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 길, 느린 여로
터키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왕복 1,600여 킬로미터(편도 5,100마일). 하늘길로만 거의 하루를 보냈다. 갈 때 12시간, 올 때 11시간. 그러나 그 긴 비행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하늘 높이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고 있지만 기내는 마치 살롱에 와 앉아 있듯 고즈넉하기만 했다. 장거리 비행을 고려한 배려가 돋보였다. 우선 국적기(대한항공)라 낯익은 승무원, 입에 맞는 음식에 부부끼리 창가에 배석해 주어 마음을 편하게 했고, 취향에 맞게 10여개의 음악 방송을 골라 들을 땐 음악감상실에 와 있는듯, 그리고 두 편의 영화를 상연할 때는 극장에 와 있는듯 천상의 카페가 마냥 행복하게 해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티벳 상공 히말라야 능선 위를 나를 때는 그 끝없이 펼쳐진 설산과 운해를 내려다보며 환성을 지를 뻔했고, 밤에 이스탄불에 내리고 뜰 때에는 온갖 보석을 흩뿌린듯한 항구의 야경이 그토록 황홀할 수가 없었다.
육로 또한 끝이 없었다. 명색이 터키 일주라 그런지 버스로만도 3,200여 킬로를 달렸다. 남한 면적의 8배가 얼마나 넓은 것인가를 하루에 12시간, 또 눈 때문에 13시간을 달리면서 몸소 체험했다. 그러나 버스는 지칠 줄 모르고 속도를 내어 달리지만 그 안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노라면 마치 인생을 관조하듯이 느리게 더욱 느리게 엣날 파노라마처럼 마음 속의 여로는 그 안으로 더욱 희열을 키웠다. 빠름 속에 느끼는 느림, 그 풍광들이 주는 편안함이야말로 먼 길, 느린 여로의 백미였다고나 할까,
2. 화이트,그린. 그리고 블루
요번 터키 여행은 삼색의 여행이었다. 봄과 겨울이 공존해서인가, 따듯한 남녘은 완전 봄이요 산 너머 북녘은 한겨울이어서 그 너른 들판의 파릇파릇함과 온통 순백의 은세계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은 마악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앙카라로 가는 길은 겨울이었다. 아나톨리아 고원지대-해발 1.800미터라고 했던가- 를 지날 때는 온통 은빛 세상이었다. 앞도 옆도 뒤도 위도 모두가 하얀 세계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이보다 더 눈꽃 나라였을까. 광활한 고원, 찻길마저 하얗게 눈에 쌓여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하얀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은세계가 다섯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모두들 평생 본 눈보다 많이 봤다며 탄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로 가며 넘은 토로소산맥은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속을 누비고 다니는듯 또 다른 겨울의 장관이었다. 오래된 침엽수마다 힘에 버거울만치 무거운 눈옷을 걸치고 있어 자연과 기후가 빚어내는 오묘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아나톨리아의 아득하기만 한 눈길과 함께 이 길은 그림같은 설화가 한없이 이어져 4,000여 미터의 고산이 주는 아슬아슬함과 13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주는 피로함을 눈녹듯이 씻어내 주었다.
그러나 그 산맥을 넘자 언제 겨울이었냐는듯 따사로운 봄기운이 감싸안았다. 지중해 연안은 바야흐로 완연 봄이었고 녹색 세상이었다. 거리마다 탐스럽게 열린 오렌지 열매들,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 에베소,아이발릭. 그리고 트로이를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그린 일색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보리밭, 포도주 마을인 쉬린제로 가며 본 올리브나무들. 들판과 산들이 하나 가득 초록 올리브로 휘감겨 있었고 그 밑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간혹 보리밭 사이로 살구꽃을 닮은 헤이즐럿이 새색씨마냥 수줍게 웃고 있어 괜시리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디 그뿐이랴. 이에 질세라 길 한쪽으로는 코발트빛 바다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에게왕 부자의 슬픈 전설을 지닌 에게해와 다르다넬스 해협, 그리고 마르마라해가 쪽빛으로 쪽빛 하늘과 맞닿아 눈에 시리도록 블루의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콘야로 넘어오면서 본 큰 푸른 호수와 99가지의 푸른 색 타일만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블루 모스크와 함께 이 블루의 느낌은 강렬한 것이어서 더러는 슬픔과 외로움을 자아낸다는 그 속에 풍덩 빠져서 한없이 울고 싶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눈물은 희로애락이 뒤범벅된 인간만이 흘릴 수 있는 보석을 닮은, 차라리 희열은 아닐런지....
3,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터키는 슬픈 나라다. 수없이 명멸한 왕조가 그렇고 빼앗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적들이 그렇다. 달랑 기둥 한 개만 남아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 그리고 폐허에 가까운 에베소의 옛 흔적들. 그러나 세계 곳곳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 자체가 또한 볼거리이기에. 이슬람에서 기독교, 다시 이슬람으로 넘어오면서 덧칠해진 돌마바흐체 궁전에 남아 있는 상처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일본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터키는 지금 외롭다. 아시아와 유럽에 땅이 걸쳐 있듯이 현재의 터키는 어정쩡하다. 군부 세력이 국정을 좌지우지해 예산의 거의 모두가 거기에 편중되는 바람에 복지건 교육이건 백년대계에 대비할 여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대도시 등이 있는 유럽쪽 트라키아는 국민소득이 800달러쯤 된다지만 아시아 쪽에 속한 아나톨리아 지역, 특히 분쟁의 진원지인 쿠르드족 지역은 60달러에 불과하단다. 이 격차는 너무 뚜렷해서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등지에서 본 터키인들은 키도 크고 유럽인을 보는 듯했지만 아시아 쪽은 키도 자그만한 데다가 특히 로마인의 탄압을 피해 건설했다는 지하 20층에 달하는 지하도시(데린구유)가 있는 카파도키아에서는 남루하고 가여워 보이는 아이들이 사탕을 달라고 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한국동란 이후 <기브 미 껌>을 외쳐대며 미군 찦차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우리네처럼.
그러나 터키의 내일은 밝다. 아직 EU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천혜의 풍부한 자원과 역사적인 관광 자원, 그리고 동과 서를 서로 이어줄 수 있는 지리적인 여건들이 그렇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본 신도시와 구도시,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거대한 사장교가 상징적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그 아름다운 다리처럼 동과 서가 함께 만나는 징검다리 역할을 터키가 해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교육에 좀더 투자하고 농업 국가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이룬다면, 그리고 새마을운동처럼 농촌 곳곳에서 <잘살아 보세>를 소리 높여 부른다면 머지 않아 제법 잘사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스탄불 시내 100년 전통의 과자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한테서 읽을 수 있었다. 메모지에 한국말, 일본말 등 빼곡히 적어가며 환하고 즐겁게 손님을 맞는 모습에서 우방국 터키의 밝은 내일을 미리 볼 수 있었다.
4. 터키, 이젠 추억으로 남다
터키인은 빵이 주식이다. 그 넓디넓은 밀밭을 보면 담박 알 수 있다. 우리가 시골에 가면 논만 보이고 쌀을 주식으로 하듯이. 그래선지 아흐레 내내 빵이 메뉴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종류도 많고 곁들여 먹는 여러가지가 어우러져 평소 빵을 잘 안 먹는 나도 그런대로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여행 끝무렵에는 다소 질리긴 했지만. 빵과 함께 토마토와 오이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풍부한 야채와 소스. 간혹 풋고추도 선보여 김치에 굶주린 뱃속을 다소나마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케밥이 일미다. 온갖 구이를 다 케밥이라 부르는데 우리네 숯불구이처럼 닭꼬치 구이가 별미였고, 항아리 케밥도 맛있었다. 한국 음식점이 전무하다시피해서-배추, 고추장 등 우리 농산물 수요가 없어 수입상이 없단다-딱 한 번 연변에서 모셔왔다는주방장이 있는 이스탄불 식당가에서 비스무리한 무늬만 한식을 맛봤을 뿐이다. 쇠고기 불고기에 양배추로 얼버무린 김치가 고작이었지만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올 때 기내에서 고추장 팍팍 버무려 먹은 비빔밥이 얼마나 개운하던지.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스탄불 거리의 아이스크림 장수다. 온갖 묘기를 부리며 즐겁게 만드는 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명함도 있고 텔레비전에도 나왔다며 자랑이 끝이 없는데 그게 오히려 귀여웠다. 역시 명물다웠다. 그 아이스크림 장수처럼 어시장에서 만난 젊은 생선가게 주인은 이국인이 반가운지 환한 미소와 너스레로 전혀 타국이라는 거리감을 주지 않았다. 특히 성 소피아 사원에서 본 어린 여자아이는 마치 인형처럼 예쁘게 생겨 너도나도 사진을 찍자는 통에 나중엔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거미줄처럼 18개의 출입구와 4천 개 이상의 점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헌칠해서 마치 의상 쇼에서 모델들을 보는 듯했다. 왜 그리도 눈은 깊고도 푸른지, 지중해의 쪽빛이 그들 눈 속에 호수처럼 들어앉아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끌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 주는 느낌은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저 투르크 용사처럼 씩씩한 모습으로 저벅버벅 다가와 그 억센 팔에 휘감아 안겨 봤으면 하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혹 누구는 그 푸른 눈망울이 너무나도 여리고 슬퍼 보여 따스하게 보듬어 주고 또 함께 실컷 울고 싶다고도 한단다.
그리하여 그 눈망울에 마술이 걸린 사람들은 또다시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몸살을 앓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들 중엔 다혈질도 많아서 축구 경기 때 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에선 소름이 끼친다고도 했다. 어쩌면 배출구 없는 불만이 이들을 뜨겁게 달구는지도 모르겠다. 터키엔 볼 것도 많았다. 그랜드 바자르는 6백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없는 게 없는 큰 시장이었다. 특히 온갖 종류의 카펫, 그리고 차라리 예술작품인 그릇들이 눈이 휘둥그레해지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숱한 기독교의 흔적들과 문화적 유산들이다. 보석 궁전으로 잘 알려진 톱카프 궁전의 영롱한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베르사유 궁전을 방불케 하는 돌마바흐체 궁전의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 소피아 사원의 위용, 새하얀 눈이 덮인 듯한 파묵칼레 야외 온천과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즐겼다는 온천탕. 그리고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과 바위 속을 뚫고 그 속에서 사는 괴레메마을의 골짜기, 어느 하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비경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트로이 목마와 그 싸움의 흔적들, 에베소에 남아 있는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원형극장 등도 볼 만했다. 앙카라로 이동 중 들른 고원의 소금호수는 제주도의 한 배 반이나 될만큼 넓은 불가사의의 하나였다. 이제 그곳 의 모든 것을 추억의 갈피 속에 넣어두련다. 그리하여 삶에 지치고 버거울 때 하나씩 꺼내어 그 먼 길. 느림의 여행에서 체험한 즐거움과 벅참, 그리고 행복함을 다시 만끽할 것이다. 끝
첫댓글 여행 전문 기고가로 나서도 전혀 손색 없을것 같아요. 형님 에 입니다요. ... 만보살가이 회원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허락없이 옮겼습니다. 괜찮겠지요
만보 고마워요. 한번에 볼수 있었음 했었거든요. 가려운데 긁어주어 시원합니다.
만보, 고마워. 근데 문단 나누기가 제대로 안 됐어. 그거 엄청 중요한 거거든. 1의 9행 육로 또한 행 바꾸기, 3의 4행과 5행은 붙이되 끄트머리 터키는 지금부터는 행 바꾸기, 9행과 10행은 붙이고 13행끝긑 그러나부터는 행 바꾸기, 아쉬운대로 그 정도만이라도 고쳐주길.
깊이 생각하지 못해 죄송해요. 수정했습니다.
즉각 고쳤네. 고마워. 고친 김에 3. 15-16행은 이어줬으면 좋겠네. 어서 사진을 정리해서 올려야 될 텐데 지난 번 배운 걸 새까맣게 까먹었지 뭐야. 먹을 걸 먹어야지 별걸 다 먹는다니깐. 언제나 기계치에서 벗어날지, 에고고고.....
짬송이 할일을 만보가 대신했네요. 만보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서야 제대로 정리가 됐네요. 사진만 넣으면 좋은데....먼저번 글은 삭제하겠습니다. 먼저 댓글 올린 분들께 미안하네요.