천하의 사람의 아비가 된 이를 공경함이요, 충성으로써 가르치는 것은 천하의 사람의 임금이 된 이를 공경함이다. 그러니 교화가 1만 나라에 두루하는 것은 이에 명벽(明辟)의 지극한 어짊이요, 사해에 형법이 되는 것은 실로 성왕(聖王)의 큰 효도이다.
불경에
‘식(識)의 체가 윤회하니 6취(趣)가 아버지와 어머니 아님이 없고 나고 죽음이 변역하니 삼계에서 뉘라서 원수와 친함을 가리겠는가?’ 하였으며,
또 ‘무명(無明)이 지혜의 눈을 덮으면 나고 죽음의 가운데 오고 가니, 가고 오면서 짓는 것이 많아서 서로서로 아버지와 아들이 되며, 원수와 친한 이가 자주 아는 이가 되고, 아는 이가 자주 원수와 친함이 된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사문(沙門)들이 세속을 버리고 진(眞)에 나가는 것은 서류(庶類)를 천속(天屬)에 고르게 함이요, 영화를 버리고 도에 나가는 것은 기운을 머금은 것[含氣]들을 자기 어버이[己親]와 같이하는 것이다.
[널리 그치는 마음을 행하는 것이 널리 친하는 뜻에 평등한 것이다.]
또 도는 청허(淸虛)함을 주장하는데 그대는 은애(恩愛)를 중하게 여기고, 법은 평등을 주장하는데 그대는 원수와 친함을 가리니 어찌 미혹함이 아니겠는가?
형세가 다투어 어버이를 버리는 것은 글과 역사에 분명히 썼으니 제나라 환공(桓公)과 초나라 목공(穆公)이 그러한 무리들이다. 그러면서 성인을 헐뜯으려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도교의 열등한 것이 열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